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중대발표
앨버트는 방송국으로 이동하는 도중 강백현에게 물었다.
『몇 살이지?』
『스무 살.』
『그렇군. 구체 확인 결과 너의 직업은 왕자로 나오고 있어. 너희 나라에서도 왕이 있나?』
『아니. 왕자는 멋대로 동생이 정했을 뿐이야. 정확한 직업은 학생이지.』
『학생? 스무 살에도 학생이라고? 열다섯 살이면 졸업하지 않나?』
『우리는 안 그래. 모든 국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하면 보통 30대 초중반이야.』
『공부를 왜 하는 거지? 율리만의 지식을 열람하면 그만인데…….』
앨버트의 말에 강백현이 자신이 살던 세계를 설명했다.
『우리 세계에서 율리만 정도의 인공지능은 아직 개발단계야. 홍채인식이나 안면인식 기술이 겨우 상용화되는 중이었지. 아마 구체를 통한 사물, 생명체 인식은 곧 가능하겠지만, 결계 생성이나 물품을 분해하고 흡수하는 장치 등은 어떤 기술을 쓰는지 감도 안 잡혀. 50년은 더 지나야 상용화되지 않을까? 하지만…….』
말문을 흐리는 백현에게 의문을 표하는 앨버트.
『하지만?』
『우리 지구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어. 정식으로 인정된 국가만 206개 국가가 있지. 그리고 너희 세계에는 없는 비행기나 제트기, 생화학 무기나 핵 같은 무기들이 존재하고 있지.』
『무기? 그런 쓸데없는 것을 왜 가지지? 어차피 서로 죽일 수 없게 되어 있잖아.』
앨버트와 백현의 차이는 살아온 환경이었다.
『전제조건부터 바꿔야겠네. 우리를 통제하는 존재는 없어. 그러니 너희처럼 거인의 룰이란 게 없지. 절대적 존재가 없는 세상이니까.』
『말도 안 돼. 규칙 없이는 살 수 없어. 그 많은 생명들이 아무런 룰도 없이 살아간다고?』
『그래. 나도 동의해. 규칙 없이는 살 수 없지. 그래서 우린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나라에는 헌법이 있고, 국가끼리는 조약과 협약으로 묶지.』
『국가가 얼마나 된다고 조약에 협약을 맺어? 그냥 통일하면 되지.』
『쉽지 않아. 이름도 모르는 국가가 얼마나 많은데. 국가만 200개가 넘을걸?』
앨버트는 강백현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4개 대륙만으로도 벅찬데, 200개가 넘는 국가라니. 스케일이 너무 커서 감당이 되질 않았다.
『그럼 너희 나라의 인구는 얼마나 되지?』
『5200만.』
『뭐? 52만?』
『아니, 5200만이야. 너희 거인 4개 대륙 총 인구인 23만보다는 월등히 많지.』
『크기가 너무 작으니 그럴 수도 있지. 개미들은 한 번에 알을 천 개 이상씩 낳잖아. 너희도 한 번에 500명씩 낳고 그러는 거 아니야?』
강백현은 슬슬 화가 났다.
『아니, 전혀. 너희하고 비슷해. 아이는 한 번에 한 명만 낳지. 가끔 쌍둥이가 나올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소수고. 생활하는 것은 너희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 사실 너희하고 피부색하고 외형만 조금 다를 뿐이지, 생활하는 것 자체가 너무 비슷해서 나도 놀랐어. 어떤 부분은 우리보다 굉장히 발전한 부분도 있는 반면, 어떤 부분은 너무나 원시적이라서 답답한 면도 있고.』
『원시적이라니? 우리는 율리만으로부터 최첨단 기술과 지식을 얻고 있어. 그런 우리가 원시적일 리가 없잖아.』
앨버트는 방송국으로 걸어가면서 강백현과 지식의 교류를 나눴다.
강백현의 질문은 생각보다 고차원이었다.
『너희는 숨을 왜 쉬지?』
『숨을 왜 쉬냐니? 그냥 쉬는 거 아니야?』
『우리 인간들이 숨을 쉬는 것은 체내에 있는 혈액 속 헤모글로빈이 운반하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토해내고, 산소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야. 호흡활동을 통해 우리는 산소를 받아들여 그것으로 음식물과 합성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
『……들어본 적도 없어. 누가 알려준 적도 없고.』
『우리는 생물 시간에 다 배워. 우리의 몸이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 생겨나는지. 우리 조상들의 과거는 어땠으며, 어떤 식으로 진화해왔는지 그런 과정들을 배우게 되지. 하지만 너희들은?』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알았는데?』
『스스로 연구하고, 우리 인체를 해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 우리는 과거의 지식을 미래의 세대에 책이나 그림 등으로 남겨. 이제는 기술이 발전해 데이터 저장장치에 남기기도 하지만, 과거 5천 년, 1만 년 전에는 그림이나 글자, 활자 등을 기록해서 후대로 전했지.』
『5천 년? 1만 년? 그때는 세상이 생기기도 전일 거야. 우리는 불과 500년 전 일도 모르는데, 5천 년? 1만 년이라고?』
『맞아. 내가 알기로 너희들의 역사는 불분명해. 스스로 과거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컴퓨터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 왜 궁금해하지 않았던 거지? 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거고?』
강백현의 질문에 앨버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야 알 필요가 없었다니까?』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뭐가?』
『너희들은 존재가 불분명해.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몰라. 자신들의 과거조차 모르는 너희들은 왜 생겨났을까?』
『확실히 네 말이 맞아. 우리들의 과거는 확실하게 전해오고 있지 않아. 그런데 생겨났다니? 그 이야기 자체가 우리 거인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애당초 그 이야기를 왜 꺼내는 거지?』
앨버트의 말에 강백현이 심호흡을 했다.
이제까지 알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이곳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던 백현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강백현은 진지한 말투로 앨버트에게 말했다.
『난 너희들을 실패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든.』
『뭐? 실패했다?』
강백현의 말에 앨버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론 이 결론을 위해서는 너희들이 만들어졌다는 가정이 있어야 해. 그에 대한 증거가 없으니 아직까진 내 생각일 뿐이야.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너희들은 만들어진 존재임에 틀림없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래서 말했잖아. 만들어졌다는 건 가정이라고. 그 가정을 기초로 너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들어줄래?』
『계속해봐.』
앨버트는 강백현의 말과 사고방식이 굉장히 신기했다.
저 작은 체구에 들어 있는 지적 능력이 거인인 자신보다도 위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통제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너희들을 조종하는 존재는 율리만이라고 난 생각해. 그 첫 번째 증거가 바로 거인의 룰이야.』
『확실히 거인의 룰은 우리들을 통제하고 있지. 그 배경에 율리만이 있는 것은 당연히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런데?』
『녀석은 너희들의 피와 살로 전투병기인 슈트를 만들어내고, 키메라를 만들어내. 그리고 능력을 담을 수 있는 두루마리도 만들어내겠지. 에반의 가문, 슈트리거가 가진 두루마리의 비밀도 사실은 거인의 뇌수로 합성해서 만드는 거잖아. 안 그래?』
『어떻게 네가 그걸…….』
『죽은 생명체의 능력을 뽑기 위해서는 펫의 시체와 거인의 뇌수를 합성시킨 혼합액체를 두루마리에 염료를 칠하듯 칠하면 되지. 그렇게 하면 능력 두루마리를 만들 수 있어. 그걸 이용해서 펫에게 능력을 부여할 수 있고.』
『……』
『왜 말이 없어?』
앨버트가 강백현의 말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어. 율리만이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목적이 뭔데?』
『그거야 네가 황제가 되면 알 수 있겠지. 아마 6개월 안에 도르시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도르시안뿐만 아니라 모든 대륙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그렇게 퀘스트를 줬으니까. 율리만이 검은 구체를 통해서 그렇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강백현은 처음 왔을 때 거인 세계에서 받았던 이질적인 느낌을 떠올렸다.
작아진 자신들이 마주하는 거대한 존재.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있는데, 비행기나 제트기 등 하늘 상공을 나는 존재가 거의 없다는 점.
거기에 하늘 자체가 사실은 장벽이고, 그 위에 글씨가 쓰여 있다는 점.
거기에 거인의 룰을 통해 거인들의 삶을 통제하고, 그들의 피와 살을 이용해 전투에 필요한 슈트와 키메라 등을 만들고 있다는 점.
어떻게 보면 자신들을 실험대상으로 했던 것과 비슷했다.
이건 거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취합한 모든 정보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다.
율리만. 생체기반 인공지능의 이름.
인공지능 율리만은 거인을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병기를 만들기 위한 도구.
거인의 신체를 기반으로 키메라와 슈트, 능력이 담긴 두루마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인간들을 이곳 세계에 끌어들였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실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실제 만들어진 병기들을 활용하기 위해.
이제 단편적인 이유는 알았다.
그럼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율리만에게 직접 물어 알아야 한다.
왜 인간들을 희생시키려 했는지, 왜 지구에서 이곳으로 데려와야 했는지.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인인 앨버트를 황제로 만들어야 했다.
그 후에는 율리만 섬으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강백현이 말했다.
『지금 황제의 이름이 뭐지?』
* * *
같은 시각.
김아람과 김만철의 결승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김아람과 김만철을 전장에 두고 싸우라고 독려하는 버키, 바키 형제.
“아저씨, 이번에는 봐주지 않을 거예요.”
“네가 뭘 하든 날 이길 순 없을 거야. 너하고 나는 피지컬 차이가 너무 나니까. 그리고 어제 승부에서도 넌 나한테 5초 만에 항복했잖아. 안 그래?”
“그랬죠. 확실히 어제는 제가 물렀어요. 하지만 오늘은 달라요.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붙죠.”
“그래.”
김아람에게 순식간에 접근하는 김만철. 그는 그녀의 복부를 노렸다.
복부에 제대로 된 펀치 한 방만 들어가도 그녀는 숨도 못 쉰다. 김아람이 자신의 빠른 스피드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페이크 동작 없이 정면으로 돌진했다.
그런데 어제의 아람이와 오늘의 아람이는 달랐다.
“겨우 그거예요?”
“뭐야. 이 힘은 뭐야!”
“아저씨가 말했죠? 백날 해야 너는 못 이긴다고. 하지만 오늘은 달라요.”
김아람은 정면에서 오는 김만철의 움직임을 정확히 붙들어 맸다. 염력을 다루는 힘이 어제와는 달랐다.
굉장히 정교해지고 힘도 강력해진 것을 김만철은 본능으로 느꼈다.
김만철의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김아람이 그의 몸을 바닥으로 메치며 소리쳤다.
“이것 봐! 나 레벨 2가 된 것만으로도 이기잖아. 내가 이기는 거였다고!”
염력 레벨 1과 2의 차이.
거기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
김아람은 그의 튕겨나온 몸을 다시 한 번 위로 올려 중력방향으로 세차게 내리쳤다.
그런데 김만철도 만만치 않았다.
양손을 구부린 채, 떨어지는 힘을 흡수하고, 양팔을 다시 일자로 펴 공중제비를 돌며 김아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후 상황을 엿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버키가 포인트를 투자한 건가?’
아니었다. 분위기상 버키가 포인트를 투자할 조짐은 없어보였다. 그럼 이유는 하나.
정선희의 증폭 능력.
김만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는 김아람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순발력.
그리고 멀리 떨어질수록 약해지는 힘.
그렇다면 원거리에서 공격하면 된다.
김만철이 김아람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돌며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던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돌. 거기에 원거리 공격이다.
염력을 사용해 막아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힘을 뺄 수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때 유리한 전법이었다.
그런데 김아람은 염력으로 날아오는 돌멩이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원형으로 도는 김만철을 향해 역으로 달려오며 거리를 좁혔다.
“아저씨! 그거 알아요? 아저씨는 결승이 시작했을 때부터 졌다는 거요.”
“……”
“대답을 안 하실 모양인가 보네요. 하긴 여유가 없겠죠.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중심이 안 잡힐 테니까요.”
김아람 주변으로 소용돌이가 펼쳐졌다.
김아람은 자신의 염력으로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하늘 방향으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김만철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다리가 바닥에 제대로 닿지 않아서였다. 공중에서 헛발질을 하던 그는 하늘에서 뱅글뱅글 도는 잡석들과 부딪히며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으으윽.”
버키와 바키 형제는 김아람의 믿을 수 없는 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늘로 올라간 김만철은 내려올 줄을 몰랐다.
바닥에 있는 것이라곤 김아람뿐이었다.
소용돌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다 5분이 지난 후에야 힘을 잃었다.
피 묻은 잡석들과 함께 공중에서 떨어지는 김만철.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을 잃었고, 김아람은 승리에도 자만하지 않고 김만철을 향해 마지막 말을 던졌다.
“김만철 아저씨한테는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어요. 그건 승리에 대한 열망이에요. 타인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없어요. 자신이 살아남아야겠다는 각오 없이 저를 이길 수는 없었다고요. 그게 지금의 차이겠죠. 난 살아남을 거예요.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난 꼭 본선에서 우승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