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제주도
크라켄의 놀아달라는 말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미나야! 난 사양할게.”
“하하, 나도!”
윤수는 혼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누나, 배고파. 먹을 것 없어?”
“잠깐만! 크라켄한테 물어볼게!”
미나는 신이 난 듯 크라켄과 대화를 해나갔다. 인간의 입으로 발음할 수 없는 부분은 눈을 깜박이는 동작으로 보완해나갔다.
크라켄은 난생 처음 대화가 통하는 존재가 나타나자 신이 난 듯 빨판에 미나를 붙였다 떼며 친밀감을 나타냈다.
“윤수야! 크라켄이 먹을 것 가져다준대. 기다려봐!”
“응!”
크라켄이 인양선을 끌던 행동을 멈추고 잠시 바닷속으로 향했다.
강백현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미니맵을 열어 크라켄이 하는 행동을 관찰했다.
45m짜리 대형괴수가 바다 밑으로 들어가 커다란 다리로 무언가를 낚아챘다.
무려 2m짜리 생선이었다.
생선은 도망치지도 못한 채 지상으로 끌려 나왔고, 미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크라켄을 칭찬했다.
크라켄의 다리가 생선을 인양선 위, 일행 주변에 떨어트렸다.
파닥파닥.
생선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발버둥 쳐보지만, 육지와 달리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커다란 생선을 바라 본 최형우가 신기한 듯 말했다.
“참다랑어야.”
“참다랑어요?”
“그래! 참치! 참치야!”
최형우는 자신의 손을 거대화시켜 참다랑어를 내리찍었다.
쿵! 쿵!
2번의 충격이 가해지자 참다랑어는 기절한 듯 더 이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며 최형우가 씩 웃었다.
“생으로 먹을까? 익혀서 먹을까?”
“네?!”
결국 김아람의 공기압축으로 열기를 얻어 참다랑어를 익혀먹을 수 있었다.
배를 채운 일행은 각자 창고, 통제실 등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고, 미나만이 자신을 도와주는 크라켄의 몸에 올라 서로 궁금한 점을 물으며 호기심을 충족했다.
* * *
어둠이 걷히고 시원한 해풍과 함께 태양이 떠올랐다.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태양, 그리고 태양 옆으로 보이는 거대한 섬.
섬과 2k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인양선을 끌던 크라켄이 자신의 몸 위에서 잠든 미나의 이마를 다리로 톡톡 두들겼다.
미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응?”
크라켄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미나가 이윽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도착했구나!”
제주도 서귀포항이었다.
미나는 서둘러 동료들을 깨웠다.
“미나야! 아직 도착하려면 멀지 않았어? 시간 많이 남았잖아.”
“아니에요. 도착했어요. 얼른 일어나요! 다들 빨리! 빨리!”
서귀포항에 도착한 미나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율리만과 율리안이 도착하려던 제주도.
변이되지 않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희망의 섬.
크라켄은 인양선이 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서귀포항에 도착한 후, 인양선 위에 올라 있는 방주를 끌어 지상에 내려주었다.
크라켄의 힘으로도 쉽게는 움직이지 않는 방주.
그래서 김만철과 최형우, 강백현과 김아람도 힘을 보탰다.
방주가 겨우 지상에 올려지자, 크라켄이 울부짖었다.
“크루루루루, 크루루루루.”
그러자 미나도 크라켄의 언어를 써서 답례했다.
《고마워. 크라켄! 너랑 밤새 한 대화 정말 즐거웠어.》
미나의 말에 크라켄이 울부짖었다.
《아니다해! 나는 바다의 왕자 크라켄! 언제나 미나 널 응원하겠다해! 도움이 필요하면 날 부르라해! 난 저주파로 1000km 이내의 소리도 다 들을 수 있으니까 바다에 특정한 파동을 보내면 다 도와줄 수 있다해!》
《고마워! 그리고 다음에 또 봐!》
《웅! 같이 가고 싶지만 난 육지는 못 가서 아쉽다해! 또 만날 수 있을 거라해!》
《응! 응! 응!》
둘만의 대화를 끝낸 크라켄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미나만이 홀로 아쉬운 얼굴로 남아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운전해야지.”
“운전?”
“응. 오빠! 날 위로 올려줘!”
백현이 미나를 옆에서 안아들고 땅바닥을 짚었다.
바닥에서 보호막 기둥이 올라 하늘 높이 솟구치자 미나가 방주의 중앙부분에서 신호했다.
“여기 세워줘.”
“응.”
미나가 멈춰선 부분에는 숫자를 누르는 번호판이 있었다. 번호를 누르자 출입문이 열렸다.
한편 강백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이유는 출입문 때문이 아니었다. 미나가 누른 비밀번호가 너무나 잘 아는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아파트 비밀번호랑 똑같잖아?”
“당연한 거 아니야? 오빠가 만든…… 아!”
“뭐라고?”
“아니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 누군가는 여기 남아서 운전해야 하니까.”
“아-아. 응.”
미나의 말에 백현이 안쪽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양한 계기판 및 장비가 보인다.
왼쪽에는 백현이 평상시 확인하는 미니맵을 보여주는 장비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방주의 로그 데이터를 보여주는 스크린이 있었다.
《전력 충전률 0.66%, 방주 에너지를 충전하십시오.》
《남은 생존기간은 65일》
《전력 충전으로 인해 생존기간이 24일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오빠! 정면을 봐.”
미나의 말에 백현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최첨단 기계로 가득한 곳.
그곳에 5개의 의자가 있다.
그 앞에 방주 자체의 변형 모드까지 떠올라 있었다.
“트랜스폼?”
정면 화면에 떠올라 있는 트랜스폼 모드는 총 4개.
기이한 바퀴가 달린 자동차 모형과 비행기 모드, 그리고 바다에 뜰 수 있는 배에 손과 발이 달린 로봇 모드까지.
그걸 본 강백현이 실실 웃었다.
“허허허, 웃음밖에 안 나오네. 이거 만든 놈 도대체 누구야? 율리안 박사가 만든 거지? 어?”
강백현의 말에 미나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아니야. 근데 오빠 로봇 좋아하지 않아?”
“좋아하긴 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촌스럽게 만들었지? 기동로봇 간담 정도는 돼야지! 디자인이 이게 뭐냐고!”
그때, 출입문으로 누군가가 올라왔다.
“둘만 이야기하지 말고 공유 좀 해.”
“아-, 아람아!”
“우와! 대박! 이런 게 있었구나. 여기가 조종실?”
아람이의 질문에 미나가 답했다.
“응. 언니 생각이 맞아. 여긴 율리안 박사가 평생을 들여 만든 조종실인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에너지가 없어서 움직이질 못해.”
“그래? 근데 저 촌스러운 디자인은 뭐야? 로봇하고 배, 비행기…… 저거 디자인한 사람 진짜 어이없다. 미적 감각 완전 꽝인데?”
김아람의 말에 미나가 혼자 생각했다.
‘그거 언니랑 오빠가 만든 거거든? 이곳 세계에서는 언니랑 오빠가 둘이 결혼했었으니까.’
미나가 혼자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자, 김아람이 미나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
“미나야! 너 또 혼자만 알고 있는 거지?”
“아니야~ 언니! 나 그런 거 아니야.”
“네 표정 보니까 뭔가 알고 있는 눈치인데? 말해봐! 언니도 좀 알자. 응?”
“몰라 몰라!”
“거짓말! 거짓말!”
김아람이 미나의 옆구리를 만지며 간지럼을 폈다. 그러자 미나가 참지 못하고 낄낄 웃으며 말했다.
“아, 언니 결혼 상대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웃은 거야.”
“결혼? 결혼 상대?!”
김아람이 갑자기 정색하며 물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누구랑 결혼했는데?”
“그걸 말해줄 리가 없잖아.”
“빨리! 궁금하단 말이야. 빨리 말해! 안 그러면 계속 간지럼 피운다?”
그때 김만철이 아래에서 소리 질렀다.
“야! 치사하게 너희만 올라가기냐? 아람아! 나 좀 올려줘.”
“아저씨 혼자 올라오실 수 있잖아요.”
“방주에 상처날까봐 그러지. 도약해서 뛰어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다가 벽 손상되면 어떻게 해!”
김아람은 김만철의 요구에 짜증을 내면서도 염력으로 김만철을 끌어올렸다.
“아~ 짜증나. 아저씨 귀찮아.”
“하하, 미안하다. 그것 가지고 짜증을 내고 그러니, 응?”
“아저씨가 계속 날 이용하잖아요! 붙잡아달라고 하지 않나, 올려달라고 하지 않나, 구해달라고 하지 않나! 안 그래요?”
“하하, 그랬냐? 미안하다. 미안해! 오오오오! 이게 다 뭐야?”
김만철은 간단히 사과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작이 복잡해 보이는 버튼과 핸들이 가득하다. 거기에 수많은 모니터링 기기들까지, 남자들의 호기심을 붙잡기에는 충분한 양의 기계들이 있었다.
“조종실이에요. 방주는 처음부터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었나 봐요.”
“그래? 그럼 움직여야지.”
“그런데 지금은 불가능해요. 에너지가 거의 바닥에 가까워서 트랜스폼 기능이 통하질 않아요.”
백현의 설명이 이어지자, 김만철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기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편, 기계와 친하지 않은 아람은 아까의 질문을 계속했다.
“강미나! 나 여기 시대에선 누구랑 만나냐니까?”
“언니! 말 못해요.”
“에이! 나한테만 솔직하게 말해.”
그러자 김만철도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말해줘라. 어차피 여기 세계는 다른 세계라며! 아람이가 좋아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네. 혹시 백현이었어?”
김아람이 정색하며 물었다.
“네?! 진짜야? 미나야! 그래서 말 못한 거야?”
그러자 강백현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미나에게 말했다.
“미나야. 내가 아람이랑 결혼해?”
미나는 걱정스러웠다.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니야? 오빠랑 언니랑 만나야 하는데, 나 때문에 틀어지는 거 아니야?’
그런데 옆에서는 계속 간지럼을 피우며 재촉한다.
“아아아, 언니!”
“말 좀 해! 답답해 죽겠다니깐?”
미나는 할 수 없이 말을 돌렸다.
“아-아, 바로 옆에 있잖아요!”
“응? 옆? 누구? 백현이? 나랑 백현이랑 결혼했다고? 진짜야?”
아람이의 재촉에 미나가 진실을 내뱉어 버렸고, 곧바로 후회했다.
‘아, 모르는 사람 이름 댔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 아- 몰라! 몰라!’
“정말 나랑 백현이랑 결혼해?”
아람이의 질문에 미나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 옆 말고, 다른 옆.”
“그 옆이라면 설마…….”
김아람이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자신의 옆에는 강백현과 김만철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김만철이 자신에게 근육 자랑을 하거나, 자꾸 엉기려는 모습을 보였던 게 생각났다.
“아저씨, 변태예요?”
“뭐?”
“아저씨, 나 음흉하게 쳐다보고 그랬잖아요.”
“무슨 소리야! 야! 강미나! 너 똑바로 말해. 내가 김아람이랑 결혼을 왜 해?”
“아, 몰라요! 그만 물어요. 더 물으면 둘 다 기억 지워버릴 거예요!”
강미나는 이때까진 몰랐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서 펼쳐질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오해를.
그때 강백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미나야. 저 사람들은 뭐야?”
“어?”
“저 사람들, 우리들을 경계하면서 오는 저 빨갛게 생긴 사람들은 도대체 뭔데?”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그들의 피부는 그 누구보다 붉었다.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방주를 향해 몰려오더니, 경계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떨어진 곳에 섰다. 그리고 지면에 있는 최형우와 박윤수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내륙에서 왔습니까?”
놀랍게도, 그들은 분명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걸 들은 최형우가 윤수를 품에 안은 채 대답했다.
“네. 대한민국 여수에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