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93화 (193/200)

193화. 언어의 중요성

그렇다. 홀로그램에서 제공되는 언어는 철저하게 지역 기반이었다.

한국이면 한국어, 중국이면 중국어, 일본이면 일본어.

각자의 언어가 아닌 지역에 따른 언어.

그래서 일본어에 익숙한 아람이는 읽을 수 있었던 것.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나 미나다. 아람이가 읽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

좌우간 지금 당장은 10분 내로 1km 구간을 주파해야만 하는 일행이었다.

또한 가능한 한 보호막 능력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뛰자!”

“네.”

슈트를 입은 4명이 달음박질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뛰어가는 방향은 당연히 6성급 거인과 7성급 거인이 있는 곳.

즉사 능력을 가진 6성급 거인은 10분마다 한 명을 죽일 수 있다! 그래서 녀석부터 처리를 해야 한다.

옥수수밭을 지나자, 거인들이 지나다니는 움푹 파인 진흙구간이 나타났다.

아무리 슈트를 입어도 진흙구간에 빠지면 이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두 명의 능력자가 진흙구간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오빠는 마지막까지 능력 쓰지 마. 최대한 아껴. 아껴서 마지막에! 마지막에!”

미나가 날개 능력으로 백현을 양손에 들고 진흙구간을 날아가고, 김아람은 김만철을 들어올려 진흙구간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

진흙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 착지,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성큼, 성큼, 성큼, 성큼 보폭을 늘려 속도를 높이는 일행들.

달리면 달릴수록 신체능력은 더 강화되는 중이었다.

“땀 흘릴수록 좋아! 더 흘려! 더 흘려!”

김만철은 일부러 땀을 내며 속도를 높였다.

슈트는 땀에 반응한다. 땀이 나면 슈트가 인간의 유전자를 더 많이 흡수하게 된다.

슈트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인간의 속도는 초인에 가까웠다.

한 마리의 야생마다. 거침없이 초원을 달리고 장애물을 넘어 1km 거리의 거인에게 도달하기까지 겨우 3분 25초가 걸렸을 뿐이다. 완벽한 세이프다.

남은 시간은 6분 남짓, 대화하며 허비한 35초, 이동하느라 허비한 3분 25초를 고려해도 상당한 시간이 남았다.

그때 인간의 접근을 발견한 거인의 손가락에서 번개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섬광이 번뜩이고 천둥소리가 이어진다.

콰과과광!

7성급 거인의 번개 공격에 깜짝 놀란 일행은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자신의 몸을 확인해보았다.

몸은 먼지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 이유는 주변에 둘러쳐져 있는 보호막 때문이었다.

“다들 흩어져!”

강백현의 초인적인 반사신경이 동료들의 목숨을 살렸다.

목숨을 건진 일행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백현 일행은 거인의 시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갈대숲 일대로 들어갔다.

이때부터는 미나의 주도로 작전이 이어졌다.

《5분 25초 남았어. 6등급 거인부터 처리할게. 언니! 나 엄호해 줘.》

즉사 능력 발동까지 약 5분.

미나는 시간을 재며 거인에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갈대숲을 지나면서 사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로 인해서 거인들이 갈대숲으로 눈을 돌렸다.

7등급 거인은 갈대숲에 숨어든 인간들에게 번개 능력으로 절망을 선사했다. 100만 볼트짜리 번개가 갈대숲에 떨어지며 엄청난 소음과 섬광을 뿌려댔다.

분명 낮임에도 주변을 백색의 섬광으로 뒤덮는 번개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인의 번개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체가 타는 냄새 같은 것도 없다.

김아람은 숨을 헐떡이며 만철에게 말했다.

“성공이에요.”

“응. 괜찮니? 아람아! 다친 데는 없어?”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요. 귀가 멍멍해서 하나도 안 들려.”

다행히 김아람은 다친 곳은 없었다.

갈대숲을 지난 것처럼 보인 것은 단순히 염력의 힘이었다.

염력을 사용, 인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갈대를 넘어뜨려 거인들의 공격을 분산시킨 것.

미나가 6등급 거인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었다.

미나는 가까이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마인드 리딩 능력을 강하게 적용할 수 있다.

거인의 경우 체내의 합성 텅스텐으로 마인드 리딩에 저항성을 얻게 되지만, 초근접거리에서는 그것도 통하지 않는다.

6등급 거인만 죽이면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고, 시간을 벌면 언젠가는 7등급 거인을 공략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모두의 작전.

미나는 거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갈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접근했다.

그리고 그런 미나를 도와주기 위해 양동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또 다시 누가 지나가는 듯 휘어지기 시작한 갈대들.

이번에는 종전과는 달리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방금 전과는 다른 패턴으로 거인의 시선을 유도한다.

7등급 거인은 의아한 시선으로 갈대밭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는 판단이 되지 않는다.

7등급 거인의 지능은 원숭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자신이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외부의 위협에 저항할 수 있는 건 물론, 단순하긴 해도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과 분석을 거쳐 나름대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지능을 이길 순 없었다.

아까와는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는 이 미끼가 누군가의 분신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는 없었다.

쫘라라락! 콰과과과광!

벼락이 비를 내리듯 뿌려졌다.

엄청난 벼락의 빗줄기가 지그재그 움직이는 백현의 분신에게 집중되었다.

저번과 달리 타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시체도 보인다.

문제는…… 분신은 죽으면 사라진다는 것.

제한시간이 지나거나 생명체로서의 기능이 멈추면, 제 아무리 분신이라도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듯 자취를 감추고 만다.

7등급 거인은 또 한 번 속은 것을 알아챈 듯 주변에 쉴 새 없이 번개를 뿌려댔다.

제 아무리 넓은 갈대밭이라도 무차별적인 번개에는 버틸 수가 없다. 순식간에 불이 붙어서 타오른다.

미나의 이동을 돕던 백현은, 6등급 거인에게 다가가는 길목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고개를 저었다.

“불이 너무 강해. 보호막으로는 오래 못 버틸 거야.”

“그래도 가야 해. 알잖아.”

“알았어. 그럼 길을 마련해줄게.”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백현이 보호막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인의 정신이 분산된 틈을 이용해 시선을 빼앗기 위해서다.

양탄자를 타듯 하늘로 날아올라 거인에게 보호막 파편을 던지는 백현. 그 행동에 거인이 분노의 분노가 폭발했다.

동시에 6등급 거인의 기다란 혀가 채찍처럼 파고들어왔다.

너비 3m, 길이는 무려 80m에 말도 안 되는 유연성을 보유한 혀였다. 거대한 채찍이나 마찬가지였다.

백현이 6등급 거인의 공격을 정신을 집중해서 피하기 시작했다.

휘리릭!

혀의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한 백현. 하지만 혀가 가르고 지나간 공기의 움직임으로 인해 백현의 발이 보호막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휘리릭!

아까의 공격이 곧바로 다시 백현을 노렸다.

혀에 붙잡히는 순간 거인의 뱃속으로 직행일 것이 분명했다.

개구리는 먹잇감을 그렇게 잡아먹는다.

백현은 80m가 넘는 길이의 혀로 인해 더 이상 거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만철이 형! 도와줘요!”

“백현아, 나도 상황이 안 좋아.”

김만철은 아람이와 함께 7등급 거인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아람이가 만드는 허상의 갈대밭 유령, 그리고 번개도 포착하기 힘든 김만철의 빠른 움직임에 7등급 거인의 공격은 유효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

김아람의 체력이 점차 고갈되고 있다.

“어떻게 좀 해봐! 빨리! 빨리!”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김아람은 시간이 결코 자신들의 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때 강미나가 날개를 펄럭이며 거인의 뒤편에서 날아올랐다.

마치 나비가 하늘을 활공하듯 반짝이는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미나의 얼굴에는 죽음의 각오가 깃들어 있다.

‘제발! 성공해야 해. 한 번에! 한 번에 성공해야 해!’

강미나가 자신의 두 손을 거인의 머리를 향해 펼친다.

그리고 기억을 읽기 시작한다.

거인의 마지막 기억을 확인한다. 그리고 거인이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최초로 되돌린다. 그렇게 하면 거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뇌의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쉴 새 없이 혀를 움직이던 6등급 거인의 움직임이 멈췄다.

미나의 마인드 리딩이 완벽하게 통한 탓이다.

마인드 리딩으로 거인의 행동을 봉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최강 중 최강.

모든 생명체의 행동을 멈출 수 있는 능력.

거기에 약간만 조작을 가하면 상대를 자살하게도 만들 수 있는 최강 중 최강의 능력.

그런데 미나가 긴장을 놓지 못한다. 도리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미나야. 왜 그래?”

“오빠, 거인의 머리를 봐.”

“거인의 머리?”

6등급 거인의 주변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강백현의 능력과 색깔은 다르지만 분명한 같은 능력.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

7등급 거인의 손에 의해 6등급 거인의 몸에 보호막이 둘러지고 있다.

“안 돼! 안 돼!”

미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앞으로 5초만 더 있으면 되는데, 5초의 시간만 더 있으면 되는데!

보호막이 머리를 감싸면 이제 마인드 리딩은 통하지 않는다.

보호막의 보호를 받게 된 6등급 거인의 혀가 허공을 날고 있는 미나를 노렸다.

원래 개구리의 혀는 날아다니는 생물을 포획하는 데 더 적합하다.

개구리는 몸의 구조상 눈은 항상 위를 바라보게 되어 있다. 때문에 파리, 모기, 하루살이 등 날아다니는 생명체에 대한 시야가 항상 확보되어 있다.

지금의 거인도 마찬가지였다.

거인의 머리는 상공 30m 위를 향해 있다.

바닥에 있는 먹이를 포착하는 것보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먹이를 포착하는 게 더 쉽다.

휘리릭!

하지만, 6등급 거인의 혀는 100% 포획에 성공해야 하는 먹잇감을 놓쳤다.

그 이유는 7등급 거인의 보호막 때문이었다.

보호막 때문에 혓바닥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온 것.

6등급 거인은 상황을 판단하고 주먹을 내질렀다.

미나는 생각보다 느린 6등급 거인의 주먹을 비행으로 피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현은 제반 상황을 분석하고 7등급 거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동생이 6등급 거인을 상대로 홀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만철과 아람에게 합류하는 것이다.

7등급 거인은 6등급 거인에게 보호막을 펼쳐준 후, 본격적으로 번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보호막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다.

날카로운 단면의 보호막 칼날이 거인의 몸에 생체기를 내기 시작한다.

반투명한 보호막의 단면은 백현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도록 위장해준다.

보호막 발판을 타고 저공비행하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건 물론이다.

백현은 보호막 능력은 이미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손이나 팔이라도 되는 듯 보호막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거기에 자연치유 능력도 한몫했다.

고통은 잠시 참으면 되지만, 고갈된 체력은 쉽사리 회복되질 않는다.

하지만 자연치유 레벨 3은 아무리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보호막이라도 일정 시간은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에 아람이가 합세했다.

아람이는 집요하게 거인의 아킬레스건만 노렸다.

특정 부위만 집중해서 노리면 분명히 효과가 있다.

그 부위를 아람이는 아킬레스건으로 정했다.

거인의 신체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같다.

정확히는 이들도 인간이라고 봐야 했다.

아람의 집요한 공격은 결국 7성급 거인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방어에 치중하게 했다.

6성급 거인을 보호하던 보호막이 7성급 거인에게 옮겨갔다.

그리고 그건 이제 6성급 거인에게 미나의 능력이 통한다는 뜻.

6성급 거인은 낌새를 알아차리고 미나에게 혓바닥을 쏘아댔지만, 이제 미나의 옆에는 김만철이 합류해 있었다.

미나를 안고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김만철.

그리고 만철에게 몸을 맡긴 채 모든 힘을 거인에게 집중하는 미나.

미나는 결국 6성급 거인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6성급 거인이 혓바닥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는 6성급 거인의 최후를 보며, 7성급 거인은 자신도 모르는 두려움을 느낀다.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무심하게도 일본어로 되어 있지만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아람은 환호성을 지르며 일행에게 소리쳤다.

“6성급 자이언트 제압 완료, MVP는 강미나! 미나가 6성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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