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12화 (112/200)

112화. 균열

강백현은 거인들의 움직임을 미니맵을 통해 알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거인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백현이 환풍구를 통해 탈출하는 것을 추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망칠 때만은 작은 크기가 이점이 된다.

만약에 백현이 쥐 같은 지능이 낮은 생물이었다면 덫과 독성 먹이를 통해 퇴치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인간인 백현은 거인 이상의 지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환풍구 내에 엄청난 냉풍이 불어왔다.

흡기구를 통해 들어온 실내 바람이 공조기를 거쳐 냉풍으로 바뀌는 것.

온도 자체가 크게 낮진 않았지만, 강풍으로 체내의 수분이 증발하여 몸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능한 한 환풍구의 가장자리에 붙어 이동해야 했다.

강백현의 목표는 처음과 같았다.

1. 일단 살아남는 것.

2. 여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

3. 여기에서 탈출하는 것.

사실 백현은 에반을 믿고 싶었다.

그의 꿈과 희망, 그리고 자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그가 준 희망. 그리고 능력.

강해질 수 있다며, 파트너라며 평생 함께하자는 녀석의 말을 믿었을 뿐인데, 그 모든 게 자신을 키메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니.

백현은 배신감을 뒤로 하고 미나를 떠올렸다.

잘 살고 있을 줄만 알았는데, 현상금이 붙어 쫒기는 신세였다.

그래도 미나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미나의 위치를 확인해본 바 있었다.

미나는 정선희와 박윤수, 그리고 최형우가 살고 있는 거주지로 도피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운이 좋았던 것이다.

백현은 걸어가며 미나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파악했다.

3명의 인간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는 미나의 모습에 일단은 안심했다.

‘거인하고 붙어있진 않아. 그럼 된 거야.’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이제 자신만 여기서 탈출하면 된다.

아르케 연구소와는 달리 신디아의 연구소는 낙후되어 있었다.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시멘트 건물.

대충 페인트로 칠해놓은 벽면, 시스템 에어컨으로 전자동화 되어 있는 아르케 지역과는 달리 무식하게 크고 소음 많은 공조기를 통해 실내를 냉방하는 기계들.

‘그래. 가난한 국가야.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나 인도……. 그런 느낌이 들어.’

차가운 바람을 뒤로 하고 환풍구의 끝. 배기구까지 걸어간 백현은 숨이 막힐 정도의 뜨거운 공기를 마주하며 거친 심호흡을 내뱉었다.

뜨거운 한 여름, 냉방버스에서 내렸을 때의 그 느낌이 백현을 마주했다.

건물 바깥. 백현은 함부로 거리로 내려가진 않았다.

‘들키지 않으려면 건물 위로 다니는 게 좋겠어.’

거리에는 거인들이 즐비했다. 도떼기시장이라도 되는 듯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곳이었다.

지나다니는 거인들도 대충 천쪼가리로 덧대 입은 옷을 입고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지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잃어버린 대륙 신디아의 경제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왕자? 황제? 그게 무슨 소용인데? 백성들은 다 부랑자에 거지꼴로 사는데, 그 직위가 그렇게 중요했던 거야?’

에반과 함께 살며 들었던 모든 말이 다 거짓말 같았다.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은 이 나라에서 지배자인 황제와 왕자들이 아르케의 침입자에 의해 죽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백성들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세상만사 다 산 것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물을 긷고 있는 아이들.

『형, 가다가 전갈구이 먹고 가면 안 돼?』

『안 돼. 비싸서 안 돼. 나중에 먹자.』

『먹고 싶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말이야.』

『일단 물부터 긷고 보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잖아.』

『알았어.』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어 보이는 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백현은 건물의 옥상 사이를 보호막을 발판 삼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육로가 아닌 항구를 향해 가기로 결심했다. 육로로 가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아르케로 가는 배에만 올라탈 수 있다면 빠르면 한 달, 아니 보름 안에 미나가 있는 지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거인세계의 지도를 바라보았다.

4개의 대륙, 중앙의 바다. 그리고 바다 위에 솟구친 율리만 섬이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점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씁쓸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추격자가 붙은 듯했다.

연구소에 있던 연구원들이 모두 나와 거리를 수색하며 외쳤다.

『다들 빨리 찾아! 조그마한 휴먼종이다. 오늘 못 찾으면 연구원 잘리는 줄 알아! 흩어져! 흩어져!』

연구소장으로 보이는 거인의 고함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거인들.

그들의 움직임에 강백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옥상으로 이동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어.’

강백현은 유유자적,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동남쪽으로 18km만 가면 바닷가가 있고, 항구가 있다.

거인들의 언어를 읽고 말할 수 있는 백현에게 배의 목적지를 알아내는 것은 먹을 것을 구하는 것보다 더 쉬울 터.

그런데 연구원들이 갑자기 펫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기 시작하는 수색견, 뛰어난 시야를 가진 미어캣 등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백현을 찾아 돌아다녔다.

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리로 한 번이라도 내려갔다면 냄새 때문에 들켰을 거야.’

안심하며 걸어가는 그때, 갑자기 벌떼가 몰려들었다.

‘뭐지?’

삽시간에 상공을 뒤덮은 벌떼들은 어떤 연구원이 들고 있는 여왕벌의 명령을 받았는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일벌들이 여왕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백현은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자 허겁지겁 몸을 숨겼다.

‘역시 쉽지만은 않구나.’

벌과 개미들은 호르몬에 의해 지배받고, 호르몬에 의해 살아간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아닌지 알지도 못한 채, 절대지배자인 여왕에게 충성하고 명령에 따를 뿐이다.

강백현은 자신을 발견하고 멈춰서더니 8자로 비행하며 춤을 추는 벌을 목격했다.

‘역시 목표는 나였어.’

자신을 발견한 벌을 그대로 보낼 순 없기에, 백현은 보호막 파편을 날려 신호를 보내는 벌을 노렸다.

하지만 상공에서 맴도는 벌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빠르게 날아드는 보호막 파편을 간단히 피한 벌은 여왕벌 근처로 이동해 강백현의 위치를 허공의 춤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꿀벌은 꿀이 있는 장소가 아무리 멀어도 정확한 위치를 동료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지금의 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군의 벌들이 강백현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자, 여왕벌의 주인인 연구원이 방긋 웃으며 다른 연구원들에게 외쳤다.

『찾았습니다! 찾아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강백현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들었다.

수백 마리의 벌들이 강백현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찌르고 또 찌르고. 찌르고 또 찌르고.

견고한 보호막을 뚫기 위해 침을 앞세운 벌들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3분도 지나지 않아 에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현! 거기 있구나!”

“…….”

“고작 거기밖에 못 간 거야?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어?”

한국말로 백현을 약올리는 에반.

그는 손을 휘저으며 벌들을 치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쉬지 않고 공격하던 벌들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에반은 계단을 통해 해당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겨우 2층짜리 건물. 뻥 뚫린 곳이라 도망칠 곳은 없었다.

에반은 검은 구체를 불러 강백현의 앞에서 절망적인 말을 내뱉었다.

『보호막 해제.』

그러자 백현이 주변에 구현해두었던 보호막이 힘을 잃고 사라지기 시작한다.

『자가치유 해제.』

이번에는 치유 능력이 비활성화 되며 백현의 피로감을 가중시켰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분신 해제.』

아무 효과도 없었지만, 에반은 오히려 효과가 없었기에 만족한 얼굴이었다.

“너 분신 아니구나? 본체구나. 맞지?”

“잔인하다. 에반.”

“내가 잔인해? 너 때문에 100여 명의 헛된 목숨이 희생됐어. 너 키메라 만들려고 부랑자를 얼마나 죽였는지 알아?”

에반의 말에 강백현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따지고 들었다.

“누가 키메라 되고 싶다고 했어? 너 그런 말한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 없었잖아!”

“너도 봤잖아. 도르시안의 그 키메라. 하늘을 나는 사자! 네가 그걸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내 꿈을 이뤄줄 수 있다고 생각해?”

에반의 따지는 듯한 말투에 강백현이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너는 진짜 생각이 1차원적이야. 하나밖에 생각 못해.”

“뭐라고?”

“강함은 그런데서 나오는 게 아니야. 단순히 치고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두뇌를 쓰는 거라고. 왜 내가 그 펫하고 싸워야 하는데? 대화로 푸는 방법도 있잖아.”

“그래. 너 대화 진짜 좋아하지. 그런데 나는 어떻게 설득할 건데? 설득해 봐. 네가 나를 상대로 손이나 까딱할 수 있어? 능력도 봉인된 네가 지금 날 이길 수 있냐고? 어?”

에반의 협박에 강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능력을 못 쓴다고? 왜? 네가 봉인해서? 네가 주인이라 능력을 해제해서? 야! 에반! 나 강백현이야. 인간 강백현이라고! 너희 멍청한 종족 거인하고 다르게 똑똑하고 잘나가는 인간! 강백현이라고!”

똘끼 어린 얼굴로 에반을 바라보는 강백현.

그가 에반을 향해 갑자기 달려들기 시작했다. 강백현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공격했던 벌들의 독침이 들려있었다.

그걸 본 에반이 씩 웃으며 강백현을 향해 말했다.

“그 독침으로 날 죽이겠다? 능력도 없어서 몸도 겨우 가누는 네가?”

에반 왕자의 한국말을 듣고 있는 앨버트와 나타샤. 그리고 연구원들.

그들은 왕자의 펫이 보이는 행동에 신선한 반응을 보였다.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펫이 왕자님에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표정을 보니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건 분명해보였다.

백현이 외쳤다.

“그래서? 내가 너를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해?”

그러자 에반이 어이없는 얼굴로 백현에게 외쳤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그 작은 몸으로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데?”

그러자 백현이 씩 웃으며 에반에게 자신의 승리를 알렸다.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내가 거인어를 할 줄 아는 걸 넌 몰라?”

“그게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있지. 검은 구체는 모든 언어를 알아듣거든.”

갑자기 강백현이 거인어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아! 아~아!』

에반이 실성한 듯한 강백현을 보며 자신의 다리를 들어 밟으려 하자, 뒤에 있던 앨버트와 나타샤가 왕자를 만류했다.

『왕자님! 밟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강백현이 소리 질렀다.

『안 죽어. 쫄따구들아!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아?』

강백현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굵게 변했다.

『보호막 해제 취소!』

강백현의 입에서 에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검은 구체는 그걸 에반의 목소리로 알아듣고 봉인했던 강백현의 보호막 능력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렸다.

강백현은 보호막 파편을 발판삼아 에반의 얼굴 쪽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강백현의 행동에 놀란 에반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데, 강백현은 에반의 목소리로 계속해서 외쳐대기 시작했다.

『자가치유 해제 취소!』

『분신 해제 취소!』

능력을 다시 되돌린 강백현이 순식간에 에반의 어깨 위를 타고 독침을 에반의 뺨에 찔러 넣었다.

에반은 당황한 채 강백현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보호막으로 막았지만 순식간에 밀려나는 강백현. 그러나 아치형 보호막을 스펀지 삼아 다시 한 번 뛰어들었다.

에반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야야야! 야! 막아! 저 새끼 막아! 생포해! 생포하라고!』

『네. 왕자님. 물러나십시오.』

하지만 강백현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검은 구체를 향해 다시 한 번 소리치는 강백현.

『분쟁조정 신청. 대상 나타샤 블랙!』

그러자 검은 구체가 에반을 흉내낸 강백현의 목소리에 반응, 나타샤와 에반 주위에 결계를 만들어낸다.

『강백현! 너 이 새끼! 분쟁조정 취소! 취소! 취소!』

『취소 철회! 취소 철회! 취소 철회!』

에반의 목소리가 분쟁조정 취소와 철회를 반복하자, 검은 구체는 상반되는 두 개의 명령을 실행하지 못한 채 현 상태를 계속 유지했다.

에반은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는 강백현의 행동에 분노했다.

『강백현! 강백현!』

하지만 분노한 것은 백현도 마찬가지였다.

『에반! 어떻게 할래? 여기서 죽을래? 아니면 우리 다시 잘해볼래? 어차피 한 시간 안에 난 너를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냥 서로 잘 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

백현의 분노 어린 목소리에 에반이 씩씩댔지만, 나타샤의 펫인 반딧불이 가지고는 백현을 막아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 에반의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아……. 눈이…….』

『왜? 네가 나 죽이려고 보냈던 벌들의 침이잖아. 너한테는 안 통할 줄 알았어?』

털썩. 무릎을 꿇고 침에 쏘여 부어오른 부위를 만지는 에반.

나타샤가 왕자의 상태를 알아보고 백현에게 말했다.

『그만! 여기서 그만! 더 이상 안 할 테니까 그만하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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