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본선 경기
아르케 지역 최대 규모의 축제, 아르케 대륙 애완동물 최강자전!
지니어스 타워에서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이 대회의 개최자는 다름 아닌 바키우스.
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5년 전 혜성같이 등장한 후, 어떠한 도전자도 그의 펫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건 마찬가지.
모두가 아르케 최고의 인기멤버, 바키우스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
『아르케 대륙 애완동물 최강자전이 지금 막 시작되겠습니다. 먼저 경기 룰을 설명해드릴 건데요. 조셉 씨! 먼저 전장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46층부터 50층, 5개 층의 중앙광장을 모두 경기장으로 개조한 올해, 거인들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더 뜨거웠다.
『전장은 총 5개 구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전장은 아무것도 없는 백스테이지.
그러나 그 위에는 붉은 구체들이 질서 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첫 번째 스테이지는 00명 모여라입니다. 현재 총 32명의 참가자가 자신의 펫과 함께 백스테이지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스테이지 위에서 붉은 구체들이 음악을 틀기 시작할 텐데요. 음악이 연주되다 멈추면 붉은 구체가 원형의 구획을 만들고 숫자를 표시해줄 겁니다. 숫자에 해당하는 인원 수만큼 안에 들어가 있으면 되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아~ 물론 인원을 채우지 못하거나, 넘치면 아웃입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붉은 구체가 스테이지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동시에 아르케 대륙의 국가가 흘러나왔다.
국가가 흘러나오자, 관중들은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국가를 따라 불렀다. 한편 참가자들은 붉은 구체가 발산하는 크고 작은 빛의 움직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애국가가 끝나갈수록 긴장하는 참가자들.
버키는 자신의 시선을 붉은 구체에 고정했다. 붉은 구체가 쏘아내는 빛이 크고 작은 원을 만들어가는 가운데, 갑자기 모든 구체의 빛이 꺼지고, 가운데의 구체만이 바닥에 원형의 빛을 쏘아내며 25란 숫자를 나타냈다.
버키는 기다렸다는 듯, 붉은 구체가 만들어낸 원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비켜! 비켜! 비켜!』
단련된 근육으로 상대방을 밀어내며 어떻게든 원 안에 들어가 살아남으려는 참가자들.
김아람은 버키의 품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글자 좀 배워둘걸…….’
어떤 일이 일어나지 모르는 탓에 모든 것을 버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버키는 거인 중에서도 똑똑한 편이었다.
더구나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해둔 덕분인지 다른 거인들의 힘에도 밀리지 않고 원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25란 숫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5 밑에 보이는 또 다른 숫자가 있었다.
원 안에 들어오는 거인과 펫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25 밑에 출력되는 숫자의 수도 비례해서 올라갔다.
22 / 25
23 / 25
24 / 25
마침내 25 / 25가 되자 붉은 구체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붉은 빛이 결계로 완성되는 순간,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개를 내젓는 탈락자들.
『아, 뭐야! 벌써 끝이야?』
『아~ 허무해. 진짜 허무하다.』
그들이 탈락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신의 펫을 챙겨 경기장을 이탈하려 하는데, 갑자기 정지해있던 붉은 구체가 한꺼번에 움직이며 붉은 레이저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핏물과 같은 색의 붉은 레이저가 거인을 향했다.
처음에는 그냥 빛인 줄만 알았던 레이저가 거인의 몸을 뚫고 지나간다.
레이저에 노출된 거인들의 피부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탈락한 거인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의 펫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축제인 줄만 알고 있던 관중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와! 진짜 같다. 특수효과 대박인데?』
『응. 많이 준비했나 봐.』
하지만 반쯤 갈라진 거인의 시체에, 터져 나온 장기를 땅에 질질 끌며 도망치는 키메라의 모습은 도저히 특수효과로는 보이지 않았다.
관중들은 경악했다. 일부는 메스꺼운 듯 구토를 하며 관중석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25명을 결계 안에 채워 넣은 붉은 구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구체들은 살아남은 7명의 거인과 그들의 펫이 절명할 때까지 끝까지 추적하며 레이저를 발산한다.
『으아아아악!』
『크으으으읍!』
예전에도 분명 사상자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잔혹하진 않았기에, 거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거인의 룰 1》 거인끼리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거인의 룰에 의해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거인. 그들에게 자연사가 아닌 타살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 그래서 더 충격.
그것은 버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일부러 발동시킨 건가?』
바키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를 떠올렸다.
평소에는 부르면 즉각 출동하여 주변을 순찰하는 검은 구체.
그런데 오늘 보니 주변에 검은 구체가 없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붉은 구체만이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7명의 거인, 그리고 같은 수의 펫이 레이저에 의해 불탄 상황이다.
하지만 잔혹하게도 아르케의 국가가 장내에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미친 거지?! 이대로 계속 한다고?』
참가한 거인들에게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경기가 재개된 것이다.
아르케의 국가가 중간에 멈추고 이번에는 2개의 붉은 구체가 원을 쏘아내고 있었다. 이번에 나타난 숫자는 9.
거인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붉은 구체가 만들어낸 원 안에 들어가 타인을 밀어내기 바빴다.
버키는 당황했다.
재빨리 대처하려고 스테이지 중앙에 있었는데, 9라고 되어 있는 두 개의 원이 왼쪽과 오른쪽 가장자리에 나타난 것.
처음에는 왼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왼쪽에는 순식간에 9명의 거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결계.
9명은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오른쪽 원에 거인들이 몰린다.
거인들은 자신의 펫을 부여잡고 원 안에 들어가기 애썼다.
버키는 눈앞에 있는 오른쪽의 원을 바라보았다.
3 / 9
4 / 9
5 / 9
……
거인 한 명 한 명이 들어올 때마다 올라가는 숫자.
7 / 9
8 / 9
……
그리고 버키의 눈앞에서 거인 하나가 원에 들어가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버키는 절망했다.
다른 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들어간 거인 하나가 갑자기 손으로 휘파람을 부르며 난리를 쳤다.
『뽀삐! 뽀삐! 이리 와! 나한테 와! 나한테 와!』
그가 부르는 대상은 개와 늑대가 합쳐진 합성종인 키메라 펫.
거인의 명령에 뽀삐라는 이름의 펫이 주인에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걸 보며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재촉하기 시작하는 버키.
다른 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작정 뛰고 또 뛰었다.
버키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작은 스테이지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넓다고 느껴지는 건지…….
그래도 다행이었다.
뽀삐라는 녀석보다 자신이 한참 앞에 있었으니까.
버키는 우월한 체격으로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모든 거인들을 제치고 마지막 자리가 자신의 것이 될 듯하자 버키의 입가에서 안도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뒤쪽에서 헥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발로 뛰는 짐승, 늑대와 개의 혼종.
녀석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주인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 뽀삐! 뽀삐 빨리빨리!』
키메라의 접근 속도를 파악하자 버키의 미소는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젠장!』
엄청나게 빠른 속도. 0.1초라는 짧은 찰나였다.
녀석의 꼬리를 붙잡아 집어던져 시간을 벌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뛰어 들어가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자신의 뒤쪽에서도 거인들이 지근거리까지 따라붙고 있었던 것.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한 자리.
키메라의 앞길을 막자니 뒤쪽의 거인들이 걸리고, 키메라를 그냥 보내주면 자신의 목숨이 달아난다.
발악하는 거인들 사이에서 버키는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키메라보다 먼저 골인하기를 기원하며 8 / 9 라는 숫자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데 키메라는 빨랐다.
네발짐승답게 유연한 골격과 빠른 발놀림으로 버키를 한 끗 차이로 앞지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달려가는 키메라, 그리고 9 / 9 로 올라가는 숫자.
버키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안 돼! 안 돼! 안 돼!』
붉은 구체가 원의 반경을 중심으로 결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동작을 멈추었던 다른 구체에 불이 들어오고, 남은 거인들과 펫을 학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9 / 9 숫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9 / 9
8 / 9
9 / 9
8 / 9
반복해서 흔들리는 숫자.
그때, 버키의 귓가에 김아람의 고성이 들려왔다.
“뛰어! 뛰라고! 뛰라고!!!!!!!!”
김아람의 음성이 무슨 말인지 버키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자신의 펫인 김아람이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
버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앞만 보고 계속 달렸다. 그리고 순간 그의 시야에 자신을 앞질렀던 키메라가 포착되었다.
키메라의 발끝이 원형 경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질질 끌리고 있다. 그리고 그 키메라의 주인이 자신의 펫을 원의 경계 안으로 집어넣기 위해 몸통을 잡고 끌어당기고 있다.
김아람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자신의 앞을 향하고 있었다.
거대한 염력이 늑대와 개의 혼종인 키메라를 붙잡고 있었다.
“아! 죽어! 죽어! 제발 죽어!”
그녀의 비명과 키메라의 비명이 이어졌다.
- 아오오오오오오! 아오오오오오오!
어떻게든 더 이상 녀석을 앞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김아람과 어떻게든 끌어보려는 주인. 그리고 그 둘의 힘을 동시에 받는 펫.
그리고 결과는 버키의 세이프.
버키가 원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자, 8 / 9 에서 9 / 9 로 변환하던 숫자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구체에 의해 생성된 결계가 개와 늑대의 혼종인 키메라의 몸통을 잔인하게 2등분 시키고 말았다.
이어지는 학살.
다른 붉은 구체가 남은 거인과 펫을 학살했다.
그래도 개와 늑대의 주인은 살아남았다.
그는 안도했다.
『살아남았어. 다행이야.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으로 붉은 구체가 하나 다가오고, 다른 거인들이 서둘러 몸을 피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경계막 안에서 붉은 구체가 그에게 붉은 레이저를 쏘았다.
거인의 머리에 레이저가 통과하자, 그의 뇌수가 주변에 비산했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그랬다. 거인만 통과하면 살 수 없다. 펫이 없는 주인의 운명은 죽음뿐.
눈 옆에 튀긴 거인의 뇌수를 손등으로 닦은 버키는, 어깨 위에서 숨을 몰아쉬며 피눈물을 흘리는 김아람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