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참여보상
강백현의 말을 미나가 애써 웃으며 받았다.
“그런 것 같지?”
이미 대략적인 이야기는 완료된 상태였다.
거주지의 사람들은 일행에 대해서 알게 되자 김만철을 붙들고 물었다.
“저희도 방주에 태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건 상관없는데, 거인병으로부터 안전할지는 저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아, 그게 있었네요.”
“잠시만요!”
김만철이 방주에 있는 최태우와 무전을 사용해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자신이 들은 말을 옮겨주었다.
“현재 계룡시의 거인병 유발인자 수준은…… 대기 중 농도 0.03PPM. 충분히 안전수준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대부분 지하에서 활동하셨기에 병원균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안전하셨던 것 같고요. 하지만…… 다른 지역도 이렇다고는 확신할 수 없으니, 방주에 태워드리는 것은 어렵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치료제를 찾아보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좋은 소식 가지고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헤아려주시면 이 은혜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김만철은 그들의 말에 마음이 쓰라렸다.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방주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후 김만철이 가져온 것은 제주도에서 최태우가 챙겨왔던 감자들.
“별건 아니지만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네요.”
보자기에 한가득 담긴 식료품을 보며 김아람이 작은 목소리로 강백현에게 속삭였다.
“미쳤어. 우리 먹을 것도 다 준 거 아니야?”
“괜찮을 거야. 생각 있으시겠지.”
“아니, 그게 아닐 것 같으니까 그런 거지.”
“믿자. 아람아. 믿어.”
백현 일행이 다시 방주로 향했다.
상당량의 식료품을 잃었지만 그들에게 전혀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착용할 수 있는 병기.
아람이가 3m가 넘는 생체 병기를 타고 방주 위로 날아오른다.
“아람아! 조심히 옮겨.”
“걱정 마!”
김아람은 증폭된 염력을 활용해서 생체 병기들을 방주의 빈 공간에 쌓아두었다.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전투병기를 챙긴 백현 일행.
그들을 향해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손 흔드는데 지금 빨리 날아가죠.”
“못 나는데?”
“네?”
“에너지 없어서 비행 못해. 자동차 모드로 이동해야 해.”
“그럼 거인은요?”
“찾아 잡아야지. 그리고 지금 나한테 따질 때야? 혼자 방주 지키느라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내 심정을 아니?”
최태우가 핀잔을 늘어놓으며 방주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덜컹.
커다란 바퀴가 지면 위에서 구르며 방주를 옮긴다.
“최고속도가 겨우 30이예요?”
“그럼! 시속 300이라도 나올 줄 알았니? 이 정도 크기에 30이라도 나오는 게 대단한 거야. 이것도 앞으로 30분밖에 못 움직여. 그 다음부터는 또 비상모드로 돌아가겠지. 어떻게 할 거야? 아~ 김만철 어딨어?”
최태우가 짜증을 부렸다.
“네.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야! 감자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해!”
“그게 다였나요?”
“인마! 인마! 인마! 넌 애도 있는 게 왜 이렇게 철이 없어? 나야 뭐 안 먹어도 된다지만,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할래?”
“아~ 몰랐죠.”
“몰랐으면 다야? 진짜 넌 어떻게 된 게 백현이보다 더 어린애 같냐. 애도 있는 놈이!”
김아람은 결국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나를 향해 말했다.
“이것 봐. 내 생각대로지? 저 아저씨 생각 없다니까.”
그러나 핀잔은 김만철만 듣는 게 아니었다.
“아람아~ 나가서 거인 잡아 와.”
“네?”
“너하고 만철이, 그리고 백현이 셋, 얼른 출동해서 연료 좀 채우자. 저기 앞에 거인 있거든. 그거는 셋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야. 얼른 출동해야지?”
“아니, 전 지금 싸우고 싶지 않은데요. 어제 죽을 뻔했단 말이에요.”
“무슨 소리야. 거인 못 잡으면 연료 떨어져서 사람들 다 죽어. 그 책임은 누가 질 건데?”
“알았어요. 가면 되잖아요.”
최태우의 말에 김아람이 마지못해 나섰다.
그러자 최태우가 위를 가리켰다.
“머신인가, 그거 타고 가.”
“네에~. 안 그래도 그거 타려고 했어요.”
“아~ 쟤는 왜 이렇게 기분이 오락가락해! 미나야! 아람이 왜 저러니?”
“아, 언니가 원래 분노조절 장애가 있어서요. 사실 이런 세상에서 정상인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 * *
정상인 게 이상한 세계.
철컥철컥철컥철컥.
육중한 무게를 가진 병기가 땅을 찍으며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는 건 바로 김만철이 탄 병기.
그의 날렵한 움직임이 병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 했다.
“만철이 형! 제가 뒤에서 서포트 할게요.”
“알았어!”
김만철이 병기를 탄 채로 다리에 힘을 주자, 땅에 거대한 발자국이 찍혔다.
반발력으로 뛰어오른 높이는 무려 60m.
엄청난 도약력이 김만철이 흥분을 고조시켰다.
‘이거면 돼! 이거면 이길 수 있어.’
확실히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김만철의 강화된 팔과 다리가 병기의 움직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김만철이 펀치를 휘두르자 거인의 뺨이 출렁하고 흔들린다.
‘통했어. 역시 이 병기는 슈트의 강화판이야.’
거인의 몸이 기울어졌다.
60m짜리 초대형 거인이 뒤로 자빠지자, 뒤에 있던 산의 나무들이 고꾸라지며 먼지가 비산했다.
하지만 김만철의 펀지로 거인을 죽이기에는 역부족.
거인이 한손으로 무릎을 짚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강백현의 서포팅이 시작되었다.
망치 모양으로 연성한 보호막이 땅을 짚은 거인의 팔을 날려버린다.
60m짜리 초대형 거인이 중심을 잃었다.
“크르르르릉.”
거인의 입가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의 소리.
거인은 원초적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크롸롸롸롸!”
흥분한 거인이 재빨리 자세를 바꾸어 김만철과 강백현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김만철과 강백현이 탄 병기가 거인의 속도에 당황하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거인이 갑자기 다리를 헛딛으며 또 한 번 넘어진다.
그 이유는 김아람의 염력이었다.
“다들 괜찮아?”
“어! 아람이 너 센스 있다? 어떻게 다리를 걸 생각을 다 했냐?”
김만철이 탄 병기에서 칭찬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말이 튀어나오자, 김아람이 김만철의 병기를 180도 뒤집어 공중에 거꾸로 매달아놓는다.
“야야야야~!”
“아저씨는 말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아~알았어. 오케이! 알았다. 말조심할게!”
김만철이 사과하자, 김아람이 김만철의 병기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병기에 탑승한 김만철과 김아람, 강백현.
세 사람은 이번 전투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길 수 있어. 세 명이 힘을 합치면 초대형 거인도 이길 수 있어.”
거인은 세 번의 낙상으로 온몸에서 출혈이 일고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투지가 꺾이지 않았다.
“크롸롸롸, 크롸롸롸!”
입에서 불을 뿜는 거인.
거대한 불길의 접근했다. 염력으로 불길의 방향을 돌려보지만, 화염 자체는 몰라도 열기까지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끄으으으으읔.”
병기가 비명을 내지른다. 병기의 표면이 꿈틀꿈틀거린다.
불에 노출된 부분이 검게 그을렸다가 곧 원형을 회복했다.
“저 공격에 더 노출되면 안 돼!”
거인은 신중했다.
멍청해보였지만 학습능력은 있었는지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멀리 떨어져 불꽃으로 아군을 집요하게 공략한다.
서로 흩어져 몸을 숨긴 일행.
그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거인의 시선이 어딘가에 꽂혀있다.
쿵쾅쿵쾅.
후다닥 달려가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
백현은 거인이 달려가는 방향에 방주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막아야 해요! 막아야 해!”
자신의 몸에 보호막을 두른 백현이 거인의 목을 자르기 위해 커다란 보호막 칼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보호막의 칼날을 팔로 내려찍어버리는 거인.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보호막의 칼날은 해제되어 무효화되었다.
거인은 곧바로 입안에서 불꽃을 만들어냈다.
강백현은 불꽃을 대비하며 자신의 주변에 보호막을 펼쳤다.
화르르르륵!
불꽃이 피어오르며 강백현의 병기로 증폭된 보호막마저 점점 녹아내렸다.
뜨거운 열기가 보호막을 뚫고 들어오자 강백현은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다.
강백현은 병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병기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열에 약해. 녹아내려서 움직일 수가 없어.’
녹아내린 병기의 안쪽 부분이 슈트에 들러붙어서 몸을 빼낼 수가 없는 것.
엄청난 고통,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백현의 내부를 휘감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불꽃은 잦아들었다.
“괜찮아? 강백현! 괜찮냐?”
김만철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강백현은 고통 속에서도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김만철이 탄 병기가 강백현을 업은 채 달리고 있는 걸 알았다.
“아, 뜨거워 죽겠어. 죽겠어요.”
“응. 기다려 봐!”
내림천, 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모여 하천을 이룬 곳.
김만철은 그곳으로 강백현을 집어던졌다.
“식히면 괜찮을 거야. 괜찮지? 백현아! 괜찮지?”
“아-아, 네. 으으으으. 참을 만 한 것 같아요.”
강백현은 한숨을 돌렸다. 뜨거워 녹아내리던 병기가 찬물에 식어 순식간에고형물이 되었다.
아까처럼 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김만철의 입가에 미소가 깃든다.
“포인트?”
“네?”
“거인을 죽이고 참여보상으로 포인트를 얻었어.”
그리고 강백현의 앞에도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의 힘을 가진 62m급 8등급 거인(★★★★★☆)을 물리쳤습니다.》
《전투참여 보상으로 196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포인트 획득.
확실했다.
거기에 갑자기 목 뒤에 통증까지.
“아야! 아야야야! 아야야야!”
“어? 어?”
김만철은 그 이유를 알았다.
“미세한 입자들이 목 뒤에 흡수되는데? 보이지? 회색 입자! 회색 입자가 목 뒤로 빨려 들어가네!”
“네?”
입자들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김만철이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아람이가 보인다.
병기에서 빠져나와 숨을 몰아쉬는 김아람.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거인 잡은 것 봤지? 나 혼자 잡은 거다? 어?”
그러고 보니 거인의 코와 입, 치아는 물론 얼굴 전체가 새카맣게 탄화되어 더 이상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어떻게 잡았어?”
“불을 뿜고 있을 때 거인 주둥이를 틀어막았지. 그러니까 코하고 귀, 눈으로 불이 비어져 나오더라고. 그게 약점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그렇게 공략했으면 되는데, 아무튼 내가 죽인 거다. 인정?”
김아람의 활약으로 초대형 거인 공략에 성공한 백현 일행.
역시나 김아람의 목 뒤에도 미세한 회색금속이 흡수되기 시작한다.
“아야! 아야! 앗 따가워. 앗 따가워!”
그리고 김아람의 놀란 표정이 이어졌다.
“포인트 1632? 잠깐!”
이것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거인을 죽이면 포인트를 얻는다.
포인트는 회색 미세먼지가 목 뒤에 흡수됨으로써 산정된다.
결국 지구 또한 거대한 전장이었다.
율리안과 율리만은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걸까? 이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김아람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백현아.”
“어?”
“나 5성으로 올라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