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두 번째 거인과 세 번째 거인
강백현은 장복남이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꼭 공격하지 않아도 기여도는 얻을 수 있어. 거인을 유도하거나 거인을 제압하는 데 도움을 주기만 해도 돼. 그렇다는 건…….’
포인트를 얻기 위해 굳이 타격할 필요는 없다.
멀리서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강백현에 대한 장복남의 호감도가 17 상승했습니다.》
상대방의 호감도를 얻은 것은 의외의 수확.
그런데 놀랄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미나가 마인드 리딩으로 전해준 정보에는 장복남의 기억 속 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직업 : 현혹술사 (Wizards of the Coast) / ★★★★(UP!)
○ 키 : 174cm
○ 몸무게 : 81.2kg
○ 고유스킬
1. 현혹술 Lv 2.
2.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3.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4.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변화된 등급 ★★→★★★★]
‘등급도 올랐다고? 장복남 아저씨는 원래 2성이었는데 이번에 4성까지 오른 거구나.’
백현과 미나는 여전히 페이즈 2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4성을 죽이면 4성이 되는 기적.
그렇다면?
6성을 죽이면 배울 수 있는 능력이 6개까지 늘어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백현은 현재 배운 능력 4가지를 6개, 아니 7개까지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연 누가 이런 법칙을 만든 걸까?
인간들에게 이런 실험을 한 사람은?
이제까지 율리만과 율리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싸움을 위해 준비된 수백 개의 우주선.
도저히 율리만과 율리안이 준비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21세기의 기술로 과연 이런 게 가능한 걸까?
아니, 여기는 23세기 정도 되니 가능할 지도…….
백현은 고민을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3마리의 거인이 먼저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투척형 4등급 거인(★★★★☆)을 물리쳤습니다.》
《전투참여 보상으로 216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아직 300포인트를 모으지 못했기 때문.
《다음 대상은 경질형 거인입니다. 이번 거인은 제 보호막이 통할지 몰라서, 일단 두 분은 숨어계셔야 할 거예요.》
백현이 무전기로 건물 위에 올라가 있던 미나에게 현재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강미나는 병기에 탑승한 채 건물 위에서 뛰어내려 백현의 근처에 안착하며 말했다.
“경질형 거인은 이미 죽었어.”
“어?”
“마인드 리딩 능력으로 거인의 가장 슬픈 기억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어. 그걸 머리에 주입하니까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더라고.”
그 결과로 얻은 성과를 마인드 리딩 능력으로 백현에게 보여주는 그녀.
《경질형 4등급 거인(★★★★☆)을 물리쳤습니다.》
《전투참여 보상으로 474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하지만 백현은 그녀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당황한 채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것과 달리 미나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병기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고, 미나는 거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병기를 뚫고 들어가 미나가 입은 슈트까지 닿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슈트가 어떻게든 미나의 피를 지혈하고 있다는 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병기는 또 왜 저런 건데?”
“다 잘렸어. 복구 불능이니까 버린 거고. 그것보다 오빠는 지금 병기가 훼손됐다고 화내는 거야? 난 걱정도 안 돼?”
“아니, 뭐 괜찮아 보이니까.”
백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고, 미나는 더 이상 뭐라고 추궁하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전달해주었다.
혼자 거인 하나를 제압한 미나.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백현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연락을 취하지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나는 혼자만의 힘으로 경질형 거인을 무찌를 수 있었다.
미나가 거기에서 확인한 것은, 모두가 예상했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경질형 거인은 인간을 재료로 만든 병기조차 도륙할 수 있었어. 날카로운 칼날로 병기 내부의 신경을 끊어버려 회복할 수 없게 했고, 난 이제 죽었구나 싶었지. 그러다 보니 모든 힘을 써서 거인의 기억을 뒤지고 또 뒤졌단 말이야. 거인의 움직임을 막으려면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뭔데?”
“거인의 머릿속에는 사람이었을 때의 기억밖에 안 남아 있더라. 거인이 된 이후의 기억은 없고, 그냥 좀비나 마찬가지의 상태인 거야. 근데 사람이었을 때의 기억 중 가장 슬픈 기억이 거인이 될 때더라구. 아이러니하지 않아?”
“뭐가 아이러니한데?”
“내가 죽인 거인은 인간일 때 몸을 단단히 만들 수 있는 경질형 능력자였어. 그리고 그 능력은 거인이 된 후에도 이어졌지.”
“그렇다는 건 능력이 있는 거인들은…….”
“맞아. 인간이었을 때 능력자였던 사람들. 그들이 거인병에 노출되면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인이 돼.”
오 마이 갓!
능력자가 거인병에 걸리면 능력을 지닌 거인이 된다. 그런데 생각 외로 능력을 쓰는 거인들은 많이 없었다.
그 이유는 뭐였을까?
미나가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근데 이 사람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나 봐. 거인들과 싸워 명예롭게 죽든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아…… 그렇게 되면 확실히 거인이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있겠네.”
“응. 거인은 생식능력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그냥 거인이 되는 것을 택했어. 그래서 엄청 슬퍼했던 거고, 그 기억이 마지막까지 사념으로 남아있던 거야.”
미나의 말에 강백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는 건, 여기 있는 대부분의 거인들이 같은 상황이었다는 거네?”
“그렇지. 어떻게 보면 죽음을 택하지 못한 사람들의 망령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무슨 좀비 영화도 아니고…….”
“그렇지 뭐. 오빠! 이제 남은 거인은 몇 개체야?”
미나의 말에 백현이 미니맵을 확인했다.
커다란 표시, 2개체가 섹터 006에 존재하고 있다.
백현은 병기에 탑승하며 미나에게 말했다.
“미나야. 아저씨랑 같이 잠시 기다려 봐. 저건 나 혼자 잡아야 해.”
“응.”
혼비백산.
여전히 슈트를 입은 사람들은 싸울 의지가 없었다.
백현이 노리는 것은 맹독형 거인이었다.
걸어다닐 때마다 주변에 독가스가 퍼지는 타입.
허나 백현에게는 녀석을 막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병기가 활공하다가 거침없이 맹독형 거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1톤에 달하는 무게의 병기가 내려앉자, 거인의 무게 중심이 무너졌다.
거인의 관절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였다.
그리고 백현의 보호막 칼날이 그걸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하지만 맹독형 거인은 생각보다 날렵했다. 칼날을 피하면서 양손으로 병기에 탄 백현을 밀어냈다.
거인의 크기는 무려 32m.
백현이 탄 병기의 크기는 3m. 거인에 비해서는 조그마한 장난감일 뿐이다.
거인은 꺾인 무릎관절을 반대방향으로 비틀었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관절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관절 주변에 입김을 불어넣는 기이한 행동을 하는 거인.
어린아이가 상처가 나면 호호 불 듯 하고 있는 것이다.
강백현은 거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고 했던가?
거인의 호흡에서 나오는 맹독이 놀랍게도 퉁퉁 부어오른 거인의 무릎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생전에 맹독 레벨이 3은 됐을 거야. 맹독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약으로 쓰일 수도 있으니까.’
거인이 되면 이성을 잃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다.
이 거인이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아마 생존본능에 각인되어 나오는 반사적인 행동 같았다.
백현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치료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장기전에 유리하다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상대방은 병기에 탄 자신보다 10배나 크다.
녀석이 치료에 정신이 팔린 순간을 노려야 했다.
잠시 후, 거인의 목이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백현이 탄 병기의 한 손에는 날카로운 톱자루가 들려 있었다.
백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절삭력이 높은 장비, 전기톱을 보호막으로 구현한 것이다.
날카로운 칼날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최강의 무기였다.
거인의 목이 떨어지고 그 주변에 오염된 맹독이 퍼져나갔다.
거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맹독형 5등급 거인(★★★★★)을 물리쳤습니다.》
《전투참여 보상으로 513포인트를 획득합니다.》
《5성급 몬스터를 처치하여 5성(★★★★★)으로 승급하였습니다.》
《5성(★★★★★)으로 승급하여 고유스킬 슬롯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직업 : 왕자 (Prince) / ★★★★★(Up!)
○ 나이 : 20세
○ 키 : 173cm
○ 몸무게 : 59.2kg
○ 고유스킬
1. 보호막 Lv 3
2. 자연치유 Lv 3
3. 분신 Lv 3
4. 조종 Lv 3
5.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New!)
○ 고유권능
1. 미니맵
2. 심리분석
[변화된 등급 ★★★★→★★★★★]
하지만 백현도 예상치 못한 게 있었으니, 거인이 죽으면서 내뱉은 맹독이 보호막을 녹이고 병기까지 침투해버린 것이었다.
차르르르륵!
“안 돼!”
병기의 표면이 맹독에 노출되자 피부에 염산이 닿은 것처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농도의 맹독이 다량의 증기를 발생시키며 병기를 손상시켰다.
병기가 살아 있는 듯 비명을 내질렀다.
차르르르륵! 차르르르륵!
피부가 녹아내리듯 병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백현은 독기에 노출된 병기의 앞부분을 피해 뒷부분으로 몸을 내뺐다.
그리고 보호막을 겹겹이 겹치며 맹독에 몸이 노출되는 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독기가 어린 물방울 하나가 결국 백현의 슈트에 튀고 말았다.
맹독성 물질을 정화하기 위해 파르르 떨기 시작하는 슈트.
“크흐흐흡.”
백현의 얼굴에 고통의 기색이 퍼져나가고, 독에 노출된 부분이 빠르게 확산되며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마인드 리딩 능력으로 백현의 상황을 읽어낸 미나가 놀란 얼굴로 뛰어왔다.
“오빠, 괜찮아?”
“으…….”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백현.
그 생각을 읽은 미나.
그래서 미나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백현의 환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환부가 멀쩡하다.
“뭐야? 죽겠다더니?”
바르르 떨며 기포를 만들어내던 슈트가 어느새 안정을 되찾았다.
미나가 눈을 치켜올렸다.
“아니, 내 능력 중 하나가 자연치유잖아. 독도 치료하나 봐.”
“대박. 괴물이네.”
“야! 오빠한테 괴물이 뭐냐?”
“멀쩡하면 됐어. 근데 오빠도 병기 망가트렸네? 이걸로 샘샘이야. 나 또 뭐라고 하면 죽어! 알지?”
미나의 거친 농담에도 백현은 웃음을 지었다.
웃음을 지은 이유는 단 하나.
항상 불행해보였던, 병원에서 조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미나가 밝게 웃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복합형뿐이지?”
“응. 오빠처럼 자연치유도 할 수 있는 괴물이잖아. 그런데 괜찮아.”
“괜찮다니? 네가 처리했어?”
그러고 보니 미니맵에 복합형 거인이 표시되지 않는다.
“병기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처리해?”
“그럼?”
“장복남 아저씨가 있잖아.”
“거인도 현혹술에 걸려?! 거인도 인간에게 호감을 갖는다고?”
강백현은 화가 났다.
미나가 능력으로 상황 전달을 해주면 되는데 얄밉게도 그걸 안 해주고 말을 돌린다.
그런데 미니맵으로 보니 대충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장복남이 위치한 곳 주변.
“아저씨 말이 맞았어요.”
“다 같이 힘을 합치니까 이길 수 있네요?”
“그러게! 와! 나 6성 능력자가 됐어! 장난 아닌데? 능력을 여섯 개까지 배울 수 있대.”
장복남의 현혹 능력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도 싸우게 만든다.
그게 바로 그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섹터 006 지역의 모든 거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안전한 대피소로 갈 수 있는 빛의 기둥이 활성화 됩니다.》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죽음의 전장에서 잠시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살아남은 자는 겨우 11명.
30명 중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나 통과가 안 돼. 빛의 기둥에 들어갈 수가 없어!”
“어? 나도! 나도! 난 왜 안 되는 거야?”
모두가 통과할 순 없었다. 그걸 보며 미나가 백현과 장복남, 두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포인트 300을 획득하지 못하면 빛의 기둥에 들어갈 수 없는 거야. 오빠! 빨리 들어와. 이곳은 또 다시 서바이벌 전장이 될 거야.》
사람들 머리 위에 포인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인들이 죽은 자리에 또 다른 전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생존게임 : 포인트 300을 모아 빛의 기둥으로 진입하세요. 상대방의 포인트를 빼앗는 것만이 현재 유일한 포인트 획득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