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익룡의 역습
김아람을 선두로 백현 일행이 익룡을 잡으러 이동했다.
사실 고민할 게 없었다.
거대 익룡은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크기는 약 18m 정도. 아파트 6층 높이의 몸체.
하지만 날개 길이만 약 14m로, 날개를 제외하면 몸통과 머리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백현아, 나 혼자 해볼게.”
“야! 너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위험해.”
“누가 같이 하는 게 더 위험해. 지금은 아저씨도 옆에 있고 윤수도 옆에 있잖아. 걱정할 거 없어.”
김아람은 자신감 있는 태도로 백현이 만든 보호막 발판에서 뛰어 공중을 활공하기 시작했다.
익룡이 김아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끼약끼약 거칠게 경고의 목소리를 날렸다.
‘역시 무섭네. 공룡이 저런 느낌이었을까?’
쥐라기, 백악기 시대에 출몰했던 익룡과 크게 다르지 않는 크기.
지금 현 시대의 인간이 저들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가 막힌 일이었다.
하지만 익룡 입장에서도 기가 막힌 건 마찬가지였다.
감히 인간이 하늘을 날고 있으니 말이다.
익룡이 날개를 저으며 저공비행을 시도했다.
목표는 누가 봐도 김아람이었다.
낮은 고도로 체공하며 공기의 저항을 줄인 후 단번에 낚아채려는 게 분명해보였다.
그런데 김아람의 염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뻗치며 힘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냈다.
그러자 아람의 검은 눈동자가 뒤집어지고, 흰자가 번뜩이며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대변해주었다.
“으아아아아악!”
김아람의 손짓에 익룡의 날개가 신문지처럼 구겨졌다.
익룡은 처음 겪는 고통에 끼야끼야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저공비행 중인 참에 필요한 양력을 잃자, 중심을 잃고 회전하며 바닥으로 낙하하기 시작한다.
익룡은 낙하하며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찢어발겨진 날개에는 어느새 구멍이 나 있었다.
미지의 힘,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에 의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으리라…….
김아람은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백현이 만들어낸 보호막 위에 내려앉았다.
“해치웠어.”
“그래. 고생했어.”
“고생했다 아람아.”
강백현과 김만철은 김아람의 활약을 칭찬했다. 하지만 윤수는 무서웠는지 김만철의 등에 숨어 눈만 빼꼼히 내밀고 그녀를 관찰한다.
“나도 좀 힘드네. 내려가자.”
강백현은 보호막에서 손을 떼며 일행을 천천히 착지시켰다.
훌쩍, 훌쩍! 땅에 뛰어내리는 일행.
그들은 바닥에 떨어져 낙상에 의한 충격 때문에 울며 바동거리는 익룡을 관찰했다.
익룡이 살아있는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김아람은 녀석의 신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피부 바깥으로 나와 있는 은색의 무언가가 보인다.
“금속?”
처음에는 뼈인 줄만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뼈가 아니라 금속이다.
그걸 본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바로 합성텅스텐인가 봐. 체내에서 합성한 것.”
많지는 않지만 확실히 체내에 돌아다니는 액체금속이 공기와 만나 굳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걸 보며 김만철이 되물었다.
“저건 어떻게 해야 하냐?”
“아마도 모아서 방주로 가져가야 할 거예요. 방주 내에 에너지코어를 합성하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 주입하면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옮겨야 하는 거네? 죽이는 게 빠르겠다.”
“네. 그렇죠.”
김만철과 강백현의 대화에 윤수가 눈을 찡그렸다.
무언가를 죽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에 뒤에 숨어 어른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익룡은 김아람의 접근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녀석을 향해서 김아람은 능력을 마음껏 시험했다.
압축된 공기탄환의 위력.
중력방향으로 내리찍는 힘의 정도.
자신의 능력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의 한도까지.
익룡을 제물삼아 자신의 한계를 꼼꼼히 확인한다.
익룡은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고 더욱 발버둥쳤다.
눈물이 핑그르르 고이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겁에 질린 익룡을 보며 강백현이 녀석의 넋을 위로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이게 약육강식이야.’
강백현의 보호막이 수많은 가시기둥으로 변해서 익룡을 관통했다.
빠삭! 빠삭! 빠삭!
바닥부터 올라오는 원뿔형 가시기둥은 익룡의 날개, 몸통, 머리를 관통하기에 충분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김아람이 따지듯 소리쳤다.
“나 실험하는데 왜 방해해!”
“곱게 보내줘. 생명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죽을 거였잖아. 아니 어차피 죽일 거였잖아.”
“아아, 죽일 거였지. 그래도 저렇게 잔인할 필요는 없었지.”
“뭐야?”
김아람과 강백현이 서로 으르렁거리자, 김만철이 중재에 나섰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저 정도면 텅스텐은 얼마나 되는 거지?”
강백현은 미니맵 능력이 가동하지 않는 것을 한탄했다.
“일단 붉은 분들의 거주지로 가져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강백현의 대답에 김만철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생각보단 쉽게 끝났네. 익룡 별것 아니구만.”
김만철의 말에 김아람이 방긋 웃었다.
“익룡이 별거 아닌 게 아니고 제가 센 거예요.”
김아람의 웃는 얼굴에 김만철이 대꾸했다.
“그래. 너하고 백현이는 확실히 세지. 다들 고생했다. 일단 돌아가자고!”
* * *
백현과 김아람, 김만철과 박윤수가 돌아왔다.
백현은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후 바위 인간들의 거주지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아람이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나섰고, 김만철과 윤수가 방주에 남아 있게 되었다.
처음 보는 거주지의 환경에 놀라는 김아람. 무뚝뚝한 강백현.
미나와 촌장은 아직도 마라톤 회의를 하고 있었다. 최고지도자회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그걸 본 백현이 아람이한테 말했다.
“회의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
“왜? 문제는 해결했잖아. 익룡만 잡으면 끝나는 거 아니었어?”
“그래도 회의하잖아.”
“됐어. 내가 들어가서 말할게.”
김아람이 촌장이 머물고 있는 흙집에 들어갔다.
그러자 강미나가 당황한 듯 돌아보았다.
“언니…….”
“미나야. 다 끝났니? 저기요! 여러분! 제가 익룡은 끝장냈거든요? 다음에 뭘 해드리면 돼요? 말만 하세요!”
그런데 미나는 김아람에게 오히려 따지듯 되물었다.
“언니! 진짜 익룡을 죽였어요? 나 지금 충격이야.”
“왜? 언니가 너무 세서 그랬어? 괜찮아. 별것도 아니더라.”
그걸 듣고 있던 촌장과 최고지도자들이 당황한 듯 웅성웅성거렸다.
강백현은 영문을 몰라 미나에게 물었다.
“미나야. 왜 그래?”
“혹시 크기가 20m 미만의 작은 개체 아니었어? 오빠! 내가 읽은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줘. 제발! 응? 제발! 제발!”
미나의 말에 강백현이 촌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촌장님, 저희가 잘못한 건가요?”
촌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참 잘못했지. 그 녀석은 몸이 안 좋아 잠깐 여기에 남겨둔 새끼일 뿐이야. 회복될 때까지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주고 있지.”
“네?!”
촌장의 말에 미나가 부연설명을 했다.
“익룡은 그것 말고도 제주도에 총 1,600마리 이상 살고 있어. 밤에는 제주도 한라산 일대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먹이를 구하러 원해로 날아가 사냥을 하지. 그래서 섬은 낮에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밤에는 익룡으로 가득 차.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지하에 숨어사는 거고.”
미나의 말이 끝나자 촌장의 측근 최태우가 뒤를 이었다.
“익룡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인간들처럼 가족 혹은 부족애가 대단하죠. 그 새끼를 죽였다면 반드시 복수할 겁니다. 몇날 며칠은 제주도가 한바탕 뒤집어지겠죠. 큰 실수하신 겁니다.”
미나의 말에 김아람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런 거였으면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그랬으면 내가 실수 안 했잖아. 왜 내 탓으로 몰아가는데?”
반면 강백현은 차분한 모습으로 대책을 의논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내부로 피신하시죠. 저희 거주지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면, 그들도 결국 새끼 익룡의 죽음을 받아들이겠지요.”
“하지만 방주가 바깥에 있는데……. 어디 안전한 곳은 없습니까?”
최태우가 고개를 저었다.
“저 크기를 숨길 수 있는 곳은 제주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거인보다 큰 방주를 어디에 숨긴다는 겁니까?”
그러자 강미나가 촌장에게 사정했다.
“촌장님! 방주를 지켜주세요. 네? 촌장님도 인간이셨잖아요. 그때를 기억하시잖아요.”
“상황이 바뀌었어. 익룡들은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인간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거의 없었어. 하지만 익룡 새끼를 죽인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아마 제주도 전역이 초토화가 될 거야. 우리의 도움이 크게 의미는 없을 게다.”
“촌장님! 방주는 인류의 희망이에요! 저희는 이용당하고 실험당하고, 여러분들을 구하기 위해 과거에서 끌려왔어요. 저희를 포기하신다는 거예요?”
미나는 그들을 설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능력으로 기억을 조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보단 정공법을 택했다.
그래야 부작용이 덜할 테니까.
진심이 통한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미나의 의견과는 달리 촌장은 고개를 저었다.
“미나 양이 제시한 율리만 박사의 지식은 현재의 우리에겐 하등 소용이 없어. 인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너희가 입은 슈트를 제공받지 못하면 서서히 거인병에 노출되어 이성을 잃을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거인과 거대 괴수들이 활보하는 이 세상에서 지금보다 약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건 우리에겐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하지만 인간이 되고 싶으시잖아요! 바위처럼 고정된 채로 거의 반평생을 살아오셨어요. 다른 사람들도 매일매일 건조해지지 않기 위해 매일 이런 곳에서 더러운 오염수를 몸에 묻히며 살아가잖아요! 촌장님! 촌장님!”
미나는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
그들이 익룡으로부터 방주를 지켜주어야 한다.
무려 1600여 마리의 익룡이 달려들면 방주는 무사하기 힘들다.
하지만 촌장은 자신의 부족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여기서 머무는 것은 허락하겠네. 하지만 방주를 지켜달라는 요청은 거절이야. 그 이유는 우리 부족의 안전을 위해서고.”
“촌장님! 촌장님!”
촌장은 미나의 말을 매정하게 끊었다.
“태우야. 이들에게 머물 곳과 식량을 제공해줘. 내 이야기는 끝났어. 최고 지도자 회의는 이것으로 해산하지. 다들 몸 건조해지지 않게 조심하게. 나처럼 건조해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지 말고.”
“네. 촌장님!”
최고지도자들이 촌장의 집에서 하나 둘 퇴장했다.
미나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이들에게 얻어낼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을 설득하지 않았다.
“오빠! 언니!”
“어. 미나야.”
“우리끼리 지켜야 해. 방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끼리 지켜내야만 해.”
미나는 결심했다.
목숨과 바꿔서라도 방주를 익룡에게서 지켜내겠다고.
그래서 인류를 데리고 과거로 되돌아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