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38화 (138/200)

138화. 전세 역전

나타샤가 쏘아올린 신호탄에, 여정에 자원했던 거인들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펫과 별 유대감이 없는 거인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신디아를 위하여.

앨버트를 위하여.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앨버트 님! 괜찮으십니까?』

『전하! 무사하십니까?』

그들은 걱정스런 얼굴로 현 황제인 앨버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제이미 함장이 있었다.

거인들의 표정에 의문이 가득했으나, 제이미는 앨버트가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함장님. 배로 돌아가시지요.』

제이미는 마지막까지 기품을 잃지 않았다.

『전하,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타샤! 내 펫을 부탁하네.』

『네?』

『순해서 괜찮을 거야. 꽤 똑똑하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검은 구체를 통해 자신의 펫을 지정 해제하는 제이미.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에 나타샤는 오로로를 펫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짐. 하지만 그의 부탁이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상황에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띠리링 띠리링!!!

검은구체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1시간 30분 남았습니다.>

제한시간의 경과에 따라 검은 구체가 경고를 전달했다.

거인들 대부분은 이런 시련을 겪어본 일이 없었다.

검은 구체는 예상대로 혹은 전설대로 만만치 않았다.

<들어오는 것은 허락합니다만, 나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시련을 끝까지 완수하십시오.>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구체의 글자들.

백현은 홀로그램의 메시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 후 뒤쪽으로 철수하는 제이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이미는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도 철수를 계속할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으아아아아악!!"

검은 구체가 조금의 지체도 없이 레이저로 제이미를 죽였다.

제이미의 심장을 꿰뚫는 광선.

함장을 운송하던 선원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제이미!』

『제이미 함장님!』

『데미안!』

『크라이시스!』

구체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의 이름이 섬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레이저에 의해 가슴에 구멍이 뚫린 이들이 바다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빨리 가라앉았다.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자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이제 선원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불과 다섯 남짓.

백현은 페이즈1부터 겪었던 최악의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나 그들을 구해줄 여유가 없었다.

자신보다 50배는 더 크고 무게로는 약 2500배.

물에 빠진 거인을 육지로 끌어낼 힘이 백현에겐 없었다.

잠시 후, 가라앉은 거인들의 몸이 뒤집어진 채 떠올랐다.

부력에 의해 저절로 바다 위로 떠오른 것.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 위해 발버둥치던 거인이지만 이제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다 죽었어.』

강백현의 말에 앨버트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목숨을 잃을 줄은 몰랐기에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강백현은 조금 전 제이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라는 말.

결국 그 말은 유언이 되었다.

강백현은 독에 중독되어 잘려나간 제이미의 팔을 들어올렸다.

강백현의 행동에 앨버트가 소리쳤다.

『너 뭐해!』

강백현은 제이미의 잘려진 팔을 주저 없이 2번째 줄에 있는 붉은 판에 집어던졌다.

그것만으로도 백현의 슈트가 비명을 내질렀다.

자심의 체중보다 20배는 무거운 팔을 던진 탓에 슈트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쏟아졌다.

다행히 붉은 판 위에 던져진 팔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됐어. 뭔가 풀릴 조짐이 있어.'

그런데 강백현의 몸이 갑자기 위로 들려졌다.

앨버트였다. 그의 몸을 거꾸로 들어 눈높이를 맞추는 앨버트.

앨버트는 단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강백현에게 따져물었다.

『넌 이 상황이 우스워?』

『놓고 이야기해. 나 진지해.』

『지금 동료가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지금 장난 쳐!』

앨버트는 그 말을 끝으로 강백현의 몸을 다리만 잡고 마구 흔들었다.

전신이 흔들리는 탓에 뇌가 두개골에 충돌하여 끔찍한 고통이 밀려오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그만해! 시간 없어.』

『얼른 사과 안 해? 네가 한 짓이 어떤 짓인지나 알아?』

죽은 망자의 시체를 유린한 자. 도덕도 없는 건방진 녀석.

강백현이 슈트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앨버트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손가락이 부러진 앨버트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으로 인해 악력이 약해진 틈을 타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강백현.

이번에는 제이미의 다리를 2번째 줄의 녹색 판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리가 맹독에 노출되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강백현! 너 일부러 나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야?』

『네가 대화가 안 통하니까 지금 해법 찾고 있잖아. 가만히 있으면? 망자가 살아 돌아오니? 지금은 앞으로 전진해야 할 때야. 나랑 싸울 때가 아니고! 뒤를 봐. 너를 바라보는 백성들이 불안해하고 있잖아!』

앨버트가 백현의 말에 시선을 뒤로 돌렸다.

숙연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부하들이 보인다. 선원과 지원자들이 앨버트의 행동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함정이 색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나타샤? 그렇다고 녀석의 행동이 정당화되진 않아. 제이미의 몸을 던지는 게 이해돼? 이해 되냐고!』

『아니에요. 앨버트 님, 백현이는 제이미 함장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제이미 함장님이 그러셨잖아요. 녹색 판은 체온으로 감지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확인하려고 던진 거라구요.』

앨버트의 얼굴에서 초조함이 엿보였다.

『강백현, 정말 그런 거야?』

『그래. 체온이 식기 전에 던져야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제이미가 말했잖아. 자기 신체를 이용하라고. 기억 안나?』

할 말을 잃은 앨버트.

하지만 강백현은 앨버트의 실수나 사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의 머리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조합하고 또 조합하고 있었다.

강백현이 나타샤를 불렀다.

『나타샤! 날 은색판 끝으로 데려가줄래? 확인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

『응.』

나타샤의 어깨에 올라간 백현이 검은 구체가 만들어낸 경계에서 첫줄 가장 왼쪽을 확인하러 이동했다.

그러자 앨버트가 강백현을 불렀다.

『백현!』

『일단 머리 좀 식히고 있어.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아, 응.』

첫 줄에 있는 200개의 판.

『1, 2, 3, 4…… 45, 46…….』

나타샤가 놀란 눈으로 백현을 바라보았다.

『숫자?』

『응. 색깔은 페이크인 것 같아. 일정한 규칙이 없었어.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숫자에 답이 있는 것 같아.』

백현은 총명했다.

첫줄에 있는 200개의 칸을 보며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1-1 페이즈의 비밀을 알아낸 것 같아.』

『벌써?』

『다 모인 자리에서 알려줄게. 일단 앨버트와 합류하자. 지금쯤 화는 풀렸을 거야.』

200×100.

2만 개의 발판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곳.

이곳의 비밀을 알게 된 백현은 나타샤와 함께 앨버트와 다른 선원들을 찾았다.

어렵지 않게 앨버트와 선원 일행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백현의 얼굴에는 씁쓸함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200×100으로 이루어진 텅스텐 판 외곽.

그들은 정식으로 문제를 풀려 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해당 구역을 통과하려 했던 것 같았다.

검은 구체에 뜬 메시지.

<히든 페이즈 1-2, 유도 레이저>

쉬운 방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레이저를 피해 해당 단계를 통과해보세요. 30분간 피하는 데 성공하면 통과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검은 구체의 레이저는 거인의 신체능력으로 피할 수 없었다.

앨버트를 제외한 다른 거인들의 신체에는 이미 커다란 바람구멍이 생겨나있었다.

구멍 사이로 떨어지는 핏물.

깔끔하게 절단된 단면.

강백현은 앨버트를 보며 다그쳤다.

『부하들을 먼저 보낸 거야?』

『아니야. 내가 지시한 게 아니야! 단지 금을 넘어 밟았을 뿐인데 이렇게 되어버렸어.』

강백현은 검은 구체 뒤에 숨은 존재에 커다란 적개심을 느꼈다.

자신에게 《조종》능력을 부여한 율리만이라는 존재, 그는 왜 거인과 인간들을 괴롭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언제까지 죽여야 네 직성이 풀려?』

단순히 금을 넘은 거인들에게 부여된 히든 페이즈 1-2의 유도레이저.

그들의 다리와 팔에는 벌써 바람구멍이 뚫려 있었다.

거인들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경솔했나 봅니다.』

『아니야. 말하지 마. 치료해줄게. 빨리 배로 돌아가자.』

『배로 돌아가는 퇴로는 없지 않습니까?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반드시 저희들의 염원을 이루어주실 거라 믿습니다. 전하.』

『죄송합니다. 전하.』

선원들을 또 다시 잃은 앨버트. 그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으아아아아악!』

그런 앨버트를 놔두고 강백현이 나타샤에게 자신의 풀이를 설명했다.

『나타샤, 이건 두뇌싸움이었어.』

『두뇌싸움?』

『응. 다행히 굉장히 쉬운 수준. 중학교 1학년 수학만 할 줄 알면 다 풀 수 있는 수준이었지. 소수의 개념을 아느냐 마느냐의 차이였거든.』

『소수?』

강백현은 소수의 개념을 모르는 나타샤를 보며 다시 되물었다.

『나타샤, 진짜 소수가 뭔지 몰라?』

『응. 미안, 설명 좀 해줄래?』

『소수는 1보다 큰 자연수를 뜻해. 곱했을 때 자신과 1 외에는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 특징이 있지.』

설명에도 나타샤는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2는 1보다 큰 자연수이면서, 정수로 나눌 수 있는 게 자신인 2밖에 없지? 그럼 소수야. 3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4는? 4를 2로 나누면 2가 되잖아. 이렇게 되면 소수가 아닌 거야.』

『그럼 5는 소수고, 6은 2와 3으로 나눠지니까 소수가 아니겠네.』

『그래. 그럼 이제 이해하기가 쉽겠네. 네가 처음에 밟은 녹색판의 수는 73, 나타샤가 밟은 판도 79로 소수였지. 반면 제이미가 밟은 녹색판은 82. 2와 41의 배수라서 소수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함정이 발동했던 거고.』

『그랬구나. 생각보다 간단한 거였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나타샤, 앨버트를 인도해줄래? 이제 앨버트한테도 우리한테도 퇴로는 없어.』

강백현의 말에 나타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야속하게도 강백현의 말대로 도망칠 곳은 없었다.

검은 구체가 그들이 머무르는 시간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다.

『가자!』

『응.』

강백현은 더 이상 희생자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많다고, 거인이 많다고 되는 게임이 아니다.

위대한 지도자의 여정.

그건 희생자가 없어야 의미가 있는 것.

강백현이 나타샤의 어깨에 올라, 소수인 발판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3, 203, 403, 601, 807. 강백현은 안전한 판의 숫자를 속으로 생각하며 나타샤가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

- 앞칸! 앞칸! 왼쪽으로 두 칸! 오른쪽으로 여섯 칸!

나타샤는 그동안 그냥 작은 생명체라 여겼던 강백현의 진가를 알아차렸다.

1초 만에 소수와 소수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그의 비상한 머리.

적어도 자신의 주변 거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명석함.

『앨버트 님, 가셔야 합니다.』

『응. 가자. 가야지.』

앨버트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강백현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걷기 시작했다.

거인들은 언제부턴가 공부를 멀리했다.

적어도 신디아는 그랬다.

가난함을 핑계 삼아 공부하는 대신 과일을 따고, 공부하는 대신 농사와 가축을 길렀다.

『아르케의 거인들이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통과했을까?』

추리력, 순발력, 거기에 명석함까지 두루두루 겸비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페이즈.

앨버트의 질문에 강백현이 답했다.

『아르케의 거인들은 분명 너희보단 똑똑해. 하지만 도전정신이 부족하지. 똑똑함을 따지기 전에 너희들의 도전정신을 난 오히려 높게 생각해. 적어도 신디아는 2차례나 이곳에 도전했으니까.』

수만 개의 발판 중 안전한 발판만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페이즈 1-1의 가시함정을 통과한 강백현이 나타샤의 어깨에서 무릎, 무릎에서 바닥에 내려와 뒤돌아섰다.

그리고 죽은 자들을 기리기 시작한다.

두 손을 모은 채, 죽은 자들을 향해 기도를 하고, 이후 엎드려 절하며 그들이 좋은 곳에 가기를 기원한다.

페이즈를 통과한 후 강백현은 앨버트와 나타샤에게 말했다.

『이것만은 약속할게. 난 절대 너희들을 먼저 배신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날 믿어줘. 이제 살아남은 것은 우리 셋뿐이니까.』

강백현의 말에 나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앨버트도 황제의 지위를 내려놓고 강백현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울음소리를 내었다.

- 오로로로! 오로로로!

바다사자 오로로가, 나타샤가 밟았던 판을 똑같이 밟고 따라온 것.

『살아있었구나.』

- 오로로로! 오로로로!

셋이 아닌 넷.

인간과 거인 그리고 동물. 그들의 앞에 구체가 몰려왔다.

<페이즈 1-1 달성에 따라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쓸모없는 포인트.

어차피 능력은 현재 봉인상태다.

그때, 구체는 백현과 나타샤, 앨버트와 바다사자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왜 지금 와서 페이즈 1을 통과한 그들의 모습을 담을까?

그 이유가 밝혀졌다.

검은 구체가 갑자기 액체를 토해낸다. 그리고 그 액체에 구체들이 붉은 광선을 쏘아댔다.

꿈틀꿈틀.

비틀비틀. 점차 어떤 형태로 변해가는 액체.

<히든 페이즈 2-1 자신과의 싸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상대를 이겨내세요.

강백현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형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 맞췄다.

항상 그리웠던 사람. 자신이 이 세상에 있게 해준 존재.

“아빠?”

“그래. 백현아. 잘 지냈니?”

검은 구체는 야속하게도 강백현의 앞에 가짜 아빠를 만들어냈다.

녀석이 연기를 시작했다.

말투도 행동도 기억하는 그대로이다.

“아빠…….”

“그래. 우리 아들, 그동안 열심히 살았지? 이제는 돌아갈 때란다.”

“어디로?”

“천국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한 자가 손에 식칼을 들고 뛰어왔다.

모든 게 백현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아빠! 뭐하세요?”

“뭐하긴! 우리 아들 죽이러 왔지.”

검은 액체는 백현의 소중한 상대뿐 아니라 다른 셋의 소중한 상대로 변화하여 공격의 채비를 갖춰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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