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33화 (133/200)

133화. 엇갈리는 마음

미나는 다시 한 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진 스크린, 그러나 방금 전 충격에 의해 갈라진 부분에서는 여전히 역동적인 장면들이 보였다.

미나는 이게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들리는 시점에서 이미 현실이었으니까.

저들이 말하는 ‘방주’란 거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의미했다.

거주지에 합류하기 전, 조세핀에게서 들었던 동화 내용이 떠올랐다.

거인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전래동화.

조세핀은 동화를 한 자 한 자 읽어주며, 거인보다 큰 거인의 존재에 대해 어렴풋이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동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진실이었다.

그렇다면 저 밖의 존재들이 버키나 바키 같은 거인들을 여기 방주에 넣어둔 존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유는 아마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미나는 스크린을 통해 그들의 크기를 가늠했다.

버키나 바키보다 50배 이상 몸집이 커 보였다.

미나와 같은 사이즈의 인간으로 환산하면 약 2500배.

키만 해도 60m는 되는 대형괴물들이다.

그들은 초거인이었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초거인.

스크린 바깥은 초거인들이 무수히 살아가는 세계.

그렇다면 율리만의 존재는?

분명 초거인과 연결되어 있을 터.

미나는 한 가지 더 실험을 시도했다.

“건우 오빠! 저 바깥세상에도 나갈 수 있나 확인해주세요.”

클론 김건우는 미나의 부탁에 스크린을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손은 그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안 돼. 왜지?'

물질투과능력으로 천장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역시 안 되는군요.”

미나는 방주에 갇힌 채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지나온 어두운 세계의 비밀은 덮개였다.

노아의 방주를 감싸는 껍데기.

김건우와 강미나는 세계의 끝자락을 확인하고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클론 김건우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방금 그게 이 세상의 진실입니까?"

“오빠는 몰라도 돼요.”

“어떻게 몰라도 되는 겁니까? 이미 봐버렸잖습니까?”

강미나는 김건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율리만의 목적을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미나였다.

바깥세계는 전장. 수많은 초록괴물들이 다른 존재와 싸우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필사적으로 우리들을, 이곳 세계를 지키려는 이유.

그러면서 율리만 섬으로 오라는 이유!

미나의 생각은 복잡해져만 갔다.

지니어스 타워 정상에 도착한 김건우는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긴 한 겁니까? 강미나 씨. 건방진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알려주세요.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김건우의 질문에 강미나의 어깨에서 날개가 사라지고, 두 손이 한곳에 모아졌다.

“그의 목적이 뭔데요? 당신이 하려는 게 뭔데요?”

김건우의 질문에 강미나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떠날 거예요. 오늘 전 바키우스와 함께 출발할 생각이에요.”

“떠난다니! 혼자?! 율리만 섬으로 떠난다는 말인가요?”

“네.”

미나는 김건우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오빠도 세상의 끝을 봤으니까 어느 정도 짐작은 가실 거예요. 저는 율리만의 목적을 대충 짐작하고 있어요.”

“짐작이요?”

“네. 율리만을 대체할 지적생명체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 후보에는 제가 있고요.”

“뭐라고요?”

“율리만의 생명이 끝나가고 있고, 이를 대체할 자가 필요한 거였던 거죠. 리만은 생명 기반 AI잖아요. 생명에는 반드시 죽음이 찾아오고요.”

“…….”

김건우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래서 미나 씨가 희생하겠다 그 말인가요?”

“이제 그걸 확인하러 가야겠죠.”

“확신할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왜 절 펫으로 강제지정했을까요? 왜 자꾸 율리만 섬으로 오라고 종용하는 거죠?”

“……”

김건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오빠는 절 막을 생각인 거죠?”

미나는 이미 자신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아마 제가 오리지널이었더라도 당신 혼자 가려는 걸 무조건 막았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미나는 이제 더 이상 주변 사람이 죽는 게 싫었다.

장명훈도, 김건우도 자신을 대신해 죽었다.

엄마도, 아빠도. 거기에 오빠도 자신을 위해 죽으려 했다.

그걸 끝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율리만의 부름에 응해야 했다.

“오빠,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를 손봐뒀어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오늘 있었던 기억은 지워질 거예요.”

“강미나 씨! 이 중요한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을 생각인가요? 진짜 혼자 해결할 건가요?”

“건우 오빠, 오빠는 저 때문에 이미 한 번 죽었어요. 장명훈 마스터도 그렇고요. 아니! 모두가 다 똑같아요.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율리만 박사에게 대응할 생각입니다.”

“강미나 씨! 강미나 씨!”

“돌아가세요. 오빠. 오빠는 절 막을 수 없어요.”

김건우는 그녀의 강렬한 목소리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마인드 리딩에 당한 것이다.

2시간 후.

김건우가 정신을 차린 곳은 지니어스 타워 49층의 어느 호텔 객실.

그의 옆에는 정보조원들이 김건우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건우 형! 괜찮아요? 갑자기 왜 그래요?"

김건우는 한태석의 말에 대답했다.

"아, 괜찮아요. 괜찮은데요. 나 왜 여기에 있죠?"

"무슨 소리하세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면서 저희 소집하셨잖아요!"

김건우는 그의 말에 자신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미나가 불러서 지니어스 타워 옥상에 올라갔다.

하지만 그 이후가 기억나지 않는다.

"태석 씨, 제 기억이 지워진 것 같습니다."

"건우 형, 기억이 지워졌다고요? 아까는 그런 말씀 없었잖아요."

한태석은 김건우의 말에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미나가 그런 겁니까?”

“아마도 그렇겠죠.”

한태석은 언젠가는 미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김건우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기억을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굳이 미나를 만나러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다 태석 씨 기억까지 지워지면 어떻게 합니까?"

김건우의 말에 한태석이 씩 웃었다.

"기다려 보세요. 미나 만나서 얘기 안 해도 방법은 있으니까."

잠시 후 한태석은 다른 방에서 한 아이를 데려왔다.

“윤수야.”

“네. 형.”

“건우 형 좀 치료해줘.”

“아! 네!”

이제는 조금 의젓해진 박윤수.

그가 치료 능력으로 김건우를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클론 김건우는 치료 능력을 받을 때마다 기억이 점차 회복되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건우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보았던 세계의 비밀과 하늘 위 공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은 자체는 간단했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믿지를 못했다.

“강미나 씨는 제가 바깥세상을 본 기억을 지우고 싶었나 봅니다.”

“바깥세상이요? 우주 말하시는 건가요?”

“아뇨. 이곳은 만들어진 세상입니다. 저희는 노아의 방주에서 보호되는 동물처럼 사육되고 있었던 거죠.”

“네?!”

거인 세계가 사실은 방주였다는 것과 그 거인 세계 바깥에는 더 큰 거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한태석이 되물었다.

“에이! 정말 사실이에요? 건우 형 거짓말 하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제가 거짓말 할 이유는 없지요. 이걸로 기억이 지워진 이유도 설명이 되는군요.”

“혼자만 아시지 마시고 제대로 설명을 해주세요.”

같은 시각.

강미나는 옥상에서 버키를 설득하고 있었다.

『지금 출발하자고?』

『네. 버키 님, 모두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요. 율리만의 목적은 바로 저거든요.』

미나는 자신이 보았던 풍경을 버키의 기억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설득이 되지 않았다.

『아니야. 그것 말고도 뭐가 있을 거야. 율리만이 진정 원하는 게 너였다면 왜 다른 대륙들도 자신의 섬으로 부르는 거지?』

『그건!』

『난 최대한 이 여유를 즐기고 싶어. 시간도 되고, 장비도 돼. 그러니까 천천히 생각해.』

『시간이 없다구요. 우리 오빠가 괜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또 다른 사람이 희생될 수도 있어요. 난 급해요. 급하다구요!』

미나의 설득에도 버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강미나가 마지막 방법을 사용했다.

“미안해요.”

『뭐? 우리말로 해.』

『미안해요. 버키 님. 기억을 지울게요.』

버키의 기억을 조작하는 강미나.

버키는 미나가 조합한 기억에 의해 세뇌되었고, 지능마저 어린아이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런 뒤 미나는 1층 안내데스크의 호출 버튼을 누르고 대화를 시작했다.

『네. 버키 님, 무슨 일이십니까?』

『차량 좀 대기시켜 주세요. 장거리 운행 가능한 포르쉐스913으로.』

여성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1층 매니저.

『아, 미나 님이십니까?』

『네. 바로 대기시켜주세요. 자율운행 가능하죠?』

『네. 물론입니다. 바로 대기시켜놓겠습니다. 5분 뒤에 내려오시면 됩니다.』

버키가 정신을 차리자, 미나가 버키에게 말했다.

『버키 님?』

『응?』

『전 버키 님의 펫 미나라고 합니다. 지금 바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시겠어요? 지금 율리만 섬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빠가?』

『네. 맞아요. 바로 출발하시면 돼요.』

7살 아이 정도로 지능이 내려가 버린 버키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미나의 말을 따랐다.

『응? 내 몸이 커진 것 같아.』

『네. 버키 님,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버키 님은 지금 성인이시죠.』

『진짜? 진짜?』

『네. 그렇습니다. 저는 버키 님과 벌써 수많은 시간을 함께했어요. 저만 믿으시면 돼요.』

『응!』

미나는 자신의 주인인 버키를 어린아이 다루듯 달래며 율리만 섬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냉장고에서 먹을 것하고 마실 물도 많이 챙기셔야 한답니다. 다 들어주세요.』

『응!』

『아무리 자율주행이라고 해도 며칠은 이동해야 하니까 차 안에서 잘 수도 있어요. 이불도 챙기는 게 좋아요.』

『응!』

그렇게 짐을 챙긴 뒤, 버키와 미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 했다.

드르륵.

이동식 카트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잔뜩 올려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와 미나를 막았다.

한태석이 강미나를 향해 말했다.

“미나야. 그만 둬. 혼자 갈 생각 하지 마.”

“태석 오빠, 나 가게 둬요. 그러니까 미안해요. 오빠 기억도 지울게요.”

“그래, 지워! 지워도 돼!”

“미안해요.”

미나가 한태석의 기억을 지웠다.

그러자 뒤에 있던 홍성환이 강미나를 나무랐다.

“강미나, 너 혼자만 짊어질 생각 하지 마! 바보야? 넌 주변 사람도 안 보니?”

“성환 오빠, 오빠랑은 별로 친하게 못 지냈네요.”

“그래. 너랑 엮일 일은 많이 없었으니까.”

“미안해요. 오빠도 저를 잊어줘요.”

미나가 홍성환의 기억을 지웠다.

동공이 흔들렸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진 홍성환과 한태석. 그 뒤로 김만철이 튀어나왔다.

“미나야. 나도 같이 가자.”

“아저씨! 아저씨는 이제 막 가정을 이뤘잖아요.”

“그래. 하지만 난 너한테 목숨을 빚졌잖아.”

수많은 사선을 함께 넘어온 김만철의 말에 미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난 혼자가기로 결심했어요. 아저씨는 절 막을 수 없어요.”

미나는 김만철의 기억까지 지워버렸다.

임시적인 기억 상실.

이러면 패닉에 빠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김만철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미나야. 난 같이 갈 거야.”

“네?”

“난 네 능력에 면역이야.”

“네?!”

“윤수의 치료 능력은 모든 좋지 않은 기운을 치료할 수 있거든. 거기에 재생 능력도 포함이고.”

그리고 뒤쪽에서 패닉에 빠져 있던 한태석도, 홍성환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고 있었다.

강미나는 당황스러웠다.

가장 뒤쪽에서 손을 뻗어 녹색 기운을 내보내는 윤수의 모습이 보였다.

“기억 지우는 건 나빠!”

그리고 윤수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 정선희.

“미나야.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그러니까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

“선희 언니…….”

정선희가 자신의 아들 박윤수를 뒤쪽에서 걸어 나오는 최형우에게 넘겼다.

최형우의 몸집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거대화 능력을 쓴 채로 버키에게 달려갔다.

버키의 다리를 잡고 그 몸에 올라타는 최형우. 그리고 그의 등에 업힌 채 거인 버키를 치료하기 시작하는 윤수.

곧 버키가 머리를 쥐어뜯더니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강미나, 네가 날 속인 건가?』

미나는 당황했다.

절대 무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인드 리딩이 윤수의 치료 능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미나는 화가 났다.

다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니 답답했다.

그냥 모른 체 하면 좋은데! 왜! 왜 그러냐고!

그래서 소리쳤다.

“왜 다들 나를 막고 그래! 나 혼자 희생하겠다는데 왜 막냐고! 왜 막아! 왜 막아!”

그러자 최종보스가 등장했다.

미나는 갑자기 위로 들어 올려지는 자신의 팔을 보며 당황했다.

‘내 팔이 왜 이래?’

미나의 팔이 스스로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뺨에는 붉은 손바닥 자국이 가득했다.

결국 미나는 원인을 찾아냈다.

오빠의 소꿉친구.

그리고 자신과 어릴 적부터 함께 했던 동네 언니 김아람의 염력이 원인이었다.

“언니!”

“야! 강미나! 네가 짱이야? 쬐그만 게 어디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눈 안 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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