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73화 (173/200)

173화. 미끼

김아람은 동료들만 따로 불러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미끼가 될 사람이 필요해요.”

“미끼?”

“미끼라니?”

강백현과 김만철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김아람은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 거인들이 추격하던 놈들 있었잖아. 우리가 터널 같은 구멍에 숨어있었을 때, 우리가 더 가까웠는데도 거인들은 피 흘리는 놈들을 쫓았어. 녀석들은 피 냄새를 쫓아! 다들 동의하지 않았어? 백현아! 아니야?”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위험하잖아.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잖아. 미끼는 누가 할 건데?”

백현의 말에 김아람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미끼라면 일부러 피를 흘린 상태로 가자는 거잖아. 피를 묻히면 거인들한테 쫓기게 되니까. 그런데 그 상태로 바깥까지 나가자고? 거인들한테 쫒기는 상태로?”

“그래. 정확히 알고 있네.”

“그걸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하자고?”

“당연한 거 아니야?!”

김아람의 의견에 강백현은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김아람이 답답한지 미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읽으라고 재촉했다.

능력 과다 사용은 문제가 되지만, 지금은 탈출할 때 윤수의 회복 능력을 받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미나는 아람의 생각과 추리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전달해.”

“네. 언니.”

미나에게 아람이 판단한 내용을 전달받은 백현은 고개를 떨궜다.

설마, 거인에게 상처를 줬던 것 때문에 거인들이 몰려온 거라니.

이곳에 거인이 쳐들어 온 이유는 하나였다.

거인의 피 냄새를 맡고 온 것이다.

즉, 저 거인들을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백현 일행이었던 것이다.

“내 추리가 맞다면 우리가 책임져야 해. 그렇다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지금 와서 사죄한다 뭐한다 하는 건 그들에게 혼란만을 가져올 뿐이야.”

아람의 판단을 미나에게서 전달받은 김만철.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갈게.”

김만철의 말에 박윤수가 울기 시작했다.

“아빠, 싫어. 가지 마.”

윤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 가능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강백현이 나섰다.

“아니에요. 형, 제가 갈 거예요. 방금 전에도 다녀오셨잖아요. 어차피 이 작전은 거인들이 굶주려야 해요. 아니, 먹을 게 없어야 가능한 작전이에요.”

“됐어. 너보단 내가 신체능력이 뛰어나잖아. 오래 유지할 수도 있고.”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희는 지하에 있어요.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형의 뛰어난 도약력보다는 저처럼 발판을 만들거나, 보호막을 조종해서 날 수 있는 능력이 더 유리해요.”

“넌 능력을 오래 유지 못하잖아.”

“그래도 제가 나아요. 형은 피를 뒤집어쓰면 끝까지 뒤집어쓴 채로 다녀야 하잖아요. 하지만 전 달라요. 제 몸에 얇은 보호막의 막을 씌우고 그 위에 피를 뒤집어쓰면, 언제든지 보호막을 벗겨내서 추적을 회피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생존율이 확 올라가죠. 언제든지 거인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건 저뿐이지 않나요?”

“그게 아니라 넌 능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잖아!”

“형, 저도 자가치유 능력 있어요. 형만큼 능력을 지속적으로 쓰진 못해도 아람이나 미나보다는 오래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가는 게 맞아요.”

“그래도 내가 제일 나아. 넌 능력을 오래 유지 못한다니까!”

김만철이 우려를 불식하지 못하자 윤수가 튀어나왔다.

“그럼 내가 가면 돼.”

윤수의 말에 김만철이 놀랐다.

“무슨 소리야! 윤수!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끼어드는 거 아니야.”

“아니, 내가 나서면 다 해결 돼. 아빠가 한 번 구하러 갔으니까 이번에는 윤수 차례야. 윤수가 엉아랑 같이 가면 능력 오래 쓸 수 있어.”

김만철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윤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다른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윤수가 같이 있으면 백현 오빠는 무적이나 다름없어요. 거인의 공격도 보호막으로 막을 수 있고, 능력 유지도 더할 나위 없이 길어지죠. 더구나 윤수가 한 명 더 보호막 위에 올라탄다고 해도 크게 부담되지 않아요.”

“하지만! 어린아이한테 너무 가혹하잖아. 이제 내 아들이야.”

“네. 아들이죠. 하지만 어엿한 우리 팀원이기도 해요. 지금 어린아이 걱정할 때는 아니잖아요. 윤수는 그만한 능력을 가졌고요.”

백현은 이런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만철에게 다시 의지할 수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희생하려 하니까.

“형이랑 아람이, 그리고 미나는 여기 남아줘요. 윤수랑 둘이라면 해볼 만할 것 같아요. 반드시 성공할게요. 꼭 안전하게 돌아올게요. 윤수야! 너도 엉아랑 가고 싶은 거 맞지?”

“응. 엉아랑은 언제나 함께였어. 빙글빙글 문에서도 엉아랑 함께 사람들 구했잖아.”

“그래. 맞아. 우리 윤수 진짜 착하고 똑똑하다. 고마워!”

윤수까지 동의한 마당에 김만철은 딱히 더 나은 작전이 생각나질 않았다. 결국 답답함을 토로했다.

“다들 제 멋대로야.”

“그런 게 우리 매력이죠. 형도 그런 매력 때문에 따라오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벌써 6개월 넘게 같이 다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아! 모르겠다. 윤수! 백현이 형한테 꼭 붙어있어야 해! 알았어?”

“응! 알았어.”

“말로만 하지 말고! 진짜야.”

“알았~어! 알았다구!”

이제는 투정까지 부리는 윤수.

그런 윤수를 뒤로하고 백현이 말했다.

“그럼 일단은 잠을 청해볼까요? 체력도 회복해야 하고, 거인들도 시체를 다 먹기 전까지는 활발히 움직이는 것 같거든요. 지금 뭘 하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요.”

* * *

김만철은 김희연 박사와 해당 작전을 공유했다.

김희연은 김만철의 작전을 듣고 남편의 부하들에게 대강의 내용을 전달했다.

작전의 내용을 들은 경비대원들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아직 어린 친구들 아닙니까?”

쿨쿨 자고 있는 강백현과 윤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들.

하지만 김만철은 자신있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보다 더 강한 친구들입니다. 죽을 위기를 몇 번이고 넘은 역전의 용사이기도 하고요.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난을 겪었고 이겨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겁니다.”

“네. 일단은 그렇게 전달하고 사람들 진정시키겠습니다. 아무래도 대피소에서 오래 버티진 못하거든요. 만약에 그 작전이 통하지 않는다면 저희도 싸워야죠.”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만철은 그들이 종래의 거인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꾼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거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던 것을 이제 후회하는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대책 없이 당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김희연은 모든 내용 전달이 끝나자 잠이 든 아들을 두고 미나에게 다가왔다.

“잠시 말씀 좀 가능할까요?”

“네. 말 편히 하셔도 되요. 저 아직 어립니다.”

“아닙니다. 세상을 이끌어가실 분이신데, 말을 편히 하라니요. 그것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사람들이 없는 구석으로 간 강미나는 김희연 박사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알고 계셨군요.”

“네. 아마 저희들은 오늘 이 사건으로 거인병에 노출되었을 겁니다. 언젠가는 모두 거인이 되겠죠.”

“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율리안 박사님과 율리만 박사님은 항상 경고하셨어요. 인간은 이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다 같이 거인이 올 수 없는 섬으로 떠나자고요.”

“그걸 거부하셨고요.”

“네. 삶의 터전을 옮길 순 없었습니다. 여기 지하는 안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안전했고요. 저희는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로운 줄만 알았죠.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네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나는 고개 숙여 사죄했다.

자신들이 방문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에요. 이미 준영이는 거인병에 걸려 있어요. 그걸 알면서도 전 아무 말 하지 않았죠.”

“네?”

“이미 보름 전, 준영이에게 거인병에 걸려 있다는 징조가 있었습니다. 열이 심하게 나고 소변에서는 가끔씩 녹색액체가 흘러나왔죠. 전 그걸 동료들에게 비밀로 했어요. 거인병이 걸리면 다 죽는데도 비밀로 했었어요. 미안해요.”

처음부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언젠가는 모두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인병은 잠복기가 매우 길다.

거인화가 언제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잠복기가 2년이 될 수도, 10년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작전이 실패하더라도 저희를 버리시고 방주로 돌아가세요. 그것만이 율리만, 율리안 박사님의 의지를 잇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말고도 제2경비구역, 제3경비구역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보시면 또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푹 쉬세요. 저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희연 박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아들에게 걸어갔다.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덜어진 탓일까?

미나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만이 남아버렸다.

* * *

12시간이 흘러 작전 시간이 되었다.

강백현은 무전기를 챙기고 미나에게 당부했다.

“무슨 일 있으면 불러.”

“알았어. 오빠 몸이나 잘 챙겨.”

“알았어.”

그리고 김만철이 갑자기 자신의 팔을 날카로운 유리로 긋기 시작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발라.”

“네. 고마워요.”

강백현은 자신과 윤수의 몸에 얇은 보호막을 둘렀다.

그리고 그 보호막 위에 김만철이 자신의 피를 뿌리기 시작했다.

피로 적셔진 둘.

윤수는 피를 너무 많이 쏟아 비틀거리는 김만철을 치료하고는 소리쳤다.

“갔다올게!”

“응. 아빠가 응원할게!”

“응!”

강백현이 미니맵을 확인한다.

거인들은 더 이상 먹잇감을 찾지 못하고 거주지 내에서 느린 움직임을 지속한다.

“됐어요. 지금 가면 될 것 같아요.”

“문 열게.”

“네.”

강백현이 윤수의 손을 잡았다.

피가 뿌려진 얇은 보호막 아래 양탄자 같은 모양의 보호막이 둥둥 떠다닌다.

강백현이 말했다.

“윤수야! 알라딘 알지?”

“응!”

“알라딘이 타는 양탄자 태워줄게. 나 꼭 붙잡아!”

“응. 알았어.”

“그럼 출발한다!”

양탄자 모양의 보호막 바닥이 백현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한 피 냄새를 풍기며 거주지를 가로지르는 둘.

그리고 그 둘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일행들과 거주민들.

다행히 거인들이 피 냄새를 맡고 강백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발걸음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거인들이 진한 피 냄새에 뛰기 시작한다.

쾅! 쾅! 쾅! 쾅!

백현은 수십 마리의 거인들을 이끌고 지상으로 몰고 가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고, 그런 두 사람의 작전 성공을 위해 모두가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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