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96화 (196/200)

196화. 백신

미나는 율리만의 역할이 백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뉴런에 대한 백신.

백신이 가동해서 뉴런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분명 곧 죽어버리게 될 것이다.

미나는 주저앉은 채, 율리만이 그동안 비밀로 했던 기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수많은 역사와 과거. 그리고 율리만과 율리안, 즉 미나와 백현이 미래에선 왜 저런 존재가 되었는지도.

《진실은 원래 잔혹한 법입니다. 하지만 그런 역사의 굴레를 마무리하는 것은 바로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빠도 거기에 동의해주었고요.》

율리만과 율리안은 과거 어느 시점에 존재하던 미나와 백현의 복제물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늘리고 또 늘렸으며, 죽으면 다음 개체가 목표를 이어받아 그대로 수행하는 존재였다.

《전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아요. 또 다시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함의하는 뜻은 명확했다. 율리만과 율리안이 지금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과거의 인간들을 희생시켰다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후회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이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해요……. 누구도 감히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잠시만요!”

《행운을 빌겠습니다. 이곳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안녕. 나의 후손, 나의 과거.》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 율리만의 마지막 음성이 미나와 일행을 충격에 빠트렸다.

잠시 후, 모든 거인이 제거되었다.

모든 우주선이 모선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선 제로시우스로 들어왔다.

그 모든 사람들이 이젠 자유다.

* * *

모든 거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인류는 결국 구원받았다.

21세기, 공장 매연에 수많은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던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치적인 이슈도 없었고 파벌도 없었다.

싸움도 없고, 다툼도 없고, 사람들은 그저 생존했다는 사실만을 감사하고 있었다.

죽을 위기를 겪고 난 후 인류는 변했다.

욕심보다는 현재의 평온한 생활을 유지하길 원했다.

오염된 지구가 자정작용을 통해 건강해진 것이 벌써 200년.

인류는……

“자자자! 모두 진정합시다. 자칭 알렉스라는 AI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미래의 지구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멸망의 위기 때문에 이곳으로 전송되어 온 것이고요.”

“아,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갈 순 없는 거겠죠?”

“일단은 현재에 집중합시다. 집을 짓고, 터전을 잡는 게 먼저겠지요.”

어떻게든 적응해나가고 있다.

* * *

3주가 흘렀다.

우주선은 무사히 지상에 안착했고, 인류는 원래의 고향이었던 대지로 돌아갔다.

미국 사람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은 동아시아 대륙으로.

유럽 사람들은 유럽 대륙으로.

각자의 나라로, 각자의 터전으로 이동하는 행렬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주선에 남은 사람들도 있다.

“오빠! 아직도 연구 중이야?”

“어.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고 있어.”

“그 방법은 안 쓴다고 했잖아.”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확인해보고 있어.”

“시간 낭비야. 오빠도 좀 즐겨. 데이트 좀 하고!”

“뭐래! 나 괴롭히지 말고 너나 나가 놀아.”

“칫! 알았어.”

미나가 나가자, 백현은 다시 우주선의 기능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주선에 남아 조종 레벨 3의 능력을 통해 가능한 모든 기능을 검색하는 백현.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큰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

“맥스, 지구를 파괴되지 않고는 과거로 돌아갈 순 없는 거야?”

《네.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에너지가 소모될 겁니다. 지구가 파괴되어도 좋습니까?》

맥스의 말에 홀로그램 찰스가 의견을 덧붙였다.

《물론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도 상관없다는 전제라면 언제라도 가동은 가능합니다. 단, 그 권한은 현재 마지막 시퀀스까지 훌륭하게 수행해주신 강미나 사용자님의 허가가 있어야 하겠지만요.》

과거로 돌아가는 기술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며, 그런 에너지를 사용하면 지구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버틸 수 없게 된다.

“미래로 가는 기술도 마찬가지인 거야?”

《네. 맞습니다. 제가 강백현 사용자로부터 들은 정보를 취합해서 내린 결론은, 강백현 사용자가 있던 다른 차원의 지구는 99.99% 확률로 파괴당했을 거라는 겁니다. 과거로 이동하는 것이나 미래로 이동하는 것은 차원을 넘는 기술이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그 에너지 소모량은 결국 행성을 파괴하게 되어 있죠.》

결국 도돌이표.

과거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현재의 지구가 파괴되고.

과거에서 미래로 온 지금은 과거의 지구가 파괴된 상태다.

2019년 6월 18일. 인류가 작아진 날.

2019년 6월 21일. 인류가 미래로 이동한 날.

그리고 그쪽 차원의 지구가 파괴된 날.

즉, 지금 인류의 생존은 과거의 희생으로부터 얻어낸 보상품이 된다는 해석에 이른다.

“백현아~ 뭐해!”

강백현은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냥 잠깐 생각 좀 하고 있었어.”

“나랑 어디 좀 갈래?”

강백현은 김아람의 말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디 갈 건데?”

“일단 따라와 봐.”

“아, 어. 대신 한 시간만이야.”

“응. 알았어.”

김아람은 백현을 데리고 우주선 밖으로 나왔다.

현재 우주선의 위치는 한강 위.

그리고 백현과 아람이가 가는 곳은 원래 살던 집인 방배동 부근이다.

“짜잔! 우리 집!”

반듯한 나무로 세워진 집.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주택과는 거리가 멀지만, 현재 흔적만 남은 도심지에는 목재로 만든 집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다.

“많이 만들었네. 부모님은?”

“엄마랑 동생은 잠깐 나가셨고, 아빠만 계셔. 잠깐만!”

나무로 된 집의 문을 열자, 앞에서 익숙한 사람이 방긋 웃으며 백현을 맞이했다.

“백현이 왔니?”

“료스케 아저씨.”

“그래. 네 이야기는 매일매일 우리 딸한테 듣고 있어. 너와 아람이가 그런 끔찍한 일들을 헤쳐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나지가 않아.”

료스케의 말에, 강백현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의 죽음이 떠올랐다.

끔찍한 장면을 떠올리자 헛구역질이 나오는 백현.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료스케에게 말했다.

“아……, 죄송해요.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니야. 나 때문에 그런 거지?”

“아니에요. 아저씨, 정말 아니에요.”

“괜찮아. 아람이도 나 처음 봤을 때 그런 표정 지었었어. 난 괜찮으니까 나가보렴.”

“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람의 집에서 나온 백현. 아람이 그 옆에 붙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거야?”

“응. 모르겠어. 난 이게 맞는지, 이게 정답인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지금의 상황에서 백현의 말은 아람에게 씁쓸한 표정을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도 솔직히 모르겠어. 아빠가 진짜 아빠인지도 모르겠고, 엄마가, 동생이 진짜 동생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만들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내가 역할 놀이를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클론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맞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난 지금의 평화를 지킬 거고,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마주볼 거야.”

“응.”

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람이 갑자기 강백현의 양 뺨을 두 손으로 잡더니 고개를 가까이 한다.

“아람아, 이게 무슨…….”

아람이의 고개가 다가오자 강백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우려했던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키스를 당할까 고민했던 강백현.

하지만 아람이의 행동은…….

“그러니까 너도 쓸데없는 데 집중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을 봤으면 좋겠어. 넌 저 사람들을 다 부정할 거야?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은 거야?”

김아람이 강백현의 양 뺨을 움직여 고개를 돌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게 했다.

돌을 옮기고 나무를 자르며 새로운 거주지를 만드는 사람들.

자신들의 인생을 찾아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인류의 재건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아람이는 그걸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백현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아람아……. 나는…….”

“과거로 못 돌아가. 돌아가도 이 사람들을 죽이는 방법밖에 없는 거면 난 무조건 반대야.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잖아. 비록 문명은 퇴보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넌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는 거야? 네 주변의 모습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강백현은 김아람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르겠어. 이게 정답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정답이 있는지. 난 그걸 찾아보고 싶어.”

내심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강백현과, 과거로 돌아가면 결코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아람의 대립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못 가. 가지 마!”

김아람이 염력으로 자리를 뜨려는 백현을 막아섰다.

“아람아, 네 염력으로 날 막을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잖아.”

백현의 주변에 자동으로 보호막이 펼쳐졌다.

그러자 아람이의 염력이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만다.

“그러니까 대화로 하는 거야. 안 돼? 연구 그만하면 안 돼?”

아람이는 적극적으로 백현을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백현은 자신의 공허함 극복하지 못한 상태. 결국 아람이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말았다.

“시간 됐다. 다시 연구하러 가야 해.”

“연구는 무슨 얼어 죽을 연구야! 율리만도 말했잖아.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그만두라고! 더 이상 미친 짓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잖아.”

“그건 율리만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달라.”

“율리만이 얼마나 불행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미나가 왜 네 곁에 있는지 몰라? 율리만, 율리안이 너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 곁에 있는 거야. 그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은 우주선에서 네 옆에 남은 이유가 바로 널 설득하기 위해서라고!”

김아람의 독설에 강백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비난해. 힐난해. 그래도 난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거야. 난 절대 여기 생활에 만족 못해.”

강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호막을 발판삼아 우주선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과거의 인류와는 전혀 다른 능력자들.

그중 정점에 선 강백현을 막아설 자는 거의 없다.

김아람은 떠나는 강백현을 보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 * *

백현은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맥스가 반가운 얼굴을 내보이며 백현에게 알렸다.

《김만철 사용자가 강백현 사용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 지금 어디 계셔?”

《회의실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라고 할까요?》

“아니야. 내가 갈게.”

우주선 내부의 분리된 공간들.

그중 회의실이라고 불리는 거울과 유리로 된 방에는 반갑게도 김만철과 박윤수가 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현아~ 오랜만이다.”

“아~ 형이 여긴 웬일이세요? 선희 누나 곧 출산하지 않나요?”

“응. 그런데 윤수 요 녀석이 이걸 가지고 있기에, 너한테 주려고.”

박윤수는 못마땅한 얼굴로 김만철을 보았지만, 김만철은 백현에게 위험한 물건이라며 두루마리를 건넨다.

“10년 전의 몸과 위치를 바꾸는 능력이래. 윤수가 이걸 배우려고 하는데, 이거 배우면 큰일 나는 거잖아. 윤수가 아직 10살도 안 됐는데, 10년 전하고 바뀌면 정자나 난자로 바뀌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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