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89화 (189/200)

189화. 5성급 멤버

300점이 넘지 않는 사람들은 빛의 기둥을 통과할 수 없었다.

빛의 기둥이라는 에너지 입자.

그것은 야속하게도 사람들을 선별해서 받는다.

백현이 상황을 파악한 후 미나에게 말했다.

“이건 방법이 없어. 얼른 들어가.”

“응. 하지만 잔인해.”

“그래. 그렇지만 이게 룰이지.”

처음부터 그랬다.

삶과 죽음을 경계삼아 목숨을 내놓는 게임.

생존게임, 두뇌 게임, 서바이벌, 거기에 잔혹한 데스매치까지 겸했다.

이 시스템을 만든 정체 모를 자들은 사람들을 잔혹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저기요. 미안한데 죽어줘요.”

“네?! 잠깐만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싸웠잖아요.”

“제가 33포인트만 모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거기 아저씨 59포인트로 보유 포인트가 제일 적잖아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희생해요.”

도대체 300점이란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잔혹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미나와 백현은 실리를 택했고, 장복남도 마찬가지였다.

300점을 넘는 사람은 겨우 그 셋.

마지막 거인을 다 같이 협동해서 잡았지만, 기여도가 가장 높아 6성이 된 사람도 배분받은 포인트는 겨우 285.

그래서는 빛의 기둥을 통과할 수 없다.

남녀 구분 없는 치열한 전장이 예고되는 가운데 백현 일행이 빛의 기둥으로 걸어갔다.

그때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백현은 보호막으로 간단히 화살을 튕겨내며 미나와 장복남에게 말했다.

“가죠. 의미 없는 살생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켜볼 생각도 없고요.”

여기서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죽이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좋은 능력, 더 좋은 방어구 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 가자.”

“오빠! 가.”

“응.”

빛의 기둥을 통과한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항상 수면제 같은 가스가 퍼졌었는데 지금은…….

요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아~ 땀 냄새.”

“아, 그러네.”

빛의 기둥을 통과한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다른 장소야. 다른 우주선.”

“그리고 술집이잖아.”

백현은 미니맵을 바라보았다.

지구 밖 성층권에 떠 있는 수많은 우주선 중 하나에 자신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장복남 아저씨가 없다.

“아저씨는 어디 가셨어?”

“없었어. 뒤에서 나오시는 아니야?”

“아니야. 먼저 들어가셨는데.”

빛의 기둥 너머의 공간에서는 슈트가 아닌 일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빛의 기둥을 통해 들어온 2명을 보곤 아무렇지 않은 듯 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동양인? 처음 보는군. 남자 하나에 여자 하나인가? 그것보다 정말 어리군. 몇 번 지역을 해결하고 온 거지?”

영어로 말하는 외국인.

그걸 알아들은 미나가 대답했다.

“006,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자네도 5성이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여긴 5성급 인원만 이용하는 함대급 우주선이니까.”

백현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에게 말했다.

“저희는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은 누구시죠?”

그걸 미나가 바로 해석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번역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백현의 말보다는 다른 발언에 집중했다.

“잠깐! 006이면 우리도 피하는 곳이잖아!”

사람들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006이란 의미.

그게 그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

“섹터 006?”

“잠깐만! 거길 통과했다고?”

“말도 안 돼!”

“이건 말이 안 돼! 006이면 한 자리잖아. 그걸 통과했다고?”

그때 한 사내가 박수를 쳤다.

“맥스! 섹터 006 지역의 거인 정보를 보여줘!”

그러자 사내의 요청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서양 남자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화면을 보여준다.

《섹터 006 지역의 거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경질형 7등급 거인(★★★★★) / 제거 완료

○ 투척형 4등급 거인(★★★★☆) / 제거 완료

○ 맹독형 5등급 거인(★★★★★) / 제거 완료

○ 복합형 8등급 거인(★★★★★★☆) / 제거 완료

○ 현재 해당장소는 생존게임 중입니다.

탈출조건 : 포인트 300 이상.

현재 탈출인원 3명, 남은 생존자 5명.

* * *

맥스라는 홀로그램의 대답.

갈색머리가 인상적인 사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미나와 백현을 향해 몰려온다.

“자네들은 어디 지역에서 활동했지?”

리더로 보이는 가슴털이 수북한 남자의 말에 미나가 되물었다.

“잭슨 씨, 당신들은 여기서 태어났군요. 제 말이 맞나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그것보다 저희 질문에 먼저 대답해주세요. 우주선에서 태어났고, 평생을 여기서 지내신 거죠? 다들 그런 거죠?”

“당연한 걸 왜 묻지? 왜 너희는 여기가 처음인 것처럼 말하는 거지? 저 남자는? 아까 보니까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 같은데, 그게 맞나?”

미나는 점차 상황을 파악하고 쓰게 웃었다.

“잠깐 오빠랑 둘이 이야기 좀 할게요. 잭슨 씨의 질문에 답하는 건 그 다음이에요.”

“야!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게 먼저지.”

잭슨이 미나의 어깨를 건드리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현이 보호막으로 그 남자를 멀리 밀어냈다.

“오빠, 괜찮아. 둘이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어. 싸울 필요는 없어.”

“응. 알았어.”

백현의 능력에 보호막이 있는 것을 확인한 잭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물었다.

“보호막이라니, 저거 구입하려면 몇 포인트가 필요하지?”

“최상위급 능력이라서 1만 포인트 정도 필요하죠. 더구나 저 보호막은 레벨 1로는 안 보이네요.”

“1만 포인트면…….”

“잭슨 형님 급인데요? 레벨도 올린 거 보면 그동안 활약도 장난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저희는 처음 보죠?”

“그나저나 저 여자애, 형님 이름 알고 있지 않았나요?”

“에이! 잭슨 형님은 워낙 유명하니까 당연히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백현의 보호막이 얇게 펼쳐진 채 미나와 백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모양이 변하는 보호막.

그걸 본 사람들은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나는 백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 저기 있는 사람들은 여기 토박이들이야.”

“토박이?”

“응. 저 사람들은 지상에 사람들이 여전히 생존해있는 것도 모르고 있어. 단지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자라며 여기의 룰을 따르는 전사라고 생각하면 돼. 이런 지 벌써 백 년이 넘었나 봐. 저들은 내 질문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이곳에서 태어났다라…….”

생각이 또 복잡해진다.

저번에 봤던 우주선만 수백 개다.

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우주선의 개수를 대략적으로 확인해보았다.

이제까지는 자신이 위치한 우주선의 주변만 확인했는데, 미니맵을 축소해서 확인해보니 지구 반대편에도 우주선이 있다.

이런 우주선은 모두 같은 기능을 할 터.

인간들을 전투에 내몰고, 생존게임이라는 명목으로 서로 죽이게 한다.

그래서일까?

미나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오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과거로 갈 줄 알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미나는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풀려고 할수록 계속 이어지는 미스터리.

도대체 이 세상의 끝에는 무엇이 펼쳐져 있을지,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때 잭슨이란 사내와 그의 부하들이 미나와 백현의 주변을 둘러쌌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잭슨의 영어에 미나가 대답했다.

“좋아요.”

* * *

미나는 잭슨에게 그들이 우주선에 온 계기에 대해 들었다.

또한 5성급 인원만 찾아올 수 있다는 현재의 우주선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너희가 방주에서 살고 있었고, 그 방주를 통해 우주선에 올라오게 됐다?”

“네.”

“맥스! 수송선 좀 보여줘.”

맥스가 잭슨의 요청에 수송선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모양이 방주의 기본 형태와 너무나 흡사하다.

“이거하고 똑같지?”

“그러네요.”

AI기반 홀로그램인 맥스가 보여준 수송선. 그것을 본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수송선으로 음식을 구하러 갈 때 지상으로 이동하는 수단 중 하나지. 사용하려면 1000포인트나 들어서 우리들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걸 가지고 지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건 일리가 있네.”

사실 미나는 기억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기억을 읽는데도 심력의 소모가 필요했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읽는 것이라면 몰라도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상대의 기억을 뒤지는 것은 더욱 그랬다.

그래서 잭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점을 묻기로 했다.

“저희가 아까 006섹터에서 왔다고 하니까 놀라워하셨잖아요. 그 이유가 뭔가요?”

“그거야 한자리수 섹터는 등급이 높은 거인들만 있으니까. 그 녀석들을 상대하려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하거든.”

“하지만 잭슨 씨랑 다른 분들도 5성급이잖아요. 다들 5성급까지 올라오시려면 꽤나 많은 희생과 전투를 하셨을 텐데…….”

미나의 질문, 그러나 그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걸 꺼려하고 있었다.

결국 미나는 그들의 기억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도 없는 어른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우주선을 담당하는 홀로그램들은 인간에게 기본적인 생존이나 거인과의 전투 방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애초에 인간들은 거인과의 전투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편히 살 수 있는 우주선이 있는데, 우주선에서 살면 되는데 왜 굳이 거인과 싸워야 하는 걸까?

왜 거인과 전투를 통해 포인트를 벌고, 그 포인트를 통해서 강해져야 할까?

강해져서 얻는 게 뭔데? 자유? 행복? 권력?

불행히도 강해진다고 권력을 얻진 못한다.

포인트를 얻어, 거인을 죽여 강해지면 강해진 만큼 강해진 자들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사람들은 미친놈들이 많았다.

사람을 죽이거나, 거인을 죽여 등급을 올린다.

4성급을 죽이면 4성급이 되고, 5성급을 죽이면 5성급이 된다.

그게 사람이든 거인이든 이 법칙은 언제나 유효했다.

그런데 4성급은 4성급 우주선에서 따로 모여살고, 5성급은 5성급 우주선에서 따로 모여 살게 된다.

“너희들은 여기 처음 온 거네? 그래서 006 섹터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거고. 원래라면 절대 들어갈 수 없었을 텐데, 배치고사라서 가장 높은 난이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군.”

“배치고사요?”

“그래. 각 우주선 안에 나타나는 빛의 기둥은 갈 수 있는 장소가 정해져 있어. 현재 이 우주선의 빛의 기둥은 우리가 다 표기해두었지. 바닥을 봐.”

우주선 바닥에 동그라미로 원형이 그려져 있다.

거기에는 003, 008, 011, 023부터 311까지.

“빛의 기둥을 통과하면 각 숫자에 해당하는 섹터로 가게 되지. 그리고 그 섹터에서 해당하는 달성조건을 완성해야 빛의 기둥이 다시 활성화 되고.”

“아…….”

모든 것은 세세하게 설계된 시스템이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사람? 사람이 이걸 만들었다고? 그런 농담은 처음 듣는군.”

미나의 말에 잭슨과 일행들이 실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튀어나온 한 마디.

“그런 이야기는 있더군. 001 섹터의 거인을 제압하면 이 모든 게 끝이 날 거라고. 그런데 그걸 할 사람이 있을까? 지금 이렇게 편한데! 이렇게 좋은데!”

잭슨과 부하들이 주변을 가리켰다.

5성급만 이용할 수 있는 함대형 우주선에는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멋진 무대가 있는 스테이지,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는 음료수, 달콤한 케이크와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구워지는 스테이크. 와인. 거기에 세계 각국의 술과 담배도 구비되어 있다.

그런데 미나는 생각이 달랐다.

“001섹터로 가려면 우리가 뭘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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