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의심과 모함
윤수가 병기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상으로 짓물렀던 병기가 원형을 회복해간다.
백현은 물론 김만철과 김아람, 최태우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병기가 왜 복구되는지 확인해봐야 해요. 생물체 기반으로 만들어진 무기라고 생각하면……”
아람이의 말에 최태우가 말을 더했다.
“윤수의 치료 능력은 확실히 생물체에 한정되지. 그렇다는 건 병기도 생명체라는 가정이 이상하지 않아. 어떤 생명체 기반인지 알아보려면 분석이 필요해. 당장 분석해볼게.”
의학자인 최태우는 분석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병기의 일부분을 떼어내어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염기분석을 시작하려 한다. 그런 가운데, 강백현이 미나를 의심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쭈뼛쭈뼛, 말을 주저하는 강미나.
평생을 같이 살았던 백현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미나야, 너 뭐 알고 있지?”
“알지 않길 바랐어.”
“또! 또! 왜? 이번에는 왜?”
“말했잖아. 잘 모른다고, 확신이 안 든다고.”
미나는 또 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최태우가 현미경 분석을 하려 이동하던 것을 멈추고 모두에게 자신의 예상을 털어놓는다.
“사람 기반이지? 휴먼 베이스라서 말 못한 거지?”
최태우의 말로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갑자기 구역질을 하는 아람이와 김만철.
강백현도 현재 상황이 썩 기분 좋은 건 아니었다.
미나는 씁쓸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갔다.
“슈트는 자이언트 베이스지만, 병기는 휴먼 베이스예요. 그래서 인간이 착용했을 때 슈트보다 더 압도적인 성능을 낼 수 있고 부작용이 적어요. 보글보글 거리는 기포 현상도 없고, 슈트로 인해 인체를 갉아먹는 부작용도 없죠. 슈트를 벗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익스플로전 현상도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어요.”
“익스플로전 현상?”
“응. 오빠도 알잖아. 페이즈 2에서 슈트를 벗으면 슈트가 폭발하는 그 현상. 그 부작용은 거인 유전자와 사람 유전자의 융합과정이 갑자기 중단되면 일어나는 과정이야. 슈트는 거인 유전자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인간의 유전자를 흡수하며 자가 복구 기능을 실행해. 기존에 미리 인간의 유전자를 흡수했던 슈트는 안정성이 강화되는데, 한 번도 인간의 유전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슈트들은 그렇지 않아. 불안정해지지.”
미나의 설명에 아람이가 따져들었다.
“포인트가 0점이 되거나 마이너스일 때 터지는 거 아니었어? 그 논리는 아닌 것 같은데?”
“슈트 자체에 프로그램을 심어놨을 거예요. 착용한 사용자의 정보를 통해 잔여 포인트가 있으면 인간의 유전자를 조금씩 흡수하고, 잔여포인트가 없으면 인간의 유전자를 흡수하지 못하게요. 그렇게 세팅하는 건 미래의 율리만에게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거예요. 아마 최태우 아저씨도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을걸요?”
미나의 말에 최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해 본 게 아니라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네가 설명한 부분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구나.”
미나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네. 생각해보니 각 페이즈 자체가 굉장히 치밀하게 설계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이즈 1에서 인간에게 능력을 부여하고, 그 능력을 기반으로 전투에 익숙하게 만들었어요. 그 다음 페이즈 2에서는 공포심을 유발하고, 전투력을 보조할 수 있는 슈트의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기반을 만들어두었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었지.”
“아마 예상 범주 외의 상황이 일어난 거겠죠.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을지는 생각 못하지 않았을까요?”
미나의 대답에 강백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의견을 내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소수의 인원, 그것도 확실한 인원만 선발하기 위해 일부러 수많은 희생을 유발했을 수도 있겠지.”
“희생을 유발하다니?”
김만철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백현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계획이 완벽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죠. 아니면 처음부터 과거의 사람들은 사람 취급 안 했을 수도 있고요. 희생양처럼, 아무것도 아닌 복제인간처럼 취급했을지 누가 알아요?”
그러나 김아람은 다른 생각이었다.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어.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 부족해서 급하게 서두르다보니까 차질이 생긴 거야. 많은 희생이 생긴 거고.”
김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어? 미나의 소설에서 빛의 기둥이 생기는 조건은 인류의 50%가 죽었을 때였어. 그건 50%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거야.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이란 소설에선 그랬다고!”
“일본에서 나온 소설에선 안 그랬어. 일본에서는!”
미나가 만든 소설 제목.
거기에 대한 논쟁이 펼쳐지자, 작가인 강미나가 해명했다.
“오빠, 섣불리 생각하고 판단하지 마.”
“?!”
미나는 자신의 소설 속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확실히 인구가 50% 미만이 되면 빛의 기둥이 나타나. 하지만 그건 대한민국에 한해서였어. 내 세계관에서 다른 나라는 각각 그 나라만의 룰이 있었어. 중국에서는 공산당원만 들어갈 수 있다든가, 일국에서는 외국인을 배제하고 일본인만 들어갈 수 있다든가, 그런 식으로 제각기 제약사항이 있었지.”
“그걸 말해준 사람이 율리만이고?”
“아니, 나한테 그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전달한 그분은 율리만 박사가 맞는데,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나도 몰라.”
미나에게서 전해 듣는 율리만의 유산.
그건 페이즈 돌입 전에 미나가 알고 있던 정보였다.
그런데 아람이에게도 정보가 있었다.
“일본 쪽 소설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을 겪는 과정에 초점을 둬. 우리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극복하는 내용보다는, 죽음에 초연해지는 화자의 입장에 주안점이 있었어. 확실히 빛의 기둥이 나오기는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빛의 기둥을 통과하지는 않아.”
“미국은?”
“미국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라.”
“중국은?”
“중국도 모르지.”
확실치 않은 정보를 취합해서 결론을 내리려 해도, 결국은 역시 단순한 잡지식의 교환이 될 뿐이었다.
결론은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
다만. 최태우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너희들이 입은 슈트의 재질도 사실은 인간의 것이 아니겠니? 거인들도 사실은 인간이었던 거잖아.”
“아, 그렇죠.”
“그럼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겠구나. 너희들이 겪어왔다는 방주 속 세계도 인간을 잡아두던 공간이고, 방주 바깥 세계도 인간이 저지른 결과물이고. 물론 지금 내 몸도 거인병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되겠고.”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아니야. 너희들 말이 맞다. 인간은 과오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또 다시 인간들을 실험체로 활용하고 있지. 너희들이 확보한 병기도, 너희들이 입고 있는 슈트도, 너희들이 사용하는 능력도 모두가 인간들의 욕심에 의해 발명되고 발견된 거지.”
최태우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이 잘못된 건 아니에요. 분명 지금 이 결과가 최악의 상황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평온을 되찾을 수 없다는 건 아니에요. 일단은 빛의 기둥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봐요.”
강백현은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아람에게 말했다.
“아람아, 물고기 더 잡으러 갈래?”
“좋아. 알았어.”
“그래. 기왕 지상에 내려온 김에 먹을 것 좀 챙겨가자고.”
“응.”
* * *
코어에너지를 추출하는 동안 아람이와 강백현이 물고기를 잡았다.
거기에 다른 것도 있다.
“저거 사과나무 같은데?”
“어. 그러네. 가볼까?”
한때는 인간이 관리하던 과수원이었던 듯 사과나무가 듬성듬성 붙어 있다.
농약을 치지 않아 벌레들이 무성할 법도 하지만, 생각보다 과일은 멀쩡하다.
그걸 본 김아람이 방긋 웃었다.
“먹이사슬 때문에 사과가 멀쩡한 것 같아. 봐! 벌레들이 저렇게 많은데도 새들이 다 쪼아 먹잖아.”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닌다.
한 마리가 날아가면 수십 마리가 그 한 마리 뒤를 쫒아 다음 지역으로, 또 다음 지역으로.
그러다보니 본래 새들이 지나간 곳은 벌레가 자취를 감추고, 새들이 지나가지 않으면 벌레 밭이 되어버리는 법이었다.
“그러네. 인간이 없어도 생각보단 살기 좋네. 아니, 더 살기 좋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난 돌아가고 싶어. 아빠, 엄마하고 동생하고 같이 예전에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마음에 걸려.”
염력으로 사과를 따는 김아람.
김아람의 손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사과가 하나, 둘 김아람 옆을 둥둥 떠다닌다.
강백현은 보호막을 그릇으로 만들어 물고기를 담으며 물었다.
“최형우 아저씨 때문에?”
“응. 아저씨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잖아.”
행복의 가치와 기준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족을 무엇보다도 우선하던 아람이의 변화에 강백현이 동의했다.
“나도 요즘은 가끔 형들이 떠올라. 진기 형도 그렇고 종필이 형도 그렇고, 우리가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꿈에 가끔씩 나타나더라.”
강백현이 지난 일을 떠올리자, 김아람이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생각을 토로했다.
“만약에, 만약에 과거로 다시 돌아갔는데, 그게 원래 우리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 비슷한 평행우주면 어떻게 할 거야?”
“어?”
“내가 과거로 갔는데, 나랑 똑같이 생긴 내가 그 세계에선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거야. 그럼 백현이 넌 어떻게 할 거야?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건 아니게 되잖아.”
김아람의 질문에 강백현이 잠시 충격에 빠졌다.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생각해봐야지. 우리가 지나온 과거가 아닌 전혀 새로운 세상이라면 그것도 참 곤란하지 않겠어? 사실 돌아가면 우린 범죄자나 다름없잖아.”
“무슨 범죄자야? 그냥 뭐 곤란하긴 하겠지.”
“가정해보자. 백현이 네가 집으로 돌아갔는데, 동일한 DNA를 가진 백현이랑 딱 만났어. 그래서 그게 신문에 나온 거야. 아니 유튜브에 나와서 너를 사람들이 막 추적해. 그럼 어떻게 대답할 건데?”
김아람의 질문에 강백현이 고민 끝에 자신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냥 미래에서 왔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되지 않을까?”
“미래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든, 그냥 난 사실대로 말할 것 같은데?”
“그랬다가는 네가 실험동물이 되겠지. 우릴 통해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내려 할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가진 능력의 비밀을 캐기 위해 실험실에 가둬두고 통제하려 하겠지.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은 세워둬야 된다고 생각해.”
김아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강백현은 그 웃음의 의도를 모른 채 그녀의 의도를 물었다.
“계획이라면?”
“자신을 바꿔치기하는 방법도 있겠지.”
“뭐? 바꿔치기?”
강백현이 김아람의 대답에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발언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런데 김아람의 생각은 확고해보였다.
“만약에 내가 아빠랑 만났는데, 아빠가 나를 인정 안 하면? 아빠가 죽는다고 경고하러 왔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면 어떻게 할 건데? 당연히 내가 인정받아야 하잖아. 내가 아빠 딸이 되어야 되는 거잖아.”
“김아람! 너 무섭게 왜 그래?”
“몰라? 나 한 번 죽었잖아. 나 클론이야. 원래의 내가 아니야. 김아람이란 사람의 기억을 가진 클론일 뿐이잖아. 그럼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리고 넌? 넌 어떻게 살아갈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