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31화 (131/200)

131화. 부활

영혼의 돌.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돌.

그러나 하나밖에 없다.

이곳에 남은 정보조원은 강병호와 홍성환, 그리고 한태석과 김만철까지 총 4명이었다.

강병호와 홍성환은 자신의 조장인 태석에게 물었다.

“태석이 형! 건우 형 살려요!”

“야! 마스터를 살려야지. 건우 형을 왜 살려! 태석이 형! 마스터 살릴 거죠? 네?! 마스터 살려야죠!”

장명훈이 김건우에게 마스터를 넘겼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강병호의 말에 홍성환이 다그쳤다.

“병호야. 마스터는 이제 건우 형이야. 마스터가 건우 형한테 후계자 자리를 맡겼어. 그러니까 건우 형 살려야 해!”

“성환이 형! 생각 좀 하세요! 거주지에 누가 필요하겠어요? 김건우 형보단 당연히 장명훈 마스터잖아요. 벌써 수년간 저희를 이끌어 왔어요. 마스터가 돌아가시면 그 자리를 건우 형이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태석이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 한태석 조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조장님! 조장님!”

한태석은 동생들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거주지를 유지하기 위해 김건우보다는 장명훈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싶었다.

“만철이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모르겠다. 내가 결정할 사항은 아닌 것 같아. 네가 결정해.”

확실히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김만철이 결정하는 것은 좀 그랬다.

하지만…… 이걸 자신이 결정해도 괜찮은 걸까?

아무래도 그럴 권한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던 한태석은 영혼의 돌의 주인인 강미나를 향해 말했다.

“네 물건은 네가 마음 가는 대로 써. 남한테 떠넘기지 말고.”

한태석의 말에 조원들이 반발했다.

“태석이 형! 건우 형 살리세요!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형! 마스터를 살려야죠! 마스터 없으면 우리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형이 결정하세요! 조장이면 조장답게 결정하셔야죠!”

하지만 한태석은 조원들에게 도리어 화를 냈다.

“너희들이 그딴 말할 자격 있어? 저 돌이 얼마나 귀한 건 줄 알기나 해? 분명 미나는 저 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 거야. 그런데 나보고 결정하라고?”

한태석의 말에 강병호가 숙연해졌다. 하지만 홍성환은 달랐다.

“태석이 형. 나는 내 쌍둥이, 성운이 형이 죽었어. 형이 내 마음 알아? 내 마음 같으면 저 돌을 당장이라도 빼앗아서 성운이 형 살리고 싶어. 하지만 그 말 꾹 참고 건우 형 살리라고 말하잖아. 왜 그런지 알아? 마스터는 위험하니까. 장명훈은 사상 자체가 가끔 위험하니까!”

그의 말에 강병호가 화를 냈다.

“형! 위험하다니요? 평생을 우리를 위해서 사신 분이에요!”

“복수 때문에 우리를 이용한 거겠지.”

“성환이 형! 그 말 취소하세요! 취소하라고요!”

언성이 높아졌다.

죽은 사람은 여럿.

그러나 살릴 수 있는 목숨은 단 한 명. 결정은 어려웠다.

“그만! 그만 싸우세요. 제가 결정할게요. 그러니까 그만! 그만!”

강미나는 눈물을 흘리며 영혼의 돌을 사용했다.

그런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왜?! 왜 반응이 없는 건데?!”

쿵쿵쿵쿵! 쿵쾅쿵쾅!

지진이 일어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땅이 울렸다.

일행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인 둘이 걸어오는 모습이보였다.

그 거인들은 바로 버키, 바키 형제였다. 이어서 버키의 펫 김아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아람은 버키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염력에 의한 부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며 김아람은 미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미나야!”

그녀를 보며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던 미나가 말했다.

“언니!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응. 너하고 버키 덕분에 우승했어. 이제 바키우스하고 황제 자리를 두고 대결만 하면 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전개.

김아람의 앞에 바키우스가 주검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상태다.

버키는 김아람을 땅에 내려주고는 심장이 터져 죽어버린 바키우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왜 이렇게 허무하게 가셨어요?』

『……』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바키 또한 허망한 표정으로 주검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아버지로서는 최악이었지만, 전사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자의 죽음이 믿기지가 않았다.

『가신 거야? 형! 아버지가 정말 죽은 거야?』

『그래. 흑흑, 나 왜 슬프지? 분명 나쁜 놈이었는데 왜 이렇게 슬프지?』

『혈육이었으니까. 형하고 나를 꼭 닮은 혈육이니까.』

어머니의 죽음을 방관한 아버지.

어느 순간부터 미쳐버려 강함과 부만을 쫓았던 아버지의 최후가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진 형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인은 없고, 죽은 인간들과 살아있는 인간들뿐이다.

저들은 원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들. 하지만 다행히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자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버키는 자신의 펫인 김아람 대신 한태석을 움켜쥐었다.

한태석은 너무나 강한 버키의 악력에 깜짝 놀라며 으아아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버키의 음성은 상당히 냉정했다.

『누가 죽인 거지? 내 아버지를 죽인 자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나?』

한태석은 당황했다. 사실대로 말할 것인가? 아니면 대충 둘러대고 여기서 빠져나갈 것인가!

그런데 갑자기 강미나가 소리쳤다.

『놓아줘요!』

『뭐?』

『놓아주라고요. 태석 오빠 놓아주세요!』

강미나는 버키의 마음을 읽고 한태석이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이 원망하던 아버지가 죽었다. 하지만 버키나 바키는 이런 상황을 원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이제 저희를 바라봐달라고! 이제는 정신 차리시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대화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아버지는 죽어 있었다.

그리고 정황상 이곳을 지나간 거인은 없었다.

버키는 눈썹을 치켜올린 채, 움켜쥐고 있는 한태석을 공중에서 놓았다.

높이 1m, 환산높이로는 50m.

한태석은 현재 아파트 25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중.

한태석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김아람이 있었다.

아람이가 염력으로 한태석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었다.

하지만 버키까지 막기는 힘들었다.

버키는 화가 덜 풀린 상태로 자세를 낮춰 강미나를 움켜쥐었다.

『누가 죽인 거지? 아버지를 죽인 자를 아나?』

『그래요. 알아요.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화부터 가라앉혀요.』

『후우- 후우- 하아- 하아.』

버키는 제자리에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감정을 삭였다.

하지만 과거 자상했던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에 더하여 변절해버린 아버지와의 끔찍한 과거가 교차하며 자제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버키, 바키 님. 두 분은 바키우스 님의 아드님들이시죠?』

미나는 가급적 대화로 풀어가려 했으나, 버키는 빨리 대답부터 듣고 싶었다.

그래서 손아귀에 힘을 더해 움켜쥐며 질문을 이어갔다.

『누가 죽였는지부터 말해.』

형이 평상시하고 다르게 크게 흥분하자, 동생인 바키가 형을 말렸다.

『형! 흥분하지 마. 왜 그래?』

『넌 빠져.』

『어떻게 빠져!』

미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참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버키 님, 바키 님. 바키우스 님은 두 아드님을 굉장히 사랑했어요.』

대화하는 방법을 아는 미나.

미나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늘어놓자, 지켜보고 있던 김만철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키우스 님은 죽는 순간까지도 두 아드님 걱정뿐이었어요.』

『그럴 리가 없어. 아버지는 변절자야.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방관한 변절자라고! 우리를 버린 후에 찾지 않은 게 바로 그 증거야. 증거라고!』

『아니에요! 바키우스 님은 자신의 펫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미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능력을 한계까지 사용했다.

생명은 정지했지만, 뇌세포는 다 죽지 않았던 바키우스의 기억이 바키와 버키 형제에게 전해졌다.

버키와 바키는 아버지의 생전 기억들이 흘러들어오자 갑자기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조윤정이라는 펫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방관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이 마음과 따로 놀았던 것.

자식들을 찾지 않았던 것은 지배 능력에 의해 조윤정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배 능력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었을 때도 만에 하나, 아들인 자신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일부러 연락을 피했던 것이다.

『이게 사실일까?』

『형! 사실일 수밖에 없잖아. 마지막 본 장면이 지금하고 똑같은걸?』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리자, 버키와 바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5년간의 오해가 드디어 풀렸건만, 그들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거인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거기에 더해, 미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자신의 기억을 버키와 바키에게 보냈다.

지구에서 율리만과 했던 대화들.

자신이 이제까지 겪었던 일들까지.

그것이 버키와 바키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잔혹한 운명은 거인들에게만 내려진 게 아니었다.

인간인 저들도 이용당하고 있었을 뿐.

뭔가 꺼림칙한 율리만의 행동. 미나도 그 원인을 아직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은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버키와 바키는 그렇게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아버지의 기억에 더해, 인간 강미나의 기억까지 엿보게 되었다. 그들을 향해 강미나가 다시 한 번 설득을 시도했다.

『이 모든 것은 율리만이란 존재가 꾸민 일입니다.』

『율리만?』

『그래요. 거인의 룰을 통제하는 존재, 검은 구체를 움직이는 지성체, 거인 세계의 일인자인 율리만이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요? 우리한테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미나의 질문에 버키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슬프신가요? 그럼 살리러 가요. 저희랑 같이 율리만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 세계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러 가요. 그러니까 두 분이 우릴 도와줘요.』

『…….』

아르케에는 현재 왕이 없다.

위대한 지도자였던 바키우스는 운명을 달리했고, 그를 죽인 김건우는 등록되지 않은 펫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다.

왕이 없는 대륙.

대륙의 지도자는 바로 이곳에서 탄생해야만 했다.

때마침 검은 구체가 지니어스 타워 최상층까지 올라왔다.

『누가 부른 거야?』

『내가 불렀어.』

『왜?』

『아버지 시신 수습해야지.』

검은 구체를 호출한 것은 다름 아닌 바키.

그런데 검은 구체는 주검이 된 바키우스를 스캔하더니, 뒤로 돌아 버키에게 메시지를 송출했다.

《버키, 당신은 아르케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그 메시지를 보며 강미나가 말했다.

『검은 구체는 율리만의 통제를 받아요. 율리만은 바키우스 님의 의지를 버키 님이 이어받기를 바라고 있고요.』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버키는 도전해보기로 했다.

『황제가 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까?』

《예스. 소생의 돌 50개면 거인 한 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소생의 돌은 데이터 아일랜드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의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버키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검은 구체가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떠올렸다.

《펫(김아람)이 지정해제 되었습니다.》

『왜?! 왜!』

그리고 다시 뜨는 메시지.

《펫(강미나)가 강제지정 되었습니다.》

『강제 지정? 왜?! 왜!』

강제로 행해진 펫의 해제와 지정에 거인이 당황하는 사이, 검은 구체가 미지의 언어로 떠들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오자 다들 당황했다.

김만철이 한태석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태석아! 해석 좀 해 봐.”

그러나 이건 한태석은 해석할 수 없었다.

“이건 거인어가 아니야.”

“아니라니!”

저걸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강미나뿐.

이 언어는 지구 남아프리카의 원주민, 고티안 족이 쓰는 폴라티나어였다.

누군가가 이걸 알아들을 수 있는 확률은 0.00000006%도 되지 않는다. 쓰는 인구가 적으니까.

미나는 자신의 고유권능 덕에 율리만이 자신에게 전달한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강미나는 지구 내에서 단 97명만이 사용하는 폴라티나어로 검은 구체의 제안에 대답했다.

“알았어요. 박사님의 계획이 그렇다면 저도 동참하겠어요.”

미나와 율리만의 비밀대화.

그걸 알아들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태석이 물었다.

“뭐라는데! 구체가 뭐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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