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18화 (118/200)

118화. 율리만의 비밀

바키우스를 지배하던 조윤아는 이제 멀어져 보이지 않는 장명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이곳에 대해 미련이 남은 거야?”

그러자 그녀의 뱃속에 있던 인격이 답했다.

“아빠는 현실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 그렇겠지. 몸은 괜찮아?”

“응. 아직까지는 괜찮아.”

뱃속의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답했다. 그러나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이 남은 건 아니야. 이번에는 반드시 율리만의 의지에 답해야 해. 더 이상 미룰 순 없어.”

“그래. 그래야겠지. 이제 곧 이 세상도 무너질 테니까.”

“응. 엄마는 최선을 다한 거야. 그러니까 아빠 생각하지 말고, 원래 목표로 했던 계획을 실행하면 돼.”

“그래. 그럴 거야.”

그때, 검은 구체가 바키우스의 옆에 멈췄다.

그의 펫, 조윤아는 검은 구체가 띄운 메시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5년째, 똑같은 메시지.

[위대한 지도자의 길이 열렸습니다.]

[아르케의 황제로서 동료와 함께 데이터 아일랜드의 시련에 도전하십시오.]

[남은 시간 188일 11시간 26분 33초…… 32초…… 31초.]

한편, 강미나는 조윤아의 생각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이제 거리가 멀어져 더 이상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배후에 율리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그녀가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

그들의 최종계획은 무엇일까?

율리만의 목적은 무엇이고.

미나의 입장에서는 알아야 할 게 산더미였다.

* * *

4개의 대륙은 각기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율리만이 보내는 메시지가 대륙의 황제와 주요 인원들 대부분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방송국에서 방송을 시작한 앨버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녹화된 방송이 송출되는 가운데…….

[위대한 지도자의 길이 열렸습니다.]

[신디아의 황제와 함께 데이터 아일랜드의 시련에 도전하십시오.]

[남은 시간 188일 11시간 26분 33초…… 32초…… 31초.]

떠오른 구체의 메시지.

그럼에도 방송은 계속 송출되고 있었다.

≪신디아 대륙 여러분, 저는 도르시안과의 국경 검문소를 맡고 있는 앨버트 소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황제를 잃고 큰 혼돈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겨우 5년이란 시간이었지만, 저희는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된 이후 고난의 행군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에반 왕자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인한 저는 왕자님과 접촉해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얼마 전 노숙자 실종사건을 아실 겁니다. 그분들이 주검으로 발견된 것은 왕자님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앨버트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저는 왕자님과 뜻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공표합니다. 저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황제의 자리를 탈환하는 왕자님의 계획에 반대합니다. 또한, 저 앨버트는 제 목숨을 걸고 황제의 자리에 도전할 것을 천명합니다.≫

앨버트의 진지한 모습이 전국에 송출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오늘부로 저는 황제의 자리에 도전하겠습니다. 아니! 황제가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해주신다면, 아래 연락처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앨버트는 방송 송출이 끝나고 검은 구체에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이게 뭐지?』

검은 구체에 뜬 메시지.

그걸 본 강백현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마도 율리만 섬에 가라는 메시지 같아. 도르시안에서 에반하고 같이 본 적이 있어.』

『영문을 모르겠어. 율리만 섬에 오라는 이유가 뭐지? 자신과 대화를 하자는 건가?』

『그거야 가 봐야 알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율리만도 급박하다는 거야. 이런 메시지를 보낼 정도면 지금 처지가 여유롭진 않은 거지.』

『그나저나 황제를 어떻게 찾지? 방송 통해서 제보를 받아야 하나?』

『이름은 알아?』

백현의 질문에 앨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더 폰 베르키하트.』

『그럼 찾을 수 있어.』

『어떻게?』

강백현은 대답대신 황제의 위치를 미니맵으로 찾기 시작했다.

검색 기능으로 이름만 부르면 바로 해당 위치를 표시해주는 권능.

거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동남쪽으로 41.393km, 거기에 있네.』

『베네시안 항구?』

『명칭까진 몰라. 그런데 인근에 바다가 있고, 등대가 있어. 그건 확실해.』

황제의 위치를 알게 된 앨버트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 과연 자신이 알렉산더를 이길 수 있을까?

백현은 고민하는 앨버트에게 물었다.

『왜? 두려워?』

『완벽할 때 싸우고 싶어.』

『그럼 나한테 투자를 해. 키메라 같은 것 말고. 슈트나 두루마리 이런 것들.』

『응. 그래야지. 그런데 백현.』

『어?』

『알렉산더에게 도전하기 전에 난 네 실력을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싶어.』

앨버트의 말에 백현이 허무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확신이 없는 거야?』

『솔직히 확신이 있다면 거짓말이겠지. 일단 너와 함께 실력을 맞춰보고 싶어.』

『무슨 소리야? 실력을 맞춰보다니! 나만 싸우면 되는 거잖아. 넌 그냥 포인트만 투자하면 되는데 뭐가 그리 고민이야?』

그런데 앨버트가 생각하는 전투는 달랐다.

* * *

그날 저녁. 앨버트의 초청으로 한 중년의 남성 거인이 방송국 인근 호텔로 찾아왔다.

『많이 컸구나. 앨버트.』

『네. 사부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잘 지냈지. 그것보다 엄청난 사고를 쳤더구나.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고?』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나저나 사부님, 펫은 어디 있습니까?』

『펫은 왜?』

『비공식 경기이지만 전 황제도 이기셨던 사부님의 실력을 보고 싶습니다.』

앨버트의 말에 사부가 씩 웃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네놈이 나하고 싸우고 싶어 할 줄 알았어. 하지만 펫은 지금 여기에 없어.』

『네?』

『대신 네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고 있지.』

사부는 USB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내가 비공식 경기에서 황제를 이겼을 때의 전투장면.』

『아……』

『이걸 보면 감이 올 거야.』

앨버트는 호텔로 돌아와 사부가 준 USB를 열람했다.

그리고 충격에 빠졌다.

다음날, 항구로 이동하는 앨버트는 비장한 표정으로 백현에게 말했다.

『어제 사부님을 만났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있더군.』

『뭔데?』

『각오.』

『뭐가 그렇게 진지해! 싸울 펫의 정보는 획득했어? 그거나 알려줘. 난 그거면 돼.』

강백현의 말에 앨버트는 이제까지 조사한 정보를 열거했다.

『너하고 같은 휴먼종의 키메라. 여우랑 합성했어.』

『그거 말고 능력은?』

『현혹, 한번 본 상대의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 능력. 범위는 1m 가량.』

현혹이란 말에 강백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앨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런 능력도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 능력뿐만이 아니야. 고속 이동 능력과 뛰어난 후각 능력도 가진 것으로 알아.』

『그럼 내가 조심해야 될 건 현혹이겠네. 숨어도 냄새로 어디 있는지 쉽게 파악하겠고.』

『그래. 거기에 불도 다뤄. 그것도 체크해야 해.』

* * *

한편 알렉산더는 자신을 위장하고 있었다. 그가 위장한 모습은 PC방 업주.

『한 시간에 20제니입니다. 선불로 하시겠습니까? 후불로 하시겠습니까?』

조그마한 항구도시에서 PC방 업주의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전투가 귀찮아서였기도 했고, 상부의 명령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씨 맞습니까?』

『아닌데요.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아니라는데?』

앨버트의 말에 강백현이 거인어로 대답했다.

『100% 확실해. 알렉산더 폰 베르키하트. 그리고 녀석의 펫은 저 뒤 창고 안에 있고.』

강백현의 말을 이해한 알렉산더의 표정이 굳어졌다.

『투시 능력인가? 좋은 펫을 두었군요. 앨버트 소장님.』

『역시 넌!』

『전투는 임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제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희생은 원하지 않거든요.』

알렉산더는 가게에 있는 손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쩌자는 거지?』

『1시간 뒤에 건물 옥상에서 붙는 걸로 하죠. 일단 손님은 다 내보내고요.』

『옥상에서 기다리지.』

『좋습니다.』

알렉산더는 PC방 포스기를 이용해 손님들에게 1시간 후 모든 게임이 종료된다는 메시지를 알렸다.

손님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그는 웃음으로 일관하며 불만을 다 받아주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스마트폰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바키우스 님, 알렉산더입니다.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현재 앨버트라는 녀석에게 정체를 들켰습니다. 분쟁조정이 곧 시작될 예정이긴 하지만 크게 걱정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행동을 지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알렉산더 폰 베르키하트》

사실 알렉산더는 지금이라도 빨리 복귀하라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황제가 되는 게 아니라 두루마리를 제조하는 시설을 찾는 거였다.

5년 전, 엄청난 과학기술과 합성 키메라로 무장한 그는 신디아 황족과의 대결에서 간단히 승리할 수 있었다.

승리 이후 현혹이라는 능력으로 황족들을 심문해보았지만, 녀석들은 비밀을 털어놓기는커녕 하나같이 자결해버렸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냥 비밀만 털어놓으면 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알렉산더는 황량한 신디아 대륙을 몇 년에 걸쳐 쥐 잡듯 뒤졌다. 하지만 비밀시설은 발견할 수 없었다.

5년 동안 대륙 전체를 헤집고 다녔는데도 두루마리를 만드는 장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더 이상 상부의 명령도 없었다.

황제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었는데, 스스로 자결한 것 때문에 그렇게 된 것뿐이었는데…….

그 후 언제부턴가 검은 구체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지도자의 길이 열렸습니다.]

[신디아의 황제로서 동료와 함께 데이터 아일랜드의 시련에 도전하십시오.]

[남은 시간 187일 13시간 51분 33초…… 32초…… 31초.]

신디아의 황제.

황제로서 딱히 한 일은 없었지만, 검은 구체는 확실히 자신을 황제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죄책감에 시달리길 몇 년.

그러나 자신을 파견한 바키우스로부터는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다.

『‘주군, 도대체 저는 여기에서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 겁니까?’』

그때, 방황하는 알렉산더에게 기대하지 않던 주군의 답장이 돌아왔다.

《멸망의 전조가 다가오고 있다. 그때까지 힘을 기르며 현 상황을 유지하라.》

단순명료한 답장. 하지만 명확한 지시.

회장의 답장에 알렉산더가 생각했다.

『‘네.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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