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71화 (171/200)

171화. 거인 VS 거인

서기백을 비롯한 거인들의 전투가 이어졌다.

살색의 피부가 짙은 녹색으로 변해버린 거인들.

반면 이곳을 습격해온 거인의 피부색은 옅은 녹색이라 구분이 가능했다.

촉진제를 맞은 사람들은 맨몸 그대로 거인들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주먹이 오고 가는 가운데, 한 여성이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일으키며 호소력 깊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망치세요! 얼른 대피소로! 대피소로 이동해요!”

“거인들은 우리를 먼저 공격하지 않을 거야!”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지금 여기까지 쳐들어온 거 안 보이세요?! 안 보이시냐구요!”

거리에서 기도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출하고자 끌어내는 여성.

그 여성을 향해 거인이 된 서기백이 입을 열었다.

《여보, 얼른 도망가. 대피소로 가! 행동지침 알잖아.》

“하지만! 이렇게 놔두면 다 죽어! 다 죽는다고!”

《바보 같은!》

서기백은 한숨을 내쉬면서 정면에서 밀고 들어오는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후의 방어선.

이곳이 뚫리면 인류의 미래는 없었다.

숨을 몰아쉬던 미나는 서기백에게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생각을 전달하는 중이에요. 저희는 지금 서기백 대장님 뒤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물 안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어요. 대피소는 어디죠?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아~ 생각으로만 하셔도 읽을 수 있으니까 굳이 말로 안 하셔도 돼요.》

다행히 미나의 생각이 서기백에게 전달되었다.

《건물 제일 뒤쪽, 수로로 연결된 공간이 있어. 거기에 가면 바깥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우리가 최대한 막아볼 테지만, 그게 안 된다면 사람들을 이끌고 탈출해줘.》

서기백의 생각이 미나에게 전달되자,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사람들의 구출을 최우선하겠습니다. 모두에게 서기백 대장님의 생각을 전달할게요.》

미나는 서기백에게 들은 내용을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백현이 미나의 등을 두드렸다.

“잘했어.”

“응. 근데 오빠 미안해.”

“왜? 뭐가 미안해?”

“나, 한계인가 봐. 앞이 잘 안 보여.”

그러고 보니 미나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슈트에서 기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생각해 보니 미나는 한계까지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을 과잉해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데, 동료를 위해 스스로의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바보야.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 다 힘들잖아.”

백현은 할 수 없이 윤수를 불렀다.

“윤수야.”

그런데 윤수의 얼굴도 말이 아니다.

“아니야. 쉬어.”

“싫어! 누나 내가 고칠래. 내가 고칠게.”

윤수 또한 능력을 과다 사용한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어린 꼬마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김만철은 윤수가 걱정되었지만 미나 또한 위험한 상태였기에 아무 말 없이 윤수의 뜻에 따랐다.

윤수의 손에서 나온 초록색의 빛이 미나를 감싸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미나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만철은 치료를 마치고 지쳐 쓰러진 윤수를 업었고, 백현은 그런 만철에게 말했다.

“형은 윤수를 데리고 대피소로 먼저 가 계세요. 여기는 저희가 구출하고 있을게요.”

“백현아! 네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형이라면 여기 사람들 구할 거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죽을 게 뻔한 사람들을 여기 그냥 놔둘 수는 없어요.”

김아람이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나도 도울게.”

“응. 아람아. 대신에 넌 더 이상 능력 쓰기 없기.”

“응. 명심할게.”

백현은 이제 막 체력을 회복한 미나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능력 얼마나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

“4~5번 정도?”

“알았어. 다행이다. 저분들의 희생을 잊지 말고 사람들을 구출해. 그게 우리의 임무니까.”

“응.”

백현 또한 일전에 윤수의 도움을 받아 미니맵 사용시간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체력을 소모한 상태라, 미니맵은 사용가능해도 능력은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무전기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아람아, 안쪽 3번째 건물 1층 구석에 여자애 있어. 구출해줘.》

《응. 알겠어.》

《미나야. 그 골목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기도하는 할머니 있거든. 설득해서 데려오고 설득 안 되면 능력 써서 강제로 이동시켜.》

《응.》

《만철이 형은 일단 윤수 데리고 대피소까지 간 다음에 그쪽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주세요. 상황도 전해주시고요.》

《그래. 알았다. 무리는 하지 마. 너까지 잃으면 난…….》

《그럴 일 없어요. 모두 살아남을 겁니다.》

무전기 너머로 강백현의 목소리를 들은 김만철이 윤수를 업은 채 건물 뒤쪽으로 빠져나간다.

김만철은 도망치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대피소로 빨리 대피하세요! 도망치세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행히 희망을 잃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만철은 그들을 이끌고 거인이 출몰한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대피소로 가는 길.

길은 좁은데 사람들은 엄청나게 몰렸다.

일명 병목현상.

좁은 길로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려다 보니 혼잡하고 지체되는 상태다.

《백현아, 상황이 안 좋아. 더 이상 밀리면 큰일 나.》

《네. 알아요. 다행히 저는 상황이 괜찮은 것 같아요. 자가 치유 능력 덕분에 남들보다 회복 속도가 빨라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강백현이 김만철의 걱정을 들으면서 다리를 쉬지 않고 움직였다.

거인들의 전투에 의해 무너진 건물 안.

그곳에 쓰러진 남자가 미니맵에 보인다.

백현이 돌무더기를 걷어내고 그 아래 깔린 남성을 구출했다.

“괜찮으십니까?”

“아, 아.”

“움직이실 수 있으시다면 얼른 뒤쪽 대피소로 이동하세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네.”

백현은 자고 있는 사람이나 건물이 무너져 고립된 사람들을 여럿 구해냈지만 전선은 계속 밀려나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 전부 대응하는 것은 무리였다.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다.

거인을 막아내는 경비대장과 그의 부하들도 점점 밀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버텨! 재웅아 버텨!》

《대장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크아아아. 크아아아악!》

《버티라고! 버티라고!》

설상가상, 촉진제를 맞고 거인이 된 사람들 중 일부가 정신을 놓아버렸다.

《한계입니다. 대장님, 절 죽이십시오. 얼른! 얼른!》

서기백은 건물을 부순 자리에서 빠져나온 철근을 뽑아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철근을 부하의 목에 찔러넣었다.

건축물에 사용되는 철근 콘크리트.

콘크리트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철근이 부하의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도 부하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최후를 맞이했다.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거인이 된 사람들이 야속하게도 하나둘 정신을 잃어갔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동료들에게 부탁해 이성을 잃기 전에 삶을 마감했다.

거인이 된 서기백은 앞에 놓인 부하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7명이 거인화되어 4명의 거인을 저세상의 길동무로 삼았다.

하지만 아직 거인은 둘이 남아 있었다.

이쪽은 자신과 부하 두 명이 있다.

거인 5구 사이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서기백의 부하 중 하나가 거인에게 당해서 사지가 찢겨나갔다.

촉진제를 맞은 부하 중 이제 단 한 명만이 남았다.

그는 다른 동료에 비해서도 덩치가 컸다.

크기만 해도 약 23m. 거기에 지성도 겸비했으니 30m의 거인과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

본능에 의해 공격하는 자와 지성을 가진 채 도구를 사용하는 자와의 싸움이었다.

체격 차이가 있다 해도 지성을 가진 자가 유리한 법.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도 이제 한계인 듯 서기백을 향해 마지막 당부를 건넸다.

《대장님, 저도 곧 한계가 올 것 같습니다. 여긴 저한테 맡기시고 사람들을 구출하십시오.》

《종훈아. 너 혼자는 안 돼.》

《압니다. 하지만 거인한테 죽으나, 미쳐 죽으나, 스스로 죽음을 택하나 결과는 똑같습니다. 그럴 바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게 낫습니다. 대장님, 여긴 저한테 맡기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하십시오. 그게 우리가 목숨을 건 이유이지 않습니까?》

서기백은 부하의 말에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뒤돌아서며 사람들을 구하고자 달려나갔다.

이 모습을 본 강백현은 미나에게 부탁해서 서기백에게 미니맵의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이건 뭐지?》

“구해야 할 사람들의 위치예요. 건물 내 살아있는 사람들 위치니까 대장님은 그쪽을 맡아주세요. 후방은 저희가 구할게요.”

《너희가 보낸 기억인가?》

“네. 맞아요. 마인드 리딩이란 능력, 제 동생이 가지고 있잖아요. 시간이 없어요!”

거인이 된 서기백 대장이 아까보다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현과 미나, 아람이 셋이 사람들을 구하는 것보다 서기백 대장 혼자서 움직이는 게 더 효율이 높았다.

미니맵이라는 형태는 처음 보는 서기백이었지만 이곳의 지형만은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거인의 거대한 몸을 이리저리 날렵하게 움직여 사람들을 모두 대피소로 이동시켰다.

김아람과 강백현, 강미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거인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기쁨도 잠시, 거주지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종훈이란 이름의 거인이 이곳에 쳐들어온 거인들에게 찢겨나가고 말았다.

서기백은 대피소 앞에서 아내에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여보. 허락 없이 촉진제 써서 미안해.》

서기백의 아내와 아들이 대피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눈물을 흘린다.

“엄마, 아빠 죽는 거야? 거인 되면 죽는 거야?”

“…….”

서기백의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진 않아도 곧 이성을 잃는다.

그리고 그건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조금의 시간만 더 지나면 자신의 남편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거대한 손가락이 아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빠는 경비대장으로서 마지막 임무를 하는 거야. 자랑스러워해도 돼!》

“아빠! 아빠!”

《이제 갈 시간이구나. 내가 저 거인을 처치하고 다시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놓을게. 그러니까 이제 아빠는 경비대장이 아니라 영웅이야.》

서기백은 여전히 기백을 잃지 않고 달려나갔다.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서기백의 손에는 건물의 파편이 들려 있었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거인의 얼굴을 강하게 타격하는 서기백.

그러나 그 눈에서는 점점 초점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걸 보며 미나가 고개를 떨구었다.

“곧 이성을 잃을 거야. 하지만 대장님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겠지. 맞아. 그는 영원히 기억될 영웅이 될 거야.”

서기백은 침입한 거인들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서 거인 전부를 지옥의 길동무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위기가 끝나는 듯했다.

영웅 서기백의 죽음과 함께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안도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들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사람은 바로 강백현.

“거인들이 추가로 열다섯이나 들어왔어. 이곳은 이제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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