200화.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
찰스로부터 율리만이 계획했다는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프로젝트를 뜯어보았다.
율리만이 최초 과거로 돌아간 시기는 1950년대.
그녀는 미래의 지구를 소형블랙홀에 던지는 대가로 과거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각종 미확인 우주선이 출몰하던 시기도 때마침 그때부터다.
20세기 인류로서는 확인조차 불가능한 스텔스 기술과 투명장막, 순간이동 등을 접목시킨 우주선이 전 세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찰스, 왜 1950년대였어?”
《그건 기술적 한계 때문입니다. 가진 에너지로 최대한 뒤로 돌아가려고 애쓰다 보니 그때였거든요. 사실 뭐든지 계산대로 이루어지는 건 없고, 우주에서의 변수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시간이동이라면 저희 AI들도 완벽한 계산을 할 순 없죠. 하지만 대강 오차 범위 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랬구나.”
《네. 그 이후 율리만은 전 세계 중 일부 인간의 표본을 채집하여 실험을 실시합니다. 방주 안에 살아남았던 인간들은 바로 그런 케이스였구요.》
“알았어. 그럼 내가 과거로 가더라도 율리만은 거기에서 살아있는 거겠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2016년 율리만은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죠.》
“미나가 되어 사는 것을 말하는 거지?”
《네. 자신의 자아조차도 격리시켜둘 정도로 강력하게 무언가를 원한 겁니다. 그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겠지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되겠네.”
《네. 율리만은 그 이후 모든 권한을 크로커라는 합성생명체에게 인계할 겁니다. 그러니 그 둘만 해치우면 모든 일은 끝날 겁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하나만 묻자. 어린 내가 미래로 왔었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는 기억이 없는 거야? 지금의 우주는 평행우주가 아니라 하나의 우주잖아. 정해져 있는 우주잖아.”
《그건 율리만이 어린 시절의 강백현 사용자의 기억을 지워서 그렇습니다. 문제가 되는 기억만 조작하면 그 이후는 간단하니까요.》
찰스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기가 되면 알려줘. 난 평온했던 과거를 다시 율리만으로부터 되찾을 거야.”
《네. 앞으로 6년 후입니다. 아~ 정선희 사용자의 증폭 능력을 사용하면 최대 15년 전의 신체까지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포인트를 사용해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되면 시기는 좀 더 줄어들겠죠.》
찰스의 대답에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진 않아. 지금의 세계도 충분히 만족하니까, 조금 더 즐겨보고 싶어.”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뜻대로.》
* * *
6년이 흘렀다.
백현은 어느덧 26살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모두가 예상하듯 아람이였다.
“어디 가?”
“응? 사람들 얼굴 보러.”
“굳이 오늘? 오늘 너 기일이잖아. 부모님 돌아가신 날 아니야? 제사 지내야지.”
“아니야. 오늘은 그럴 필요 없어. 마지막으로 뽀뽀 한 번 하자.”
“마지막은 무슨 마지막이야~ 왼쪽만 하지 말고 오른쪽도 해.”
“응!”
백현이 평소대로 아람이의 왼쪽 뺨에 뽀뽀를 하고, 그녀의 요구대로 오른 뺨에도 뽀뽀를 했다.
그러자 아람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효성아! 아빠 나간대. 빠빠이 해야지!”
“응!”
아람이와 사이에서 생긴 강효성이 방긋 웃으며 백현의 손을 흔들었다.
“응. 효성아! 사랑해!”
“응. 나두!”
아들 효성이를 안아주며 눈물을 흘리는 강백현.
“왜?! 또 왜 울어? 자기 부모님 돌아가신 것 때문에 그렇지? 아니면 혹시 율리만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강백현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람이도, 아들 효성이도.
그리고 윤수도.
“어~ 백현이 형! 오랜만이에요. 무슨 일이세요?”
“뭐~ 잘 크고 있나 보고 있지. 윤수야! 동생은?”
“지금 엄마랑 유치원 입학 추첨하러 갔어요. 국립 유치원이라 추첨해야 한다고 해서 엄마가 완전 뿔났거든요?”
“그래? 아빠는?”
“같이 갔죠. 그런데 형! 나랑 같이 서핑하러 갈래요?”
윤수는 백현을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제안했다.
“서핑은 위험하잖아. 아직 키메라들이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고, 그들 중에는 이성이 없는 자들도 많아. 그리고 거인은 사라졌어도 바다생물들은 여전히 위험하고.”
“괜찮아요. 전 치료 능력이 있잖아요. 팔다리가 잘려도 내가 치료하면 되는데요? 그리고 슈트도 있고요.”
윤수가 집 안에 보관되어 있는 전투용 슈트를 꺼내들었다.
“맥스가 제 슈트 너무 작다면서 제 몸 사이즈에 맞게 제작해줬어요. 아~ 물론 포인트는 200이나 차감해갔지만, 제가 괴수들 잡은 거 생각하면 이 정도 포인트는 껌이죠.”
“너 설마 괴수잡이 하는 건 아니지?”
“에이! 요즘 제 친구들도 다 해요. 제가 안 할 리가 없잖아요. 저도 이제 곧 성인이에요.”
“아직 12살이잖아.”
“그래도 웬만한 성인보다는 더 강하죠.”
윤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백현이 녀석의 주변에 보호막을 씌웠다.
“아~ 이건 반칙이잖아요.”
“그래. 맞아. 반칙. 그런데 이 정도 능력이 아니면 위험하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잖니?”
“하지만 아빠는 괜찮다고 하는걸요?”
김만철, 이 모든 게 김만철 잘못이다.
애를 어떻게 키우는 건지, 12살짜리를 어떻게 괴수잡이를 시킬 생각을 하는 건지.
그것보다 그걸 허락하는 정선희 누나도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지금 세상이 정상은 아니잖아?
세상은 바뀌었다.
거인들은 처리됐지만, 수많은 변종생물들이 아직도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거대한 익룡도 살고 있고, 거대 문어의 일종인 크라켄도 있고, 50m짜리 뱀인 슬랜더 아나콘다도 세상에 존재한다.
이 모든 게 율리만이 만들어낸 실험의 결과.
분명히 과거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진짜 바로잡아야 하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형! 잠깐만요. TV 좀 켤게요. 같이 보실래요?”
“뭔데?”
“오늘 그날이잖아요.”
박윤수가 켠 TV.
TV 방송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에 떠올랐다.
슈트를 입은 사람들.
그들 앞에는 수많은 키메라와 장애물 그리고 각양각색의 위험한 장치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3cm 헌터 10종 경기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인간들이 작아졌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그때는 정말 끔찍했는데 지금은 다들 추억으로 남아 있네요. 추억을 기리고자 50배 배율의 세트장을 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은 3cm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장애물을 넘어 목표지점인 빛의 전장에 도착하시면 되겠습니다. 빛의 전장은 18시간 뒤에 활성화됩니다. 최종 생존자에게는 프로그램 [찰스]가 성적에 비례해 포인트를 분배할 예정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50배 크기로 제작된 빌딩 크기의 싱크대에서 시작하는 일행들.
일행의 앞에는 50배 크기가 된 쥐들이 가로 막고 있다.
그들을 죽이고 주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현관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50배 크기 고양이의 추적을 피해 도로로 나간다. 그리고 달려오는 차량 중 하나에 탑승해 도심지로 탈출하는 게 이번 헌터 10종 경기.
총 10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진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5만 명이 넘는다.
“윤수야. 형 갈게.”
“아,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오늘은 바빠서. 형이 다음에 와서 놀아줄게.”
“응.”
백현은 TV를 뒤로하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고 다녔다.
유치원에 들러 김만철과 정선희, 그리고 그 둘의 딸을 보며 인사를 해주고, 최형우 아저씨를 만나 인사를 건네고, 가다가 장복남 아저씨를 보며 미소를 지어준다.
이진기, 김종필, 송기영 형과도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건넸다.
모든 게 꿈만 같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모두가 행복한데 과거를 바꾸는 게 맞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생겨버렸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주선 안.
찰스와 맥스가 백현을 기다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운명의 때가 왔네요.》
“그러게.”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강백현 마스터의 신체나이는 26세, 만으로 25세이므로 만 15세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찰스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2016년 8월 16일, 강백현 사용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루고 가족여행에 참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2시 16분, 뺑소니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아, 알아.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거기서 교통사고가 일어날 텐데, 그 시간 강백현 마스터는 미니맵을 사용하여 주변에 있는 크로커다일, 이하 크로커라는 합성종 생명체와 미나로 변한 율리만의 존재를 소거하고 다시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오면 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백현의 질문에 찰스와 맥스가 동시에 대답했다.
《목적을 잃은 우주선은 동면상태에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인류의 기술이 발전해서 현재의 위장기술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되면 이날의 진실이 밝혀지겠지요.》
“금방 들키진 않겠지?”
《AI를 너무 얕보지는 마십시오. 인류 전체가 1년 동안 발전시킬 문명이라면 저희는 1시간이면 가능합니다. 에너지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더 빠르게 앞당길 수도 있고요. 보십시오. 현재 인류의 발전을! 멸망했던 인류의 찬란한 문명이 지금 막 펼쳐지고 있지 않습니까?》
인류는 산업혁명을 거쳐 약 500년 동안 근대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현재 인류는 찰스와 맥스를 비롯한 AI들의 도움을 받아 불과 6년이란 짧은 시간 만에 과거 인류의 문명을 뛰어넘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농사를 짓는 안드로이드.
자동으로 건강을 체크해주고 질병도 고쳐주는 헬스 케어 시스템.
건물은 3D 건설 로봇이 지어준다.
그로 인해 3cm 헌터 10종 경기가 펼쳐지는 세트장도 겨우 5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원의 재순환이 99% 수준으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거의 없는 청정한 환경을 이룩했다. 인류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모든 문명이 파괴되는 거네.”
《어차피 기술은 발전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스터께서 또 다른 2026년으로 가신다고 해도, 지금의 기술을 따라잡는 건 순식간일 겁니다. 그만큼 AI는 인간이 상상도 하지 못할 계산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네요.》
“응?”
《율리만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움직였다면 200년간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었을까요? 지금쯤 인류는 지구가 아닌 우주를 지배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마스터께서는 정말로 그렇게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찰스와 맥스의 연이은 칭찬에 백현이 방긋 웃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세상.
그 즐거운 세상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마스터는 이곳이 아닌 2026년의 어느 곳으로 떨어져 있을 겁니다. 마스터가 과거에선 26살 때 과연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궁금해서 저희가 계산해봤습니다. 잠시 보여드립니까?》
강백현의 모습을 보여주는 맥스와 찰스.
그의 화면 앞에 여러 모습의 강백현이 펼쳐져 있다.
의대생이 된 강백현, 웹툰 작가가 된 강백현, 직업군인이 된 강백현과 골프 선수가 된 강백현, 요리사가 된 강백현, 거기에 공무원이 된 강백현의 모습까지 동영상으로 구현해준다.
“저게 다 내 미래라는 거야?”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죠. 앞으로 1시간 후에 펼쳐질 미래가 되겠네요. 그 결과를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어디까지나 아쉬울 뿐입니다.》
강백현은 생각했다.
과거를 바꿔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과 현재의 미래를 지켜보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어떤 게 올바른 일일까? 어떤 게 합리적인 선택일까?
만약 과거를 바꾼다면, 현재의 미래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를 바꾸지 않는다면, 미나와 엄마, 아빠, 그리고 인간들이 겪었던 치욕적인 과거는 그대로 현실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런 고민이 겉으로 드러났기 때일까? 찰스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과 저희들은 자신들이 사라졌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겁니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니까요. 마스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미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더 문제다.
“운명을 바꾸려면 얼마나 남았지?”
《율리만과 크로커를 동시에 제거하고 강백현 마스터의 동생과 부모님을 살리는 계획이라면, 앞으로 48분 43초 후에 신체전이 능력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찰스의 말에 백현이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48분 43초라, 좀 더 고민 좀 해봐야겠어. 이럴 거면 차라리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군.”
* * *
작가의 말.
3cm 헌터가 드디어 완결되었네요!
작년 2018년 3월부터 구상을 시작했고, 작년 9월부터 준비했는데 벌써 1년 4개월의 시간이 지났네요.
중간에 일본에서 ‘3인치’라는 제목의 만화가 나와 프로젝트 자체가 좌초될 위기가 있었는데, 다행히 제 작품과는 진행이나 서사 구조가 상당히 달라서 안심하고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시각화(웹툰)를 계획하고 연재한 작품이었습니다.
계약한 시점부터 웹툰 제작이 이미 확정되어 있었죠.
저를 믿고 웹툰 제작에 투자를 결정해주신 길찾기 출판사 여러분께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곧 이 작품도 제 전작(취사병, 전설이 되다)과 마찬가지로 웹툰으로 선보일 것 같습니다.
엄청난 웹툰 작가님께서 작업하셨다고 하니, 저도 기대가 되네요!
그동안 조금 지루해도 믿고 봐주신 독자 분들, 정말 감사드리고, 차기작은 더욱 더 재미있는 장르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차기작은 전문가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조만간에 좋은 작품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토요 웹툰! 취사병 연재중이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