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84화 (184/200)

184화. 다시 원점

방주를 이용해 과거로 이동한다.

생각해보면 신이 났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강백현은 원인과 결과를 떠나 율리만과 율리안이 만들어준 지금의 길이 너무나 고마웠다.

과거로 돌아가면 어떤 일부터 해야 할까?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할까?

아람이의 걱정처럼 과거의 자신과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땐 모두 다 사실대로 말하자.

나는 나대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그런데…….

모든 예상이 산산조각 난 기분이었다.

거대한 광장.

이국적이다 못해 첨단 기계들이 가득한 거대한 공간이 백현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창 너머로는 밝은 빛을 내는 달과 별이 보였다.

무수히 많은 별똥별이 성운을 가르고, 우주선이 선체를 선회하자 차마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강렬한 코로나를 내뿜는 태양이 일행들을 비추었다 사라진다.

놀랍게도 방주가 통과한 빛의 기둥 너머에 있는 곳은 우주선 안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방주도 거대한 편인데 그런 방주를 품을 수 있는 거대한 공간.

기겁한 미나는 백현의 손을 꽉 잡았다.

“오빠, 나 예측이 안 가. 소설 속에선 이런 이야기 없었어.”

“그래. 이건 소설이 아니야. 현실……. 엄연한 현실이야.”

절망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창문 너머로 지구가 보인다.

그리고 무심하게도 방주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백현 일행이 나왔던 방식과 똑같이 3cm인 사람들이 방주에서 나와서는 인간 크기로 커지기 시작했다.

“크읍!.”

“어떻게 된 거지? 여긴 어디야!”

“도대체 이곳은…….”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스케일을 감당할 자신은 없어 보인다.

율리만은 동면에 취한 인간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거인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한 그녀의 생각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설명도 없이 이렇게 무턱대고 내보내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윤수야!”

“엄마! 엄마다. 엄마!”

“윤수야!”

동면에서 깨어나 아직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과 달리 정선희는 자신의 아들과 김만철을 발견하고 반가운 듯 달려왔다.

김만철은 윤수를 정선희의 허락 없이 데려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사과했다.

“미안. 데려갈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정선희는 그런 김만철보다 최형우를 찾았다.

“나중에 이야기해요. 형우 아저씨는?”

이유는 최형우가 지니어스 타워에서 윤수를 데려간 장본인이었으니까.

거기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다.

“돌아가셨어.”

“잠깐만……. 거짓말. 거짓말이지? 아람아! 미나야! 거짓말이지? 만철 씨가 나한테 장난치는 거지?”

죽은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김아람과 강미나는 포옹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편, 강백현은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최형우 아저씨, 살아계셔. 모두가 다 살아 있어.”

죽었던 이진기도, 마스터도,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거기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김건우 또한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눈앞의 미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미나, 말 놓아도 되지?”

“건우 오빠. 기억나는 거예요?”

“아니, 기록을 뒤져봤어. 너랑 임무 수행했던 기록들, 그리고 같이 생활했던 비디오테이프들에 너랑 어떻게 지냈는지 다 기록되어 있더라.”

한태석 또한 머쓱한 얼굴로 김만철과 이야기 중이었다.

“만철이 형, 오랜만입니다. 없는 동안 형수님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아 미안. 미안하게 됐다.”

“아, 그리고 아저씨도 같이 왔어요.”

“아저씨?”

“네.”

죽었던 최형우가 놀랍게도 한태석 뒤에 있다.

“만철아!”

“아저씨? 저 기억이 나세요?”

“그래! 방주에서 나가기 직전까지의 기억은 나는데…… 갑자기 동면에서 깨어났고 지금은 목숨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나오네. 혹시 나 죽은 거니? 너도 죽었을 때 이런 상황이었던 거지?”

최형우 또한 클론이었던 것.

하지만 그의 귀환에 김아람이 반가운 얼굴로 달려갔다.

“아저씨!”

“어. 아람아. 너도 죽은 건 아니지?”

“제가 왜 죽어요! 아저씨 나 기억하죠? 나 기억하는 거죠?”

“당연하지. 그래. 다 기억 나. 아람이 팔 잘렸던 것도 기억나고, 폭주했던 것도 기억하고.”

최형우의 말에 김아람이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

“돌아왔으면 됐어요. 거기까지, 남들 다 보잖아요.”

“그래. 아저씨가 오지랖이 넓었네.”

* * *

방주에서 빠져나온 것은 인간들뿐이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거인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히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방주가 내뿜는 빛에 의해 찰스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백현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페이즈 1이 끝나고 나타났던 찰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또 다시 죽음의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하며 허탈해하는 모습이었다.

『지구에는 현재 유전자 오염으로 거인병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좀비한테 물리면 좀비가 되듯, 거인병에 걸리면 인간은 거인이 됩니다. 그 이후는 돌이킬 수 없죠.』

『율리만 박사님은 거인병 연구에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찰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허공에 나타났다.

공중에서 찰스가 여러 가지 사진을 띄우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커다란 코를 가진 엘리펀트맨.

악어의 모습을 한 악어인간.

“오빠, 크로커야.”

“어. 내가 죽인 놈이네. 젠장!”

고양이와 결함한 캣우먼도.

강백현은 캣우먼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에서 서로 싸웠던 키메라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빼닮았던 것.

찰스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율리만 박사는 키메라 연구를 통해 거인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러 종류의 백신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만,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미 정상적인 인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처참한 상태가 지속되었지요. 인류는 막바지까지 저항했습니다. 인간들 자신의 유전자를 동물과 결합시키면서까지 거인에게 지배당한 세계를 구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단 것을 깨닫고 말았죠.』

웃음이 절로 나오는 허탈한 순간.

강백현 일행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황당무계한 지금의 이야기.

하지만 백현과 미나는 찰스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거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박사님은 고민 끝에 과거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얻어낸 인류의 능력은 이를 가능하게 했고, 수십 수백만의 경우의 수를 찾아내어 지금의 결과를 이끌어내었습니다.』

찰스가 보여주는 화면에 인간 능력의 경이로운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보호막을 사용하는 강백현의 모습.

강화된 주먹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김만철의 모습.

날아다니는 익룡들을 순식간에 바닥으로 낙하시키는 강미나의 모습에, 주변 바위를 기합으로 날려버리는 김아람, 몸집이 커지는 최형우.

거기에 치료능력을 가진 꼬마 윤수의 모습까지.

『거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강해지기 위한 수련제도를 만들었죠. 그게 페이즈 1이고, 페이즈 2고 페이즈 3겠지요.』

『여기 우주선에는 수많은 전투장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거인들을 죽이고 포인트를 모아 강해지세요. 저는 여러분들이 모은 포인트를 기준으로 여러분의 유전자를 변환하여 좀 더 강력한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착용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를 제공하며, 방어능력이 우수한 슈트 또한 제공 예정입니다.』

찰스의 말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여러분들은 우주선, 최후의 방주 336호에 와 계십니다. 그리고 전 이곳을 관장하는 AI프로그램 찰스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람들이 갑자기 묵직한 통증에 목 뒤를 붙들었다.

미세한 합성금속이 목 뒤에 흡수되는 게 느껴진 것이다.

찰스는 방긋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각자 200포인트를 선사합니다. 전투참여까지 앞으로 50분, 50분 뒤에 제1구역 거인 섬멸 작전을 실시합니다.』

지옥과도 같은 시간.

하지만 모든 게 이해된다.

인류는 거인들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최후의 방주는 야속하게도 한 대가 아니었다.

우주선들이 선회하며 지구를 비춘다.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수많은 우주선.

빛의 기둥 하나에 우주선 하나.

즉, 빛의 기둥 수는 우주선의 개수라는 것.

인류는 언제부터 거인들에 저항하게 되었을까?

왜 이곳 세계는 이렇게 빌어먹을 세상일까?

최악의 상황에서 강백현은 허탈한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오빠……. 이거부터 먹어. 일단 먹고 생각하자.”

미나가 챙겨준 것은 다름 아닌 튜브에 든 음식.

“미나야. 나 허무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거인들을 다 죽이면 우리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게 운명이라면, 그게 율리만이 계획한 거라면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미나와 강백현이 먹을 것을 챙겨먹는 사이, 다른 동료들은 각자의 가족과 마지막일지 모르는 시간을 보낸다.

아람이는 죽었던 아빠를 되찾았고, 엄마와 동생과 재회했다.

김만철은 진철이 형과 아버지,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형수님을 만났다.

“아버지, 괜찮아요?”

“만철아, 이게 무슨 일이라니…….”

“아무 일도 아니에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페이즈 1에서 죽어버린 탓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

그래서일까?

김만철은 끔찍했던 당시의 상황을 애써 부정하며 형과 아버지, 형수님을 받아들였다.

한편, 정선희는 자신의 남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희야! 여보! 윤수야!”

“다가오지 마.”

“갑자기 왜 그래? 여보! 나야!”

“이제 넌 내 남편 아니야. 그러니까! 당장 꺼져. 꺼지라고!”

박진석은 영문을 모른 채 뒷걸음질 쳤다.

윤수를 꼭 안고 김만철에게 다가가는 정선희.

그런 정선희를 받아주는 김만철.

그리고 그걸 당황한 얼굴로 보는 만철의 아버지와 만철의 형 진철.

“만철아, 누구야?”

“이분은 누구셔? 왜 갑자기 서로 안고 그래?”

뭐가 뭔지 모든 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찰스는 무심하게도 인간들을 다시 전장으로 내몰았고, 우주선에서 다시 지구로 소환된 사람들의 시야에는 다음과 같은 창이 떠올라 있었다.

《라스트 페이즈 : 지구를 지켜라.》

지구는 거인들의 세계가 되었다. 그들을 해치우고 포인트를 얻어 강해져서 돌아와라.

《달성조건 1 : 60분 경과》

《달성조건 2 : 300포인트 이상 획득》

Tip : 달성조건 1, 2를 충족해야 최후의 방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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