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변화하는 정세
백현의 연락이 끊어지고 김아람, 그리고 버키와 바키는 자신들의 앞에 놓인 소생의 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 이거 엄청 비싸지 않을까?』
『비싸겠지. 우승 상금이잖아.』
『내다 팔까?』
『아서라. 아무리 타 대륙이라지만, 신디아의 황제가 부탁한 거잖아.』
『말은 바로 하자. 황제가 아니라 황제의 펫이지.』
『그럼 어떻게 하자고? 팔자고?』
버키와 바키 형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다가 김아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감동에 벅차 울고 있는 김아람의 슬픈 눈이 거인들의 마음을 측은하게 만들었다.
『바키! 넌 내 펫 표정 안 보여? 죽을 운명을 친구가 구했잖아. 이 감동스러운 스토리 앞에서 넌 돈만 밝히냐?』
『하지만 내 펫은 형 펫처럼 귀엽지가 않은걸?』
『무슨 소리야? 네 펫은 완벽하잖아.』
사랑스럽고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바키, 그리고 울룩불룩 투박한 근육형 스타일을 좋아하는 버키의 의견이 충돌했다.
『휴먼종, 한태석 불러 와.』
『응.』
* * *
같은 시각, 아르케 1-6지역의 어느 빌라 지하.
근무 중인 정보조의 상황실에서 누군가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으으으으으.”
그걸 보며 한태석이 웃음 지었다.
“병호야. 괜찮냐?”
“아-으으. 죄송합니다. 조장님. 미리 충전해놨어야 하는데, 어제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아니야. 너 없었으면 이 사무실이 돌아가겠냐?”
그동안 공석이었던 정보조의 조장 자리에 오른 한태석의 말에 강병호가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팔에 붙어 있는 전선.
왼손에는 (-)극이, 오른손에는 (+)극이 연결되어 있었다.
“흐아아아. 아앗! 흡!”
강병호의 신음소리에 웃음을 터트리는 한태석.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신음 소리 어떻게 할 수 없냐?”
“죄송합니다.”
“아니야. 됐어. 충전 그만 해도 돼. 작전조 김건우 조장님께서 오늘 저녁까지는 꼭 건전지 구해주시기로 했으니까.”
“네. 아흣. 그럼 충전 끝내겠습니다.”
강병호는 손에 연결된 전선을 떼어내고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이걸 본 한태석이 한마디 건넸다.
“고생했다.”
“과찬이십니다. 일단은 30% 정도 충전해두었습니다. 지금 바로 전원 켜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응.”
생체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할 수 있는 강병호의 능력 덕에 스마트폰은 사용 가능할 정도로 충전되어 있었다.
일명 율리만폰.
《율리만S11》
Powerd by 율리만이라는 시동화면에는 자물쇠 마크가 그려져 있고, 자물쇠의 주위에는 녹색과 파란 색의 외곽선이 빙글빙글 돌며 기동까지의 대기시간을 퍼센트 수치로 알려주었다.
시동이 걸리고,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내는 율리만S11.
와이파이가 잡히자마자, 바키로부터 메시지가 들어왔다.
“바키?”
메시지를 본 태석의 동공이 확정되고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가 병호를 향해 말했다.
“병호야.”
“네.”
“긴급사항이다. 홍성운 데려와라.”
* * *
작전조는 최종 작전을 앞두고 실전 같은 훈련을 거치고 있었다.
하수구를 지나 아르케 2-1 구역으로 이동한 작전조.
아르케 2-1 구역은 비포장도로를 주변으로 강과 이어진 조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있고, 이곳에는 설치류 중 몸집이 큰 편인 비버가 서식한다.
오늘의 목표는 비버의 집을 무너뜨리고, 그 공격을 무마시키는 것.
김건우는 강미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
“강미나! 물러서지 말고 책임구역 막아!”
“네!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움직이라고!”
“네! 움직이고 있습니다!”
김건우의 경고에 강미나가 물가에 선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헤엄치는 비버를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기억을 지우는 미나의 능력에 비버들이 한순간 목표를 잃었다.
그런데 비버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미나에게 달라붙은 건 무려 6마리.
강미나는 애써 당황을 감추고 2마리의 기억을 또 다시 지워버렸다.
세 마리가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세 마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강미나만을 목표로 헤엄쳐서 다가왔다.
김건우는 놀란 얼굴로 홍성환에게 말했다.
“야! 성환아! 미나하고 합류해! 너무 많아.”
“네!”
애초에 마스터가 예상한 비버의 수는 여섯, 그런데 그 6마리가 전부 강미나를 향해 돌진하니 당황할 수밖에.
방금 3마리의 기억을 지운 강미나는 숨을 헐떡이며 뒤로 도약했다.
슈트를 입었다고는 해도 인간은 인간.
비버의 추격속도를 따돌릴 수는 없던 강미나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위를 엄폐물로 삼아 몸을 숨겼다.
바위와 바위 사이는 비버 한 마리가 간신히 통과할 만한 간격이었다. 그 사이로 비버 한 마리가 커다란 앞니를 앞세우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강미나는 병뚜껑으로 만든 방패로 앞니를 막아내고, 이쑤시개를 잡아 비버의 코를 정확히 찔렀다.
코의 점막에 이쑤시개가 박히자 깜짝 놀라 화들짝 도망치는 비버 1.
뒤를 이어 들어온 비버 2가 강미나를 향해 앞니를 드러내고, 미나는 또 한 번 이쑤시개를 이용해 비버를 쫒아냈다.
비버 3은 홍성환과 맞붙고 있었다.
미나처럼 이쑤시개와 병뚜껑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는 홍성환, 그러나 미나와 달리 비버 한 마리에 고전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조장님! 마스터! 마스터!』
장명훈은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새를 그려 비버에게 날려 보냈다.
장명훈이 상상한 이미지의 새는 독수리.
백색의 선에 흑색의 먹으로 채워진 독수리의 형상이 비버를 향해 날아가 큰 폭발음과 함께 불타올랐고, 마지막 비버는 그 자리에서 커다란 화상을 입고 하천으로 입수하며 줄행랑 치고 말았다.
강미나가 홍성환을 향해 말했다.
“성환 오빠, 괜찮아요?”
“아, 응. 넌 다친 데 없니?”
“그럼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숨만 조금 찰 뿐이에요.”
가장 어린 나이지만, 누구보다도 전투에 능숙해보이는 강미나를 향해 홍성환이 칭찬했다.
“바위 사이로 숨은 거 진짜 잘했다. 내 도움 없어도 충분했겠는데?”
“아니에요. 성환 오빠가 도와주신 덕분이죠.”
그러나 그게 못마땅한 장명훈.
“홍성환! 넌 인마! 남자가 비버 한 마리 상대 못해서 쩔쩔 매냐?”
“죄송합니다.”
“강미나!”
“네. 마스터.”
퉁명스러운 말투, 하지만 이제는 작전조의 일원으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미나의 실력.
“잘했다.”
그는 단순한 세 글자를 내뱉었을 뿐이다.
하지만 마인드 리딩 능력을 지닌 강미나에게는 마스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려오고 있었다.
《빨리 성장했군. 강미나, 이제 믿고 맡겨도 되겠어.》
한편, 비버의 굴 안쪽에서 나무로 만든 댐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얼기설기 뭉쳐있던 목재들의 연결고리를 부수자, 와르르 무너지는 비버들의 댐.
그 안에서 김만철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임무 완료했습니다.”
* * *
작전조는 마지막 훈련을 끝내고 야외에서 불을 피웠다.
오늘의 식량은 다름 아닌 비버.
불로 비버의 털을 지진 후, 장정 둘이 털끝을 잡고 벗겨내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이렇게 비버의 속살을 바비큐로 먹는 게 오늘의 마지막 일정.
이것만 끝나면 야외에서 1박 후, 내일 아침 일찍 거주지로 돌아가게 된다.
캠프파이어 같은 분위기에서 마스터가 김만철에게 물었다.
“이제 몇 개월이지?”
“4개월 됐습니다.”
“후후, 그래. 선희 씨랑 결혼식은 올려야지?”
“무슨 결혼식입니까! 괜찮습니다.”
“아니야. 결혼해야지! 윤수도 그래야 아저씨라고 안 하고 아빠라고 부르지.”
“이제 살날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그냥 조용히 가고 싶습니다. 솔직히 아이를 가진 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뭐가 미안해! 서로 사랑했으니까 아이가 생긴 거지. 너 혼자 했냐? 둘이 같이 한 거지.”
장명훈의 말에 얼굴이 빨개진 김만철이 김건우에게 화제를 돌렸다.
“건우는 사귀는 사람 있냐?”
“네?”
“너도 30대면 슬슬 결혼 생각해야지! 애도 갖고.”
“네-에?! 아닙니다. 무슨 결혼입니까?”
김건우는 당황하며 대답했지만, 강미나는 김건우를 째려보았다.
“조장님?”
“어?”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어. 그래야지. 미안!”
“크크, 김건우 녀석! 흑심 또 들켰네.”
“됐거든요?! 고기나 드세요.”
물가에서 사는 동물이라 그런지 비버의 속살은 지방 없이 살로 꽉 차 있었다.
질긴 속살을 먹기 좋게 얇게 찢기 시작하는 동료들.
그리고 작전을 앞둔 마지막 훈련이니만큼 마스터의 당부가 이어졌다.
“다들 알겠지만, 난 이미 결혼에 실패했어. 마누라는 동료를 죽이고 현재 아르케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지. 그 후 인간들을 완벽하게 사회에서 격리시켰고, 우리는 항상 도망치거나 숨어살 수밖에 없었어.”
마스터의 말에 김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랬죠. 너무 힘들었습니다.”
장명훈은 김건우와 함께 보냈던, 아니 자신의 아내였던 조윤정과 함께 지냈던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난 이렇게 생각해. 이걸 되돌리는 게 내 숙명이라고. 인간도 이제 바깥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후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바꾸어야 한다고. 내 뜻에 모두 동참하는 거지?”
숙연한 분위기 앞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미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인드 리딩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읽을 수 있는 건 단편적인 사항뿐이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그 날의 상황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바뀐다.
마스터가 자신의 아내인 조윤정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복수심을 느끼는 것도, 김만철에게 윤수에게 아빠로 불리고 싶은 마음과 아저씨로 남아 있고자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것도, 그리고 김건우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음에도 미성년자라서 고백하면 안 된다며 이성의 끈을 붙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것도.
미나는 생각했다.
사람을 확실하게 알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악당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지내보면 나쁜 놈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때, 홍성환이 비버고기를 먹다 말고 텔레파시를 듣기 시작했다.
“뭐?!”
“어! 그런데?! 소생의 돌이라고?!”
소생의 돌이라는 말에 동요하는 사람들.
“뭐라는데? 성운이가 뭐라고 하는 건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다 듣고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텔레파시를 통해 홍성운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는 홍성환.
그는 내용을 전달받고 모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신디아 대륙의 황제 앨버트, 그리고 그의 펫인 강백현이 김아람에게 소생의 돌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소생의 돌?! 그걸 왜 아람이한테 줘? 있었으면 만철이한테 줘야지! 강미나! 너희 오빠도 소생의 돌을 가지고 있던 거야?”
“네. 오빠 하나, 저 하나, 이렇게 두 개 가지고 있었죠.”
강미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빠, 살아 있었구나. 그래도 소생의 돌은 가지고 있었어야지. 하나밖에 없는 건데! 언니한테 주면 어떻게 해…….’
그런데 홍성운은 놀라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만철이 형님 몫도 줬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밖에 없다는데?”
“아니랍니다. 2개 받았다고. 그래서 지금 아람이한테 하나 쓰고, 하나가 남았다고 얼른 오랍니다. 내일 아침까지 오지 않으면 처분하겠다네요.”
“그럼 네가 가서 받아오면 되잖아.”
“그게 만철이 형이 직접 와야 준다고 합니다. 허튼 놈한테 쓸 수 있다고 하면서요. 그런 메시지까지 남긴 것을 보니 바키가 만철이 형을 아끼긴 아꼈나 봅니다.”
김만철이 홍성운의 말에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 백현이가 날 위해서 소생의 돌을 전달했어?”
“네. 일단은 바키라는 거인과 만나서 대화를 해봐야겠죠. 거주지로 바로 돌아가시죠. 한태석 조장님과 합류하신 다음 바로 바키의 집으로 가야 할 겁니다. 내일 아침까지라니까 조금은 빠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