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69화 (169/200)

169화. 비밀공간

능력에 대한 내성을 가진 5등급 거인을 이기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힘이 필요했다.

김만철의 강화된 주먹도 거인에 닿으면 힘이 약화됐으며, 아람이의 염력도 거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강백현의 강력한 보호막도 텅스텐을 합성한 녀석들에게는 다른 때보다 쉽게 부서지고 만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김만철은 주변의 널린 기자재들을 투척물로 사용했다.

강화된 신체를 이용한 공격은 거인과 근접할수록 효과가 떨어지지만, 투척물은 100% 온전한 힘을 지닌 채 거인을 타격할 수 있다.

이 공격이 통하자, 백현은 천장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보호막의 형태를 날카롭게 변환해, 천장에 쏟아붇는 백현.

그러자 30m의 거인 위로 부서진 천장의 콘크리트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았던 거인도 서서히 한계를 드러냈다.

눈이 풀리고, 팔을 뻗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생각해 보니 거인은 처음부터 약화된 상태였다.

다른 거인들과 달리 움직임도 느렸다.

“아저씨! 마무리하죠.”

“그래.”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마지막 공격을 위해 바위를 한 손에 들고 도약했다.

그런데 아래에서 번쩍하며 김만철을 향해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눈! 눈이!”

김만철의 얼굴을 정확하게 조준한 광선.

그걸 맞은 김만철이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만철이형! 형!”

강백현이 급하게 김만철의 이름을 불러댔다.

혹시나 잘못되지나 않을까, 다치진 않을까, 혹시……. 최형우처럼 죽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다행히 김아람이 염력으로 김만철의 낙하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미나가 잠자리 같은 4개의 날개를 펼치며 김만철을 공중에서 캐치해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김만철의 상태를 체크하는 미나.

“오빠, 아저씨 눈이 일시적으로 안 보이는 상태야.”

“뭐라고?”

“눈이 안 보인다고.”

백현은 미나의 말에 광선이 발사된 아랫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인간의 형태다.

한 손에 총과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녀석이 말했다.

“거인을 죽이지 말아요! 가만히 두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 거예요.”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에, 백현이 되물었다.

“사람인가?”

“네. 당신들은 누구죠? 어디에서 온 거죠?”

백현 일행은 상대의 한국어에 반가움을 느꼈다.

생존자가 있었다니.

소년의 말대로 거인은 더 이상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일행이 소년을 보기 위해 공동구 아래로 내려갔다.

“아, 아.”

얼굴이 백옥같이 흰 소년. 대략적인 나이는 12-14세.

백현은 녀석의 정보를 미니맵으로 확인한 후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이름이 준영이구나. 서준영.”

“어? 누구세요?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능력으로 알았어. 말 놓아도 되지?”

“네! 일단 어른들한테 데려가도 되죠? 이런 상황이 생기면 무조건 어른들에게 데려와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소년 서준영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둘 아래로 내려오는 일행들.

그리고 다친 김만철을 치료하는 윤수.

“아빠, 괜찮아?”

“응. 괜찮아. 윤수야. 치료해줘서 고마워.”

“응. 근데 저 형이 아빠 다치게 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괜찮아.”

김만철은 윤수의 마음을 헤아렸다.

강미나와 김아람도 마찬가지.

거인을 마무리짓지 못한 채로 서준영에게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어정쩡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백현이 결정한 사항이기에 별말 없이 뒤를 쫒았다.

소년 서준영은 놀랍게도 자신이 사는 거주지로 일행을 안내했다.

비밀통로가 또 있었던 것이다.

일명 이중 트랩.

거인을 가두어둔 공간 밑에 사는 사람들.

백현은 미니맵에 들어오는 정보를 확인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생존자들이 있었어.”

“정말?”

“응. 굉장히 많아. 엄청 많아.”

국방과학연구소는 3등급의 섹터로 구분되고 있었다.

가장 위쪽은 연구소 건물. 이쪽은 그냥 입구다.

연구자료가 일부 남아있는 그냥 폐쇄된 공간.

그리고 그 밑은 거인이 묶여있던 공동구.

로켓 발사대처럼 원형으로 된 공간에 거인을 묶어두는 공간.

그리고 그 공동구 아래가 바로 인간들의 거주지다.

백현은 놀라웠다.

제주도와 달리 문명을 유지한 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고, 제대로 된 건물이 있고, 거리도 있다.

백현이 살던 현대문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

깨끗하게 잘 관리된 지하도시는 사람들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경비 아저씨!”

서준영의 말에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거인 구경 잘 하고 왔니?”

“네! 그런데 사람들이 있어서 데려왔어요.”

“뭐?”

서준영의 말에 중년 남자가 백현 일행을 훑었다.

“밖에서 오신 건가요?”

“네.”

“잠시 기다려주시죠.”

제복을 입은 남자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꺼내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몰려와 백현 일행 주위를 둘러싸더니 수갑을 들이밀었다.

“일단 외부인은 심문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응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김아람이 눈을 찡그렸다.

“심문이요?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제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복 입은 경비원들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백현은 그걸 보고야 서준영이 가진 총과 같은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선을 내뿜는 총이었다.

이미 이로 인해 호된 경험을 한 김만철을 본 일행이었다.

강백현은 가능한 평화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말을 건넸다.

“대화로 하시죠. 총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

강백현은 당황했다.

그들의 총이 이미 허공에 떠올라 반대방향으로 회전, 상대의 얼굴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람이의 염력 때문이었다.

거기에 윤수도 아람이를 회복시키며 도와주고 있다.

“아아아- 잠깐만요! 대화로 하시죠! 네? 몰라 뵈었네요.”

“으으으으.”

경비원들은 당황함을 금치 못하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김아람의 염력은 그만큼 그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했던 것.

그런 아람이에게 강백현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람아?”

“왜! 우리 공격하려고 했잖아. 이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내려놓자. 대화로 해.”

“칫, 알았어.”

김아람이 염력으로 총을 바닥에 내려놓자 경비원들이 한숨을 내쉬었고, 다소 마음이 놓인 강백현은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장소부터 옮기실까요?”

“네. 그러시죠.”

* * *

일행에 도착한 곳은 휴게실 같은 공간이었다.

백현 일행은 오랜만에 소파에 앉아 행복함을 만끽했다.

서준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쭈뼛쭈뼛 걸어오며 백현에게 사과를 건넸다.

“형. 이름이 뭐야?”

“강백현.”

“이 누나는?”

“김아람, 내 친구야.”

“미안해! 내가 정식으로 사과할게. 내 이름은 서준영, 우리 아빠는 공동구역 제1경비대장 서기백, 우리 아빠가 여기선 짱이야. 아빠한테 잘 말해뒀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아, 그래?”

서준영은 곧바로 휴게실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를 꺼내주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음료수에 다들 얼굴이 환해져서 서준영이 건네는 포도, 오렌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잠시 후, 제복을 입은 한 사내가 들어왔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

중후한 멋을 풍기며 수염을 잔뜩 기른 사내가 담담한 얼굴로 걸어오고, 서준영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빠!”

“그래. 준영아, 이분들이니?”

“응. 맞아요.”

“그래. 아빠가 얘기할 테니까 잠시 나가 있어.”

“네. 알았어요.”

서준영은 아쉬운 얼굴로 휴게실을 나갔다.

그러자 서기백은 표정 없는 얼굴로 가장 나이가 많은 김만철을 향해 되물었다.

“능력을 사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디 지역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어디 지역이요?”

“네. 저희 제1경비구역 서울지부는 독자적인 생존구역을 구축한 지 약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외부와의 정보는 거의 단절된 채로 살아왔죠. 2구역인 대전이십니까? 아니면 3구역인 부산이십니까?”

서기백의 말에 강백현이 미나를 향해 물었다.

“미나야. 이쪽 지역은 율리만하고 접촉한 적이 없어?”

“응. 내가 율리만으로부터 전달받은 기억에는 경비구역에 대한 정보는 없었어.”

“그래?”

강백현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서기백은 뭔가 알고 있는 눈치다.

“율리만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율리만 박사의 오빠인 율리안 박사는 저희 경비구역 연구소 출신입니다. 율리만 박사도 거쳐 갔고요. 그분들은 거인병으로부터, 또 거인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내기 위한 연구를 하셨죠. 아직 젊으신 분 같은데 율리만 박사님을 아신다니, 그분하고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서기백의 말에 미나가 당황했다.

‘뭐지? 율리만 박사는 나한테 모든 기억을 전해준 게 아니었어?’

미나는 자신이 전달받은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봤다.

확실히 군데군데 조각난 곳이 있었다.

율리만이 생존한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이 연속되어 있지 않고 단편적으로 조각나서 미나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율리만을 신뢰했던 처음과는 달리 의혹이 증폭되어 가는 가운데, 미나가 생각을 정리했다.

‘율리만은 처음부터 내게 모든 정보를 주지 않은 거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보를 선별해서 나한테 전달했어. 내가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하듯, 율리만 또한 그런 게 가능한 거고.’

율리만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미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 생각을 공유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백현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우린 과거에서 왔습니다.”

“네?”

“과거에서 지금 이 시대로 왔습니다. 정확히는 방주를 거쳐 이곳에 오게 되었죠.”

백현의 말에 놀란 얼굴을 하는 서기백.

“방주…… 결국 프로젝트가 성공했나 보군요. 율리만 박사님, 율리안 박사님이 결국 성공하셨던 모양이군요.”

서기백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백현은 영문을 몰라 미나 쪽으로 눈동자를 굴려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서기백이 스스로 정보를 토해냈기 때문이다.

“방주는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율리안 박사님은 무려 50여 년간 방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셨죠. 그런데 놀랍군요. 율리만 박사님의 연구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율리만 박사님의 연구요?”

“네. 과거에서 능력을 지닌 인류를 데려와 거인들을 무찌르겠다는 프로젝트입니다. 당신들 같은 사람들은 총 몇 명입니까? 지상의 거인들은 얼마나 줄어든 겁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 서기백 경비대장.

그 와중에 강백현의 앞에는 황당한 창이 떠올랐다.

《강백현에 대한 서기백의 호감도가 77 상승했습니다.》

심리분석 능력에 의한 호감도 상승 메시지였다.

서기백의 말에 백현이 답했다.

“방주 밖에서 살아있는 인간은 저희들이 전부입니다. 거인은 여전히 지상을 활보하고 있고요.”

그러자 서기백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강백현에 대한 서기백의 호감도가 43 하락했습니다.》

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백현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리분석이라는 권능.

그것이 호감도 메시지를 띄우는 것은 인간을 상대로 할 때뿐이었다.

즉, 서기백은 확실히 키메라도 아니고 인간이라는 의미였다.

강백현은 다음의 말로 서기백의 실망한 얼굴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방주 안에는 수천, 아니 수십만의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거인병으로부터 예방할 수 있는 방법만 가르쳐주신다면 곧바로 그들을 꺼내올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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