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노아의 방주
미나는 한태석의 질문에 일부러 과장스런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누구를 살릴지 정하래요. 전 마음 정했어요.”
“그런 얘기였어?”
“네.”
미나는 검은 구체에게 영혼의 돌로 살릴 대상을 전달했다.
그러자 영혼의 돌이 파괴된 김건우의 신체를 모두의 앞에 다시 구성해냈다.
모두가 시선을 집중한 가운데, 콜록콜록 거리며 되살아나는 김건우의 모습.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건우 형!”
“형!”
“건우 형?!”
하지만 미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아마 장명훈이 되살아났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들 누구세요?”
“네?!”
“여기가 어디예요? 으아아아악! 지옥 맞죠? 여기 지옥 맞죠? 네?! 네?! 지옥이죠?! 그렇죠?”
영혼의 돌은 검은 구체에 기록된 시점의 육체를 구현해낸다.
되살아나도 그만큼의 기억밖에 불러올 수밖에 없다.
즉, 현재 되살아난 김건우는 27살의 모습이었다.
이곳 거인 세계에 처음 왔을 때의 어리숙했던 모습.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건우 형! 미나가 살려줬어요. 그러니까!”
“나 모르는 사람이에요. 왜 아는 척하세요! 그리고 여긴 어디예요? 으악! 괴물! 괴물!”
깔려진 카펫 사이로 죽어있는 거인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2명의 거인도 보였다.
한태석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미나를 향해 따져들었다.
“강미나!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이건 미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검은 구체는 거인과 계약한 생명체에 대해 주기적으로 스캔하여 그들의 기억, 외관, 생명, 생각들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건우 오빠는 이제까지 거인과 단 한 번도 계약하지 못했죠.”
미나의 말에 한태석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럼 지금 건우 형은 자신이 여기 처음 왔을 때의 본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건우 오빠와 똑같이 생긴 클론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걸 너한테만 말해준 거야?”
“네.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 거죠. 제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뭐?”
“죽은 자의 기억을 옮기면 돼요. 전 그게 가능하고요.”
그러나 혼란스러운 사람들.
“강미나! 그건 건우 형이 아니잖아. 괴물이라고!”
괴물이란 소리에 두 사람이 눈길을 피했다.
한 명은 김아람, 그리고 또 한 명은 김만철이었다.
그들의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알고 있는 강미나가 한태석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알아요. 클론이죠. 하지만 우린 받아들였잖아요. 지금 아람 언니도! 만철이 아저씨도! 그러니까 이제 결정해요. 저 클론에게 오빠의 의지를 잇게 할 건가요? 태석 오빠! 결정해요!”
그때 죽은 자의 의지가 들려왔다.
《네가 결정해야지.》
“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제는 네가 마스터잖아. 그러니까 네가 결정해야 되는 거잖아.》
미나는 죽은 자의 의지를 듣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왜 그래?”
“건우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요. 몸은 죽었지만, 뇌가 살아있었어요.”
“뭐?!”
신체가 죽는다고 금방 죽는 건 아니다.
사람은 죽음이 찾아오면 오감을 잃기 시작한다고 한다.
일단은 시야가 좁아지고, 점차로 후각, 촉각 등이 사라진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후의 순간에도 남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청각.
이미 자폭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뇌를 포함한 신체의 일부가 남아 있었기에 김건우의 청각 또한 살아있었다.
귓바퀴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고막, 청소골, 달팽이관을 지나 대뇌의 시상하부에서 처리된다.
그래서 미나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미나는 울먹였지만, 계속해서 그의 의지가 전달되었다.
《내 기억을 전달하고 싶은 거지? 그렇게 해.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야. 나 자신이지. 아마 내 기억을 전달받으면 나를 이해해줄 거야.》
“하지만!”
《부탁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해.》
그래서일까?
미나는 그의 의지, 부탁대로 바키우스의 심장 방향에서 그의 기억을 끌어다 클론에게 집어넣기 시작했다.
클론은 비명을 내질렀지만, 곧 잠잠해졌다.
* * *
5일이 지났다.
아르케의 지니어스 타워는 폐쇄되었으며, 버키는 아르케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딱히 별다른 것은 없다.
『내 펫은 뭐해?』
『글씨 배우고 있어요.』
『글씨? 무슨 글씨?』
『거인어요.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아요.』
미나는 운동하고 있는 버키의 옆에서 말상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검색하며 각 대륙의 정보를 수집했다.
신디아에 이어 도르시안에서도 배를 타고 데이터 아일랜드로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후후, 그들도 가고 싶어 하는 거야?』
『아마도요. 이 세상의 끝이 무엇인지 그 비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안 그래요? 위대한 여정을 앞둔 지도자님?!』
『그렇지.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여유가 있어. 지금은 좀 더 즐기고 싶어.』
『그 마음 이해해요. 조윤정도 그랬으니까.』
버키는 지니어스 타워에서 눈 아래의 도심을 바라보았다.
훤하게 뚫린 일자형 도로.
거기에 지상 위를 부유하며 날아다니는 수많은 자동차.
다른 대륙보다 기술력이 집약된 아르케다. 이곳의 수송수단에는 단 이틀이면 데이터아일랜드에 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그곳.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무턱대고 나아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위대한 여정을 떠나라고 율리만이 말하고 있다.
『넌 어때?』
『뭐가요?』
『네가 살린 그 남자는 어떠냐고.』
『모르겠어요. 지금은 조금 안정된 기분이겠죠.』
『내 옆에 있지 말고 가서 만나봐. 아니면 바람이라도 쐬든지.』
『괜찮을까요?』
『그래.』
버키의 말에 미나가 책상 위에서 사뿐히 뛰어내렸다.
수십 미터의 높이였지만 등에서 팔랑거리는 날개가 그녀가 우아하게 착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미나는 버키의 포인트를 이용하여 5일 동안 2개의 능력을 개방했다.
‘날개’ 레벨 3.
그리고 ‘정화’ 레벨 3.
날개는 자신의 등 뒤에 날개를 형성해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
정화는 어떠한 오염도, 질병도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원해서 선택한 건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능력을 구할 수가 없었으니까.
3일 전.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버키가 지니어스 타워 최상층, 아버지의 옛 사무실에서 검은 구체를 앞에 두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이제 신디아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두루마리를 공급하지 않아. 이게 최선이네. 내 멋대로 정한 건 아닌가 싶은데 괜찮지?』
검은 구체가 날개 능력이 담긴 두루마리와 정화 능력이 담긴 두루마리를 토해냈다.
『아니에요. 어쩔 수 없죠. 그것보다 버키 님은 괜찮으세요?』
『뭐가?』
『속으로는 울고 계시잖아요. 왜 애써 태연하게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후후, 내 마음을 읽은 거야?』
『그렇다기보다는 표정이 그래서요.』
버키는 말없이 강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강미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김아람의 비행이 얼굴을 찡그리며 힘들게 공중을 부유하는 개념이라면, 강미나의 경우는 너무나도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나는 문득 자신이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날개를 펄럭이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기분 좋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세찬 바람을 부력으로 이용하여 푸른 하늘로 상승하는 미나.
구름 안의 차가운 안개를 통과하거나, 따스한 햇살을 정면에서 받아보기도 했다.
점점 가라앉아가는 해, 엄청난 크기의 구름.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새와 도로를 이동하는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까지.
모든 풍경이 황홀하기 짝이 없었다.
날아가는 새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는 미나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아빠 새들은 엄마 새들이 맞바람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줄여주려고 앞에 나서서 날갯짓을 하고, 엄마 새들은 그 뒤편에서 부족한 체력을 극복하고.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물들.
동족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미나는 상념에 빠졌다.
자신을 위해 항상 목숨을 걸었던 오빠의 목적은 아무래도 인간이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인 것 같았다.
거인 세계의 종말.
그럼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조금 있으면 버키가 율리만이 말하는 대로 여정의 멤버를 꾸릴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시련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인위적인 듯한 하늘의 모양.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하늘이 마치 스크린 같았다.
‘설마?! 설마?!’
미나는 그렇게 거인 세계의 비밀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에 천장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미나에게 누군가의 생각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퇴해야 해! 후퇴!》
《팀장님! 팀장님도 가셔야죠! 네?》
《율리안! 방주 챙겨! 빨리 챙겨서 도망가! 도망가라고!》
《팀장님! 팀장님!》
미나는 당황스러웠다.
거인의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이 들려오는 방향은 분명 천장 너머다.
천장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
* * *
다음 날.
강미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절 찾으셨다고요?”
“네. 건우 오빠.”
“저는 미나 씨가 아는 오빠가 아닙니다. 김건우라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클론이죠.”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저는 분명 그의 기억을 이어받았고, 미나 씨의 능력에 의해 그 분의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어난 지 겨우 6일밖에 안 되는 클론임이 확실하고, 이제 남은 생명은 고작 5개월 24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미나 씨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지, 오빠가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강미나는 그의 생각을 억지로 바꾸고 싶진 않았다.
“물질투과 능력을 통해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네? 어디를요?”
“하늘이요.”
“네?”
강미나는 새로 얻은 날개 능력으로 김건우를 하늘로 끌어올렸다.
슈트의 도움 때문에 그의 체중이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김건우의 얼굴은 강미나의 신체가 꽉 붙어오자 수줍음으로 붉어져 있었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합니까?”
“거의 다 왔어요.”
김건우는 죽은 오리지널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강미나를 좋아하고 흠모했다.
미성년자였기에 마음을 접었을 뿐.
자신 또한 오리지널로부터 신체와 인격을 받은 때문인지 자꾸만 끌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다 왔어요.”
“네?”
“여기예요.”
퉁퉁. 미나가 천장을 두드렸다.
하늘 무늬가 그려져 있는 벽.
“여기에다 물질투과 능력을 써보세요.”
죽고 살아나서 그런지 그의 물질투과 능력은 레벨 1인 상태였다.
정선희의 증폭 능력을 사용하여 현재는 레벨 2.
그가 손을 뻗자 천장이 꿀렁이기 시작했다.
꿀렁이는 천장을 두려움 없이 통과하는 강미나. 그리고 함께 끌어올려지는 김건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암흑의 공간이었다.
미나는 암흑의 공간에서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딸깍딸깍.
슈트의 발바닥이 닿는 바닥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계속 걸어간 미나는 암흑의 공간 끝과 부딪히고 말았다.
“아야!”
“괜찮아요?”
“괜찮아요. 건우 오빠.”
그런데 부딪힌 검은 공간이 갑자기 기동하더니, 수많은 스크린이 미나와 김건우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미사일을 쏘고, 빔을 쏘는 등 녹색의 거인들이 미지의 생물체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갑자기 스크린 앞에서 광선이 번쩍했다.
이어서 미나와 김건우가 있는 공간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다.
먼지가 흩날리고 스크린 외부가 유리가 깨지듯이 갈라지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미나는 거인 세계의 모든 비밀을 알아차렸다.
《으악! 방주는 안 돼! 방주는 공격당하면 안 된다고!》
자신들을 보호하는 미지의 존재가 생각하고 있다.
《방주를 후방으로! 마지막 기지로 옮겨! 옮기라고!》
커 보이기만 했던 거인의 세계.
그곳은 사실 거인들의 생존을 위한 노아의 방주였다.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 미나는, 그만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