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59화 (159/200)

159화. 트랜스폼

크라켄의 등장에 익룡들은 혼비백산 줄행랑치기 바빴다.

거대한 빨판에 한 번이라도 걸리는 순간 도망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힘, 체력, 덩치까지 크라켄은 익룡들을 압도했다.

익룡들은 목을 조이고 내쳐버리는 크라켄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제주도 내측으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고 말았다.

최형우는 미나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니?”

“크라켄은 초저주파로 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초저주파는 천천히 전달되지만, 운이 좋으면 100km 떨어진 곳까지도 목소리가 전달되죠. 그래서 멀리서 가족들을 데려올 수 있었어요.”

“그래. 그랬구나. 다행이다.”

최형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을 사용해 율리만의 힘을 끌어낸 게 아닌가 걱정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다.

한편 이번엔 백현이 미나에게 물었다.

“하나만 묻자. 크라켄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으면, 익룡한테 말 걸어서 회유할 수 있었던 것 아니야? 아, 물론 우리가 그 전에 한 마리를 죽여서 문제가 됐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니야. 처음부터 익룡은 대화가 통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

“크라켄, 아니 크라켄뿐 아니라 오징어, 문어 등 연체동물류는 바다생물 중에 아이큐가 굉장히 높은 편이야. 그들은 위장을 할 수 있고, 도구를 쓸 수 있고 심지어 언어도 있어. 하지만 저 익룡들은 아니야. 예상 아이큐는 60~70에 의사소통으로 쓰이는 울음소리는 겨우 10개 남짓이야. 거기에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르는 기질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니야.”

“그럼?”

“태어날 때부터 DNA에 심어진 거지. 선천적으로 가장 몸집이 큰 녀석을 따르게 되어 있어. 아마 내가 대화를 시도했어도 실패했을 거야.”

“기억을 지워도…… 소용없었겠네. 네가 말한 대로라면 본능일 테니까.”

백현의 말에 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오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야.’

현재까지는 무난히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본토의 거인들이 미나의 능력에 굴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익룡 무리가 제주도로 물러가고 미나는 크라켄과 한동안 대화를 했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익룡이 여기에 오진 않을 거래.”

“어?”

“한번 호되게 당했으니까 서식지를 옮기겠지. 서식지로 삼을 섬은 여기 말고도 많으니까.”

미나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손 좀 흔들어줘. 작별인사 해야지.”

“응!”

크라켄과 형님 크라켄, 아빠 크라켄과 엄마 크라켄.

초대형 괴수 4마리가 바다에 몸을 담그기 시작한다.

다들 손을 흔들며 고마움을 표했고, 모습이 사라진 뒤로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짙어진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이 있었다.

백현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죠?”

“아, 그게 말이야.”

“도와달라던 우리 요청을 거절하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뭐가 필요하신 거죠?”

백현은 그들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해 호감도를 확인했다.

동료들은 이미 의심할 필요가 없을 만큼 호감도에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호감도는 표시되지 않았다.

‘역시 인간이 아니면 인식이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자신이 없더라도 지금은 미나가 있다. 마음을 읽는다는 건 호감도 이상으로 강력한 능력이니까.

“그 마음 감사해요.”

“어?”

“하지만 우리는 여기 계속 머무를 수는 없어요.”

“머물다니?”

백현은 최태우를 비롯한 붉은 인간들의 목적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쉬었다.

“최태우 씨, 촌장님이 결정한 게 우리가 여기 머물게 설득하라는 것이었습니까?”

“그래. 그렇게 되면 우린 마음 놓고 밖에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물론 낮에는 피부가 건조해질까 봐 오래 걷진 못하는 건 같지만…….”

바위인간.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촌장처럼 굳어버리는 사람들.

거기에 부서질 것도 걱정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산다고 하지만, 전혀 부럽지 않다.

그런데 최태우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무엇인가 부탁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말씀해보세요. 어차피 미나에게 물으면 그만이지만, 직접 듣고 싶네요.”

최태우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이 가고 싶어. 일행에 합류하게 해줘.”

최태우의 말에 미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닥터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으로 완전히 되돌아갈 방법은 없다더군. 일시적으로 3~4개월 정도 소화기관을 움직이게 할 수는 있었지만, 금방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거야. 난 그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

“우리하고 같이 가서 어떻게 연구하시려고요? 우리가 어디를 갈지 어떻게 알고요?”

그때 미나가 끼어들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국내의 연구소 중 하나였어. 그곳에서는 아마 마지막까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을 거야.”

“국방과학연구소?”

백현이 의문을 표하자 최태우가 설명을 이었다.

“그래. 서울 도봉산 저지대의 벙커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있어. 그곳에서는 거인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중이었지. 그게 성공했다면 우리도 이런 바위인간이 될 필요가 없었고, 너희도 지금처럼 슈트를 입을 필요가 없었던 거야.”

최태우의 말을 들은 김만철이 말했다.

“미나야! 자세히 설명해봐.”

“원래 우리가 제주도에 온 목적은 제주해군기지 때문이었어요. 제가 율리만에게 전달받은 기억에서는 이곳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기능을 유지하던 군사시설이었거든요. 제주도는 청정지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율리만의 기억과 달리,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미나는 씁쓸한 얼굴로 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폐허가 된 마을과 아파트가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익룡들이 제주도를 서식지로 삼은 후 해군들은 최후의 저항을 이어갔어요. 하지만 군수물자의 부족으로 인해 순식간에 전선이 밀리고 말았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땅속으로 숨고 또 숨었다고 해요.”

“그 후손이 바로 저희들입니다. 물론 제주 본토 주민들도 있지만 해군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 할아버지가 해군의 장교이셨으니까요.”

최태우의 말에 미나가 고개를 끄떡였다.

“저는 여기를 떠나 서울로 여정을 떠날 거예요. 거기 가면 거인병을 예방하는 백신이 있을지 몰라요.”

“백신이 있다고?”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에요. 이런 세상에 저항한 것이 율리만 박사만은 아니니까. 전 그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거인병을 예방한다라, 취지는 좋네. 그런데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우리끼리? 장비도 없이 이대로는 자살행위잖아.”

미나의 말에 김아람이 물었다.

그런데 최형우나 김만철, 강백현의 생각은 또 달랐다.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 아람아.”

“어? 뭐가? 뭐가 바뀌었는데?”

“에너지들이 널렸잖아. 주변을 봐.”

김아람은 자신의 주변을 바라보았다.

익룡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쌓여 있었다.

익룡의 뼈 사이사이로 보이는 텅스텐 합금. 그들의 피와 살, 그리고 가죽은 부족한 방주의 에너지를 채우기 충분해 보이는 양이었다.

“좋아요. 저는 동의해요. 다른 분들 의견은 어때요?”

백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좋다.”

“뭐, 네가 좋다면.”

“오빠가 그렇게 말할 줄 진작에 알았어.”

최태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받아주는 거야?”

“네. 대신에 하나만 부탁할게요. 익룡들을 소각실로 운반해주시겠어요? 우리 힘만으로는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거든요.”

“힘쓰는 거야 우리 전문이지. 좋아. 바로 도와주지.”

잠시 후, 붉은 피부를 가진 바위 인간들이 지하에서 올라왔다.

그들은 익룡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뼈와 금속을 분리하고, 피와 살 부분을 구분해서 정리한다.

태울 수 있는 부분은 태우고, 가죽 부분은 가공재료로 활용하기 위해 모아둔다.

김만철과 최형우는 작업을 총괄 감독하기로 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잠에 들었다.

“아저씨, 그대로 나둬도 될까요? 아람이는 그렇다 쳐도 백현이는 남자인데 너무 빠진 거 아닌가요?”

“됐어. 잠도 못자고 얼마나 고생했냐? 그리고 아직 어린애잖니? 뭘 그렇게 고생시키고 싶어서 난리니?”

최형우의 말에 김만철이 당황한 듯 얼버무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냥 남자니까,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보고 그래야죠.”

“칫, 요즘 세상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 힘든 일은 같이 하고, 쉬운 일은 각자 맡아 하고, 또 상황에 맞게, 신체에 맞게,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맞춰 일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방주 조종은 어차피 백현이가 해야 하잖아. 지금 좀 쉬게 놔두는 게 맞지. 어차피 항해를 시작하면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을 텐데 뭐가 그리 못마땅하냐? 어?”

최형우의 핀잔에 김만철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못마땅한 게 아니고요. 진짜 오해시고요.”

“됐어! 됐어!”

“아, 저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닌데…….”

제주도에서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방주의 에너지 충전율 22%.

코어 에너지 충전율은 2.3%.

수많은 거대익룡의 사체를 연료로 얻은 덕분에, 방주 내의 거인세계는 약 20년 이상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데이터 값을 계산하는 미나.

그리고 그 옆에서 조종 능력으로 연산을 시작하는 백현.

이것저것 검토하던 백현은 이내 결심한 듯 미나에게 말을 건넸다

“트랜스폼 기능을 사용해볼까?”

“응.”

트랜스폼 모드는 비행기.

방주의 겉면 금속이 유기물질처럼 꿈틀거리더니 대형 비행기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항해하는 거 아니었어? 에너지 아껴야지.”

“비행 모드로 직접 갈 생각이에요.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죠.”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국제 비행장.

수십 년 동안 쓰지 않았던 활주로에 비행기 모습을 한 거대물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 안에 탄 일행들.

백현과 미나, 김아람, 김만철, 최형우에 박윤수, 그리고 새로 합류한 최태우까지.

“이륙하겠습니다.”

백현은 조종석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화면의 정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1번부터 19번까지 차례로 버튼을 눌러 날개를 펴고, 바퀴를 꺼내고, 보조엔진과 메인엔진을 켰다.

그 다음은 익룡을 태워 충전한 에너지로 엔진을 구동, 가속을 시작한다.

백현은 미니맵을 켜고 주변에 있는 물체를 확인했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보인다.

대부분은 붉은 피부를 가진 바위인간들이었다.

“조심히 다녀와!”

“최태우 박사님! 성공하시고 돌아오세요!”

“박사님! 박사님!”

최태우는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에 눈을 비볐다.

물론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뭐하세요? 왜 이렇게 감정적이 되셨어요?”

“아니, 우리들이 저런 감정을 표현한 게 얼마만인가 싶어서. 다들 감정이 메마른 줄 알았는데…….”

최태우의 말에 김만철이 말했다.

“이제 다들 인간으로 돌아오시면 다양한 감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눈물도 흘릴 수 있을 거고요.”

김만철이 씩 웃으며 최태우의 눈에 물을 뿌려주었다. 그러자 최태우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뭐하세요?”

“네? 눈물 흘리고 싶어서 비비신 거 아닌가요? 도와드리려고 한 건데.”

“그건 맞는데, 내가 부탁한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 만철아?”

“만철아? 몇 살이세요?”

“응. 나 59세다. 그러는 넌 몇 살인데?”

김만철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최형우의 반응이 더 웃기다.

“태우야. 형 앞에서는 나이로 주름 잡지 말자.”

“아! 넵!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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