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003섹터
강백현의 결정에 일행들은 작전을 짰다.
“맥스를 통해서 003 섹터에 대해 알아봤어. 6성급 거인 하나, 7성급 거인 하나, 진입조건은 15명이야.”
“그 이야기는 003섹터를 클리어하면 6성 능력자가 한 명, 7성 능력자가 한 명 탄생한다는 거네.”
“응. 결국 7성급이 되어 모선에 진입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야.”
“그 다음은?”
“6성급이 된 사람이 002섹터나 001섹터를 공략해서 7등급이 되어야지. 하지만 시간이 그리 많진 않을 거야. 지금도 방주에서는 끝없이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으니까. 우리들 중 하나가 모선에 상주해 있는 AI 마더의 목적을 알아내고 저지하는 것. 그게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야.”
“마더?”
“네. 마더는 가칭이에요. 모선의 AI 이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마더라고 부를게요. 실제로 AI들의 우두머리니까 어울리기도 하고요.”
백현의 작전에 김만철이 고심 끝에 말했다.
“결국 한 사람이 희생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
“희생이라기보다 먼저 선점하는 거죠. 마더의 목적은 분명 제가 예상하는 범위 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녀석들이 치료제를 개발 못할 리가 없잖아요. 제 유전자, 제 피를 추출해내면 거인병을 예방할 수 있고 치료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쉬운 것을 안 했다는 것은, 이 AI가 인간의 생존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러니 그 녀석이 인간들을 멸종시키기 전에 무언가 수를 써 봐야죠. 그리고 그건 섹터 001을 공략하기 전에 마더 녀석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요.”
“섹터 001이 공략된 후에는 어떻게 되는데?”
“아마, 지체 없이 작전을 수행하겠죠. 그리고 그건 맥스의 분석에 의하면 앞으로 3일 이내예요. 그러니 이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우리 4명의 멤버 중 하나가 7성급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작전을 짜기 시작한 백현 일행이었다.
4명은 머리를 맞대고 결국 하나의 결론을 공유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 4명 중 누군가가 마더라는 녀석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거네. 그 사람의 역할은……”
“우주선을 파괴하거나 마더를 제거해야 해. 그 후엔 인류의 생존을 위해 거인들이 멸종당하기 전에 그들을 치료제로 치료하는 것. 그렇게 된다면 AI 녀석들도 거인들을 거인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학살하진 못해.”
백현의 말에 고무된 듯 김만철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 역할은 내가 하마. 너희들한테는 그동안 신세만 졌어.”
그러나 백현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요. 누가 할지는 거인을 공략한 후에 결정하는 게 어때요? 거인을 죽이거나 기여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마더를 상대하도록 하죠. 그게 저든, 형이든, 아람이든, 미나든 그건 상관없어요. 그 누구여도 좋아요. 우리는 녀석의 목적을 파악하고, 그것을 저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 김만철.
“야! 형이 이야기하면 좀! 분위기 좀 내면 안 되냐?”
“죄송해요. 제가 좀 진지한 편이라서, 친한 형님이니까 그런 거죠. 그것보다 가족들은 어떠세요?”
백현의 질문에 김만철이 머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 다들 당시의 기억이 없으시니까 크게 문제는 없었어. 다만 아직도 상황 구분을 못하시지 뭐.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건 선희 씨한테 설명해달라고 부탁해놨으니까 알아서 잘할 거야.”
“다행이네요. 아람이 넌? 너희 아버지랑 어머니, 그리고 동생은 어떻게 된 거야?”
“일단은 다 같이 계시니까 문제없겠지. 내가 있었던 섹터 023은 내가 거인들을 다 물리쳤고 빛의 기둥도 통과하셨으니까 크게 문제는 안 될 거야.”
다행이었다.
[생존게임]이라도 발동되어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척 다행히도, 김만철의 가족도, 김아람의 가족도 현재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럼 마지막 전투가 될지도 모르니까 슈트랑 능력 업그레이드 중에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체크해둬. 쉴 사람들은 쉬고.”
백현은 대화를 끝내고는 보호막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잭슨이 미나에게 영문을 묻는다.
“아가씨, 무슨 대화했어?”
“섹터 003에 대해서요.”
“설마 가려고? 내가 비밀 하나 이야기해줄게. 30분만 버티면 30포인트만 차감되고 빛의 기둥이 사라져. 그러면 다음 빛의 기둥이 생길 때까지 우주선에서 생존할 수 있어.”
“네?”
“굳이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는 거야. 보아하니 너희들은 포인트가 많으니 굳이 참가하지 않아도 돼. 우리 일행들은 지금 상황에서 003섹터를 공략하는 건 힘들다고 판단했고 다음번으로 미루기로 했어. 혹시 다른 섹터에 거인들이 생겨날 수도 있는 거고, 그렇지 않다 해도 지금 공략하는 것보다는 일단 좀 더 이 생활을 즐기면서 상황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잭슨이 설득했지만 미나는 단호한 태도였다.
“우리는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가만히, 이대로 통제받는 삶을 사는 게 더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럼 잭슨 씨 일행은 이번 003섹터 임무에서 빠져주세요. 그러면 적어도 포인트 때문에 생존게임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오히려 다행이네요.”
잭슨은 미나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나 경험이 자신들보다 앞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미나야, 쟤들이 뭐래?”
아람이의 질문에 미나가 대답했다.
“불안한가 봐요. 003섹터가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자들 맞아? 원래 서양 애들은 용감하고 그렇지 않아?”
“쟤네들은 안 그런가 보죠.”
* * *
공짜로 제공되는 스테이크와 샴페인, 거기에 고급스러운 포도주와 싱싱한 야채. 거기에 호텔급 객실까지.
객실 내에는 수많은 오락프로들을 볼 수 있는 홀로그램 TV까지 구비되어 있다.
없는 게 없는 5성급 모함.
사실상 호캉스.
이보다 더 좋은 휴가는 이제까지 없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이곳에서 보이는 지구는 거인의 존재가 어쨌냐는 듯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면 거인들을 공략하기 위해 살고 있는 인간들은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가칭 마더.
모선함 제로시우스를 지배하는 AI다.
녀석의 목적을 생각하면 잠이 올 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는 21.5도의 온도와 부드럽고 따뜻한 침구,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이 백현의 의식을 머나먼 저편으로 인도한다.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이게 꿈이라면, 꿈이라면!
시간이 이대로 멈춰 이런 평온한 시간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 * *
잠에서 깨어난 백현은 이미 상당시간이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탕탕탕!
“백현아! 15분 전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김만철의 목소리.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아! 다들 준비 끝마치고 나왔어. 얼른 슈트로 갈아입고 나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투였다.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는데 왜 저리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지, 백현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더러운 세상에서.
추악한 상황에서도 동료들의 진면목을 보았기에 그들을 믿을 수 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기에 웃을 수 있다.
백현이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미 빛의 기둥이 활성화된 상태.
그 밑에 적혀 있는 것은 누가 봐도 003이라는 숫자.
즉 003섹터로 가는 문이다.
잭슨과 한동안 대화를 나눈 미나가 정보를 동료들에게 공유했다.
“잭슨의 말에 의하면 7성급 거인의 능력은 2개, 백현 오빠랑 같은 보호막 능력과 번개 능력이야.”
“보호막이랑 번개?”
“응. 보호막은 오빠의 능력이니까 다들 잘 알 거야. 내 마인드 리딩이나 아람 언니의 염력도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이잖아.”
미나의 말에 김만철이 손을 들었다.
“내 능력도 백현이한테는 통하지 않지.”
“네. 그리고 번개 능력을 말하자면 말 그대로 번개를 사용하는 능력이에요. 손가락 끝에서 번개를 뿜어낼 수 있고, 번개의 빠르기는 소리 속도의 약 3배이니 감지하고 반응해도 피할 수 없어요.”
“피할 수 없다?”
“네. 그래서 굉장히 까다로운 거인이래요. 그런데 다행히 그 번개를 막을 수 있는 능력자가 우리 곁에 있지요.”
미나가 백현을 바라보았다.
“나?”
“응. 내가 항상 소설 이야기하면서 말했잖아. 보호막이 최강이라고. 보호막이라면 번개도 막을 수 있어. 그런데 문제는 거인도 보호막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하지만 무한정 쓸 수는 없지. 보호막은 체력을 많이 소모하니까,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백현의 말에 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가 쓰는 보호막은 그런데, 7성급 거인은 다르대. 보호막 지속시간이 무한이야. 평소에도 보호막을 쓰고 다닌대. 그래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공략된 적이 없고.”
미나의 말에 강백현이 눈을 치켜 올렸다.
“무한이라고? 보호막 능력을 계속해서 쓸 수 있다고?”
“응. 다만, 보호막을 해제해야 하는 순간이 있어. 그건 바로 번개를 쓸 때야. 번개를 쓰려면 보호막을 해체해야 하는데, 그때를 노리면 공략할 수 있을 거야.”
백현은 미나의 정보에 생각에 잠겼다.
“6성급 거인은?”
“6성급 거인의 능력은 크게 두려워할 거 없어. 카멜레온처럼 혀를 길게 늘이는 건데, 신체를 이용한 공격이기 때문에 혓바닥만 붙잡을 수 있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거야.”
설명을 마친 미나가 잭슨의 것으로 보이는 기억을 동료들에게 주입시켰다.
003섹터에 가봤던 잭슨.
그들은 제한시간 30분이라는 조건에서 미친 듯이 도망만 치고 있었다.
거대한 거인들을 두고 도망만 다니는 기억이 썩 좋지는 않았던 백현은 그 기억의 잔상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저 사람들의 전투력이 우리한테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사람 수는 많을수록 좋잖아. 잭슨 일행도 우리와 뜻을 같이하기로 했어.”
“뭐?”
“이미 다 말했어. 기억도 공유했고. 우리랑 같이 싸운다고 결심한 이상, 서로에게 비밀은 없어야 할 테니까.”
잭슨이 미국인 특유의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거대한 근육질 체격, 강한 인상. 하지만 정작 전투력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알았어. 들어가자.”
“응.”
003섹터로 향하는 빛의 기둥을 통과하자,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이 나왔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탓일까?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심어져 있다.
그 옆에는 이름 모를 잡초들도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백현은 미니맵을 보며 말했다.
“위치는 일본 남부인 것 같은데 어디인지 자세히 모르겠어. 다만, 6성급 거인과 7성급 거인은 둘 다 남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네.”
“응. 그건 우리도 보여.”
육안으로도 각각 6성급, 7성급 거인이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잭슨 일행은 자신들의 장비인 스코프(망원경의 일종)를 통해 거인들을 관찰하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고도의 협력은 제한되는 상황.
한편 홀로그램이 정보를 띄우는데,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본어로 나온다.
백현은 깜짝 놀라 미나에게 물었다.
“미나야. 이거 뭐야? 거인에 대한 정보 맞지?”
“지역이 일본이라서 홀로그램 메시지가 일본어로 뜨는 것 같아. 잠깐만, 읽어볼게.”
미나의 말에 아람이가 끼어들었다
“미나야, 됐어. 언니가 해석할게. 7등급 거인은 전기뱀장어의 능력하고, 방벽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6등급 거인은 개구리의 혀 능력하고 음, 이건 뭐지?”
“왜?”
“백현아! 뒤로! 뒤로 빠져!”
“왜? 엄청 멀잖아. 왜?”
백현의 말에 아람이가 염력을 사용해서 모두를 멀리 밀어냈다.
하지만 잭슨 일행까지 밀어낼 순 없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였다.
그때, 잭슨 일행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마이콜! 마이콜! 왜 그래? 마이콜!”
“숨이……. 숨이…….”
11명의 동료 중 한 명이 영문도 모른 채로 목숨을 잃었다.
마이콜이라고 불리는 흑인 사내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김아람이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며 중얼거렸다.
“6성급 거인은 개구리의 혀 말고도 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대. 얘네들은 미국인들이라서 일본어를 못 읽어서 대비를 못했던 거고.”
“또 다른 능력?”
“응. 그 능력은 즉사. 가장 가까운 먹이를 공포로 죽이는 능력이야. 저 능력은 10분마다 사용 가능하대. 다음번에는 우리가 저렇게 될지도 몰라.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