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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174화 (174/200)

174화. 유도

사방에 흩어진 거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선 가까이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탄자처럼 생긴 보호막 발판의 움직임에 집중하고자 한껏 자세를 낮춘 백현. 그의 입가에는 진지함이 가득 묻어났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인 윤수조차도 백현의 마음을 눈치챈 듯 아무 말 없이 백현의 손을 붙잡을 뿐이었다.

계획대로, 예상대로.

피 냄새를 맡은 거인들이 백현을 잡기 위해 손을 휘둘렀다.

손에 잡히지 않자, 무거운 다리를 옮겨 추적하는 거인들.

모든 거인들이 백현에게 이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인 전부의 시선을 끈 백현은 입구의 역할을 하는 공동구를 향해 비행했다.

윤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아, 힘들어?”

“아니, 아직 괜찮아.”

“힘들면 말해. 치료해줄게.”

“고마워.”

윤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현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웠다.

‘윤수야. 역시 넌 내 최고의 파트너야.’

윤수를 만난 건 어떻게 보면 커다란 행운이었다.

윤수로 인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동생의 목숨을 살린 것도 윤수 덕분이었고.

그래서 백현은 인류에게 있어 메시아가 있다면 그건 윤수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윤수의 치료 능력이 자신에게 있었다면.

하다못해 진기 형의 젤리 능력이라도 자신에게 있었다면 남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바로 옆.

희생을 자처한 인물이 보였다.

거인이 된 서기백을 본 백현의 입에서 구역질이 튀어나왔다.

서기백 본래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금방이라도 축 늘어질 것 같은 힘없는 눈동자와 초록색으로 변해가는 피부가, 그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더구나 이제 막 거인이 된 탓일까?

다른 거인보다 활발한 활동성을 보이고 있어 백현을 더욱 더 신경 쓰이게 했다.

백현은 공동구를 통해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강한 피 냄새에 이끌린 거인들이 한때 인간들의 거주지였던 테라스를 버팀목삼아 건물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징그러운 거인들의 추적.

그리고 그 추적을 의도하고 있는 백현과 윤수.

공중으로 상승하던 백현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자 윤수가 물었다.

“엉아, 지금?”

“응!”

“알았어. 힘내!”

“그래! 힘낼게.”

윤수의 손에서 녹색 빛이 퍼져나와 백현에게 녹아들었다.

그러자 백현이 만들어낸 양탄자 보호막이 더욱 선명해지며, 추진력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백현은 윤수의 힘을 다시 한 번 높이 평가했다.

‘대단해. 나 혼자 했으면 역시 무리였어. 윤수의 힘이 아니었다면…….’

따지고 보면 윤수가 최고의 파트너임은 틀림없었다.

몸무게가 적어 백현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고, 체력도 금세 회복시켜 준다.

그리고 그 회복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백현의 힘이 100을 10분 동안 낼 수 있는 능력이라면, 윤수의 치료 능력은 100의 힘을 10분 동안 4번이나 발동시킬 수 있게 해준다.

그만큼 지속력을 늘려주고 더욱 뛰어난 생존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윤수야!”

“응.”

“천장 뚫고 바로 지상으로 갈 거거든? 하늘에서 먼지가 떨어질 거야. 그래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내가 보호막 펼쳐줄 테니까.”

“응. 알았어.”

현재는 힘이 남아도는 상태.

연구소 지역을 한 번에 통과하기로 작전을 변경한 백현. 그는 하늘 방향으로 창 모양의 보호막을 만들어 드릴처럼 뚫어대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릉.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둡기만 했던 연구소에 한줄기 빛이 등장해 점차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밖으로 빠져나온 백현은 일단 분신을 소환했다.

“작전 알지? 작전대로 부탁해.”

“맡겨둬!”

“오케이!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주지!”

분신 1, 분신 2가 피 묻은 보호막을 스스로에게 두른 후 보호막을 해체하며 자신의 몸을 붉게 물들였다. 그렇게 거인들을 유도하는 것이다.

분신 1은 방배동에서 사당 방향으로.

분신 2는 방배동에서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백현의 본체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고도를 높여갔다.

30m, 50m, 100m까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

강풍이 불어왔지만, 백현은 앞에 유리창 같은 보호막을 하나 더하는 것으로 극복하며 윤수에게 물었다.

“윤수! 괜찮아?”

“응. 엉아, 난 괜찮아.”

“그래. 우리 윤수 최고다.”

백현은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백현.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빠져나오는 거인들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분신 1, 2를 쫓기 위해 거인 무리는 둘로 나뉘었다.

한쪽 무리가 여섯.

한쪽 무리가 일곱.

통합 열셋이다.

이를 본 백현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둘이 없어. 두 마리가 없어!”

분명 열다섯.

다 끌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개체 둘이 목표를 잃고 거주지에 남아버린 것이다.

“엉아? 괜찮아?”

“응. 윤수야. 형 몇 번 치료해 줄 수 있어?”

“음…… 한 번?”

빡빡하다.

거인들을 여기까지 다시 데려오기까지는.

그래도 시도해야만 했다.

그게 자신의 계획에 필수였다.

모든 거인을 거주지에서 몰아내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다시 한번 구축하는 것.

백현은 분신에 정신이 팔린 거인들을 뒤로 하고 다시 거주지로 향하고자 미니맵을 켰다.

그런데 예상 외.

본인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형……. 아람아.”

자신의 동료 둘이 거인을 유인해서 끌고 오고 있다.

윤수 + 백현 조합도 최강이었지만.

아람 + 만철 조합도 만만치 않았다.

김만철의 체력과 빠른 기동력에 아람의 염력이 더해지니 움직임이 한층 가벼워진다.

그들은 똑똑했다.

거주민의 찢어진 옷에 피를 물들여 남은 거인 둘을 바깥으로 유도하는 센스.

결국 두 사람은 거인 둘을 바깥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고, 과학연구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피에 물든 옷을 흐르는 하천에 버렸다.

목표를 잃고 헤매기 시작하는 거인 둘.

백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점차 고도를 낮추며 아람에게 다가간다.

“잘했어, 아람아. 만철이 형도 고생하셨어요.”

백현의 말에 김아람이 장난스럽게 핀잔을 늘어놓았다.

“하여간 백현이 혼자서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니까.”

“후후, 고생했어.”

백현의 얼굴에 미소가 깃들었다.

동료들의 도움 덕분에 거인들을 바깥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하니 기분이 째질 것 같다.

김만철이 한마디 건넸다.

“다시 돌아갈까?”

“그러죠! 잠시만요. 무전 좀 보내놓고요.”

* * *

백현은 무전기를 통해 방주를 지키고 있던 최태우와 통신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거주지로 돌아갔다.

거주지에서는 이미 공동구 입구를 틀어막고 무너진 거주지를 복구하는 중이었다.

무너진 집에서 집기들을 꺼내 하나하나 정리하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무덤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공사 장비를 동원하여 구출할 사람을 찾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수색하는 사람들까지.

공동체 사회답게 각자의 역할에 맡는 일을 찾아내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미나는 김희연 박사와 함께 있었다.

미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박사님, 먼저 갈게요.”

“괜찮아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요.”

“치료제, 꼭 구해보겠습니다. 치료제를 구하면 반드시 방문해서 모두 거인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거인병에 노출되어 버렸다.

아니, 이미 거인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발병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곳도 모두 전염되고, 인간들은 전멸할지 모른다.

아쉬움이 남는 작별인사 과정을 뒤로하고 5명의 일행이 거주지를 빠져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김희연 박사가 갑자기 김만철을 불렀다.

“저기요.”

“네?”

“이것 드릴게요.”

김희연 박사가 건네준 건 오래된 USB.

“이게 뭡니까?”

“저희 가족사진이 들어있습니다. 오래 전 기록이 남아있는 가족 간의 추억이죠.”

“…….”

USB를 받아든 김만철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알고 있었나요?”

김만철의 물음에 김희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과거에서 오셨다고 들었을 때 왠지 익숙했습니다. 제 고조할아버지이신 김만철 헌터님은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어요.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고 동료를 아끼는 훌륭한 분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파일을 열어보시면 아내분이 누구셨는지, 그리고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미안. 정말 미안. 남편을 지켜줬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제 남편은 자신의 결정을 자랑스러워했을 거예요. 이제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고조할아버지께서는 고조할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하세요.”

“…….”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없었다.

김만철이 김희연과 작별의 포옹을 하고 모두가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슈트를 입은 5인이 과학연구소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만철이형, 괜찮아요?”

“엉. 괜찮아. 흑흑…… 흑흑흑.”

김만철은 펑펑 울어댔다.

“에이! 왜 그래요? 여기서 가장 형님이시면서 울면 어떻게 합니까? 동생들에 아들까지 옆에 있는데……”

“아니……. 나보고 할아버지라잖아. 고조할아버지는 고조할아버지 인생을 살라고 하잖아. 얼마나 감정이 격해졌는지 아냐! 자기 남편이 죽었는데도 초연하게 말하잖아.”

김만철의 흐느끼는 말에 김아람이 말했다.

“아저씨!”

“어. 아람아.”

“그 USB 절대 열어보지 마요!”

“뭐?”

“아저씨랑 내가 결혼했다잖아요.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는데! 아 짜증나. 아저씨한테 고조할아버지면 내가 고조할머니라는 거잖아요.”

아람이의 말에 강백현이 미나를 보며 말했다.

“아-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

미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게 싫어서였다.

무엇보다도, 아람 언니랑 백현 오빠가 이어진다는 건 다들 끝까지 몰라야 하니까.

그래서 미나는 말을 돌렸다.

“방주로 돌아갈까요? 해야 할 게 많아요. 서둘러요!”

* * *

방주로 돌아오자, 닥터 최태우가 일행들을 맞이했다.

“잘 다녀왔어?”

“네.”

“얻은 건?”

“여기 촉진제 구했습니다. 그리고 경비구역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아마 다른 경비구역으로 가면서 정보를 획득해야 할 것 같아요.”

“잠깐! 촉진제를 구했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있었어?”

“안에 있었습니다.”

“생존자가 있었다고? 그럼 데려오지!”

“일단 거인병에 노출된 사람들이라서 여기로 데려올 순 없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건 그렇지. 촉진제 줘봐. 성분 분석 해볼게.”

“네? 가능하세요?”

“그럼! 내가 이 일만 수십 년을 했는데.”

최태우는 흥미로운 얼굴로 백현이 가져온 촉진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최태우가 가져온 원심 분리기가 윙윙 돌아갔다.

일행들은 일단 피곤한 몸을 누인 채 바로 잠을 청했다.

몸이 무척 노곤하다.

그만큼 이번 여정은 힘들었기에.

최태우만이 원심 분리기를 돌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세 시간 뒤.

촉진제 일부에서 떨어져 나온 성분을 분석하던 최태우가 깜짝 놀랐다.

촉진제의 성분에서 인간의 세포. 인간의 DNA가 보인다.

‘뭐지? 이게 뭐야?! 두 명의 DNA라고? 설마! 설마?’

그래서 자신이 확보한 유전자 DNA와 대조해보았다.

그러자 촉진제에서 나온 DNA 중 하나가 자신이 확보한 DNA와 일치했다.

‘최형우? 최형우 형님의 유전자가 여기서 나왔다고?’

놀란 눈으로 다시 비교해보는 DNA. 확실하다. 한 명의 유전자는 최형우다.

그런데 누군가가 최태우를 불렀다.

“아저씨?”

“어?”

“그거 비밀로 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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