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30화 (130/200)

130화. 격돌!

미나의 앞에는 거대한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장 198cm, 몸무게 136kg의 근육질 몸매.

단단하고 군살 없는 몸매가 그 거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수련을 거듭했는지 대변해주고 있었다.

바키우스는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조윤아를 위해 스스로 손바닥을 가져다대었다.

손바닥 위에 사뿐 내려앉은 그녀는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을 것을 지시했다.

검은 세미정장과 굽이 높은 하이힐 차림으로 바닥을 딛는 조윤정. 그녀는 미나에게 조금씩 다가오며 말을 꺼냈다.

“강미나란 애가 너니?”

“…….”

강미나는 그녀를 경계하며 대답을 미뤘다.

“율리만한테 들었어. 날 죽이려고 키웠다며?”

마인드리딩 레벨 4.

모든 기억을 읽고 조작하고 편집할 수 있는 능력.

미나가 자신의 양손을 모으며 조윤정의 생각과 기억을 들여다보려 했다.

상대방의 능력인 《지배》의 발동조건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윤정은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한심하다는 눈빛의 그녀를 본 강미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생각이 읽히지가 않아. 내 모든 능력이 통하지가 않는다고?’

다른 자와는 달리 자아가 아예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선 한 치의 감정도, 생각도 없는 것과 같았다.

“설마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이미 난 여기 왔을 때부터 최강이었으니까.”

조윤정은 한심한 후배의 모습을 보며, ‘지배’ 능력을 시도했다.

그녀의 눈빛에 미나의 다리가 마비되어 축 늘어져버린다.

그 다음은 팔이었다.

팔에서도 힘이 빠지자 미나는 기이한 자세로 비틀어져 바닥에 풀썩 하고 쓰러져버렸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겨우 얼굴뿐.

강미나는 엎드린 자세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즐거운지 조윤정이 방긋 웃었다.

“너! 그 눈빛 맘에 들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를 모르는 눈빛. 그런데! 그런 눈빛 가진 애들이 가장 빨리 죽더라.”

강미나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원인을 찾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내면에 집중했다.

그러자 심연 속에서 보이는 마음의 벽.

그 너머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격이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는 게 보였다.

조윤정은 엎드린 채 노려보고 있는 강미나의 등 뒤로 돌아갔다.

또각또각. 뒤쪽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려오자 강미나는 절망에 떨어야만 했다.

조윤정은 이 상황을 즐기며 미나의 등에 올라탔다.

손을 뻗어 미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들리는 소리.

빠각!

급작스레 미나의 목이 끝까지 젖혀졌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조윤정의 낄낄 웃는 소리가 그녀를 강타했다.

“호호호, 이러다 부러지겠는데?”

그런데 예상외였다.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한 강미나가 갑자기 허리를 돌리며 다리를 뻗어 조윤정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조윤정은 대퇴부에서 조여지는 힘에 당황하며 미나의 허벅지를 풀려고 했다.

그런데 목을 조여오는 힘이 상당했다.

“읍! 야! 안 풀어? 풀어! 풀어! 풀어!”

호흡이 막혀오자 조윤정이 주먹으로 강미나의 복부와 허벅지를 마구 때리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10초가 지나자 조윤정의 심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심실에 이어진 대동맥이 보내는 혈류가 급격하게 줄어든 때문이었다.

그런데 심장만 문제가 아니었다.

강미나의 조르기에 기도가 막힌 탓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질식 증상이 심해지자 조윤정이 양팔로 강미나의 허벅지와 복부를 두드렸다.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지배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면 접근도 하지 않았을 텐데…….

조윤정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자신이 살아날 방법을 찾았다.

거인 바키우스에게 내린 지배 명령을 다시 한 번 내리는 것.

그에게 내린 최근의 명령은 자신을 내려놓고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기습만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성급했어. 내가 위험할 땐 지키라는 명령을 미리 내렸으면 이런 굴욕도 없었잖아.’

기습을 당했다고 하나, 상대의 목숨을 단번에 노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미나였기에 조윤정은 반격을 꾀할 수 있었다.

조윤정이 지배 능력으로 바키우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나를 지켜! 그리고 쟤를 당장 죽여! 죽여 버려!’

지키라는 명령과 강미나를 죽이라는 명령.

그런데 바키우스가 움직이질 않는다.

‘움직여! 명령 들어! 들으라니까!’

강미나는 조윤정의 지배 능력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당황했을 거라 생각해. 나도 이렇게 해법을 찾은 것은 우연이었으니까.”

‘뭐라는 거야! 이년이!’

조윤정은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강미나는 자신이 승리한 이유를 알리며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네 지배 능력에 당한 기억을 지우면, 기억을 잃는 대신 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말이 되지 않았다.

기억을 지웠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강미나가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우리 인간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고등 생명체는 해마라는 뇌 속 기관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지. 마인드리딩이란 기능은 해마의 기능을 조작하는 능력이야. 상대방에게 기억을 심어줄 수도, 지울 수도, 어떤 시간만은 기억을 저장하지 않게 만들어줄 수도 있지. 난 너와 만난 후부터 1분 동안 기억을 저장하지 않도록 설정해놨어. 그래서 네 지배 능력에 당한 후 1분 뒤에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거야.”

‘망할! 망할! 이 망할 년이!’

해법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했던 강미나.

그녀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김건우 덕분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조윤정의 능력에 대한 파훼법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준 것이 승리의 원인이었다.

“잘 가. 이제 아르케는 너희로부터 해방이야.”

강미나가 자신의 대퇴부에 마지막 힘을 모아 그녀의 목을 졸랐다.

이제는 끝이었다.

“으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극한의 고통 때문에 도저히 참아낼 수 없어 내지른 비명이었다.

조윤정은 자신을 조여오던 힘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느꼈다.

대신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는 강미나의 모습이 보였다.

미나의 가슴에 박혀있는 무언가.

그건 새하얀 뼈.

조윤정은 붉은 피를 흘리며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엄마! 내가 엄마 살렸어. 그러니까 엄마가 이겨야 해!”

아이는 출혈에도 불구하고 방긋 웃었다.

아이의 복부에 뚫린 구멍.

조윤정의 딸은 자신의 가슴에서 갈비뼈를 꺼내 미나의 가슴에 박아넣은 것이었다.

키메라로 한 몸이 되었지만 언제나 분리가 가능했던 엄마와 딸.

그래서 한 몸이지만 두 개의 몸.

그러나 한 몸이었던 것을 좋아한 아이.

아이의 첫 번째 능력은 분리.

엄마의 품 안에서 언제나 마음대로 나갈 수 있었다.

두 번째 능력은 자신의 뼈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자신의 모든 뼈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면 자신도 상처를 입고 만다. 이른바 양날의 검.

그래서 조윤정은 항상 아이가 자신의 배 안에 있기만을 바랬다.

장난치며 상처입지 않도록.

스스로의 몸을 아낄 수 있도록.

“안 돼! 안 돼!”

“엄마, 내가 죽일게. 내가 엄마 죽이려고 하는 것들은 다 죽일 거야. 다 죽일 거야!”

8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이가 자신의 가슴뼈를 하나둘 꺼내들어 미나의 가슴에 박아 넣는다.

미나는 폐가 뚫렸는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저항하지 못했다.

미나는 살기 위해 아이의 기억을 지웠다.

그러자 가슴뼈를 꺼내들던 아이가 갑자기 멍한 눈을 하더니, 통증 때문인지 울음을 터트렸다.

“응애! 응애. 으아아아아. 응애. 응애!”

“우리 딸! 엄마한테 와! 우리 딸! 우리 딸!”

조윤정은 울음을 터트리는 딸에게 한걸음에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이가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타일렀다.

“내 몸으로 들어와야지. 응?! 지연아! 지연아! 우리 딸! 착하지? 응?”

하지만 기억이 지워진 아이는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2개의 능력 중 분리를 해제해야만 다시 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연이라 불리는 그녀의 딸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아이가 죽어간다.

갈비뼈가 뽑힌 아이는 바깥에서 오래 살 수 없다.

강미나는 아이가 꽂아놓은 갈비뼈를 뽑고 자신의 손으로 뚫린 구멍을 막았다.

‘제발 치료돼라. 슈트야! 힘내! 제발! 제발!’

슈트의 본 기능은 착용자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능력이다.

미나는 슈트가 자신의 구멍난 폐를 메워주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래! 제발! 제발! 나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안 된다고!’

미나의 체력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구멍 난 폐를 메우기 위해 슈트가 미나의 체력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보글보글. 거품을 내는 슈트.

한편, 조윤정은 자신의 아이가 기억을 잃은 채, 엄마도 기억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조윤정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분노를 모아 강미나에게 표출했다.

“망할 년! 죽어! 죽어버려!”

조윤정의 지배 능력이 다시 한 번 바키우스에게로 향했다.

치료에 집중하는 미나는 바키우스의 기억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현재 그녀의 체력으로 누군가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최대 6회.

50층에서 김아람을 도와주려고 썼던 3번과 바키우스에게 썼던 한 번, 그리고 자신의 해마를 조종한 것과 김건우를 도와주려고 썼던 것으로 6회가 모두 채워졌다. 더 이상 능력을 쓰기 힘들었다.

더구나 지금은 자신의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움직이기만 해도 안 될 판에 능력까지 쓰면 스스로 붕괴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키우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오빠!”

“응. 내가 왔어.”

“어떻게! 다리하고 팔은 어떻게 하고!”

“슈트가 있잖아.”

김건우의 등장.

김건우는 슈트를 최대한 활용해 자신의 부상을 치료했다.

보글보글 기포가 흘러나오는 슈트를 한계까지 활용한 김건우가, 정신을 잃을 듯 흥분한 조윤정의 심장을 꺼내 목숨을 앗아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배하는 주인을 잃은 바키우스.

그리고 그의 펫 조윤정의 죽음은 율리만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김건우의 눈앞에 뜬 홀로그램 문구.

《왕좌의 게임에서 주인 없는 세계의 왕이 되었습니다. 주인을 얻어 위대한 지도자의 길에 합류하십시오.》

누군가의 펫이 아닌 김건우.

그는 주인이 없는 상태로 왕좌의 게임에서 최종 승리자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미나야. 괜찮니?”

“응. 오빠, 고마워요. 흑흑. 나 너무 무서웠어.”

보글보글 올라오는 슈트의 기포가 멈출 줄을 모른다.

미나는 자신도 김건우도 한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김건우가 오지 않았다면, 자신은 분명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조윤정만 죽으면 제 정신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키우스가 갑자기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며 조윤정의 마지막 명령대로 강미나를 죽이려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안 돼! 오빠 도망가요. 나만 죽이면 멈출 거예요.”

“내가 너만 놓고 도망가겠냐?”

김건우가 미나의 앞을 막은 채 일어났다.

“잠깐만! 그만! 건우 오빠 한계잖아요! 오빠 슈트 봐요. 기포가 장난 아니잖아!”

“미나야! 내 마음 알지? 더 이상은 말 안 한다!”

김건우가 갑자기 미나의 미간을 눌렀다.

인간의 약점인 미간.

혈을 눌리자, 미나의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미나는 고통 속에서도 좁아진 시야를 어떻게든 유지했다.

김건우가 바키우스의 다리를 타고 달리며 녀석의 몸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바키우스는 조그마한 김건우를 떼어놓기 위해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지만, 다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물질투과 능력으로 통과하는 김건우를 잡을 방법은 없었다.

김건우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미나야. 들리지? 하나만 부탁할게. 차기 마스터는 너야.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동료들, 가족들 잘 부탁해.’

김건우는 바키우스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물질투과 능력을 사용하자, 수많은 근육들과 혈관이 김건우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그의 목표는 바키우스의 심장.

바키우스의 심장에 도착한 그가 할 일은 물질투과 능력을 해제하는 것.

심장 안에서 능력을 해제한 김건우 때문일까?

바키우스가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가슴을 쾅쾅 치며, 김건우가 빠져나오게 만들려는 심산.

하지만 김건우는 이미 삶을 포기했다.

김건우는 거인의 심장 속에서 웃었다.

‘이제 터지겠군.’

슈트의 자폭 기능은 한계 이상으로 사용하면 폭발하는 것.

바키우스의 가슴 쪽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가 동작을 멈춘 채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김건우의 죽음.

그리고 미나의 시야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강미나가 시야를 회복했을 때는 어느새 한태석과 그의 동료들이 도착해 있었다.

“미나야. 이게 어떻게 된 거니? 네가 처리한 거야?”

“건우 오빠가 희생했어요.”

“뭐?! 건우가 살아 있었어?”

“네. 마스터는 절 살리다 죽었고, 건우 오빠도 절 살리다가 죽었어요. 그래도 방법은 있어요.”

“방법이 있다고?”

강미나는 아껴두었던 돌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건 영혼의 돌.

“비록 클론이지만, 둘 중 한 명은 살릴 수 있어요. 태석 오빠는 제가 누굴 살리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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