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괴수잡이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백현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이를 본 김아람은 친구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쉬는 게 어때? 너 컨디션 엄청 안 좋아 보여.”
“그럴까?”
율리만의 시련을 이겨내며 긴장을 한 번도 늦추지 못했던 탓에 백현은 전신이 찌릿찌릿 아플 정도였다.
“아람아, 조금만 잘게. 방향은 이 방향이 맞거든? 그대로 두면 바다로 진입할 거고, 방향을 틀거나 하지 않으면 앞으로 6시간은 암초에 부딪힐 일이 없을 거야. 5시간 지나기 전에 나 좀 깨워줘. 조금만 잘게.”
“응.”
통제실 한쪽에는 먼지 가득한 모포가 있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본래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백현은 그걸 털고는 이불 삼아 몸을 누이려 했다. 그러자 김아람이 모포를 빼앗더니, 염력으로 압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대부분의 먼지를 털어냈다.
“대단하다, 너.”
“대단한 건 너거든? 저 먼지 가득한 모포를 꼭 덮어야겠어?”
“춥잖아. 방주 안과는 달리 바람이 추워.”
그러고 보니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다. 김아람은 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털어낸 모포를 건네주었다.
모포는 털어도 털어도 그리 깨끗하단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필 처음부터 국방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왜 쓰나 몰라.’
강백현은 모포를 덮자마자 잠이 들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통제실.
거친 바람 소리에 파도로 인한 흔들림도 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볼트가 낡아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는데도 백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취한 것이다.
김아람은 잠든 백현을 두고 통제실 바깥으로 나왔다.
원래 알던 풍경과는 많은 점에서 변화가 있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는지 철판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은 거의 모두 산화되어 버렸다. 목재로 된 건축물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이곳에 집이 있었다는 흔적만을 간신히 남기고 있었다.
다만 콘크리트로 된 건물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원형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들이었다. 다만 외장재나 페인트가 모두 벗겨져 흉물스럽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백현의 말한 대로, 방주를 실은 인양선은 느리지만 서서히 내륙을 벗어나고 있었다.
김아람은 높은 곳에 있는 통제실에서 뛰어내려 인양선 발판 부분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있었다.
“아람아! 얼른 와.”
“네. 뭐하시는 거예요?”
“캠프파이어! 춥잖아. 여기 있어.”
거인 율리안의 시체에서 나온 가루들을 한데 모아 태우는 사람들.
그 가루로 추위에 떨리는 몸을 녹이고,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만철의 품 안에서 잠이 든 어린 박윤수.
두 사람을 보며 김아람이 물었다.
“아저씨, 윤수는 어때요?”
“뭐가?”
“아들로서요. 언니의 아들이잖아요.”
“그냥 내 자식처럼 키워야지. 지금 세상에서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데? 그냥 다 가족처럼 지내야 하지 않을까?”
김만철의 이야기를 들은 김아람이 잠시 고민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김만철의 사고방식.
자신이라면 처음 보는 모든 것을 경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만철은 달랐다. 누구에게나 먼저 친절을 베풀겠다는 의지가 분명했기에 아람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강미나가 아람이한테 다가와서 말했다.
“언니! 부탁이 있어요.”
“뭔데?”
“선실 7층에 가면 낚싯대가 있을 텐데, 그것 좀 가지러 같이 가주시면 안 돼요?”
“낚싯대?”
“네. 당장 먹을 게 없으니까 일단 뭐라도 구해야 하잖아요. 지금은 낚시가 가장 우선일 것 같아요.”
미나의 말에 아람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이 가.”
“네. 언니.”
거대한 인양선 옆에 크레인이 올라가 있다.
크레인 옆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그런데…….
“이거 엘리베이터 작동 안 하는 거야?”
“네. 언니, 작동하지 않은 지 50년은 넘었어요. 더 오래됐을 수도 있고요.”
미나의 대답에 김아람이 방긋 웃었다.
“이게 벌써! 언니 시켜먹으려고! 조금만 기다려!”
“네.”
크레인의 구조물을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적격자가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 법.
김아람이 자신의 몸을 띄워 7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간다.
7층에는 조그마한 공간이 있었다.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창고로 쓰는 공간.
김아람은 먼지 뒤집힌 공간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염력으로 창고 내의 공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한쪽은 압축하고 한쪽은 오히려 팽창시켜, 공기의 밀도 차이로 내부 공기를 자연스럽게 순환시킨다.
그러자 내부의 먼지가 진공청소기에 빨리듯이 바깥으로 모여 날아가게 되었다.
일단 먼지가 날아가자 김아람은 미나가 말한 낚싯대를 찾았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몰랐지만, 아직까지는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낚싯대였다.
* * *
김아람이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는 일행에게 낚싯대를 가져오자 사람들이 신이 난 듯 웃었다.
특히 남자들, 김만철과 최형우의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어났다.
김만철이 일어나자, 품에 안겼던 윤수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아빠?”
“일어났어?”
“좀만 더 잘래.”
“그래. 그래.”
김만철은 다시 제자리에 앉아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 낚시 좋아하는데!”
“만철아, 낚시 잘해?”
“네. 형우 아저씨는요?”
“나야 선수지!”
김만철이 돌아온 미나에게 말했다.
“미나야! 윤수 좀 잠깐 맡겨도 될까?”
“네. 그렇게 하세요.”
“그래. 부탁 좀 할게.”
“네.”
미나는 자고 있는 윤수를 건네받았다. 잠이 덜 깨 칭얼거리는 윤수.
그런데 생각보다 무겁다.
미나는 잠든 윤수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난 미래에서도 결혼을 못했네.’
율리만은 평생 혼자 살았다.
율리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여기저기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오늘을 살 수 있고, 내일을 살 수 있다.
낚싯대를 건네받은 두 사람이 미끼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미끼는 율리안의 시체조각.
그것을 끼워 바다에 줄을 던지면 끝이었다.
그런데 잠시 시도해 본 최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이거 처음부터 낚시 안 되는 거였어.”
“왜요?”
“이렇게 인양선이 이동하는데 어떤 물고기가 걸려!”
인양선은 생각보다 빨랐다. 시속 10노트로 이동 중이었다.
“그러네요. 미나야! 이거 안 될 것 같은데?”
바다낚시의 진수는 엔진을 끄고, 바다 한가운데서 기다리는 재미다.
고요해진 바다에서 물고기들은 의심 없이 미끼를 문다.
하지만 엔진을 켜고 있을 때는 전혀 다르다. 큰 진동과 소음으로 인해 물고기들은 긴장하고 훨씬 신중하게 행동한다.
“아, 미안해요. 아저씨.”
그래서일까? 김만철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냥 직접 잡을까?”
“네?”
“바다에 들어가서 직접 잡으면 되지 않을까? 나 정도 능력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김만철의 말에 최형우가 미소를 지었다.
“해볼래?”
“네?”
“내가 너 바다에 빠지지 않게 로프 잡고 있으면 되잖아. 여차하면 끌어올리면 되고.”
“아, 진짜 해볼까요?”
“그래. 어차피 먹을 것은 구해야 하잖아. 지금 당장 여기서 굶어죽을 수는 없고.”
최형우의 말에 김만철이 씩 웃으며 로프를 가져왔다.
강미나는 남자 둘의 추진력에 당황했다.
“아저씨! 하지 마요. 위험할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아-, 언니! 언니가 좀 말려봐요.”
미나가 김아람을 향해 함께 말려줄 것을 청했으나, 김아람의 생각은 달랐다.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네?”
“아저씨 몸 튼튼한 거야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고, 최형우 아저씨는 몸을 거대화시킬 수 있는 데다 우리 중에 힘이 제일 세잖아. 위험하면 끌어오는 것 정도는 쉽게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언니!”
“어른들이 무모할 것 같아도 사실은 살아온 지혜를 무시할 수 없는 거야. 그냥 맡겨.”
“아, 나 때문에 잘못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미나의 걱정에 김아람이 방긋 웃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일반인들이 아니잖아. 우리들이 생선한테 죽을 일이 있을까?”
김아람이 염력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없애며 능력을 과시했다.
“몰라요. 나 발 뺄래요. 윤수 재우고 올게요.”
“그래. 그렇게 해.”
“네. 언니.”
강미나는 자고 있는 윤수를 데리고 인양선 선원들이 쓰고 있던 숙소로 향했다.
낡은 숙소, 낡은 침대, 낡은 책상.
수십 년은 지난 골동품들. 하지만 동료들이 미리 청소해 둔 탓인지, 자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인다.
미나는 침대에 윤수를 올려놓았다. 다행히 깨지는 않은 모양.
그대로 방문을 나서려는데 윤수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응?”
“배고파. 엄마 보고 싶어.”
“응. 곧 만날 수 있어. 방주에 전기만 공급해주고, 식량만 구하면 차례차례 모시고 나올 거야.”
그때 윤수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데려왔나…….’
미나는 후회의 감정을 뒤로하고 윤수를 재우기 위해 물었다.
“안 졸려?”
“응. 누나! 아빠는 뭐해?”
“밖에서 윤수 맛있는 거 해주려고 고기 잡고 있어.”
“그럼 나도 바깥으로 나갈래.”
“알았어. 그래 나가자!”
윤수는 미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방문을 나섰다.
그런데 로프에 묶인 김만철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으아아아아아! 나 끌어요! 아저씨! 나 빨리 끌어줘요!”
바다에 한 번 들어갔다 나왔는지 이미 생쥐 꼴이 다 된 김만철이 다급하게 소리질렀다. 최형우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뭔데? 뭐가 문젠데?”
“이 근처에 물고기는 없어요. 물고기는 없는데! 일단! 일단! 끌어요. 빨리!”
최형우가 자신의 몸을 거대화시켰다.
약 6m까지 신장이 늘어나는 최형우의 능력.
그가 로프를 잡아당겨 김만철을 인양선 위로 끌어올렸다.
“무슨 일인데? 뭘 봤는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김만철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날 발견했을지도 몰라요.”
“뭘 봤는데? 뭘 봤는데?”
김아람과 최형우가 김만철을 응시했다.
강미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강미나는 김만철의 말을 듣기 전에 이미 그의 기억부터 살폈다.
김만철이 바다를 향해 신이 난 듯 뛰어들었다.
다이빙하듯 능숙하게 바다에 입수했다.
김만철은 자유자재로 물살을 헤치며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에메랄드빛 맑은 바다, 그런데 바다 아래에는 그 흔하디흔한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뭘 보고 놀란 거야?’
강미나는 김만철의 기억을 조금 더 천천히 되돌렸다.
그러자 김만철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그가 목격한 무언가의 형태가 보였다.
희미한 윤곽이 보이는 가운데, 그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지느러미, 날카로운 이빨과 쉬지 않고 꿈틀대는 아가미.
그런데 얼굴이 너무도 인간과 닮았다.
심지어 물고기에게는 없는 양팔도 달려 있다.
푸른 비늘을 몸에 덮고 있는 이 생명체는 개체 수도 엄청났다.
김만철이 숨을 몰아쉬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키메라, 바다 속에 물고기랑 합성한 키메라들이 살아요! 그들이 바다를 지배하고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