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바키우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갈 수 있는 곳은 바로 객실 전체였다.
들키지 않고 객실까지 다이렉트로 이동 가능한 유일한 통로나 다름없고, 타겟이 머물고 있는 객실 번호만 알고 있다면 무혈입성이 가능한 방법.
김건우의 말에 장명훈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게 있을 정도로 발전했단 말이야?”
“당연하죠. 마스터가 오신 것은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잖아요.”
“강미나!”
“네. 마스터.”
“이번은 잘했어.”
그의 마지못한 칭찬에 강미나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올라가볼까? 일단은 623호실로 가보지. 6층 엘리베이터하고 가장 가까운 곳이니까.”
“네.”
마스터의 말에 김건우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숫자로 623을 입력하고 *를 누르면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623호로 움직인다.
속도는 일반 엘리베이터에 비해 느렸다. 정숙한 운행을 하기 때문에 6층까지 4분이나 걸린다. 하지만 그 어떤 수단보다도 안전하고 조용하게 잠입할 수 있기에 이런 단점은 상쇄되고도 남았다.
623호에서 멈춘 엘리베이터.
“도착한 것 맞지?”
“네. 엘리베이터 틈 사이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닫힌 상태 그대로였다. 그러나 아예 막혀있는 게 아니라 안쪽이 보이도록 빗살 형태로 틈이 있어, 안쪽에서도 바깥을 볼 수 있었다.
4명의 일행이 틈을 통해 실내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전 7시 20분. 조명이 꺼져 있었지만 햇빛이 들어와 주변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 좌측으로는 현관 입구와 화장실이 있었고, 우측에는 세면대와 TV, 발코니, 그리고 침대가 놓여있는 객실이 위치해 있었다.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스터가 말했다.
“거인이 머물고 있었던 모양이야.”
“네. 그런 것 같네요.”
그 말대로 더블베드에 남성형 거인과 여성형 거인이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마스터는 그들을 무시하고 일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일단 현관 통해서 엘리베이터로 이동해 보자고.”
“엘리베이터는 왜요?”
“왜긴 왜야. 플랜 A가 있으면 플랜 B도 있어야지. 원래 계획한 침투로도 확인할 거야.”
플랜 B는 청소부가 끌고 다니는 카트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매일 오전 8시가 되면 청소담당 직원들이 진공청소기를 포함한 청소도구가 담겨 있는 카트를 끌고 다닌다.
그 안에 파고들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게 2번째 방법.
때마침 그 시간이 다가왔다. 오전 8시, 직원들이 진공청소기 소리와 함께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카페트 위 먼지를 빨아들이는 직원들을 보며 김건우가 말했다.
“마스터. 가실까요?”
“그래. 후방 쪽으로 진입해.”
“네.”
김건우를 비롯한 일행들은 거인의 뒤편으로 접근하여 카트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카트는 6층 객실에 이어 7층, 8층 차례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마스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뭐야? 너도 이 작전 좋다고 했잖아.”
“그땐 이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그랬죠. 그래도 이건 너무합니다.”
거인들의 피부먼지, 체액, 머리카락 등이 안쪽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카트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진공청소기의 안쪽 공간뿐.
그래서 최초 계획은 김건우의 물질투과 능력을 사용하여 진공청소기의 안쪽으로 숨어들어 목표 지점까지 가려던 것.
분명 괜찮은 계획이었지만, 화물용 엘리베이터라는 새로운 침투로가 생긴 지금은 그다지 메리트가 없어보였다.
각종 먼지를 뒤집어쓴 마스터를 보며 김건우가 핀잔을 늘어놓았다.
“이 계획은 보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쓰레기와 먼지로 가득한 통 안에서 2~3시간을 보내야 하는 최초의 계획은 이렇게 폐기되었다.
* * *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6층에서 9층까지는 쉽게 갈 수 있었지만, 담당 직원의 청소구역이 9층까지 밖에 되지 않아, 결국 미나가 제안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었다.
건물 50층에 도착하자, 드디어 거대한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경기장은 본선을 위해 공사 중.
수많은 인부들이 공사에 투입되어 있다.
경기장은 총 5층 구간이었다.
46층부터 50층은 본래 중앙부분이 비어 있는 공연장 형태였는데, 이번에 경기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긴급공사 중이었던 것.
수만 평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공간, 그곳에서 펼쳐질 36명의 거인과 펫들의 생존서바이벌.
마스터 장명훈이 입 밖에 첫 감상을 내놓았다.
“생각보다 크군.”
“네. 그런 것 같아요.”
마스터와 김건우는 장대한 경기장의 세팅을 보며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들었다. 마스터는 암살계획을, 김건우는 마스터의 의도를.
김건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마스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응. 말해.”
“왜 굳이 암살을 경기 도중에 하려고 하십니까? 그냥 하면 되지 않습니까?”
“쉽지 않으니까.”
“경기장에서는 더 쉽지 않지 않습니까?”
“아니야. 그 여자, 만만히 보면 안 돼. 아니, 제대로 말하면 그 여자들이라고 해야겠지.”
“네?!”
그때, 양복을 입은 거인 하나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눈이 풀린 채로 걷던 거인은 다른 직원들이 보이자,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오셨습니까? 바키우스 회장님.』
『아, 준비는 잘 돼가나?』
『물론입니다. 공기는 착실히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말씀하신 세트장을 회전형으로 도입하려는데, 납품 회사에서 납기일이 지연될 것 같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모터의 안전성을 좀 더 확인하고 싶다고 합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네?』
『자네 이름을 묻잖아. 질문에 대답만 해.』
바키우스 회장의 질문에 안전모를 쓴 거인이 덜덜 떨며 대답을 했다.
『공사담당 현장소장인 필립 에드리안입니다.』
『자네 옆에 있는 자는 누구지?』
『제 밑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담당 조쉬 보헤미안이라고 합니다.』
『응. 그래. 조쉬, 자네가 지금부터 일을 맡아주게.』
『네? 제가요? 소장님도 계시고, 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요.』
『그래? 내가 알기로 너희 소장은 오늘 죽은 걸로 알고 있는데?』
바키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필립이 액체가 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체내의 체액이 눈, 코, 입 등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걸 본 조쉬가 비명을 내지르려 했지만, 바키우스의 커다란 손이 입을 막았고, 회장의 두꺼운 입술 안쪽 성대에서 협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핑계 대는 것을 가장 싫어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나?』
바키우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펫. 그 펫의 붉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조쉬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46층에서 50층 사이에서 일어난 일. 강미나가 씁쓸한 얼굴로 일행들에게 현재 일어난 일을 전달했다.
“정말 그렇게 말했나? 네가 들은 게 맞아?”
“네. 저는 거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어요. 거인들의 언어도 100%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고요. 이건 제 고유권능이라 확실해요. 그런데 더 놀랄 만한 소식이 있어요.”
강미나의 말에 모두가 긴장했다.
“바키우스란 거인은 이미 의식을 지배당하고 있어요. 저 펫의 능력 중에 지배라는 권능이 있나 봐요.”
“지배?!”
“네. 자신의 주인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 그로 인해 지금 바키우스의 펫은 5가지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그 5가지 능력 모두가 레벨 4까지 상승되어 있어요.”
미나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김건우와 홍성운.
한 가지 능력도 레벨 4까지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5가지의 능력이 있고 그게 모두 레벨 4라고 한다.
아마도 포인트 상으로는 30만 포인트 이상이 투자된 것.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에요.”
“그게 끝이 아니라니?”
“키메라예요. 마스터의 전 부인이었던 그녀는 인간과 인간의 합성체더군요. 저게 바로 그녀, 아니 그녀들의 모습이겠죠.”
영락없는 여성이었다.
체형은 물론 외모도 키메라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마스터 장명훈은 자신의 옛 아내를 보며 씁쓸함에 눈을 감았다.
그때, 아내가 갑자기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들춰 올렸다.
화들짝 놀란 김건우는 얼굴이 빨개졌고, 강미나는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올챙이처럼 부푼 배. 그리고 그 배 앞에 표시된 이상한 형상.
여성의 배에 아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아니, 여성의 배 안에 아이가 들어있었다.
배 안에 그려진 아이의 얼굴이 무슨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에 여성이 화답하며 웃음을 짓는다.
그 대화의 의미를 알아챈 강미나가 풀썩 주저앉았다.
“마스터. 말해도 될까요?”
“아니. 말하지 마.”
“하지만!”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장명훈이 자기 동료의 목숨을 앗아간 여자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과 미래를 함께하기로 했지만, 아이를 살리기 위해 동료의 죽음을 택한 여자.
“소생의 돌을 얻기 위해 아내는 동료를 희생시켰어. 그리고 소생의 돌로 뱃속에서 죽은 아이를 다시 살려냈지.”
“그게 무슨…….”
“하지만 탯줄이 끊어진 아이는 바깥으로 나와도 죽을 운명이었어. 미숙아였으니까. 그래서 자신이 아이와 평생 함께 살 것을 그녀는 스스로 결정한 거야.”
키메라가 되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선택.
그리고 지금의 결과.
“그럼 마스터는…….”
“그래. 난 내 아내를 죽일 거야. 그리고 아내한테 이용당한 바키우스라는 거인 또한 죽이고 말겠어.”
마스터의 설명에 모두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5년간 복수를 다짐한 장명훈의 본심을 듣고 나니, 강미나조차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옳고 그름의 차이는 서 있는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복수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장명훈, 하지만 그건 억울하게 죽은 동료들의 원한을 풀어주려는 것.
뭐가 옳은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강미나에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이제는 곧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
마스터를 따르거나, 아니면 따르지 않거나.
그런 생각도 잠시, 강미나는 갑자기 아래쪽에서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바키우스라는 거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바키우스가 갑자기 쾅쾅 뛰어오더니, 46층에서 기둥을 타고 마스터와 자신이 있는 50층까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화들짝 놀란 마스터가 도망치라고 소리 질렀지만, 바키우스가 “멈춰”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힘이 풀린 김건우와 다른 일행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바키우스는 한국어로 펫의 의사를 전달했다.
“날 또 죽이러 온 모양이지? 마음대로 해. 하지만 당신 뜻대로 죽어줄 생각은 없어. 난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니까.”
지배 능력에 조종당하는 바키우스.
그는 목걸이를 하나 걸고 있었다.
얼마나 세차게 뛰어올랐는지 그 목걸이의 중앙부분에 달린 장식의 뚜껑이 열렸다. 장식 내부의 한쪽 면에는 거울이, 다른 면에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본 강미나는 깜짝 놀랐다.
바키우스와 함께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두 아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두 거인이었다.
버키, 바키 형제.
강미나는 이를 보고 장명훈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부자 관계였어. 절대적인 지배 능력을 풀기 위해 버키, 바키 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야. 한순간의 틈이라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절대적인 지배능력. 거인을 직접 움직이고, 자신이 의도하는 대사까지 내뱉게 할 수 있는 그녀.
바키우스와 그녀는 단지 자신들이 할 말을 내뱉고 떠났을 뿐이지만, 일행은 그 행동 하나만으로도 겁에 질려 움직이기 어려워했다.
잠시 후 장명훈이 말했다.
“돌아가자.”
“네.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