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83화 (183/200)

183화. 의미 없는 싸움

논쟁은 결론 없이 끝났다.

사실 결론지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과거로 돌아간 후, 과거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받아줄지 않을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속상해하는 아람과, 그런 아람이 오히려 서운한 강백현.

둘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방주에 올랐다.

방주에 오른 강백현에게 최태우가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네?”

“통제실에서는 바깥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모니터링 가능하잖니? 그래서 백현이 넌 지금 어떤 기분이니?”

“모르죠. 과거로 가 봐야 알 것 같아요. 평행우주니, 단일우주니 하는 건 사실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럼 과거부터 가 볼래?”

“네?”

“가면 되잖아. 코어 에너지가 무려 15%까지 올랐어. 코어 에너지가 차오르면…….”

최태우의 말을 이해한 강백현이 곤란해했다.

“지금은 치료제를 찾는 게 우선이에요. 아저씨도 그 목적으로 저희 일행에 합류하신 거잖아요. 거인병 치료제를 구하지 않고 과거로 가면 어떻게 될까요?”

“과거시대에도 거인병이 전염되겠지.”

“그럼 인류는 끝이에요. 일단은 치료제부터 찾는 게 우선입니다. 제3경비구역에는 치료제가 있기를 기도해봐야죠.”

“치료제가 없으면?”

“연구해야죠. 평생 연구해서라도 치료제를 찾아내야죠. 그렇게 하기 전에는 과거로 못 가요.”

강백현의 대답에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생명을 살리는 의사임에도, 지금 당장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한순간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후-우, 내가 생각이 짧았군. 치료제라…….’

“백현아.”

“네.”

“슈트를 분석해 봐도 되겠니? 왜 슈트를 입으면 거인병으로부터 보호가 되는 걸까? 거기에서 정답을 찾으면 될 것 같은데.”

“네. 부탁드릴게요.”

제3경비구역으로 향하는 방주가 비행을 시작했다.

백현이 고민에 빠졌다.

얼마든지 원하면 과거로 돌아갈 순 있다.

율리만이 말했던 과거로 갈 수 있는 길은 이제 열려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중요한 터.

“아저씨, 다른 사람들한테는 일단 비밀로 해주세요. 이것 가지고 논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논란?”

“네. 저는 치료제를 구하는 것을 우선하고 있어요. 거인병이 호흡기로 전염된다는 것을 알게 된 상황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저씨라면 의사니까 이해해주실 거라 믿어요. 물론 다들 알게 되겠지만 최대한 늦게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그래. 알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깨달을 게다. 코어에너지가 차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다들 알고 있으니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실 아람이를 제외하고는 당장 과거로 돌아가자고 할 사람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신중을 기해야 했다.

한편, 같은 시간 미나는 백현의 생각을 읽고 고민에 빠졌다.

‘오빠, 난 생각도 안 한 거야? 확실히 오빠 생각이 틀린 건 아니야. 그렇지만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도 과거로 돌아가긴 해야 해. 이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가 있는데 치료제가 없다는 이유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속상해하는 미나, 그리고 아람이.

거기에 아이를 돌보는 김만철과 일행의 미래를 두고 고민하는 백현 및 최태우.

강백현은 미니맵을 살펴보며 제3경비구역인 부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들이 생존해있다. 그것도 꽤 다수.

최후의 방어선.

인류가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여수의 반대편.

율리만과 율리안이 지나가지 않았던 이곳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계룡에서 부산까지 약 3시간의 비행.

3시간이 지나면 결론이 나온다.

치료제, 치료제만 개발이 되면. 치료제만 개발이 되면 끝나는 일.

한 시간쯤 지났을까?

최태우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아, 잠깐 나 좀 볼래?”

“네.”

“내가 네 슈트 표본조사 해봤거든. 그런데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어.”

“네. 말씀해주세요.”

“네가 벗어준 슈트에서 백현이 네 유전자가 나왔어.”

“진짜요?”

“진짜지. 그럼 거짓말 하겠니? 그런데 원래 슈트가 처음 입을 때는 사용자의 유전자를 흡수하잖아. 그래서 만철이가 입은 슈트도 확인해봤지.”

“그런데요?”

“그 슈트에서도 네 유전자가 나왔다. 아람이하고 미나, 윤수의 슈트도 조사해봐야겠지만, 아마도 거인병을 치료하는 건 네 유전자가 기반이 아닌가 싶다. 네 자연치유 능력이 아마도 그런 기능을 발현시킨 거겠지.”

최태우의 말에 강백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제가 치료제를 얻을 수 있는 열쇠가 되겠군요.”

“그래. 우습게도 가장 가까운 곳에 해답이 있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강백현은 율리만과 율리안의 치밀한 계획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든 게 계획이었던 걸까?

우연일 리가 없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강백현이 배운 능력.

살아남은 미나가 배운 능력.

거기에 윤수의 능력, 아람이의 능력, 김만철의 능력까지.

모든 것이 설계대로인 것 같았다.

과거로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런데 이번에는 최태우가 강백현에게 신중하기를 권했다.

“일단 네 피로 혈청을 만들어볼게. 거인병 바이러스와 융합해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반응을 보고나서 결정하자고.”

“얼마나 걸릴까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게야.”

최태우는 곧바로 강백현의 혈액을 채취해 혈청을 분리해냈다.

강백현의 혈청으로 거인병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다면 인류는 거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강백현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렸다.

율리만이 미나에게 들려준 소설.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

거기에서 가끔씩 자신에게 정보를 알려주던 메시지.

[주인공 강백현]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랬다. 율리만은 항상 힌트를 주고 있었다.

이런 세계가 올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이 모든 시나리오를 짜며, 조심스럽게 미나를 통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아포칼립스, 절망의 순간, 세계의 멸망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조장했다. 모든 것은 미래를 구하기 위해서, 거인병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

부산 도착까지 앞으로 45분, 최태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현아. 결과 나왔다.”

“네.”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해! 치료제 만들 수 있어! 네 혈액 500ml만 있으면 생산 가능할 거야.”

“헌혈 지금 바로 하죠.”

“지금?”

“네.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최태우는 떨리는 눈으로 백현의 혈액추출물이 든 실험관을 바라보았다.

헌혈을 마친 강백현 옆에는 강미나가 있었다.

“오빠, 허무해. 이렇게 쉽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도 못했어.”

“그래. 나도 몰랐어. 몰랐지만, 괜찮아. 만들었으니까 된 거야.”

그리고 김아람도 있었다.

“그럼 과거로 가는 건 문제 없는 거네?”

“응. 그렇게 됐네. 우리 논의했던 건 어떻게 할래? 결론짓고 갈까? 아니면 과거로 가서 생각할래?”

김아람은 백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모르겠어. 일단은 과거로 가는 게 먼저겠지.”

김아람은 애써 논쟁을 회피했다.

김만철이 방긋 웃으며 확인했다.

“돌아가는 거니?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백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항로를 변경했다.

“왜 그래?”

“제3경비구역에 굳이 가야 하나 해서요.”

“뭐?”

“우리는 치료제를 개발했고, 그걸 배양하고 양산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그리고 그걸 배양하고 양산하는 시설은 제주도에 이미 마련되어 있죠. 최태우 아저씨, 제 생각이 어때요?”

“확실히 제주도에는 그런 시설이 있지. 그리고 혈액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바위 인간, [록맨]에게서는 혈액을 추출할 수 없다.

하지만 바위인간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치료제를 이미 개발해두었기에, 혈액은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제주도에 방주를 착륙시킨 강백현은 모두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시원섭섭하면서도 아쉬운 상황.

하지만 이제 인류는 다시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발판은 전부 준비가 되었고,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

최태우가 혈청 하나를 건넨다.

“임시치료제야. 가지고 돌아가. 많은 도움이 될 게다.”

“감사합니다.”

통제실 안.

과거로 가는 차원문을 여는 데는 코어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차원문을 열 수 있는 시간은 약 25분.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기엔 적은 시간이다.

동면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깥으로 빼내서 차원문을 통과하기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것.

그래서 강백현이 조언을 구하려 동생에게 물었다.

“미나야. 여기선 어떻게 해야 해?”

“방주 자체를 통과시키면 돼. 방주로 차원문을 열고, 방주에 탑승한 채로 차원문을 통과하면 되는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은 방주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데?”

“때가 되면 율리만이 알아서 할 거야. 사실 나도 거기까진 잘 모르고, 이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몰라. 그냥 아는 건 율리만이 때가 되면 알아서 할 거란 것밖에.”

미나의 대답은 불확실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김만철이 기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백현아.”

“엉아! 출발!”

김만철과 박윤수도 동의했고.

“강백현, 고민하지 말고 차원문 열어. 일단 부딪히자.”

김아람도 홍조를 띤 얼굴로 강백현을 재촉했다.

통제실에서 과거로 가는 차원문을 개방하는 버튼을 누르자, 최종암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

《당신이 생각하는 운명의 날을 입력하세요.》

8자리 숫자.

강백현이 해당 날짜를 눌렀다.

《20190506》

대형마트에서 모든 것이 일어난 날이다.

그런데 비밀번호가 틀렸다.

강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운명의 날을 입력하세요.》

운명의 날. 그걸 보며 미나가 말했다.

“혹시 내가 사고 난 날?”

“응.”

《20160804》

그런데 이번에도 틀렸다.

“운명의 날이 도대체 언제지?”

과거 어떤 숫자를 눌러봐도 틀리다는 메시지만 나올 뿐.

그때, 최태우가 말했다.

“백현아, 혹시 운명의 날은 오늘을 뜻하는 게 아닐까?”

“네?”

“운명의 날이라고 하면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잖아. 과거로 가는 차원문을 여는 날, 이게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날이지 않나?”

“설마…….”

“한번 눌러보마.”

《22350703》

최태우가 누른 암호에 격한 진동이 방주 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꽉 잡아! 꽉!”

코어에너지가 방주 전체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격한 진동과 함께 방주가 전체에서 빛을 뿜어대기 시작한다.

새하얀 공간, 새하얀 빛 그리고 그 빛은 하늘까지 연결되었다.

빛의 기둥이라니! 빛의 기둥이라니!

코어에너지를 모은 방주가 만들어낸 것은 놀랍게도 백현 일행이 이미 접한 바 있는 빛의 기둥하고 같았다.

하늘과 연결된 빛.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

“하하하, 이런 거였어? 빛의 기둥이 이렇게 만드는 거였어?”

빛의 기둥을 통해 과거에서 미래로 왔듯이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일행들의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다들 출발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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