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키메라 세상
김만철은 다급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최형우가 그를 다독이며 말했다.
“천천히 말해봐. 합성한 키메라라니!”
김아람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숨넘어가겠어요. 키메라가 여기 왜 있어요?”
김만철이 겨우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바닥에 새까맣게 깔렸어. 녀석들이 바닥에 다 깔렸다니까!”
“그러니까 누가요? 잘못 본 거 아니에요?”
김만철이 같은 말을 더 크게 되풀이했다.
“키메라라고! 왜 내 말을 안 믿어! 김아람! 김아람!”
“아, 아저씨가 흥분하니까 그렇죠. 고기 못 잡아서 괜히 호들갑 떠는 걸 수도 있고요.”
“뭐라는 거야! 내가 고기 못 잡아서 거짓말 쳤다는 거야? 핑계대려고?”
그때 미나가 나섰다.
“언니! 아저씨 말은 사실이에요. 아저씨 기억을 훑어봤어요. 물고기 같이 비늘이 있고 얼굴도 물고기 같이 생겼는데, 팔이 달렸어요. 아저씨 말대로 키메라일 가능성이 있어요.”
미나의 말에 최형우가 물었다.
“그들의 기억을 읽어보는 건 어떠니? 멀리 떨어져 있어서 힘 들려나?”
“아니에요. 가능할 것 같아요. 확인해볼게요. 윤수 좀 맡아주세요.”
“응. 윤수야! 할아버지한테 와.”
“네!”
미나는 윤수를 최형우에게 맡기고 양손을 모아 바다 쪽으로 향했다.
상대방의 기억을 읽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만큼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뭐라는 거지?’
들리긴 한데 어렴풋하게 들렸다.
모든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미나였지만 이건 어려웠다.
‘ㄱㄱㅎㄹ.’
그런데 해석이 잘 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집중해서 해석해보았다.
‘고극카라…….’
“고극카라?”
그런데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미나의 머릿속에 수십 개체의 생각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수백 개체의 생각이 동시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수백 개체의 생각은 곧 수천 개체, 수만 개체의 소리로 변했다.
미나는 터질 듯한 고통에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봉인했다.
“아아아아악!”
“미나야! 왜 그래?”
미나는 모두에게 경고의 말을 전했다.
“위험해요! 다들 방어할 준비하세요!”
“뭐?”
“그들이 올라와요! 그들이! 그들이!”
미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고기인간들이 인양선에 오르기 시작했다.
거인과는 달리 인간과 비슷한 크기였다.
다만 물고기 얼굴 그대로에 팔과 다리가 달려 있었다.
손에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비늘이 돋아나 있었고, 다리에도 비슷한 것들이 달려 있었다.
본능에 충실한 그들이 인간을 감지했다.
강미나와 김아람, 박윤수와 최형우, 김만철을 잡아먹기 위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김만철은 쓴웃음을 지으며 김아람에게 말했다.
“아람이 넌 윤수 지켜! 아저씨! 아저씨가 왼쪽 맡아요. 제가 오른쪽 맡습니다.”
“아, 응.”
게걸스러운 소리가 갑판에 울려퍼졌다.
『케겍켁켁, 케겍켁켁』
그들은 먹이 앞에서 이성을 잃은 듯 무질서하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워 보이는 비늘 칼날이 햇볕에 번뜩였다. 이를 본 윤수가 겁에 질린 듯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무서워! 할아버지! 나 무서워!”
그러자 김만철이 전광석화의 속도로 윤수에게 다가오더니 이마에 뽀뽀를 했다.
“윤수야. 아빠가 지켜줄 테니까 눈 감고 있어. 미나 누나랑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
“응. 흑흑, 다치면 나한테 와야 해! 알았지, 아빠?”
“당연하지. 근데 윤수야. 아빠는 안 다칠 거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빠는 윤수의 슈퍼맨이니까!”
김만철이 윤수를 달래고는 엄청난 속도로 물고기 인간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오는 물고기 인간들.
그들과 싸우면 싸울수록 김만철의 슈트는 점차 갈려나가기 시작했다.
반대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형우가 자신의 몸을 6m까지 늘린 채, 커다란 주먹을 휘둘러 녀석들을 바깥으로 날려버렸다.
한번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물고기 인간 10개체 이상이 쓸려나갔지만, 그동안에 10개체 이상이 갑판에 올라오며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미나는 당황하는 동료들을 위해 물고기 인간들의 우두머리를 찾았다.
대화가 통하는 녀석을 찾아 지금의 공격을 멈추고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미나야, 뭔가 알아냈어? 괜찮아? 너 괜찮은 거야?”
김아람이 윤수를 감싸며 미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미나는 씁쓸한 얼굴로 김아람에게 대답했다.
“지능이 퇴화돼서 본능만 남은 것 같아요.”
“뭐? 그럼 막을 수 없는 거야?”
“네. 제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요. 저들은 육지에 사는 거인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물고기의 유전자를 받아들인 저들의 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퇴화를 거듭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단순한 행동만 반복하죠. 사냥 후 번식 그리고 동면, 사냥 후 번식 그리고 동면, 사냥 후 번식 그리고 동면, 그것뿐이라서 제가 제어할 수가 없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이고 본능으로만 행동해서, 기억을 지운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먹이를 알아차리고 공격할 거예요.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저들은 이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냥 괴물 그 자체예요!”
강미나의 말을 들은 김아람.
미나가 막을 수 없는 적이란 소리를 하자 오히려 미소를 머금었다.
“인간성은 없다는 얘기지?”
“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네?”
“다 쓸어버리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 * *
물고기 인간들의 끊임없는 진입에 김만철과 최형우의 몸에는 조금씩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슈트를 뚫고 들어오는 칼날 같은 비늘.
율리만이 만들어준 슈트의 자동복구능력은 뛰어난 편이었지만, 물고기인간의 비늘에 입은 손상이 계속 중첩되어 슈트의 복원력을 넘어선 것이다. 결국 슈트를 입은 사람의 몸에도 상처가 생기고 있었다.
“크으으읍.”
김만철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욕설이 튀어나왔다.
현재 동료는 5명, 적은 5천 이상.
싸워도 싸워도 변종 녀석들은 끊임없이 기어 올라왔다.
최형우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질기고 두꺼운 슈트는 거대화 능력으로 표면적이 넓어져 얇아진 상태였다.
안 그래도 얇은데 날카로운 공격이 밀고 들어오니 아무래도 찢어지기 쉬웠다.
최형우는 슈트를 복원하기 위해 자주 쓰는 오른팔의 거대화를 해제하고 왼팔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왼팔도 곧 한계에 이르렀다.
“크으으으으.”
하지만 그들에게는 김아람이 있었다.
“다들 엎드려요!”
김아람은 자신의 염력을 한 점으로 압축시켰다.
압축과 팽창, 이 원리만 알면 적은 힘으로도 강한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아람은 공기를 한껏 압축시켜 한 점에 쏟아냈다.
겨우 1cm로 정도의 둥근 공기파형이 물고기 인간들에게 발사되었다.
양손을 깍지 끼고 왼손과 오른손의 검지를 총 모양으로 만들어, 총알을 쏘듯 공기파형을 쏘아댔다.
그러자 염력으로 압축된 공기가 물고기 인간들의 몸을 관통했다.
아주 작은 크기였지만 압축된 공기는 놈들의 피부를 뚫어버리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놈들은 물속에서 생활함에 따라 신체 자체가 부드럽게 진화되어 있었다.
보통의 피부라면 탄탄하고 질겨 한두 번의 공격으로는 관통하지 못했겠지만 물고기 인간들의 속살은 얇은 편이었다.
그들은 김아람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아람은 내심 환호성을 지르며 지원 사격을 하듯 김만철과 최형우를 서포트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김아람도 지치기 시작했다.
김아람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안 돼. 또 폭주하고 말 거야.’
김아람은 자신의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는 것을 자각했다.
점점 능력을 비효율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그녀.
1cm짜리 작은 공기탄환이 2~5cm짜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능력의 소모도도 더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인간 하나가 최형우를 지나쳐 갑판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가장 약한 개체로 보이는 박윤수를 노리고 있었다.
최형우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또 다른 놈들이 기어 올라오자 그럴 만한 틈이 생기질 않았다.
“아람아! 막아!”
하지만 김아람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폭주모드로 들어간 김아람을 본 미나가 윤수를 뒤로 돌리고 물고기 인간을 막으려 몸을 날렸다.
강미나는 크게 당황했다.
‘공격을 예측할 수가 없어! 조금만 더 잘 생각했으면 다 예측해서 대처할 수 있는 건데!’
물고기 인간의 손날에 미나의 슈트가 단번에 찢어졌다.
슈트가 곧 찢어진 부분을 수복하기 시작했지만, 그 안에서 흘러나온 혈흔은 미나가 분명히 타격을 받았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언니! 제발 정신 차려요! 언니!”
미나가 김아람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폭주 상태에 들어서고 있었다.
제 정신이 아닌 그녀.
“다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리겠어!”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데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누나, 정신 차려.”
“다-죽여-버리겠어.”
“응. 알아. 하지만 누나부터 정신 차려야 해. 윤수가 고칠 거야.”
윤수의 손길에 폭주를 시작하던 김아람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위로 뻗어가던 머리카락도 평소처럼 내려왔고, 좁아졌던 시야도 원상복구되었다.
김아람은 알았다. 자신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러나 다행히 윤수가 막아냈다.
“윤수야…….”
“누나는 누나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누나가 화만 안 내면 우리는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누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몇 번이든 내가 고쳐줄 테니까.”
윤수의 말에 김아람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미안해요! 걱정했죠?”
“아- 괜찮아!”
“아람아! 이제 넌 괜찮니?”
김만철과 최형우의 말에 김아람이 말했다.
“네! 윤수가 제 폭주를 멈출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아람이 체력을 회복하자, 다시 전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미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깨달았다.
윤수를 등에 업은 미나가 윤수에게 부탁했다.
“윤수야! 너는 이제부터 누나랑 같이 다니면서 아저씨들을 회복시켜 주는 거야. 아람이 언니가 폭주하기 시작해도 회복시켜 주고! 알겠니?”
“응!”
박윤수와 미나는 물고기 인간과 싸우는 최형우와 김만철, 김아람을 서포트하는 데 전념했다.
원래 미나는 무엇이든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처음 맞서는 유형의 적에게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아서 충격을 받은 참이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역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두가 모여야만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거야. 율리만 박사님, 맞죠? 박사님이 의도한 게 이게 맞는 거죠?’
무려 3시간의 전투.
인양선이 원해로 빠져나가서야 물고기와 합성된 키메라들이 더 이상 갑판에 올라오지 않았다.
미나는 알았다.
더 이상 따라붙는 적은 없다는 것을.
헉헉헉헉.
숨을 몰아쉬는 동료들.
박윤수가 한숨을 내쉬며 누나와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윤수 지쳤어.”
“그래. 할아버지도 지쳤다.”
“윤수 잘했어!”
“응. 나도 잘한 거 알아.”
모든 상황이 끝났을 때, 통제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강백현이었다.
《아람아! 나 왜 안 깨웠어? 깨워달라니까! 내가 지금 안 일어났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여러분들 10분 후 암초가 나타나요. 곧 방향 틀게요.》
그 소리를 들으며 강미나가 씩하고 웃었다.
“오빠가 상황 파악 못하고 있죠? 원래 저래요! 엉뚱한 면이 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