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16화 (116/200)

116화. 최고의 선택

김만철과 정선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며칠 남았어요?”

“68일이요.”

“이제 다른 데 가지 마요. 옆에 있어줘요. 난 그거면 돼요.”

“네. 선희 씨.”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김만철은 먹먹한 감정을 뒤로한 채, 정선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취침시간.

그의 방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들어오십시오.”

“응.”

그는 정선희와 김만철과 안면이 있던 최형우였다.

“소식은 들었네. 아빠 된 거 축하해.”

그의 말에 겸손하게 대답하는 김만철.

“이게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저씨는 요즘 별일 없으시죠?”

“뭐, 그렇지.”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그거 말씀하시려고 오신 건가요?”

“뭐 그렇고 있고. 아람이 소식도 궁금하고. 어제 왔다갔다고 했는데 얼굴을 못 봐서. 어때?”

“뭐, 잘 지낼 것 같아요. 사실 아람이하고 친하게 지내진 못했거든요.”

김만철의 대답에 최형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만철은 최형우가 아람이를 손녀같이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같이 생사의 위기를 거쳤기에, 가족도 없는 지금 최형우가 그 누구보다도 걱정하는 사람이 김아람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김만철이었다.

김만철이 최형우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사고 같은 건 더 이상 치지 않을 거예요. 요즘 부쩍 성숙해졌다니까요.”

“뭐? 성숙?”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철이 들었다는 거죠. 하하하! 그것보다 아저씨는 요즘 뭐하세요? 거대화 능력이라고 건우 녀석이 작전조에 넣은 것은 아니겠죠?”

“응. 나이 때문인가 생산조에서 일하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물건 옮길 때 힘 좀 쓰고 있지. 나는 걱정 안 해도 돼. 젊은 사람들 미래나 걱정하라고. 난 살 만큼 살았으니까.”

최형우의 말에 김만철이 씩 웃었다.

“미래는 무슨 미래입니까? 이제 68일, 2시간 지나면 67일 남습니다. 그동안 선희 씨하고 윤수한테 잘 하고 가야죠.”

김만철의 말에 최형우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영혼의 돌로 살아난 김만철에게 미래가 있을 리가 없는데…….

“그래. 그런 생각이면 됐어. 가 볼게.”

“네. 아! 아저씨.”

“응?”

“마스터하고는 잘 지내십니까?”

“마스터? 장명훈 걔 얘기하는 거야?”

“네. 88올림픽 장명훈 체조선수 맞습니다.”

“걔야 뭐! 나 신경도 안 쓰지 뭐. 있는지도 모를걸?”

* * *

같은 날. 12시간 전인 새벽 3시.

장명훈과 나머지 일행은 비탈길 위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 버스 내의 잠입에 성공했다.

아직 새벽이라 아무도 없는 버스 종점 차고.

지니어스 타워로 가는 76번 버스를 찾은 김건우가 일행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오셔야 합니다.”

김건우는 76번 버스 하부에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여행용 캐리어나 짐을 싣는 짐칸.

그곳에 물질투과 능력으로 들어온 네 사람은 깜깜한 공간에서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다들 자기 자리 잡고 잠 좀 자! 어차피 출발하려면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으니까.”

“네! 마스터.”

노숙자와 같은 처지.

하지만 지금은 임무수행 중.

강미나는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손과 다리를 모으고 고개를 무릎 위에 올린 채 눈을 감았고, 홍성운은 골판지 위에서 그냥 대자로 뻗어 잠을 청했다.

힘들다면 힘든 여정.

무려 9시간 이상 걸어온 버스정류장에서 이제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김건우는 잠을 청하려는 마스터에게 물었다.

“마스터, 아람이가 이길까요? 아니면 만철이 형이 이길까요?”

“당연한 걸 왜 물어? 당연히 김만철이 이기지.”

“그렇겠죠?”

“시답지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잠이나 자. 건물에 도착하면 시간도 없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김건우는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죽지 않을까. 설마 만철이 형이 아람이를 죽이지 않을까 하고.

펫은 주인으로부터 보호도 받지만, 때로는 원치 않은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버키와 바키 두 거인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정보가 있었지만, 그들의 실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두 시간 후, 일행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차가운 한기가 몸의 체온을 빼앗아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한 일행들.

“아! 추워. 추워 죽겠다.”

“참아. 조금만 참아.”

그런 그들에게 거친 엔진음과 함께 차체가 부릉부릉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차량이 출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짐칸에도 엔진의 뜨거운 열기가 전달되어 버틸 만해졌다.

출퇴근 시간, 거인들이 버스에 탑승하고 하차하길 반복했다. 그걸 보며 김건우가 열 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나갔다.

그걸 보는 마스터가 물었다.

“뭐해?”

“지나간 정류장 세고 있습니다.”

“그래? 잘 세 봐.”

“네.”

15번째 정류장이 지니어스 타워.

김건우는 손가락을 접고 펴기를 반복하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모두에게 내릴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모두 모여 주십시오.”

4명이 모인 그 자리의 바닥이 물렁해지기 시작했다.

물질 투과 능력을 사용하여 버스 하부의 도로 위에 무사히 착륙한 4인.

장명훈은 자기 후배들을 향해 소리쳤다.

“최대한 빨리 뛰어!”

“네.”

지니어스 타워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들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정면돌파. 재빠르게 목표지점까지 달려나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는 것.

거인들이 3cm의 인간들을 발견하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들의 소란에 주변 거인들이 쳐다봤지만, 4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지점을 향해 달렸다.

재빨리 타워 끝자락 전선이 매몰된 지하통로로 달리는 네 사람.

지하의 입구에 들어가서야 김건우가 헐떡이는 숨을 멈추고 마스터에게 보고했다.

“4명 다 무사히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래. 강미나도 괜찮나?”

“네.”

헥헥 거리면서도 억지로 숨소리를 눌러 참는 강미나.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

하지만 마스터는 피식 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미나에게 장명훈의 생각이 들려왔다.

약한 체력 때문에 결국 대원들의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괜찮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미나는 의지를 굳히고 3명의 남자 뒤에 따라붙었다.

커다란 물소리가 들려왔다. 하수구와 전선, 통신선에 가스설비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관을 지나는 대원들.

그저 말없이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러다 마침내 도착한 제어실.

제어실 출입구는 철문으로 되어 있었다. 철문 중앙에는 뻥 뚫린 유리창이 하나 있었는데, 출입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잠깐 기다려. 확인하고 오지.”

“네. 마스터.”

장명훈이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으로 유리창의 높이까지 순식간에 도약하기 시작했다.

강미나는 장명훈의 놀랄 만한 움직임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실력, 인정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인성은?’

그는 미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부 제어실을 바라본 결과를 일행과 공유했다.

“내부 근무자는 4명, 안쪽에서는 지니어스 타워의 온도, 습도, 전기 등 안전제어 상황실이 구축되어 있는 것 같다. 일단 근무자가 24시간 상주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내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건 곤란할 듯해.”

“대단하시네요. 마스터.”

“다 연륜이지. 그럼 다음 장소로 가 볼까?”

“다음 장소는 어디입니까?”

“지상 6층.”

“지상 6층 말입니까?”

지상 6층, 약 36m 높이, 현재 인간 크기로 환산하면 수직 높이 1,800m를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제어실을 지나면 안쪽 구석에 주차장과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

그런데 마스터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일행들에게 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거인들에게 100퍼센트 노출되고 말아. 직접 마주치지 않아도 CCTV에 노출되겠지. 본 작전에 들어간 것이 아닌 지금, 난 최대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그럼 여기서 철수입니까?”

“아니,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노출될 확률은 50% 미만, 단 이 상황에서 거인들과 마주치면 우리가 숨을 장소는 없어.”

“50% 미만이라도 해도 이 많은 유동인구 중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거인이 없다고 보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서 생각한 게 화장실. 화장실의 환풍구를 통하면 노출 확률은 1% 미만으로 떨어지지.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절대 노출되지 않은 상태로 6층까지 침투할 수 있어. 대신 너희들이 체력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6층은 가능하지 말입니다.”

“아니, 6층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8층까지 올라갔다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야 해. 결국 돌아가는 거지.”

“그럼 처음부터 계단으로 가는 거나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김건우의 말에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결정하라는 말이지. 어떤 것이 나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최종 목표는 6층이 아니야. 62층이지. 바키우스가 살고 있는 최상층.”

그런데 강미나가 이 상황에서 의견을 냈다.

“두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뭐?”

“계단이나 환풍구를 통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올라가면 됩니다.”

미나의 말에 마스터가 짜증을 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CCTV가 있다고 했잖아. 말을 귓등으로 들어? 어? 강미나! 야! 장난치러 왔어? 여기가 아람단이야?”

그의 말에 김건우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스터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교육 잘 시키겠습니다.”

“에휴! 힘들어서 저러는 거지? 야! 김건우! 쟤 힘들어서 그러는 거냐고!”

김건우는 마스터의 비아냥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강미나는 전혀 다른 의견을 냈다.

“사람이 아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미나의 말에 장명훈이 시비조로 물었다.

“화물용? 네가 여기 화물용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그런데 미나는 당황하지 않고 질문에 조리있게 대답했다.

“이런 고층 빌딩의 음식점은 항상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합니다. 그런 조리 식품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움직이죠. 화물용이라고 엄청 큰 엘리베이터가 아닙니다. 호텔에서 세탁한 수건을 옮기거나, 룸서비스로 시킨 음식을 옮기기 위해 사용하죠. 그 엘리베이터 안에는 거인이 탈 수 없으니, CCTV를 설치할 리도 없고, 관계자 말고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죠. 그래서 저는 보안 체계에서 허점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인간하고 거인은 비슷하니까요. 전 어릴 때 풍족하게 살아서 호텔을 자주 사용해봐서 알아요.”

어렸을 때, 미나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었다.

오빠와 호텔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호기심에 들어가 있었던 엘리베이터.

끝내 찾지 못한 강백현이 엉엉 울며 부모님께 알려, 결국에는 남매가 같이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게 5살 때의 일.

그래서일까?

마스터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지하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침입했다.

우연일까?

새벽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근무자가 없었다.

첫차를 타고 왔기에 생긴 호기.

“엘리베이터에 비밀번호가 있는데요. 어쩌죠? 그걸 알아낼 수 있을까요?”

0, 1, 2, 3, 4, 5, 6, 7, 8, 9, *, #.

총 12개의 숫자와 특수기호.

그걸 보며 마스터가 신경질을 냈다.

“비밀번호는 어떻게 할 거야? 그냥 환풍구 통해서 가자니까!”

그런데 강미나가 씩 웃었다.

“지워진 것만 조합해서 눌러보면 돼요. 항상 똑같은 번호만 누를 테니까, 유심히 지켜보면 알 수 있어요.”

그녀의 말대로 2, 5, 8, 0. 세로로 이어진 숫자 주변이 매끈매끈하고, 숫자 일부가 지워진 표시가 났다.

“비밀번호 2580 같은데요? 눌러볼까요?”

2580을 순서대로 눌러보는 김건우. 그러자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안쪽에 또 다른 제어 번호가 보인다.

거인어지만 그걸 읽을 수 있는 강미나.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마스터 장명훈에게 말했다.

“‘보낼 객실 번호를 선택하세요’라고 쓰여 있네요. 마스터! 이걸로 몇 층이든 들키지 않고 해당 호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나의 말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 김건우.

“마스터! 오늘은 조금 예민하신가 봅니다. 저는 미나를 데려온 게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은데, 마스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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