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40화 (140/200)

140화. 율리만의 정체

히든 페이즈 3가 끝나고 앨버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끝난 거지?』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저것들은 도대체 뭐야!』

백현이 새파랗게 질린 눈으로 녹색 거인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발바닥만 해도 거의 1m는 되는 크기.

녀석에게서는 고기 타는 냄새뿐 아니라 온갖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문득 잊고 있었던 인물이 생각났다.

『나타샤는?』

강백현의 말에 서둘러 뛰어왔던 곳을 되돌아가는 앨버트.

그러나 나타샤는 이미 회생 불능으로 보였다.

『앨버트 님. 옆에 계시죠?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요.』

『아무 말 하지 마. 너 위험해.』

나타샤의 내부 장기가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끔찍 그 자체였다.

나타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앨버트님, 부디 신디아를 위해, 신디아의 부흥을 위해 힘내주세요. 제 목숨이 헛되지 않게……. 후세에도 나타샤 블랙이라는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목적을 꼭 달성하셔야 해요.』

『나타샤…….』

강백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슬픔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처절한 환경에 너무 익숙해진 때문이었다.

나타샤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앨버트는 고개를 푹 숙였다.

- 오로로로, 오로로로.

바다사자 또한 마찬가지.

녀석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고 있었다.

『가자.』

『응. 잠깐만.』

앨버트는 목례를 하며 명예롭게 사망한 나타샤와 다른 동료들의 넋을 기렸다.

곧 검은 구체들이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레이저가 시신을 잘게 쪼개었고 그 파편을 구체가 남김없이 흡수했다.

『잘 가. 나타샤.』

『…….』

거인들의 세계에서 죽음은 흔치 않아서일까? 앨버트는 나타샤가 구체에게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고, 어깨에 올라 있는 백현도 더 이상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 * *

섬 중앙부분, 이곳의 바닥판은 원형이었으며 텅스텐 대신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었다.

강백현은 그 위에 서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해보았다.

그의 손짓에 보호막이 생겨났다.

몸이 두 개로 분리되었다.

자가치유 능력으로 인해 체력이 서서히 회복된다.

모든 게 정상이다.

『이거 아마도 뚜껑 같지?』

『응. 열어봐야겠지.』

둘은 상의 끝에 바닥의 플라스틱 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래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이 보인다.

그 아래는 까마득하게 깊었기에, 빛이 닿지 않아 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거인 하나가 간신히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을 보며 앨버트가 강백현에게 확인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알아. 갈 거지?』

『응. 약속했으니까.』

저 멀리 자신들이 타고 온 화물선이 보인다.

선원들이 망원경으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앨버트는 화물선 방향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환호하는지, 응원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었다.

여기에 끝이 있다는 것.

세상의 모든 비밀이 여기 있다는 것.

계단을 내려가는 앨버트의 어깨에 올라탄 강백현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미니맵을 켰다.

텅스텐 때문에 기능하지 않았던 미니맵이 이제는 보인다.

『아래로 쭉 내려가. 40m만 내려가면 돼.』

『이제 보이는 거야?』

『그래. 아주 잘 보여. 그런데…… 그런데…….』

강백현은 미니맵에 포착된 수많은 무언가를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뭔데? 뭐 때문에 머뭇거리는 건데?』

『아주 많아.』

미니맵에 수백만 개의 점이 보인다. 수백만이 아니다. 수천만, 아니 수억, 수십억의 점이 난립하고 있어 강백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생명체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평생 세도 다 못 셀 만큼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어.』

『…….』

백현의 말에 앨버트는 솔직히 두렵기 짝이 없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바닥을 향해 내려갈 뿐이었다.

앨버트가 바닥에 발을 디디자, 계단과 연결된 복도의 전등이 착! 착! 착! 착! 소리를 내며 그들이 가야 될 방향을 밝혀주었다.

언제 만들었는지 터널을 감싼 아치형 콘크리트가 삭아 있었다.

100년이 지나도 멀쩡한 콘크리트 건물인데, 그게 삭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나 거인의 출입이 없었다는 뜻.

전등도 전부 켜지긴 했지만 이내 깜박거리는 전등이 속출했고 어떤 전등은 아예 스파크와 함께 꺼져버리기도 했다.

앨버트는 강백현이 언급한 수많은 생명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20분을 걸었을까?

눈앞에 거대한 문이 있었다.

미니맵으로 보면 문 안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었다. 그리고 백현과 앨버트가 목표로 하던 존재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현에게 대화를 걸었던 지성체.

율리만이라 불리는 존재가 바로 문 너머에 있는 것이다.

『이제 문만 열면 돼.』

『아-아.』

『넌 어떤 부탁을 할 거야?』

강백현은 앨버트에게 물었다.

『죽은 자를 구해달라는 부탁이면 될까? 넌 어떤 부탁을 할 건데?』

『모든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원래 크기로 돌아가는 것.』

『이제 너랑은 마지막일 수도 있는 거네. 섭섭한걸?』

『됐거든요?! 감정 죽이고 일단 들어갑시다. 율리만이 소원 들어주는 드래곤볼도 아니잖아. 큰 기대는 안 해.』

『드래곤볼? 그게 뭔데?』

『…….』

드래곤볼을 모르는 앨버트의 반문에 강백현이 말문이 막혔다.

최신판 『드래곤볼 슈퍼』까지 나온 만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를 모르다니.

70억 중 30억 명은 알만한 그런 만화인데…….

그러고 보니 동생 미나가 생각났다.

미나는 『드래곤볼』이나 『나루토』, 『블리치』 같은 만화를 정말 좋아했다. 아! 요즘엔 『도쿄구울』도 보고, 『진격의 거인』도 봤다고 했다.

한국 만화 중에서는 『노블레스』와 『신의 탑』 좋아했지. 『갓 오브 하이스쿨』하고 『열렙전사』도 좋아했고.

소파에 같이 앉아 애니메이션을 보고,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포털의 웹툰을 감상하던 기억들.

그 추억들을 되돌리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열어. 들어가자.』

『그래.』

앨버트가 복도 끝에 연결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밝은 빛이 쏟아졌다.

너무 밝아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곧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누군가가 스스로 빛의 세기를 줄인 게 분명했다.

밝은 빛에 가려진 시야가 돌아오자 커다란 금속의 구체가 보였다.

해당 구체는 행성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자전하는 행성이었다.

행성은 원형으로 된 발판 위에 올려져 있고, 그 발판 옆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다.

앨버트와 백현은 낭떠러지 옆의 외벽을 바라보았다.

외벽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유리 안쪽은 얼마나 차가운지 내부에 얼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얼음 가운데 무언가가 얼어 있는 것 같았다.

강백현은 유리 안쪽에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냉동 생명체.

원래 미니맵으로 확대해서 보면 형태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얼음 때문에 불가능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강백현이 앨버트에게 부탁했다.

『벽 쪽으로 접근해줘.』

『응.』

투명한 얼음으로 채워진 유리벽은 어찌 보면 영롱한 크리스탈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크리스탈의 안쪽에 백현과 같은 크기의 사람이 보인다.

‘인간?! 인간들이 여기 있어?’

여기도, 저기도. 위에도 아래에도, 좌측에도 우측에도.

모든 유리벽 안에는 인간들이 얼음에 냉동되어 있었다.

그때 빙글빙글 돌던 행성 모양의 구에 구멍이 뚫리더니, 그곳에서 검은 액체가 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진 액체가 형태를 갖추며 거인의 크기로 커지기 시작했다.

앨버트보다 약간 작은 키.

긴 머리카락에 동양인 풍의 이목구비.

전형적인 한국인의 체형과 얼굴이 되었다.

맨발에 분홍색 파자마를 입은 모습이 드러났다.

강백현은 검은 액체의 최종형태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나?’

동생 미나를 똑같이 닮은 여성이 앨버트와 백현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앨버트,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아, 강백현 씨도 고생 많았어요.』

앨버트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저는 노아의 방주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생체기반AI 율리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생존과 번영을 지키고자 율리안 박사님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죠.』

처음 듣는 이름. 율리안이라는 이름에 앨버트가 다시 되물었다.

『AI 프로그램? 율리안 박사? 노아의 방주? 이런 게 다 뭐죠?』

『차근차근 설명해드릴게요. 걸어가면서 이야기하죠. 율리안 박사는 이 세계, 노아의 방주를 만든 분의 이름이에요.』

백현의 동생 미나를 꼭 닮은 그녀가 방 안쪽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원형으로 된 발판 끝에는 사무실 같은 공간이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백현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미나의 방하고 똑같아. 침대, 인형, 창문에 가구들의 배치까지!’

율리만은 그런 백현의 모습에도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노아의 방주는 구약성서의 창세기라는 이야기에 나와요. 세계가 멸망하기 전 노아라는 인물이 만든 배로서, 각 짐승들과 인간들을 싣고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배를 말하죠.』

『그 이야기를 왜 하는 겁니까?』

앨버트의 말에 율리만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거인 종족은 그 현재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어요. 여러분이 있는 곳도 바로 그 방주 안이고요.』

『네?』

미나와 꼭 닮은 율리만이 창문에 걸린 커튼을 걷어냈다.

그러자 창문 밖에 스크린이 보였다.

아니, 스크린 같이 생긴 투명한 막이 보였다.

『저게 뭐야! 저게 다 뭐냐고!』

앨버트가 투명한 막 바깥의 풍경을 보고 소리 질렀다.

수백, 수천의 거인들이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좀 전에 싸웠던 초록 거인들이었다.

이 초록 거인들은 눈이 풀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정체 없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율리만은 쓴웃음을 지었다.

『율리안 박사님은 인류의 최후 방어선인 제주도를 향해 가고 있어요.』

『제주도?』

『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가장 큰 섬. 해군기지가 있는 장소죠. 그곳만은 아직 오염되지 않았거든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백현아, 이게 무슨 소리야?』

앨버트가 혼란스러운 듯 백현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제주도?』

백현 또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나의 모습을 한 율리만은 커튼을 다시 닫은 후, 자신의 손을 녹여 검은 구체로 변환했다. 그런 뒤 검은 구체의 스크린을 통해 현재의 역사를 설명했다.

『인간들은 2025년, 위대한 발명을 했습니다. 율리안 박사님이 모든 질병에 저항할 수 있는 DNA 편집기술을 개발하셨죠.』

『그게 지금 왜 나오는데?』

『중요합니다. 그 기술을 통해 인간이 거인이 되고, 거인이 저 초록 거인이 되었으니까요.』

“뭐?!”

『강백현 씨와 앨버트 씨는 유전자의 기준으로 보아 99.93%가 일치하는, 말하자면 동족입니다. 같은 휴먼이며 같은 인간이라는 뜻이죠. 일단 제 설명을 들어주시겠어요?』

인간이 거인이고, 거인이 초거인.

크기에 상관없이 같은 종족이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들은 강백현과 앨버트.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율리만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이 안정될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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