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코어에너지 수급
코어 에너지란 새로운 개념에 미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결국 거대괴수랑 싸워야 한다는 거야?”
“오빠 말이 맞아. 놈들을 없애고 그 체내에 합성된 텅스텐을 추출하면 방주도 기능을 회복할 수 있고, 우리도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미나의 말에 최형우가 답답함을 호소했다.
“거인도 아니고 괴수랑 싸우라니 답도 안 나온다. 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거니?”
“아저씨 마음은 알아요. 하지만 진짜 이 방법밖에 없어요.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그냥 이 상황이 답답할 뿐이지.”
미나 일행의 말에 촌장이 물었다.
“방주의 기본 기능은 유지되고 있나?”
“네. 그런데 앞으로 한두 달이면 생명 보조장치마저 꺼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안의 생명체는 끝이죠.”
“복잡하군.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거기에 방주,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코어에너지를 채워야 한다는 건가?”
“네. 그렇죠.”
“좋아. 그 결정은 나 혼자만으로는 안 돼. 최고지도자 회의를 소집하고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지. 한 가지 사안이 아니니까. 미나 양은 남아주고 다른 분들은 잠시 나가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촌장은 백현, 최형우를 귀빈의 집으로 보내고는 미나가 참석하는 가운데 곧장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는 수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물론 그 내용을 모르는 백현은 답답할 뿐이었다.
“아직 결정 안 됐을까요?”
백현의 질문에 최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백현아,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해. 저들에겐 살아왔던 방식을 바꾸는 문제잖아.”
“그렇죠. 그런데 인간으로 돌아가게 되면 거인병에 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게 없을까요?”
“글쎄? 율리만의 실험이 성공한 게 아닐까? 자세한 건 미나가 알고 있겠지.”
백현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미나의 비밀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지켜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인류의 미래를 미나가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마라톤 회의가 끝날 줄을 모르자, 백현이 최형우에게 말했다.
“일단 나가보겠습니다. 윤수랑 아람이가 걱정되네요.”
“미니맵인가 그걸로 안 보여?”
“네. 지금 30분 초과시간이 지났어요.”
“아, 그거 귀찮구나.”
“전 익숙합니다.”
백현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5시간이 지나도 회의가 끝나지 않는다.
돌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 백현이 지상으로 나왔다.
그러자 방주에 기대 잠을 청하고 있는 김만철이 보였다.
윤수를 하늘로 띄우며 놀아주는 김아람도 있었다.
“아람아!”
“어?”
“조심해! 윤수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응. 조심하는 중이야. 윤수야! 재밌지?”
“응! 누나 완전 재밌어!”
윤수의 치료 때문일까? 김아람은 어느덧 부쩍 윤수랑 친해진 상태였다.
“누나! 나 배고파.”
“응?”
“배고파 죽겠어! 물고기 먹은 뒤로 밥 못 먹었잖아.”
“아, 응. 잠깐만!”
김아람은 윤수를 땅에 내려주고는 자신도 공중에서 사뿐히 땅에 발을 디뎠다.
“어떻게 된 건지는 만철 아저씨한테 들었어.”
“응. 다친 데는 괜찮고?”
“다행히 윤수가 치료해줘서 다 나았지. 밥은? 식사는? 밑에서 구할 수 있었어? 식량이 문제였잖아.”
“아직…….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어.”
“더 큰 문제?”
김아람의 말에 박윤수도 방긋 웃었다.
“엉아, 왜?”
“응. 윤수, 이제 배 안 아파?”
“응. 윤수는 혼자 치료할 수 있어. 그래서 아파도 괜찮아. 내가 고치면 되니까.”
윤수가 기특한지 아람이가 박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미소를 짓는 윤수.
“미나가 이곳 촌장이란 사람과 대화중이야. 아까 그 바위처럼 생긴 붉은 사람들의 리더래.”
“뭐? 미나 혼자 뒀어? 걔를 혼자 두면 어떻게 해!”
김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형우 아저씨가 바로 근방에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진 않을 거야. 그리고 걔는 우리 중에 제일 세잖아. 아마 너도 이길걸?”
백현의 말에 김아람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이길걸?”
“아니, 미나가 이겨. 미나한테 정신 데미지 입는 순간 그냥 끝인데 뭐.”
“그 전에 내가 염력 쓰면 끝인데 뭐.”
달걀과 닭. 누가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끝없는 순환굴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래도 우리가 원래 집으로 돌아가려면 괴수 사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뭐?”
“합성 텅스텐을 모아 코어에너지를 얻어야 한대. 특히 커다란 괴수들을 많이 잡아야 더욱 순도 높은 코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네.”
“진짜야? 그 말이 진짜야?”
백현의 말에 아람이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자 윤수가 아람이 곁에서 떨어져 백현에게 달려왔다.
“괜찮아. 윤수야. 아람이 화 안 낼 거야.”
“응. 알아. 그래도 목소리 커서 시끄러워.”
“크크. 그래. 아람아! 시끄럽댄다. 조용히 말하자.”
백현의 말에 김아람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됐거든? 그래서? 사람들은 뭐래? 형우 아저씨는 뭐래?”
“신중하시지 뭐. 넌 어때?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괴수를 잡아야 한다는데, 무조건 해야 하지 않겠어?”
아람이는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 엄마, 아빠, 동생 다 냉동인간 되어 있잖아. 그걸 확인했는데 내가 머뭇거릴 것 같아? 그 어떤 거인이 와도 다 죽일 거야.”
“아람아, 일단 진정하고.”
“너야말로 정신 차려! 우린 길러진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거인들 죽이기 위해서 키워진 전사라고!”
아람이는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드러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날아가는 갈매기가 보이자 미나가 염력으로 갈매기의 날개를 부러뜨렸다. 갈매기가 떨어지자, 방주 뒤 백사장에 앉아 먹이를 찾던 갈매기들이 순식간에 날아오른다.
하지만 녀석들은 아람이의 염력에 의해 순식간에 바닥으로 처박힌 채, 몰살당했다.
일부 살아있는 갈매기들도 힘을 잃고 여기저기 피를 흘리며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걸 본 강백현이 윤수의 눈을 가렸다.
“엉아! 으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앙.”
그러나 못 볼 것을 본 윤수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윤수의 울음소리에 김만철이 잠에서 깨어나 백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강백현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저씨, 윤수 좀 맡아줘요. 나 아람이하고 얘기 좀 할게요.”
“아, 그래. 윤수야! 아빠한테 와!”
“웅. 으으으응 우우우웅.”
윤수는 눈물을 닦으며 김만철에게 다가갔다.
강백현은 윤수가 김만철에게 안기자, 그때서야 김아람에게 말했다.
“잠시 따라올래?”
“여기서 말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애들 듣는 데서 말하고 싶진 않다. 따라와.”
강백현이 아람이와 함께 방주 반대편으로 향했다.
윤수가 보이자 않자, 김아람이 따지듯이 물었다.
“너 지구에서 작아졌을 때 기억 안 나? 우리 비둘기한테 쫒기고 개한테 잡아먹힐 뻔하고, 그뿐만이 아니잖아. 개미굴에서는 뭔데?”
“아람아! 너 지금 흥분했어. 차분하게 좀 말해.”
“충분히 차분하게 말하고 있어.”
김아람은 침을 삼키며 강백현에게 자신의 주장을 어필했다.
“율리안, 율리만 박사가 원한 게 뭐야? 우리를 왜 죽음으로 내몰고, 싸우게 시켰는데? 그게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생각해?”
“그건 아니지만, 넌 생명을 너무 쉽게 쉽게 생각하잖아.”
“아니, 오히려 반대야. 내 생명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좀 더 치열해지는 거라고. 강백현!”
“어?”
“넌 내 심정을 아니?”
김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확실히는 모르겠다.”
“너, 내가 클론인 거 잊고 있었지?”
“…….”
김아람의 말에 강백현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그랬다. 김아람은 분명 엑스트라 페이즈에서 죽음을 겪었다. 채찍에 맞아죽는 그 마지막을 미나에게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으니까.
“난 아마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라. 아니, 각오하고 있어. 난 단지 김아람이란 존재의 기억을 가진 아메바 합성생명체일 뿐이니까.”
“아람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너라면 잘 알 텐데? 분신 능력이 율리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 난 너도 의심스러워. 네가 본체인지, 아니면 나처럼 기억만 씌워진 분신인지. 안 그래?”
김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충격을 받았다.
“아람아, 너 너무 나갔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데? 그런 걸 나한테 말해서 뭘 얻을 수 있는데?”
강백현의 말에 김아람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머뭇거리지 말라는 거야. 우리는 지금 전쟁터에 온 거야. 싸우러 온 거고, 인류를 구해야 할 책임도 있어. 너 그거 알아?”
“뭐?”
“우리가 입은 이 패션 감각 꽝인 슈트가 우리가 인간으로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
김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데?”
“슈트를 입고 오염된 지역을 지나면 자동으로 정화기능이 작동해. 김만철 아저씨가 물에 빠졌을 때도 그랬고, 네가 불을 끌 때도 그랬어.”
“그런데?”
“그건 거인병, 유전자 변이로부터도 안전하다는 거지. 그리고 그 슈트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율리만은 처음부터 우리를 속였어. 그리고 그 비밀을 미나는 공유하고 있지. 나뿐만 아니라 모두 다 알고 있어. 그걸 모르는 척하는 건 오로지 너뿐이지.”
김아람이 쓴웃음을 지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네가 적극적으로 나서건 그렇지 않건, 그건 네 마음대로 해. 아무튼 난 싸울 거야. 그래서 내 존재를 증명하고, 내 갈 길은 내가 정할 거야. 어쩌면 나랑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
“…….”
확실히 같은 존재가 2명이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백현은 나중에 동면 중인 공간에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있는지, 혹은 김아람과 똑같은 존재가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결심했다.
“저놈이지?”
김아람이 공중에 부유한 채로 멀리 날아가는 커다란 익룡을 가리켰다.
“아, 어.”
“해치우고 올게.”
“뭐?”
“기다려. 나 혼자도 처리 가능하니까.”
“김아람! 김아람!”
김아람이 익룡을 향해 날아간다.
강백현은 재빨리 자세를 낮춰 보호막 발판을 생성한 후, 김아람을 쫓았다.
부유해서 천천히 날아가는 그녀를 따라잡은 강백현이 김아람을 붙잡아 발판 위에 태웠다.
“같이 가. 너 혼자는 이기기 힘들 테니까.”
강백현은 그제야 각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김만철의 복잡한 심경도 그렇고 김아람도, 최형우도, 자신도 미나도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각자의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협력할 때 최고의 힘이 나오는 법.
“일단 저놈은 같이 처리하자고!”
“그래.”
강백현과 김아람이 공동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날기 시작했다.
그때 밑에서 윤수를 업고 있던 김만철이 방주를 발판 삼아 도약하더니 비행 중인 강백현의 보호막 발판 위에 착지하며 말했다.
“처리하러 가는 거지? 내가 빠질 순 없지.”
그러자 윤수도 말했다.
“악당 물리치러 간다! 악당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