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41화 (141/200)

141화. 미래에서 온 율리만

미나의 모습을 한 율리만은 일행이 안정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강백현과 앨버트는 충격적인 내용에 당황했지만,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유전자 편집기술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기계의 부속품을 교환하는 것처럼 원하는 DNA를 잘라내거나 결합할 수 있었죠. 그로 인해 인간은 모든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감정이 결여된 율리만의 대화. 검은 구체가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2057년, 유전자 편집기술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이 액체로 변하고, 액체가 다시 인간의 형태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면역력을 올리거나, 입에서 불을 뿜거나, 일정시간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주요한 쟁점사항이 되었죠.』

율리만의 설명에 강백현이 되물었다.

『그럼 우리가 능력을 쓰는 게 유전자 편집기술 때문이라는 거야?』

『그렇습니다. 유전자 편집기술을 응용해서 당신들을 그런 몸으로 만들었죠.』

『왜! 어떻게! 왜 그런 건데?』

『인간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일단은 지금의 내용을 설명해야 당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해명할 수 있으니까요.』

율리만은 다시 화면을 띄워보였다.

그 화면에는 범죄자들이 보였다.

『유전자 편집기술로 능력을 개방한 인간들은 점점 더 대담해졌습니다. 공중을 날거나, 은행을 털거나, 이유 없이 사람이나 동물을 해치는 등의 돌발행동이 늘어났죠. 처음에는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었지만, 멕시코나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정부의 영향력이 작은 국가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는 보시는 바와 같죠.』

스크린에 건물이 불타는 장면이 떠올랐다.

농장은 바싹 말라 있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의 가게에는 물건이 전부 동난 상태다.

『범죄자가 우글거리며 생산활동, 경제활동 자체가 마비되었습니다. 아! 2019년의 베네수엘라 사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우시겠네요. 앨버트 씨는 현재의 신디아를 생각하시면 되겠고요.』

무정부 국가는 살아남기 힘들다.

생산활동이 없으니 자급자족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주변에 범죄자들이 많으니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했는데?』

『G20 정상회의에서 각 국가들은 대책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신기술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의 유전자 편집을 막고 예전의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게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됐구나?』

『그렇습니다. 유전자 편집은 양날의 검. 이것을 통제할 수 없었던 국가들은 범죄로 인해 무너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달랐죠. DNA 편집기술을 통해 능력을 사고파는 것이 가능했던 선진국들은 그 거래에 각종 거래세를 물었습니다. 거래세는 거래 총액의 절반에 육박했지만 그럼에도 더 좋은 능력을 얻으려는, 남보다 멋있어 보이고 화려해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다들 기꺼이 세금을 냈고, 선진국의 지배층은 그로인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경제논리, 강백현은 사실 거기까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앨버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잘된 거 아니야? 자본을 축척했으니 군대나 경찰을 움직일 힘도 있을 테고.』

『네. 처음에는 그랬죠.』

『그런데?』

『유전자 중 텔로미어는 장수에 기여합니다. 텔로미어의 길이에 따라 장수 여부가 결정되죠. 문제는 유전자 편집기술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짧아지게 만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뭐라고?』

강백현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배운 능력은 총 4개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줄어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럼 나는? 얼마 못 사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연구 결과 4번까지의 유전자 편집은 대부분의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5번 이상의 편집이었습니다. 그동안 유전자 편집을 4회로 제한해두었습니다만, 이를 무제한으로 바꿔버린 거죠. ‘확인되지 않은 위험’이라면서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래도 생명이 줄어든다고 하면 다들 안 할 것 같은데?』

스크린에 새로운 화면이 떠올랐다.

거리에서는 각기 다른 능력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사람들은 쇼핑하듯 고민 없이 각종 능력을 배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닙니다. 일반 시민들은 텔로미어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몰랐거든요. 유전자 편집이 일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죠. 정부에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수요가 늘자 기술이 민간에 개방되었습니다. 불행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유전자 오염이 시작되었거든요.』

유전자 오염에 대한 내용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유전자 오염은 바이러스에 의해 유전자가 일정한 패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다. DNA가 무작위로 결합되거나 잘려나갔다.

그로 인해 능력을 잃을 수도 있었다. 능력이 불안정해진 나머지 통제를 잃고 무차별하게 발휘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정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인권단체에서는 유전자 편집의 위험성을 공개하라며 정부에 압박했지만, 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한 국가?』

『네. 대한민국만은 유전자 편집기술이 무차별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았습니다. 붉은 악마라는 반정부 단체의 힘이 정부보다 컸거든요.』

『다행이네.』

『네. 정말 다행입니다. 저도 일단은 대한민국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요.』

『뭐?!』

율리만은 대화를 계속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목적은 전부 돈이었습니다.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해야만 더 좋은 능력을 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능력 개발.

그렇다. 유전자 편집기술은 연구개발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하늘을 나는 능력, 거대화 능력, 마음을 읽는 능력에 보호막을 쓰는 능력, 거기에 염력이나 텔레포트까지.

그간 보아 온 다른 이들의 능력을 떠올리면서, 백현은 당시의 사람들이 수많은 능력을 개발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개발비를 투자해서 만든 텔레포트나 염력, 하늘을 나는 능력 등은 국가기밀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대한 금액이 들어갔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로 인해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날 줄은 그들이라도 예상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전쟁?!』

『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전세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돈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자원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닌 이 전쟁은 도무지 끝이 나질 않았습니다. 강력한 시민단체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능력의 개발에 소홀했던 대한민국은 가까스로 전쟁의 풍파에서 벗어났습니다만, 다른 국가는 그렇지 못했죠.』

『…….』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가 오고가는 탓에 앨버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간들의 역사가 자신들보다 오래됐다는 것은 느낌상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했어? 마냥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네. 여기서는 북한과 분리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네요.』

『북한?』

『네. 북한은 이걸 기회로 여겼습니다. 무정부 사회가 되어버린 다른 국가와 달리 단일지도자가 지배하는 체계인 북한에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기회를 틈타 자신들이 세계를 장악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개발한 게 바로 당신들입니다.』

미나의 모습을 한 율리만이 앨버트를 가리켰다.

앨버트는 당황했다.

『나를 개발해?』

『아뇨. 당신 종족을 개발한 거죠. 거인들은 사실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스스로의 체내에서 텅스텐을 합성할 수 있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텅스텐?』

『네. 능력을 봉인하는 금속입니다. 해당 금속은 인간의 신체를 통해 연성 가능한 모든 능력을 흡착합니다. 그래서 능력자들은 해당 금속에 닿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피부가 파랗게 변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항의하면 사형이었으니까요.』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텅스텐 금속이 왜 만들어졌는지.

『북한은 잔혹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능력이 통하지 않는 인간들을 제조하는 데 성공하자, 분단된 동족인 남한 사람은 물론,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씁쓸한 내용.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가만히 있었어? 다른 나라에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을 거 아니야!』

백현의 질문에 앨버트가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있게 만들었겠지. 통제되지 않는 시민들을 알아서 제거해준다는데, 정부로서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을 거야.』

앨버트의 말에 율리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각 정부들은 능력이 통하지 않는 파란 인간의 활동을 오히려 반겼습니다. 북한도 처음에는 각국의 안정을 위하여 투입시킨다는 목적을 내세웠죠.』

『그런데 아니었구나?』

『네. 맞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국가를 전복시킬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역사는 굉장히 복잡하게 흘러갔다. 유전자 편집기술의 독점 때문에 벌어진 전쟁, 이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낸 능력면역인간들, 그로 인해 이어진 파괴와 기술의 탈취.

『북한의 실제 목적은 유전자 편집기술의 탈취였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 능력이 통하지 않는 인간을 만든 것이었죠.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만들어진 인간들이 인격을 잃어버렸다는 것.』

『인격을 잃어버렸다?』

『네. 텅스텐을 합성해 만든 이 인간들은 점차 인간이었던 기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엔 통제 불능에 빠져버렸죠. 그 후로 찾아온 것은 인류의 멸종이었습니다. 능력이 통하지 않는 푸른 괴물들이 인간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만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를 닥치는 대로 죽이고 말았죠.』

『총이나 미사일 같은 건 안 썼어? 그런 걸로 제압하면 되잖아.』

『네. 안타깝게도 북한은 핵 보유 국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체 처리를 하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죠.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뭔데?』

『전염입니다. 같은 인간종에게 전염되는 유전자 오염이 발생했습니다. 능력자들의 능력에 면역이 되는 데다, 감염된 능력자들이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오염이었습니다. 물론 북한이 의도한 것이었죠.』

최악. 사상 최악의 결과였다.

일반인조차 푸른 괴물로 변해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푸른 피부를 가진, 능력에 면역인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좀비 같았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가장 적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죠.』

『그랬겠네.』

『그리고 제 누님이신 율리안 박사님이 그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술을 개발해냈죠.』

『그게 뭐지?』

『인간을 축소시키는 기술입니다. 유전자 오염은 세포의 오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율리안 박사님은 세포 크기가 10um 이상일 때만 오염이 적용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오염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축소하기 시작했죠. 실패했지만요.』

『실패라니?』

『말 그대로 실패입니다. 공기로 호흡하는 과정에서 이미 모든 인간들이 유전자 오염에 노출된 상황. 언제 변이가 될지 모를 뿐,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모두 오염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인간을 축소시키면 이후로는 축소된 인간들도 인격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실험은 그 단계에서 중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었죠. 축소된 공간인 노아의 방주에 거인들만 탑승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창문 옆 녹색 거인들이 쿵쾅쿵쾅 진동을 일으키며 휘젓고 다니는 게 보인다.

『저것들은 뭔데? 왜 바깥에 거인들이 돌아다니는 건데?』

『저것들은 변종이죠. 그래서 여러분을 과거로부터 데려올 수밖에 없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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