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미군기지
비상착륙하는 동안 일행들은 의자에 몸을 고정해두었다.
드르르르륵, 한 차례의 진동 후 승객실과 통제실에 연결된 출입구가 밖으로 내려갔다.
“후아! 엄청 긴장했잖아. 문제없어?”
김만철의 질문에 강백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일단 기체에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강백현은 모니터에 뜬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방주 손상률 : 6.7%, 자가복구 가능 수준입니다. 에너지를 사용하여 자가복구 기능을 작동시키겠습니까?》
※ 예상 에너지 사용량 : 3.3%, 자가복구 기능 사용 후 예상 잔여 에너지 : 11.3% (주의 수준입니다.)
복구를 하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다. 복구를 하지 않으면 트랜스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량형으로 트랜스폼을 해야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백현은 할 수 없다는 듯 자가복구 기능을 실행시켰다.
《자가복구 기능을 실행합니다. 복구 완료까지 23:36:12, 23:36:11, 23:36:10……》
만 하루.
“하루나 걸리는 거야?”
최형우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일단은 어쩔 수 없지. 주변이 안전한지 파악부터 하고…….”
최형우의 말에 강백현이 주저 없이 말을 꺼냈다.
“지상은 안전해요. 생명체로 보이는 건 작은 생물 밖에 없어요. 잠시만요.”
강백현은 미니맵을 확대하고 축소시키며 반경 5km 이내의 지점을 쉴 새 없이 확인했다. 그러다가 음영으로 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해당 정보가 전혀 검색되지 않는 물질이었다.
‘뭐지? 최형우 아저씨 처음 만났을 때하고 비슷하잖아?’
당시 금고 안에 들어가 있던 아저씨는 미니맵에서 검색되지 않았었다.
“뭐 찾았어?”
“네. 미니맵에도 안 잡히는 부분이 있네요. 비행장 활주로 끝의 저 건물 환풍구 아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텅스텐 금속으로 둘러쳐 있는 게 아닐까요?”
“아-그래? 미나야! 너도 확인 안 되니? 백현이가 말한 장소를 확인해보면…….”
최형우의 말에 강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가 말한 방향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데 오빠 말대로 텅스텐 금속이 둘러쳐져 있다면 저도 생각을 읽을 수 없을 거 같아요.”
“그래?! 네가 안 되는 것도 있어?”
최형우의 놀란 목소리에 미나가 피식 하고 웃었다.
“당연하죠! 아저씨, 제가 무슨 괴물이에요? 저는 다 할 줄 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거야 당연하지. 네가 서열 1위잖니!”
“아~ 그런 말 하지 마요.”
미나의 어색한 웃음에 최형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가 보자. 거인들만 아니면 우리도 어디 가서 밥벌이 못하는 건 아닐 테니. 그리고 미군 기지니까 잘 하면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네. 저도 그 생각이에요. 내리죠.”
미나의 대답에 백현이 말했다.
“미나야. 난 여기 남아서 방주를 체크할게. 자가복구 기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유사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그쪽에선 미니맵 기능도 안 되니까 크게 도움은 안 될 거야.”
“응. 알았어. 언니는 같이 가는 거죠?”
“그래. 가야지. 바늘 가는데 실이 안 따라가면 되겠어?”
미나의 말에 웃으며 대답하는 김아람.
샤워를 하고 나서 더욱 친해졌는지 친근한 모습이다.
“엉아! 난 어떻게 해?”
박윤수는 백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윤수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엉아가 시키는 대로 할래. 아까처럼 사고 치면 안되니까.”
“후후, 그럼 여기 남아서 엉아랑 있을래? 그리고 윤수야. 너 사고 친 거 아니야. 그건 엉아가 보장해.”
“우-웅. 알겠엉.”
탐색 멤버는 정해졌다.
최형우, 강미나, 김아람.
이제는 김만철의 결정만 남았을 뿐이다.
“나도 다녀와도 되니?”
“네. 문제없어요. 어차피 방주 스스로 방어기능도 갖추고 있고, 진짜 위험하면 도움 요청할게요. 이거 가져가요.”
“어?”
“무전기예요. 꽤나 구식이지만 작동하더라구요. 서랍에 들어 있었어요.”
비닐에 쌓여있는 무전기.
비닐을 뜯자 휴대용 워키토키가 보인다.
“어? 나 자주 쓰던 건데?”
“그러세요? 다행이네요.”
워키토키 4대 중 2대를 챙긴 김만철이 그 중 한 대를 최형우에게 건넸다.
“아저씨, 쓰실 줄 알죠?”
“후후, 누굴 애 취급해?”
“아닙니다. 그럼 주파수 확인하고 드리겠습니다.”
주파수와 채널을 맞춘 김만철이 다시 한 번 무전기를 분배했다.
강백현 1개, 김만철 1개, 최형우 1개, 그리고 예비 1개로 총 4개다.
“백현아! 윤수랑 잘 지내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방주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오케이.”
활주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슈트 입은 사람들.
최형우는 뛰어내리며 손바닥을 커다랗게 키워서 바닥을 내리쳤다. 유도의 낙법에서 하듯이 충격을 분산한 것이다.
김만철 또한 뛰어내리며 앞구르기 동작으로 최대한 충격을 분산시켰다.
손바닥의 통증에 팔을 터는 동작을 하던 최형우가 김만철을 보며 한마디 했다.
“짜식! 온갖 폼은 다 잡네.”
“아저씨도 폼 엄청 잡았잖아요. 저기 보세요! 아저씨 손바닥 자국이 활주로에 도장처럼 박혔잖아요.”
김만철의 핀잔에 최형우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미나와 김아람의 몸이 허공에서 우아하게 내려왔다.
“언니! 고마워요.”
“응. 우리는 품위 있게 가야지.”
“네! 언니!”
품위라는 말에 최형우가 눈을 치켜 올렸다.
“아람아, 말에 씨가 있는 것 같다?”
“네?!”
“모른 척하는 것 봐. 넌 품위가 있고 난 없냐?”
“아저씨 말한 거 아니에요. 저기 먼지 뒤집어쓴 짐승 아저씨 말한 거죠. 오해하지 마세요.”
김아람이 김만철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번에는 김만철이 모함이라도 받은 듯 화냈다.
“뭐? 짐승? 내가 짐승이야?”
“아니면 말고요. 뭘 그렇게 흥분하세요.”
“어휴~ 말이나 못하면!”
미나도 이제 티격태격하는 일행들에 익숙해졌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입에서도 놀랄 만한 말이 흘러나온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가요! 애들처럼 왜 그래요?”
“여기서 애는 너밖에 없거든?”
김만철의 꼬투리에 미나도 말로는 결코 지지 않았다.
“그걸 따지는 게 애예요. 가요!”
* * *
활주로를 지나자 정비소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 벽은 낡고 삭아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였고, 그 안에 있는 기재들은 벌겋게 녹이 쓸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무언가에 파괴당한 듯 다 부서진 비행기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백현이가 말한 곳이 여기 맞지?”
“네. 이 부근이에요.”
“도대체 어디라는 거야?”
최형우의 말에 김만철이 방긋 웃었다.
“이럴 때 무전기 쓰면 되는 거죠. 잠시만요.”
김만철이 버튼을 누른 채 말했다.
『입구 알려달라 오바!』
『아! 앞으로 20m 정도 가면 철제문 같은 곳 아래 비밀사다리 있어요.』
『무전기는 짧게 말하면 돼. 거긴 문제없음?』
『없음.』
“없음은 너무 짧잖아.”
두 글자, 없음으로 줄여버린 강백현의 대답에 어쩐지 실망한 눈치의 김만철.
그걸 보며 최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백현이가 잘하네. 네가 시킨 거면서 왜 그래?”
“아니, 막상 들으니까 기분 나빠서 그렇죠.”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문이나 찾아.”
“네.”
미나 일행은 백현의 인도대로 정면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백현의 무전이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만철! 거기서 오른쪽으로!』
무전기에서 짧은 말이 흘러나오자 김만철이 이를 악물었다.
『야야야야, 말 그렇게 짧게 치지 말고!』
『어. 동쪽 20m.』
“하아~ 빡치네.”
“크크크, 네가 자초한 일이지.”
최형우가 웃자, 김만철이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야야야야,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길게 해. 그냥 길게!』
『네. 알겠습니다. 길게 대답하겠습니다. 혹시 화나신 건 아니죠?』
『화났겠냐? 나 그렇게 소심한 사람 아니다.』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무전이 끝나고 최형우가 씩 웃었다.
“백현이가 제대로 봤네. 소심하고, 화도 잘 내고.”
“아니라니까요!”
기분이 상한 김만철 뒤에서 김아람과 미나가 낄낄 대고 있었다.
“웃지 마!”
“네!”
“웃으면서 대답하지도 마!”
“네. 알았어요.”
“아~ 강백현, 돌아가면 죽었어!”
“킥킥.”
부쩍 친해진 동료들.
김만철이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백현이 말한 철제문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에 붙어 있는 철제문 위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80%는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덜렁덜렁, 겨우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카펫을 치우고 나니 원형으로 된 철제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수구 맨홀뚜껑처럼 생긴 원형 철제문.
굳게 닫혀 용접까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김만철은 철제문에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뒤로 당겼다.
“엄청 꼼꼼하게 붙였네.”
용접된 부분에서 끼이익 소리는 나지만 문은 결코 열리지 않았다.
그걸 김아람이 말했다.
“도와드릴게요.”
김아람의 염력이 철제문의 용접된 부분을 노렸다. 그러자 고정된 철제문이 텅 소리와 함께 열렸다.
김아람은 용케 맞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접을 했다는 건, 그 부분이 가장 약한 부분이라 보강했다는 의미일 것 같았어요.”
“언니, 역시 똑똑해.”
“고마워 미나야.”
김만철을 칭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 또 쟤랑도 경쟁해야 해?’
김아람과의 경쟁에서 이긴 적이 별로 없던 김만철이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하지만 미나의 능력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미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려가요!”
“응.”
철제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일행들.
미나는 가장 먼저 내려가며 일행들에게 안전 여부를 알렸다.
“사다리 밑쪽까지는 아무 생각도 들려오지 않아요.”
“그래?”
“네. 가볼게요.”
미나는 가장 먼저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왜 백현이 그 밑이 보이지 않는다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착! 착! 착! 착!
미나의 접근에 반응해 전등이 켜지고.
그 옆에는 아치형으로 된 동굴이 펼쳐져 있다.
동굴 앞, 정면에는 금속으로 된 문이 보인다.
일행들이 내려와 미나에게 물었다.
“미나야? 반대쪽 생각이 들려?”
“아니요. 하지만 사람이 있는 건 분명해요.”
“그래?”
“네. 제 앞 카메라가 방금 전 움직였거든요. 우리를 관찰하고 있어요.”
벙커는 거인이 합성하는 텅스텐과 같은 재질로 칠해져 있었다.
순수 텅스텐이 아닌 텅스텐 가루.
하지만 그것만으로 능력을 일정부분 차단시키는 데는 충분해보였다.
벙커 앞 입구, 이리저리 움직이는 카메라.
그리고 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소속과 성명을 대 주시겠습니까?》
“소속과 성명이요?”
《네. 소속, 성명 순으로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상대의 마음이 읽히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니 미나 입장으로서는 답답할 따름.
그런데 그때 군필자인 김만철이 나섰다.
“김만철입니다.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김만철의 말에 질문이 날아들었다.
《순혈입니까?》
“순혈이요?”
《유전자 오염이 되었는지 여쭙는 겁니다.》
그 질문에는 미나가 대답할 수 있었다.
“네. 100% 순혈입니다.”
《좋습니다.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저희 절차에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군기지의 숨겨진 벙커.
그 문이 열리고 미나 일행이 출입구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위쪽에서 폭포수 같은 물이 쏟아졌다. 갑작스런 물줄기에 미나 일행이 소리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