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13화 (113/200)

113화. 시험

나타샤의 애원에 에반이 소리쳤다.

『나타샤! 입 다물어.』

『왕자님!』

『저걸 보면서도 모르겠어? 저게 키메라가 된다고 생각해 봐. 저 독기어린 얼굴, 살길을 찾기 위해 발악하는 저 모습. 위기상황에서도 반격할 생각을 하는 저 괴이하고 악랄할 정도의 대처능력……. 신체능력, 피지컬만 좋았다면 얼마나 좋아! 사상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에반의 말에 백현은 자신이 알던 에반의 옛 모습을 기억 속에서 지웠다.

타락하고 또 타락한 에반은 그저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살아왔던 것.

자신이 보호해야 할 백성의 목숨을 희생시켜서까지 강한 힘을 얻고 싶어 하는 그의 본 모습이 너무나 악랄해보였다.

강백현은 에반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봤다.

입장을 바꿔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끝내야 한다.

자신의 권력과 힘을 유지하기 위해 선량한 생명들을 희생하는 그의 행동이 결코 정당해보이지 않았다.

『에반, 지금이라도 포기해.』

『아니, 포기 안 해. 내가 널 어떻게 구해왔는데?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래. 알아. 하지만 기억해둬. 따라오겠다고 선택한 것은 나였고, 떠날 권리도 나한테 있다는 것.』

『그럴 리가 없잖아. 넌 내 펫인걸? 이 세계에서 펫은 그저 도구일 뿐이야. 도구에게 권리가 있을 리가 없잖아!』

백현은 도구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숙고해보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에반은 자신을 목적을 이룰 아이템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황족의 직위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펫.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에반, 우린 끝이야.』

『끝은 무슨 끝이야.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지? 거인들은 거인을 죽이진 못해도 펫은 죽일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널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야.』

『그 얘기는 아까도 했잖아. 하지만 넌 여전히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반대로 말하면 펫은 아무 제약도 없는 거잖아. 다른 펫을 죽이든, 다른 거인을 죽이든, 자신의 주인을 죽이든 펫은 자유라는 거잖아.』

강백현이 보호막 파편을 밟고 뛰어올라 에반의 어깨에 올랐다.

또 하나의 벌침을 그의 목에 박아 넣으려는 백현의 움직임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에반, 이 침에 찔리면 넌 확실히 죽어. 죽지 않아도 기절은 하겠지.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가만히 있어.』

백현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이미 뺨은 엄청나게 부어 있었고, 그 주변 부위가 점차 마비되고 있었다.

감각이 사라질수록 에반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만약 목에 독침이 박혀 편도선이 부어버린다면 숨도 쉬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강백현이 에반의 뒤통수 방향에서 검은 구체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강백현! 뭐하고 있는 거야?』

『몰라서 물어? 네가 말해준 적이 있잖아. 거인의 권력은 포인트로부터 나온다고.』

『야! 야!』

에반의 목소리로 지시하는 강백현의 목소리에 검은 구체가 응답했다.

에반은 불길한 마음에 휩싸였고, 그 예감은 곧 실제가 되었다.

어깨에서 뛰어내린 강백현을 확인하는 에반의 눈에 검은 구체의 화면이 보였다.

잔여포인트 19.

거기에 황당한 메시지.

《에반 슈트리거가 자신의 펫(강백현)을 지정해제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보이는 포인트 사용내역.

자가치유 능력 레벨 3.

분신 능력 레벨 3.

그리고 이어지는 메시지.

《분쟁 조정이 끝났습니다. 결과 : 나타샤 블랙의 승리》

《패배로 인해 19 포인트를 잃었습니다.》

결계가 해제되고, 그 앞에는 더욱 강력해진 강백현이 거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강백현은 이제 두렵지 않았다.

누가 주인이든 끌려다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주인이 필요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나타샤는 실성한 에반의 곁을 지키며 말했다.

『앨버트! 빨리! 빨리!』

앨버트가 나타샤의 말에 이성을 되찾고 검은 구체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포획 신청, 주인 없는 펫!』

《포획 신청을 신청하였습니다. 반경 5m X 5m의 결계를 형성합니다.》

《포획 신청으로 인해 25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잔여포인트 35,623》

강백현은 처음 보는 기능으로 인해 또 다시 결계에 갇혀 버렸다.

놀랄 만큼 많은 포인트를 가진 앨버트.

그는 스스로 자신 있게 말했던 것처럼 수많은 싸움을 거친 투장이 틀림없었다.

그런 앨버트가 펫을 꺼내며 강백현에게 말했다.

『투항하는 게 좋아. 내 펫은 신디아에서 탑 5에 들 정도로 강하니까.』

앨버트의 펫은 코브라였다.

코브라 녀석은 위협을 느꼈는지 등의 후드를 펼치며 자신의 모습을 키웠다.

커다란 눈동자 무늬가 등에 박혀 있는 녀석이 갑자기 등을 활처럼 펼치더니, 입가의 독니에서 독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백현은 당황스런 감정을 뒤로 하고 앞쪽에 보호막을 펼쳤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코브라.

하지만 그걸 보며 앨버트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에반이 소리 질렀다.

『앨버트! 왜 그래! 독에 중독시켜도 좋아. 어차피 자가치유 능력이 있으니까 쉽게 뒈지진 않을 거야. 걱정 말고 싸워. 엄청 유리하잖아.』

『왕자님 그게 아닙니다.』

『그럼 왜? 왜 머뭇거리는데!』

『제 펫은 위험한 상대가 있을 때는 직접 덤비지 않고 저렇게 원거리에서 독을 날립니다. 제 딴에는 무서워서 하는 행동이란 말입니다. 지금 유리한 게 아닙니다. 분위기상으로는 이미 지고 있단 말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코브라는 지금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반투명한 원형 보호막을 만들어낸 백현이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둘이 되고, 넷이 되었다.

분신 능력에 의해 4체로 분열된 백현이 겁 없이 코브라를 몰아넣기 시작했다.

4 방향에서 접근하는 백현을 본 코브라가 사방으로 자신의 독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원래 이쯤하면 다가오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독이 눈에만 들어가도 100% 실명을 야기할 수 있고,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면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맹독이다. 하지만 보호막을 두른 상대방에게는 쓸모가 없어 보였다.

『왕자님, 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전문가를 불러오겠습니다.』

『안 돼! 싸워! 싸우라고!』

둘의 의견 차이는 겨우 10여 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10여 초가 코브라의 생존 기회를 박탈했다.

4명의 백현이 시간차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 하나하나가 보호막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파편을 이용해 코브라의 목과 등에 찔러 넣기 시작했다.

거대한 보호막 가시가 코브라의 머리를 뚫었다. 날카로운 보호막 칼날이 코브라의 꼬리를 잘랐다.

거대한 구슬 보호막이 코브라의 등을 짓눌렀다.

제각각의 형태로 변화한 보호막이 뚫고 자르고 짓누르는 공격으로 앨버트의 펫을 아작 내버렸다.

앨버트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강백현을 바라보았다.

《포획 실패로 인해 결계가 해제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온 강백현이 포위망 안에서 앨버트를 불렀다.

『앨버트!』

『나를 부른 건가?』

『그래. 한 가지 물어볼게. 넌 바깥에 있는 가난한 거인을 어떻게 생각하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그런 거인들을 네 손으로 죽인 거지? 부랑자로 취급하고 죽인 이유는 뭐야?』

강백현의 질문에 앨버트가 고민하다 답했다.

『나라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다. 에반 왕자님의 왕권을 회복하고, 다시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네 보유 포인트는 다 에반 왕자를 위한 것이었나?』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누군가가 우리 신디아를 예전처럼 되돌릴 수 있다면 내 포인트를 바칠 생각으로 모아두었을 뿐이다.』

앨버트가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표현했다.

앨버트는 에반과 달리 감정적이지 않았다.

이미 패배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백현의 말에 응답하고 대꾸했다.

그때 바깥에서 여왕벌을 펫으로 가진 연구원이 들어왔다.

『소장님! 왕자님!』

앨버트 검문소장의 죽은 펫을 발견한 연구원은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에반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빨리 아까 그 벌들 불러와! 빨리 생포해! 생포해!』

그런데 앨버트가 에반 왕자와 반대되는 지시를 연구원에게 내렸다.

『그만. 멈춰.』

『네?』

『잠시 저 친구와 대화를 하고 싶다.』

앨버트가 가리킨 친구란 강백현을 뜻했다. 그런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연구원.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에반.

『앨버트!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왕자님, 기다려주십시오. 전 지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일단 저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고 싶습니다.』

에반이 불같이 화를 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마비 증상 때문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강백현은 앨버트를 향해 말했다.

『난 처음부터 너의 의도를 알고 있었어. 네 눈빛에서 왕자를 경멸하며 내심 흔들려하는 빛을 볼 수 있었지.』

『왜 그렇게 생각했지?』

『넌 나에게, 아니 에반에게 자신의 펫과 붙어보자고 했지. 자신을 이기면 인정하겠다고. 넌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만약에 나라를 지킬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그래서 모아두었던 포인트 아니야? 실제로 넌 자신이 No.5 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펫인 코브라에게는 포인트를 거의 투자하지 않았어. 그 흔한 능력조차도 부여하지 않았고. 이쯤 되면 내가 널 파악했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은데? 어때?』

강백현의 말에 앨버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여기에서 날 영입하려는 건가?』

『그렇다고 생각해도 좋아. 난 너의 남은 포인트에 관심이 있고, 넌 자신의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 하지. 난 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이 나라의 몇 안 되는 강력한 펫이기도 하고.』

『후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앨버트는 애써 부정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통솔할 수 있는 권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시민들은 몇 년간 각자도생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다들 부랑자가, 거지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증거를 하나 더 제시할게. 넌 마지막에 굳이 써도 되지 않아도 되는 포획을 신청했어. 그건 자신의 펫으로 지정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야. 어차피 여왕벌이 있다면 난 여기서 도망가지 못하고 계속 추적당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왜 굳이 결계를 만든 거지? 그냥 네 펫으로 죽일 수도 있었잖아.』

『그건…….』

정곡을 찔린 앨버트. 사실 그러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백현이 또 하나의 증거를 대기 시작했다.

『넌 지금 자신의 펫이 죽었는데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지. 전국에서 5번째 안에 든다는 실력자가 중요한 펫을 잃었는데도 평화로운 얼굴 그 자체야. 더구나 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알아. 넌 실험실에서…….』

강백현의 말에 무덤덤하게 듣고 있던 앨버트가 소리 질렀다.

『그만! 그만해!』

『실험실에서 비커에 있는 내가 분신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어. 네가 가진 수면 가스가 사라져 있었으니까 네가 모를 리가 없었겠지. 그걸 내 본체가 내 분신에게 쓴 거니까.』

앨버트의 잃어버린 수면가스. 거인들은 펫을 강제로 재우기 위해 수면가스를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에반이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앨버트를 바라보았다.

『앨버트, 사실이야?』

나타샤 또한 마찬가지 표정이었다.

『앨버트, 사실대로 말해줘요.』

그러나 앨버트는 둘의 말을 무시하고 강백현에게 물었다.

『언제 알아차린 거지?』

『네가 수면가스를 보란 듯이 올려놓을 때부터 알아차렸지.』

『역시 넌 똑똑해.』

『그러니까 널 선택한 거지.』

강백현의 말에 앨버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자를 위한 충정의 마음이 돌아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앨버트가 강백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 위에 올라탄 강백현.

앨버트가 검은 구체에게 지시했다.

펫 등록절차를 통해 서로를 주인과 펫으로 맞이하는 두 개체.

그걸 본 에반이 절망스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앨버트! 이 자식! 앨버트!』

하지만 이미 강백현과 앨버트의 결심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앨버트는 계약을 마친 후, 에반에게 말했다.

『왕이 없는 나라가 너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주군의 뜻을 이어받겠습니다, 왕자님.』

『앨버트! 앨버트 이 자식!』

앨버트는 의미 없는 고성을 무시한 채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방송국으로 가지. 중대 발표를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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