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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137화 (137/200)

137화. 은박의 필드

반듯하게 깔린 텅스텐 바닥을 걷던 나타샤가 앨버트에게 물었다.

『펫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것 말고는 생각보다 크게 위험한 것 같지 않은데요?』

하지만 백현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아니 100프로 함정이에요. 저쪽은 분명 목숨을 내걸고 하는 게임을 제안하겠죠.』

『왜 그렇게 생각하죠?』

『저는 겪어봤으니까요. 그리고 구체를 통해 전달 받으셨을 텐데요. 위대한 지도자의 시련이라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목숨을 걸라는 거죠. 왜 지도자의 시련이라고 했을까요? 저쪽이 하는 말에는 모두 속뜻이 담겨 있어요.』

미나와 달리 아직 바깥세상의 존재를 모르는 백현에게는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여기에 정답은 없었다.

50년 전 이야기에 따르면 섬 중앙부에 출입구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야 한다.

『일단 섬 중앙까지 돌파하죠.』

『네. 전하.』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회색 텅스텐 바닥의 경계면이 보이는 것이다.

경계면을 기점으로 텅스텐의 색깔이 다르다.

회색과 은색.

큐빅처럼 무수히 많은 사각의 은색 텅스텐 판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다.

그 경계면이 뚜렷해서 함부로 나갈 수가 없었다.

『일단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죠.』

- 오로로로!

백현의 말과 함께 제이미의 바다사자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주인의 바지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앨버트는 달랐다.

『가자. 그냥. 아무것도 아닐 거야.』

『아니야. 기다려! 앨버트! 기다려!』

앨버트는 백현의 말을 무시하고 은색 발판을 밟았다.

그러나 예상 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앨버트는 방긋 웃었다.

『이것 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하지만 백현은 눈빛이 변해있었다.

『왜? 네 예상이 틀리니까 기분 나빠서 그러는 거야?』

『아니, 여기는 함정이야. 이렇게 쉽게 통과시킬 리가 없어.』

백현이 슈트의 힘을 이용, 앨버트의 셔츠 주머니에 담긴 사탕 하나를 집어 들어 앨버트가 밟은 판 앞쪽에 집어던졌다.

사탕이 은색 텅스텐 판에 떨어지자, 앨버트가 밟은 판과는 달리 드르륵 하고 떨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소리와 함께 텅스텐 판에 수많은 원형 구멍이 생겨나고, 그 구멍 사이에서 일순간 수많은 금속가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정확히 3초 후. 텅스텐 판 밑으로 사라지는 가시 기둥들.

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5초 후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창의 내용은 이러했다.

《히든 페이즈 1-1. 가시함정》

- 총 200×100개의 은색 텅스텐 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의 함정을 극복하여 다음 페이즈로 진입할 것.

《보상 : 10,000포인트, 소생의 돌 1개.》

홀로그램과 함께 섬의 중앙부에서 수많은 구체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중앙부 바닥에서 엄청난 수의 구체가 비행하고 있었다.

검은 구체들은 은색 텅스텐 판 테두리의 경계면에 결계를 만들었다.

커다란 큐빅 형태의 결계는 홀로그램에 나타났던 페이즈 1-1, 가시함정의 구역이었다.

구역의 경계를 뚜렷해지자, 구체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백현의 앞에 제한시간이 떠올랐다.

<제한시간 : 2시간>

백현은 머리를 싸매며 해법을 찾았다.

총 2만 개의 발판.

첫 줄에 200개. 2번째 줄에 200개. 3번째 200개, 그런 줄이 전부 100개.

결계 안쪽.

검은 구체의 빛을 받아서일까? 은색의 텅스텐 판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전부 은색이었던 텅스텐이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변했다. 규칙 없이 변화하는 것이 완전히 랜덤인 것 같았다.

각기 다른 색깔로 변화한 텅스텐 발판.

한편, 거인 셋은 머리를 싸매며 의논을 시작했다.

이미 그들에게도 백현이 본 것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기 때문에 백현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일단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나타샤의 말에 제이미가 대답했다.

『각 색깔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한 번씩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

『네. 저도 함장님 말씀대로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네요.』

그 말을 끝으로 나타샤가 주머니에서 머리핀을 꺼냈다.

머리핀의 개수는 총 3개.

『우선 빨간 면부터 확인해볼까요?』

나타샤가 머리핀 하나를 붉은 색의 텅스텐에 던졌다. 그런데 예상 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빨간 색은 밟아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나타샤는 용기를 내어 머리핀이 있는 붉은 판 위에 다리를 가져다댔다.

그런데 거친 음성이 나타샤의 행동을 제지했다.

『나타샤! 그만! 안 돼! 핀을 봐! 머리핀이 붉게 달아올랐잖아!』

백현의 함성에 놀란 나타샤가 붉은 판을 밝으려던 다리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어느새 본연의 색을 잃고 붉게 달궈진 머리핀이 시야에 잡혔다.

나타샤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백현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위험할 뻔했어. 고마워. 백현』

『됐어.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가자고!』

사실 나이는 동갑인 백현과 나타샤. 그래서 언제부턴가 서로 말을 튼 사이였다.

붉은 판은 뜨거운 성질을 지녔다.

그렇다면 푸른 판은?

역시나, 예상 그대로다.

붉은 판은 용암처럼 뜨거웠고, 푸른 판은 액체질소처럼 차가웠다.

나타샤가 던진 머리핀은 붉은 판에서는 녹아 액체가 되더니 연이어 기체가 되어 사라졌다. 푸른 판에 던진 머리핀은 순식간에 얼어버려 표면에 서리가 잔뜩 끼어버렸다.

그러나 녹색 판 위에 던져진 머리핀은 반응이 없었다.

혹시 몰라 5분을 기다려봤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녹색은 안전한 거야. 앨버트님! 녹색 발판을 밟고 이동해도 될 것 같아요.』

앨버트 또한 나타샤의 판단에 동의했다.

은색 판은 가시가 튀어나오고 붉은 판은 어떤 물체도 녹일 정도로 뜨겁고, 푸른 판은 모든 것을 얼려버릴 정도로 차갑다.

그런데 녹색은 그런 조짐이 없었다.

백현도 아직까진 정보 부족이기에 일단 나타샤 의견에 동의했다.

신호등도 녹색 빛은 안전하게 걸어도 된다는 뜻, 녹색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전하, 제가 먼저 밟아보겠습니다."

제이미는 심호흡을 한 채, 머리핀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길이 전해졌다.

걸어가는 그를 말리는 자는 앨버트.

"아니요. 제이미는 뒤에 있어요. 제가 한 말 잊었나요?"

제이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앨버트 황제. 누군가는 반역자라고 하고, 누군가는 달변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었다.

자신을 말리고 녹색 발판을 밟는 그의 모습에, 제이미는 눈을 감고 황제가 무사하길 기도했다.

『괜찮네. 아무렇지도 않아.』

그랬다. 녹색판은 붉은 판, 푸른 판과는 달리 안전했다. 1분, 3분, 5분이 지나도 아무렇지 않자 모두는 안심하며 앨버트가 밟은 녹색 발판을 밟기 시작했다.

나타샤가 첫줄 200개 중 다른 녹색 발판을 밟았지만 역시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앨버트가 방긋 웃었다.

『녹색 발판이 안전한 거야. 모두 녹색만 밟고 앞으로 걸어가면 돼!』

나타샤와 앨버트의 말을 듣고 한결 마음이 편해진 제이미. 그가 첫줄의 다른 녹색 발판에 다가가자, 바다사자 오로로가 제이미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겼다.

『괜찮아. 괜찮아!』

『오로로로! 오로로로!』

바다사자의 격한 반응.

그러나 괜찮다며 한 발을 떼어놓는 제이미 함장.

백현은 바다사자의 행동을 유심히 보았다. 저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말리는 걸까? 미나가 있었다면 의사소통이 되었을 텐데.

아니다. 지금은 능력과 권능이 모두 봉인된 상태. 미나가 있어도 바다사자의 말을 이해할 순 없다.

제이미는 펫의 만류에도 결국 자신의 판단을 우선했다. 녹색 발판에 턱 하고 발을 올려놓는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걱정하셨죠? 이것 보십쇼. 녹색판은 괜찮습니다. 전하.』

그런데 이상했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솨라라락! 소리와 함께 동료들의 소리가 제이미에게 전해졌다.

『제이미! 제이미 뒤로 빠져!!』

『함장님! 함장님! 뒤로! 뒤로!』

제이미가 밟은 발판에서 순식간에 독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강백현은 독가스에 노출된 제이미의 다리가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다리가 마비된 탓인지 제이미가 움직이지 못하고 자빠지고, 모두가 고개를 돌린 채 비명을 질렀다.

제이미의 죽음을 확신한 강백현 또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사상자가 나올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제이미는 살아남았다.

그의 펫, 바다사자가 제이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안전한 장소로 데려온 덕이었다.

제이미의 부상에 앨버트와 나타샤가 녹색판에서 뒤쪽 회색 판으로 물러섰다.

앨버트 또한 녹색 판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뒤로 물러섰다.

페이즈 1-1의 시작점.

안전한 회색의 텅스텐판 위에서 거인들은 비명을 지르는 제이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앨버트는 제이미의 뺨을 때리며 의식을 확인했다.

"제이미! 제이미 함장! 제이미!"

맹독은 이미 발목을 지나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넘어지며 바닥을 짚었던 팔도 맹독에 노출되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이미가 간곡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전하, 부탁이 있습니다."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칼을 바라보는 제이미.

선원이라면 항상 가지고 다니는 톱날형 칼이었다.

앨버트에게 힘든 부탁을 하는 제이미.

『전하, 제가 죽으면 제 다리와 팔을 잘라 사용해 주십시오.』

『뭐?』

『이 독가스는 청산가리로 만든 것입니다. 이제 곧 심장까지 독이 퍼지겠지요. 고래를 잡을 때 항상 썼던 독이라 증상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전 이미 글렀습니다.』

『제이미!』

제이미는 자신이 어려운 부탁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가 나타난 이상 목숨 따윈 아깝지 않았다.

『알아낸 게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녹색판은 온도를 보고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하는 제 신체가 체온을 머금고 있을 때, 조각조각 잘라 각 판에 던지십시오. 그렇게 안전한 판을 확인하면서 전진하시면 됩니다.』

『……』

『전하, 괜찮습니다. 전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앨버트는 제이미의 말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앨버트가 손을 뻗어 톱날칼을 들었다.

쓱쓱쓱쓱.

제이미는 팔과 다리가 잘리자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데 앨버트는 그를 희생시킬 생각이 없었다.

『제이미 함장, 자네는 살아남아. 자네가 죽는 건 내가 용납 못해.』

제이미의 팔과 다리를 자른 앨버트는 톱날을 붉은 판에 올려 뜨겁게 달구었다.

백현은 그가 왜 톱날을 달구는지 알고 있었다.

앨버트는 제이미의 잘려나간 신체의 단면을 지지기 시작했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끔찍한 고통에 다시 비명을 내지르는 제이미.

눈동자가 뒤집히고 몸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앨버트는 나타샤에게 동료 선원들을 부르도록 지시했다.

제이미를 다시 배로 돌려보내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여기에서 허무하게 죽으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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