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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125화 (125/200)

125화. 조윤아

바키우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놓은 애완동물 최강자전에 참가한 거인들은 더 이상 아르케의 국가가 들려오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겨우 하나의 관문만 통과했다는 것.

그래서 그럴까?

여기저기서 기권을 희망하는 참가자가 속출했다.

『저 그만 기권하겠습니다.』

『저도 기권하겠습니다.』

기권을 희망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말문이 막힌 진행자는 주최자인 바키우스를 쳐다보았다.

대외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인물,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아르케에서 최강의 자리를 5년째 고수하고 있는 그의 결정을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버키우스는 눈 한 번 깜짝이지 않았다. 단지, 담담한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죽여.』

『네?』

『너희한테 말한 거 아니야.』

버키우스의 명령에 따라 기권을 희망한 2명에게 붉은 구체가 레이저를 쏘아댔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2명의 거인.

그리고 그들의 펫 또한 같은 운명이 되어버렸다.

생존자는 18명에서 16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들을 향해 바키우스가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셈이었다.

* * *

같은 시각, 장명훈을 비롯한 작전조 일원들은 지니어스 타워에 무사히 입장했다.

“마스터! 정보조장 한태석으로부터 중계화면 접속에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

정보조와 작전조는 각기 다른 루트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다.

작전조의 목적은 바키우스가 있는 곳을 찾아내 그와 조윤정을 암살하는 것.

정보조의 목적은 작전조의 작전을 서포트하기 위한 정보수집, 그리고 작전조가 임무에 실패하면 예비조로서 활동하는 것.

그리고 그 두 조의 정보를 유기적으로 전달하는 홍성운, 홍성환 형제.

홍성환은 자신의 형 홍성운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었다.

“32명의 결선 진출자 중 7명이 사망했답니다.”

“뭐? 왜?”

“무슨 게임을 했다고는 하는데, 자세한 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아, 추가 정보입니다. 2명이 더 죽어서 현재 16명이 남았고, 김아람은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래. 알았어. 계속 정보 수집해봐.”

“네.”

김아람의 생존소식에 강미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는 정확한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0층까지 움직여야 했다.

식당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일행들.

이제는 미리 뚫어놓은 침투로인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50층까지 직행하면 끝이다.

지금은 휴게시간.

그래서 거인들도 식당에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왜 그래?”

마스터의 질문에 김건우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뭐?!”

“무슨 이유인지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물쇠를 걸었거나, 아니면 일부러 전원을 내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김건우의 대답에 마스터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멍청한 것들! 그러게 처음부터 화장실 이용해서 환풍구로 가야 한다고 했잖아!”

갑자기 암울해진 분위기. 장명훈은 모든 탓을 남에게 돌렸다.

“다들 움직여! 빨리빨리 움직여! 환풍구로 뛰어! 뛰라고!”

그런데 모두의 움직임을 김건우가 막았다.

“아닙니다. 돌아가면 늦습니다.”

장명훈은 자신의 결정에 반하는 젊은 녀석의 말에 성을 냈다.

“늦긴 뭘 늦어! 김건우! 야! 김건우!”

김건우를 타박하는 장명훈. 그는 타오르는 복수심에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그걸 알아차린 강미나가 말했다.

“마스터! 김건우 조장님한테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들어주세요.”

“뭐야? 너까지 덤비는 거야?”

장명훈이 강미나의 뺨을 세차게 날렸다.

아크로바틱한 움직임. 그런데 강미나는 발을 살짝 빼는 것만으로 그의 공격을 간단히 피해냈다.

“피해? 피했어?”

장명훈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강미나를 향해 무릎을 올렸다.

높게 올라가는 하이킥. 하지만 강미나는 목만 뒤로 빼며 날아오는 하이킥을 간단히 흘려보내고는 마스터를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들어주세요. 부탁이에요.”

다음 번 공격.

이번에는 부하들 앞에서 자신을 욕보이게 만든 강미나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자신의 최고 속도로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에 미나는 당황했다.

장명훈의 발차기가 미나의 얼굴을 갈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런 느낌 없이 그냥 스쳐가는 발차기.

그리고 그 뒤에는 미나의 얼굴에 흐물거리는 잔상만이 남는다.

장명훈은 그 이유를 파악했다.

“김건우?!”

김건우의 물질투과 능력이 강미나를 마스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한 것.

그렇다.

김건우는 잠깐이지만 모든 물질을 투과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자신도 공격하지 못하지만, 남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능력.

그야말로 무적.

장명훈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나랑 장난치는 거야?”

그러나 김건우는 오히려 반박해 왔다.

“아닙니다. 마스터야말로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대원들이 불안해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지금 마스터는 분노에 휩싸여서 앞뒤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미나의 발언이 이어졌다.

“환풍구로 가면 5배는 오래 걸려요. 마스터는 그걸 알면서도 분노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계세요. 어제 말씀하셨잖아요. 지금 이 경로밖에 침투로가 없다고. 여기로 무조건 가야 한다고요!”

장명훈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겨우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그의 말대로, 그녀의 말대로 부하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이 여기서 더 화를 내면 저들이 하극상을 벌인 것으로.

여기서 멈추면 부하의 충언이라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마스터인 장명훈이 부하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했다. 내가 좀 흥분했군.”

그의 말에 작전조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마스터.”

“마스터! 마스터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을 수년간 이끌어준 은인이자 지도자.

장명훈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은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김건우 말에 따른다.”

“네?”

“지금부터는 김건우가 내 후계자야. 김건우!”

“네. 마스터.”

“지시를 내려. 나도 그에 따르마.”

“…….”

김건우는 대답 대신 목례로 대신했다.

원래라면 부담스러운 지도자의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스터로서 첫 명령을 내리겠다. 모두 화물 엘리베이터 통로의 벽을 타고 1층까지 올라간다. 화물 엘리베이터에 잠입하는 데 성공하면 그 자리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어둠 속을 헤치고 올라갈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순서는 물질투과 능력이 있는 내가 가장 먼저 올라가고, 체력이 가장 좋은 장명훈 대원이 젤 마지막에서 처지는 동료들을 책임지고 올라간다. 알았나?!”

늠름한 모습으로 명령을 내리는 김건우.

그리고 강미나를 포함한 작전조원들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마스터!”

“출발!”

앞장서는 김건우,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작전조원들.

맨 마지막에서 그들을 쫒아가는 장명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김건우를 바라본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군.’

* * *

같은 시각, 첫 번째 스테이지가 끝나고 바키우스가 준비한 두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되고 있었다.

진행자에 의해 억지로 다음 전장으로 이동하는 거인들.

명령을 어길 시 붉은 구체가 언제 목숨을 앗아갈지 모른다. 더 이상 반항하는 거인은 없었다.

진행자를 두고 일어나는 바키우스.

『잠시 다녀오지. 진행하고 있게.』

『네. 알겠습니다.』

바키우스는 중계석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최정상으로 올라갔다.

건물 최정상에 도착하자, 바키우스를 지배하고 있는 펫 조윤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쉰내 나. 빨리 씻어!”

그걸 알아들었는지, 바키우스는 조윤정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샤워실로 직행했다.

홀로 남은 조윤정은 탁자 옆에 놓인 검은 구체를 작은 손으로 똑똑 두드렸다.

기능이 정지한 듯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구체가 조윤정의 동작에 빛을 내기 시작했다.

검은 구체는 인간이나 거인이 낼 수 없는 저음과 고음이 뒤섞인 목소리로 조윤정에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이제 와서 도전할 생각이 드는 건가?』

검은 구체의 음성에 조윤정이 비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나보고 죽으라고? 내가 쉽게 죽으러 갈 것 같아?』

조윤정은 자신의 웃옷을 살짝 들어 올려 눈을 감고 있는 태아가 담긴 배를 바라보았다.

엄마와 딸. 어떻게 보면 비정한 삶을 살고 있는 모녀를 향해 검은 구체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이라도 나한테 오면 너의 목숨은 노리지 않겠다.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는 게 어때?』

검은 구체의 말에 조윤정은 고개를 저었다.

『난 죽어도 못해. 죽어도 안 해. 내가 내 딸을 어떻게 살렸는데! 얘를 어떻게 살렸는데!』

『그건 만들어진 생명일 뿐이다. 너희는 애초에 생식능력이 없어. 그건 그냥 데이터…….』

데이터라는 말에 조윤정이 그의 말을 끊고 소리를 질렀다.

『율리만! 닥쳐! 닥쳐! 난 살아있어. 내 딸도 살아있고! 난 죽지 않을 거야. 네 말대로! 네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닥쳐!』

『크크, 그래서? 내가 너를 포기할 것 같아? 너 같은 최고의 살인병기를 놔둘 것 같아?』

율리만의 말에 조윤정이 소리 질렀다.

『역시 넌 단단히 미쳤어.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진 않았을 거야.』

『후후, 너도 내 입장이 되면 나보다 더할걸? 지금도 그렇잖아. 근본도 없는 만들어진 생명 가지고 이 사단을 만들어? 나를 시험해?! 내가 5년이나 기다려줬지? 그런데도 넌 끝까지 자신의 입장만 고수했어. 내가 더 이상 어떻게 참아주지?』

“내가 말했잖아. 나는 율리만 섬에 안 간다니까! 너 만나기 싫다고!”

조윤정의 말에 울화통이 터진 율리만. 자신의 입장을 토로했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니까! 그러면 너도 네 아이도 죽어. 죽는다고!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데? 어?”

한글과 거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둘.

그러나 좁혀지지 않는 대화의 간극.

율리만과 조윤정.

조윤정과 율리만.

그 둘은 자신의 목적을 끝까지 관철하며 대립하고 있었다.

그때 샤워를 마친 바키우스가 욕실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조윤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의 눈은 풀려 있었다.

그런 바키우스를 향해 조윤정이 명령을 내렸다.

『저거! 부숴버려!』

지배 능력에 따라 바키우스가 자신의 방에 있던 골프채를 들었다.

양손에 들린 골프채, 유연한 허리 움직임, 그리고 회전하는 궤도.

바키우스는 조윤정의 명령에 따라 드라이버의 샤프트로 검은 구체를 완벽하게 박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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