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57화 (157/200)

157화. 방주 방어 계획

미나는 그들에게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매정하게 돌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거주지의 집으로 돌아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기다리며 누워서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었다.

‘우리끼리 해결해야 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방법은 쓰기 싫어.’

미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두 가지 해결책을 구상해두었다.

일단 첫 번째.

현재 동면에 들어간 율리만 박사를 통해 동면 중인 몇 명을 깨워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남은 슈트는 3개, 3명은 거인병과 유전자변이는 신경 쓰지 않고 빼올 수 있어. 하지만 율리만을 깨우면 그만큼 에너지 고갈 속도가 늘어나. 율리만의 남은 수명은 겨우 10년, 동면에 들어간 그녀를 깨우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 해.’

그리고 두 번째.

동면을 깨워 전용슈트 없이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

‘그렇게 되면 살아남은 자들은 유전자 변이는 면역이지만, 거인병에는 노출되게 되겠지.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은 아직 없어. 역시 이 방법도 아니야.’

마지막 세 번째.

‘이건 쓰고 싶지 않아.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하고 싶지 않아. 이 방법은 진짜 쓰고 싶지 않아.’

강백현이 자신의 동생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고민해?”

“아니, 해결책 좀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말했지. 혼자 짊어지지 말라고. 여기 오빠도 있고, 아람이도 있고, 형우 아저씨도 도와주실 테니까 문제없어.”

미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오빠한테 부담을 주면 안 돼. 나하고 율리만의 문제야. 율리만이 나고, 내가 율리만이니까.’

미나는 뭔가를 훌훌 털어버린 표정으로 오빠에게 말했다.

“빨리 나가자. 어두워지겠다.”

“그래.”

아람이는 남매의 대화중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자신이 익룡을 죽인 탓에 일이 크게 번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편, 최형우는 붉은 인간들로부터 먹을 것을 받아왔다.

땅속에서 자라는 감자였다.

그들은 이제 식사를 하지 않지만, 최형우를 비롯한 6명의 인간은 달랐다.

“다들 일단 밥부터 먹자고!”

“네!”

불을 피우고 감자를 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우걱우걱, 사람들은 일단 배고픔을 해결했다.

미나는 전투에 앞서 모두의 상태를 확인해두었다.

“오빠, 지금은 미니맵 못 보는 거지?”

“응.”

“그럼 돌아가면서 망을 보자. 내가 촌장님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익룡들은 해질녘이 되어야 돌아온대. 그때가지 돌아가면서 쉬면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럼 너부터 좀 쉬어. 회의 하느라 한숨도 못 잤잖아.”

미나는 크라켄과 대화하느라, 이후에는 록맨이라 불리는 인간들과 대화하느라 30시간 넘게 잠을 못 잔 상태였다.

“응. 그럴게.”

미나는 백현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했던 미나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머지않아 일어날 전투를 생각하며 체력을 보충했다.

하지만 시간은 백현 일행의 편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가 수면을 넘어가며 붉은 노을이 점차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하늘을 뒤덮는 익룡의 무리가 날아왔다.

펄럭펄럭.

수백, 수천 마리의 익룡이 본토에서 제주도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 녀석들의 입에는 작은 크기(20m)나 일반 크기(50m)의 거인들이 조각조각 해체된 상태로 물려 있었다.

익룡들의 먹이는 거인.

그 거대한 체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거인을 먹이로 택했기 때문이다.

백현은 놈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거인과 전투를 벌인 탓인지 깃털이 벗겨진 녀석도 있고, 피에 섞인 합금텅스텐이 굳어진 탓인지 날개가 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놈도 보였다.

백현은 동료들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일단 우리가 먼저 대응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밤이 오니까 방주는 자연스레 모습을 감출 거예요. 새들은 시력은 좋지만 밤눈은 어둡거든요. 불빛이 없는 한 문제될 것 없어요. 차분히 밤이 지나길 기다리죠.”

“그래. 그랬으면 좋겠는데……”

밤이 되자 익룡들은 눈에서 보석 같은 안광을 뿜었다.

별빛에 반사된 반짝이는 눈은 때론 박쥐처럼 붉은 빛을, 때론 고양이처럼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들이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백현은 긴장했다.

혹시나 이곳으로 오진 않을까, 혹여나 방주와 부딪혀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진 않을까 하고.

“백현아, 마음 굳게 먹자. 우리 제법 잘 헤쳐왔잖아?”

“그렇죠. 그러고 보니 아저씨랑은 정말 많은 일을 겪었네요.”

“그래. 그래서 더 걱정 안 해. 우리는 살아남을 거니까.”

“그래야죠. 분명 그래야죠.”

두 사람은 방주의 가장 꼭대기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백현은 익룡들이 낮의 대부분을 사냥에 투자한 만큼 금방 수면을 취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반대로 서로의 날개를 맞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짝짓기 계절.

암컷은 암컷대로, 수컷은 수컷대로 번식을 위해 움직였다.

이미 번식에 성공한 녀석들은 알을 품거나 새끼를 돌보느라 바빴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어디선가 익룡 한 놈이 흥분한 듯 울부짖었다.

“까야까야! 까야까야!”

그러자 주변의 익룡들이 그 울음소리를 똑같이 따라했다.

“까야까야! 까야까야!”

익룡의 무리 중심으로부터 울음소리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백현은 숨이 턱턱 막혔다.

그건 김만철도 마찬가지였다.

“녀석들 행동이 이상해.”

“저도 느꼈어요. 무슨 말을 전달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자 뒤쪽에서 미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오빠.”

“미나야. 좀 더 자지.”

“아니, 이제 잘 수 없는 상황이 됐어. 저 녀석들은 이미 우리가 죽인 익룡을 찾고 있어. 까야 까야, 라고 저렇게 2번 우는 것은 《아이를 찾아요.》란 말이야.”

미나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나의 말대로 익룡들 전체가 잃어버린 아이 하나를 찾기 위해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익룡 한 마리가 다급한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까야까야! 까야까야! 까아아아악!》

미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심각한 얼굴이었다.

백현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시체를 발견한 거지. 동료의 죽음을 발견했을 때 내는 경고의 목소리. 그런데 지금은 경고가 아니야.”

“뭐?”

“익룡은 먹이사슬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경고는 그대로 복수를 뜻해. 이제 곧 녀석들이 움직일 거야.”

미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익룡들이 졸음에서 깨어 주변에 흩어졌다.

그리고 제주도 전역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생명체는 닥치는 대로 죽였다.

풀, 나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파헤치고 파괴했다.

그걸 보며 미나가 일행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저한테는 세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 중에서 첫 번째 방법을 쓰려고 해요.”

“첫 번째?”

“네. 일단 제가 알기로는 3명 정도는 슈트를 입혀서 방주 바깥으로 빼올 수 있어요. 그 3명이 대단한 능력자라면 많은 도움이 되겠죠.”

“그래서?”

“전 일단 선희 언니를 이쪽으로 모셔올까 해요.”

“정선희?”

“네. 윤수 엄마이자, 저한테는 언니. 언니가 오면 우리들의 능력은 한 단계 강해질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죠.”

“그럼 나머지 2명은?”

“일단 김진철 씨요.”

“진철 씨?”

“응. 만철 아저씨 오빠요.”

미나는 백현의 기억을 통해 그가 불을 쓰는 능력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불은 어느 때든 유용하다. 생존이든 전투이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은 인류에게 필수불가결의 존재.

그러나 미나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찬성이긴 한데,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

“최복자 할머니.”

“최복자 할머니?”

“응. 미래예지를 쓸 수 있으니까. 그분이라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예측해 정답을 알려주실 거야.”

그러나 이번에는 미나가 반대했다.

“아니, 미래예지는 율리만의 기억을 바탕으로 상황을 읽어낸 가상의 결과일 뿐이야. 그리고 그분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이니, 지금 되살리면 그분은 원래 고향에 돌아가 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말 거야. 다른 분들 의견은 어때요?”

김아람이 대답했다.

“난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백현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 선희 언니는 무조건 찬성이고.”

최형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백현이 의견에 따르마.”

선택권이 백현에게 주어지자 강백현은 김만철을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어때요? 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이곳에 데려온다면 김진철 씨 그분은 기억을 못하시는 거잖아요.”

“형이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 대신 이미 한 번 죽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줘. 나도 다시 되살아났을 땐 정말 충격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한 사람을 정할게요.”

그 때 미나가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윤수한테 말했다.

“윤수야.”

“응?”

“아빠 기억나?”

“어? 응.”

그러자 미나의 입에서 놀라운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너희 아빠였던 박진석 씨를 되살릴 거야. 괜찮을까?”

“…….”

윤수는 미나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미나가 윤수를 달래려 했다.

“괜찮아. 괜찮아.”

미나는 어떻게든 박진석을 살려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백현은 그 생각에 반대였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사람을 여기 왜 데려와! 어?”

“그럼 더 좋은 방법 있어? 1,600마리를 상대할 더 좋은 방법 있냐고! 죽은 시체를 제물삼아 우리를 보호해줄 수도 있고, 이게 방주를 지킬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라. 어차피 그 사람은 우리랑 있었던 일은 기억도 못할 거야. 문제 있어?”

미나의 말에 백현이 말했다.

“다른 사람 살려! 장명훈 마스터가 있잖아.”

“못 살려.”

“뭐?”

“우리랑 같은 시대에서 온 사람이 아니면 안 돼! 축소 능력도 없어서 방주에서 한번 나오면 다시는 못 들어간단 말이야!”

“방주는 수명이 얼마 안 남았잖아.”

“이 전투를 이기면 수명이 늘어나. 합성텅스텐을 구해서 코어에너지를 주입하면 돼! 그러기 위해 우리가 나온 거잖아.”

미나의 말에 백현의 말문이 턱 막혔다.

“원치 않는 사람을 여기 불러내면 안 돼. 최소한 우리랑 같이 온 사람 중 확실한 사람이어야 해.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장명훈 마스터를 그 분의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방법은 없단 말이야!”

미나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백현도 주장할 게 있었다.

“방주가 부서지면?”

백현의 반론에 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랑 말이 안 통한다. 내 마음대로 살릴 거야. 그 3명 살려서 어떻게든 지켜낼 테니까 오빠는 신경 쓰지 마!”

미나의 마지막 말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김만철이 말했다.

“미나야.”

“네. 아저씨.”

“내 생각 읽고 있는 건 아니지?”

“네. 말씀하세요. 시간 없어요.”

“그래. 미안하다.”

김만철이 전광석화의 속도로 미나의 목덜미를 타격해 기절시켰다.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터였다.

“이렇게 의견 충돌할 필요 없어. 우리끼리 싸울 시간에 방주를 지키는 게 나아.”

강백현이 만철에게 되물었다.

“아저씨는 선희 누나가 여기 오길 바라는 거 아니에요?”

“그래. 누구보다 바랬어. 그런데 박진석까지 데려오는 건 아니야. 마스터도 마찬가지고. 윤수를 위해서도 그런 사람은 안 데려오는 게 나아.”

“역시 신경 쓰고 있었군요?”

“안 썼다면 거짓말이겠지. 백현아, 난 싸운다. 넌 어떻게 할래?”

“저도 싸워야죠. 아람아! 넌 여기서 미나랑 윤수 좀 지켜줘. 나는 아저씨랑 익룡들이 여기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테니까.”

서로의 의견이 충돌했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은 역시 신중해야만 한다.

백현 일행은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한 끝에 결국 자신들의 현재 전력으로 일을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비록 목숨을 거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다가오는 익룡의 무리를 향해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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