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무법자 크라켄
백현은 크라켄이 접근하는 중임을 깨달았다.
미니맵에 녀석의 동작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
미나도 마찬가지였다.
백현의 미니맵에는 녀석의 몸통, 머리, 다리, 빨판, 입, 깔때기, 외투막에 심장이 뛰는 모습까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제발…… 올라오지 마. 그냥 가게 내버려둬! 내버려두라고!’
강백현의 생각이 미나에 의해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윤수만이 해맑은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엉아, 뭐 있어?”
“윤수야. 쉿!”
“응?”
“쉿! 쉿! 쉿!”
김만철은 윤수를 끌어안은 채, 굵은 팔로 윤수의 입을 살며시 막았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모두의 머릿속에 실시간으로 백현의 기억이 전달되었다.
크라켄이 다리를 오므렸다 펴는 동작으로 엄청난 거리를 도약했다.
입에서 뿜어댄 바닷물로 추진력을 얻어 주변에 엄청난 물결을 만들어내며 이동하는 것이다.
극도의 긴장감이 모두의 머릿속에 전달되었다.
백현의 미니맵 화면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은 동료들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최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60년을 넘게 살면서 이렇게 무서운 적은 처음이었다.
50m 크기의 해양괴수가 바다를 유영하자 모든 생명체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걸리는 순간 끝장날 것을 알기에 다들 알아서 피하는 것.
죽음의 바다.
다행히 인양선은 크라켄이 있는 곳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30m, 50m, 100m…….
크라켄이 커다란 눈을 해수면이 아닌 심해 쪽으로 돌린 것을 확인한 백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한 고비는 넘겼어요.”
“응. 고생했다, 백현아.”
“아니에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김아람이 팔과 다리를 쭉 펴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긴장감 대박! 몸에서 식은 땀 나는 것 봐. 죽는 줄 알았어.”
김만철도 그 말에 동의했다.
엄청난 크기의 괴수가 자신들의 뒤쪽에 있었다.
육안으로도 식별될 거대한 크기.
녀석은 다행히 방주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
크라켄이 향한 곳은 놀랍게도 미나가 버린 모닥불의 잿더미였다.
거인들의 사체를 태운 재에 무척이나 흥미를 갖는 크라켄.
“다행이다. 아까 모닥불 피운 거 다 끄고 재는 바다에 버려뒀어. 그게 크라켄을 유인했나 봐.”
“응. 잘했다. 미나야.”
“아니야. 오빠가 소각장 불을 끄지 않았다면 아마 그 불빛이나 냄새 맡고 계속 따라왔을 거야. 다 같이 잘한 거지.”
“그래. 맞아. 다 같이 잘한 거야.”
크라켄은 다행히 일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일단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보죠. 불빛이나 냄새 때문에 다시 추적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좀 늦어지더라도 불은 안 피우는 게 낫겠어요.”
“그래. 지금은 일단 한 고비 넘겼다는 거에 만족하자. 아직 안전이 완전하게 확보된 것은 아니니까.”
“맞아요. 긴장감을 늦춰서 좋을 건 없죠.”
최형우와 김만철 또한 백현의 의견에 동조했다.
슬슬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붉은 여명과 함께 짙어지는 그림자, 흐릿해지는 사물들.
그런데 인양선 한쪽, 유난히 밝은 곳이 있다.
김아람은 당황해서 자신의 몸을 상공으로 띄웠다.
“아람아! 같이 가.”
강백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공기를 차단해 불을 껐던 곳에서 의문의 빛이 새어나오는 중이었다.
김아람은 염력으로, 강백현은 보호막을 발판 삼아 상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김만철도 따라가려는데, 강백현의 보호막 발판이 너무 빨리 사라져버려 헛발질을 했다.
“야! 백현아! 내가 밟고 지나갈 것은 남겨놔야지.”
“아! 죄송해요 아저씨. 먼저 갈게요.”
“야! 강백현!”
김만철의 당혹한 얼굴을 본 최형우가 말했다.
“기다려 봐, 던져줄게.”
“네. 아저씨.”
최형우는 자신의 팔을 거대화하며 김만철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회전력을 더하여 김만철을 상공으로 집어던졌다.
그러자 김만철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백현을 지나쳤다.
“아람아! 받아줘!”
“아- 갑자기 왜 와요?!”
김아람이 짜증을 내며 염력으로 만철의 몸을 띄웠다.
그렇게 3명의 동료는 공중에 몸을 띄운 채 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아, 잔불이 있었나 봐.”
분명 불을 끄긴 껐었다.
그건 백현도 아람이도 같이 확인한 사항이었다.
김만철도 마찬가지였다.
“잔불이요?”
“그래. 안쪽 끝까지 달궈진 열 때문에 다시 불이 붙은 거지. 백현아, 네 잘못 아니야. 아람이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이지.”
김만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른인 자신의 불찰이었다. 진작에 생각했어야 하는 일이건만…….
질식소화를 시키려면 백현이가 무리해서라도 끝까지 보호막을 유지해야만 했던 것.
하지만 보호막 결계가 사라지자, 남은 잔열과 산소가 만나 불이 붙었고 그 불이 커져서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때 백현이 소리 질렀다.
“눈치챘어요! 녀석이 눈치채버렸어! 얼른 꺼야 해요! 불을 꺼야 해요!”
그런데 김만철의 생각은 달랐다.
“그냥 이대로 가야 해.”
“네?”
“이걸 지금 당장 바닷물로 끌 수는 없어. 이게 유일한 연료잖아. 바닷물로 쓸려 보내면 그 다음은?”
확실히 연료를 없애버리는 방법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아까처럼 다시 불을 꺼도 임시방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한 체력도 없었다.
“로프로 묶어두었던 스크류를 풀게. 백현이 넌 엔진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줘.”
“네. 알겠습니다.”
“아람이 넌 불을 피워. 그게 네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야.”
김만철은 로프를 풀어 스크류가 움직일 수 있도록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만철의 눈에 크라켄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인다.
김만철은 사실 알고 있었다.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승률은 얼마나 되지?’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상대는 45m짜리 바다괴수다.
자신은 고작 1m 76cm의 강화된 인간. 더구나 물에 빠지는 순간 전황은 급격하게 불리해질 터.
‘빨리 돌아가! 스크류야! 돌아가라고!’
김만철의 소원대로 스크류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주를 실은 인양선이 추진력을 얻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엔진을 가동시킨 백현과 아람이 김만철과 합류했다.
최형우도 마찬가지.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다 모여서 막아봐야죠! 들켰으니 할 수 없어요!”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진 가운데, 율리안의 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연료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열기를 바탕으로 스크류가 쉴 새 없이 회전하는 가운데, 어둠 속에서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켄의 압도적인 모습에 백현은 할 말을 잊었다.
두께 1.5m에 길이 30m는 되어 보이는 9개의 다리. 그중 일부가 인양선에 올라왔다.
당황한 김아람이 염력을 최대한 압축해 공기탄환을 쏘아댔다.
하지만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크라켄의 다리는 그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몸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안 통해! 내 힘이 안 통해!”
김아람은 백현에게 SOS를 취했다.
강백현의 보호막 파편이라면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강백현의 공격도 소용없었다.
엄청난 크기의 다리가 강백현이 만든 날카로운 보호막을 귀찮다는 듯 쳐내버렸다.
그러자 허망하게 바다에 쳐박히는 백현의 보호막.
백현은 5개의 보호막 파편을 동시에 운용했다.
날카로운 것, 밀도가 높아 타격력이 강한 것, 끈끈이 같은 모양으로 한번 피부에 박히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송곳처럼 관통하기 쉬운 것, 거기에 망치같이 무거운 것.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크라켄을 이기진 못했다.
삐그덕삐그덕.
인양선이 크라켄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최형우는 현장에 있는 H형강을 들어 녀석의 다리에 강력한 힘으로 찔러넣었다.
하지만 붉은 색의 H형강이 녀석의 다리에 튕겨나가고 말았다.
고무 같은 탄성을 지닌 크라켄의 다리.
크라켄은 약점이 없었다.
거대한 크기에 유연한 다리와 준수한 속도.
거기에 인양선도 기울게 하는 힘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바다 괴수.
피시맨이 도망갈 만했다.
절대 들키지 않았어야 했다는 마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크라켄이 다리 중 하나를 들어올려 스크류를 건드렸다.
끼이이이이익!
스크류에서 흘러나오는 비명, 김만철과 최형우가 겨우 멈추었던 스크류가 크라켄의 다리 하나의 힘으로 처참하게 부서지고 만다.
“안 돼! 으으으으. 저건 안 돼!”
인양선이 추진력을 잃어버렸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인양선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양선 위, 수백 개의 로프로 고정되어 있는 방주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남은 사람들은 허망한 얼굴로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안 돼! 스크류는 안 돼!”
“일단 막아요! 스크류는 나중에 생각하고 저놈부터 막아요!”
하지만 절대적인 힘의 차이.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 바다괴수.
크라켄은 인간들에게 흥미를 잃은 듯 9개의 다리 중 8개를 인양선 위에 끌어올렸다.
압도적인 크기에 절망한 일행이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망칠 시간을 줄 크라켄이 아니었다. 8개의 다리 중 4개가 4명의 인간을 감싸고는 돌돌 말아 바닷속으로 끌고 갔다.
바닷속에 입수하자, 4명의 슈트에서 헬멧이 자동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그들은 바닷속에서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크라켄의 커다란 두 개의 눈과 공기방울을 뱉어내는 입이 정확히 보였다.
강백현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김만철과 최형우가 사력을 다해 보았지만, 가장 힘이 센 그들도 크라켄은 당해낼 수 없었다.
녀석의 입이 벌어지고 사람을 쥔 다리가 그쪽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크라켄이 입으로 향하던 다리를 상공으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강백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뻔했는데, 크라켄이 다리를 움직여 일행을 인양선 위에 놓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때 윤수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재밌었겠다.”
“뭐?”
“나도 타고 싶어! 문어! 문어 다리 탈래!”
“뭐야! 지금 상황 뭐야?”
그러자 강미나가 씩 웃는다.
“오빠! 괜찮아? 언니! 화 안 났어요? 분노조절 안 되면 윤수한테 오세요!”
미나의 질문에 김아람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괜찮거든?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요! 제가 대화해서 공격하지 말라고 했죠.”
미나의 말에 장난치듯 해수면으로 올라온 크라켄이 눈을 끔뻑인다.
미나는 씩 웃으며 자기도 눈을 끔뻑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다들 일단 올라와서 몸 좀 녹여요.”
“아! 그런데 어떻게 하냐! 스크류 고장났잖아. 다 부서졌어. 갈 수가 없어. 제주도 갈 방법이 없잖아!”
최형우는 상황이 끝났음에 안도했지만, 제주도로 갈 수단이 사라졌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그런데 강미나는 태연하게 걱정 말라는 투였다.
“아저씨! 오히려 더 좋은 방법이 생기지 않았나요?”
“좋은 방법?”
“네. 뒤에 제 친구가 있잖아요. 이 친구가 제주도까지 끌어준다는데요?”
미나는 뒤쪽에서 눈을 깜박이는 크라켄을 가리켰다.
미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양선의 앞쪽으로 움직이는 크라켄.
크라켄 녀석이 9개의 다리 중 2개의 다리를 써서 인양선을 앞으로 끌기 시작했다.
드디어 인양선이 움직인다.
인양선 위의 방주도 흔들림을 멈추었다.
미나가 방긋 웃으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일단 젖은 슈트부터 말리세요. 아! 그리고 크라켄이 재미있었대요.”
“재미?”
“네. 간지러웠다고 전해 달라던데요. 나중에 또 놀아달라고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