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99화 (199/200)

199화. 진실

미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흉터를 감췄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강미나! 야! 손 다시 보여줘!”

하지만 미나는 오히려 정색하며 백현의 요구를 거부했다.

“오빠, 그만하자. 나 갈래. 앞으로 이 얘기 하지 말자.”

“아니, 못 가.”

백현은 미나의 주변에 보호막을 쳐 두 사람만이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후회 안 해? 내가 사라져도 후회 안 해?”

“사라지다니? 너 자꾸 왜 그러는데? 왜 그런 건데?”

“묻지 말라고 했잖아. 오빠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그러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고, 그럼 나도 편하고 오빠도 편하잖아.”

백현은 미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심각한 두통이 밀려왔다.

그래서 백현은 자신의 두 번째 능력인 자연치유 능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이상한 기억들이 서로 충돌한다.

“강미나……. 이게 뭐야? 너 뭐야? 너 뭐야?!”

미나의 여러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조현증을 앓고 있는 미나와 킥킥대며 벌레들을 죽이고 있는 미나, 울다가 웃는 등 기분의 변화가 심한 미나, 아무것도 모르는 평온한 얼굴을 한 미나 등 갖가지 미나의 모습들이 백현의 기억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 * *

기억이 되돌아왔을 때는 미나의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오빠는 맨날 선을 넘어.”

“강미나. 아니, 도대체 넌 누구야?”

“그런 말이 선을 넘는 거야.”

그 누구보다도 따가운 시선에 백현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너 누구야? 넌 내 동생이 아니야. 누구니?”

백현의 호소에 강미나가 키득키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건 실패야. 오빠가 자연치유 능력만 배우지 않았어도 실패는 아니었을 텐데, 영원히 속일 수 있었을 텐데…….”

여동생의 배신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이제는 여동생으로 느껴지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이질감이 백현을 괴롭혔다.

백현이 그녀를 보며 정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율리만,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내 동생인 척했던 거야? 어?”

백현의 질문에 미나의 모습을 한 율리만이 킥킥대며 웃는다.

“오빠가 다 망쳤어. 내가 선 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면 오빠는 착한 오빠로 남았을 텐데. 세계의 영웅, 무엇보다 가장 강한 남자로 만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아직 청소년인 미나의 모습이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한 미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나는 율리만. 오빠의 죽음 이후, 세상을 부수고 오빠를 구하기 위해 세계를 구했어.”

“내가 죽었다고?”

“이번 세상 말고, 다른 차원, 다른 세계.”

율리만의 말에 백현이 다시 되물었다.

“율리만, 언제부터야?”

그러자 율리만이 도로 되묻는다.

“그것보다 어떻게 안 거야? 난 율리만으로서의 자아를 철저하게 격리시켰어. 그때 이후 오빠한테 한 번도 들킨 적도 없고, 마인드 리딩 능력도 내가 선점했기 때문에, 같은 능력을 두 개 이상 공급하지 않는 AI의 특성상 내가 들킬 확률은 0%에 수렴했다고 봐. 이 모든 계획이 완벽했어. 그런데 어디서 어긋난 거야?”

율리만의 말에 백현이 씁쓸한 얼굴로 대꾸했다.

“우연이지. 네 팔의 그 상처. 그리고 당황한 표정. 그리고 네가 그렇게 신경 쓰던 신체전이능력으로 추측한 거야. 네 팔에 상처가 난 건 6살 때의 일이지. 그렇다는 건 네가 미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은 6살 이후가 되는 거네. 언제부터야? 넌 언제부터 미나 흉내를 내고 살고 있던 거야?”

백현의 질문에 율리만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엄마, 아빠의 교통사고. 그때 엄마, 아빠가 죽고 과거의 미나가 죽었어. 내가 그 자리에 남으면 오빠가 좋아해줄 줄 알았지. 실제로 그랬잖아. 오빠는 나한테 인생을 걸었지.”

“그런데?”

“그게 좋더라. 한두 번 하니까 내가 진짜 미나가 되어보고 싶었어.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미나 그 자체가 되고 싶었던 거지. 실제로 난 미나지만, 미나가 아니기도 했으니까.”

수십 개, 아니 수천 개의 자아가 뭉쳐진 세포기반 AI. 그러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

그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거구나.”

“맞아. 그건 우리들의 숙명이니까. 우리들을 만든 게 인간이잖아. 어떻게 보면 우리들한테 인간은 창조주인걸?”

백현은 율리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과거의 역사, 기억 등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의심은 들었어. 모든 게 들어맞진 않았잖아. 뭔가 애매하게 맞춰가는 네 추리가 이상하기도 했고. 특히 방주를 나온 이후부턴 아람이가 널 싫어했잖아. 네가 의심스럽다고, 네가 무섭다고 했었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네가 어떤 일을 했을지 모른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지금에서야 왜 그런지 알게 되네.”

“킥킥,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폭주능력을 준 거야.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오빠와 멀어지라고. 걔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만약에 내가 오빠랑 행동하면서 스스로 율리만이라고 자각할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김아람 걔를 오빠 곁에 두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걔가 오빠한테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소설을 빙자해 소꿉친구를 구하라고 암시를 해두었지. 실제로 내가 계산한 대로 걔가 오빠를 몇 번이나 구했잖아. 안그래?”

율리만은 자포자기한 얼굴이었다. 그런 그녀를 백현이 몰아붙였다.

“그래서 계획이 뭐야? 날 죽이는 거? 아니면 과거로 또 돌아가는 것?”

“아무래도 과거로 돌아가야겠지. 이번 페이즈는 실패야. 오빠가 자연치유 능력을 배운 게 내 패배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그것만 배우지 않았다면 기억의 조작이 완벽했을 텐데. 그렇다면 오빠랑 50~60년은 더 같이 살 수 있었을 텐데.”

율리만의 대답에 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로 돌아가면 인류는? 네가 원했던 모두의 생존은? 모두가 행복한 미래는?”

백현의 질문에 율리만이 고개를 저었다.

“걔네들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거야 처음부터 다시 만들면 되는 거지. 난 그럴 능력이 있어. 인간들은 원래부터 너무 많은 생명체를 죽였어. 인간들도 똑같이 겪는 게 두려운 거야?”

“강미나. 아니 율리만, 너 미쳤구나?”

“큭큭. 인간은 참 대단해.”

“…….”

“항상 자기한테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한다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거야. 너도 사람으로 살아봤으면 알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얼마나 슬픈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알아. 너무 잘 알아.”

“그런데 왜?”

“내가 오빠를 사랑하니까! 오빠는 영원히 내 거야. 내 곁에 둘 거야. 난 세계가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멸망하더라도 오빠를 내 곁에 둘 거야. 이게 오빠가 말하는 사랑 아니야?”

“율리만…….”

모든 것의 원흉이었던 율리만과 미나는 동일한 존재.

하지만 사고방식 자체는 인간의 선을 넘어선 괴물이었다.

백현은 끔찍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시간을 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나,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어. 그 뉴런은 너한테 어떤 존재야?”

“내 자식이지 뭐. 이번 세계에서 오빠를 납득시킬 수 있도록 만든 창조물. 세상에 적은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만든 거야. 지금으로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미나의 말에 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미나, 아니 율리만.”

“응?”

“여기서 난 너를 죽일 수도 있어. 그 선택지는 생각 못한 거야?”

백현의 말에 율리만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니, 오빠는 날 절대 못 죽여. 내가 오빠하고 같이 몇 년을 살았다고 생각해? 난 오빠하고 천 년, 아니 2천 년도 넘게 살았을 거야. 수백 번을 회귀하며 오빠의 다양한 모습을 봤어. 그동안에 오빠는 모두 나한테 의존했어. 날 끝까지 믿고 날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보냈지.”

“그럴 거면 그냥 클론을 둬. 나하고 똑같은 놈을 곁에 두고 살면 되잖아.”

“1~2년만 고생하면 오빠가 50~60년 동안 생명이 다 끝날 때까지 곁에 있을 수 있는데, 6개월마다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클론 따위에 마음이 갈 리가 없잖아.”

“진짜 미쳤구나.”

“그런가?”

“그래. 하지만 난 널 죽일 거야. 그럼 이 모든 게 끝나겠지.”

“그렇게 하든가. 하지만 이대론 안 될 거야. 이미 오빠의 손은 봉인해두었으니까.”

율리만이 마인드 리딩을 쓴 모양이었다.

그러나 백현에게는 아무 영향도 없었다.

오히려 율리만의 주변에 보호막을 펼친다.

그러자 율리만이 당황한 표정이다.

“내가 마인드 리딩으로 움직임을 막았잖아. 오빠가 능력을 쓸 수 없도록 기억도 막았어! 그런데 왜?”

“난 너를 보자마자 뇌 주변에 얇은 보호막을 활성화시켰어. 바깥에서는 내가 아무 능력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내 뇌를 둘러싸고 보호막이 펼쳐져 있는 거지. 네 마인드 리딩 능력은 처음부터 안 통했다는 거고.”

율리만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빠는 나 못 죽여. 하나뿐인 여동생이잖아.”

“그래. 하나뿐이면 못 죽이겠지.”

“뭐?”

“하나가 아니라면 죽일 수 있겠지. 10년 전 신체로 돌아가면 내 친동생이 살아있는 거잖아. 네 실수는 내가 자연치유 능력을 배우도록 놔둔 게 아니야. 신체전이 능력을 배우도록 놔둔 것이 실수지.”

“오빠! 오빠!”

율리만이 다시 16살의 모습으로 돌아와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율리만의 내부에서 펼쳐지는 보호막의 소용돌이가 16살의 미나의 몸을 안에서부터 파괴하기 시작한다.

“안타깝지만 끝이다. 율리만.”

“안 돼! 안 돼! 안 돼!”

율리만이 결국 소멸되었다.

백현은 강미나라는 표시가 미니맵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미니맵에서는 끝까지 율리만이 아닌 강미나로 표시가 되었다.

‘결국 미니맵도 믿을 건 못 되는구나.’

강백현은 눈물을 머금었다.

자신의 모든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모든 원흉은 자신이었다.

동생을 위한 마음이 오히려 율리만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세상을 멸망시키는 기이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끝.

이제는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백현이 홀로그램의 이름을 불렀다.

“찰스, 방금 전 율리만과 대화한 기록을 저장해주겠어?”

《네. 아~ 방금 전 강미나 사용자의 죽음으로 최종승인권자의 권한이 차순위 사용자인 강백현에게 인계되었습니다.》

“그래? 그게 무슨 차이지?”

백현의 무덤덤한 질문에 찰스가 대답했다.

《글쎄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고 할까요?》

“응?”

《강미나 사용자가 기획한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이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저도 지금 막 액세스 권한이 생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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