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키메라
끈적이는 것들은 곤충이나 동물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거미줄이나 식충식물들.
그런데 거인들이 뱉어놓은 껌도 이렇게 위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별 생각 없이 땅에 뱉었을 껌이 동료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그래도 다행히 김건우의 능력은 물질투과 능력이었다.
“죄송합니다! 가던 길 가시죠.”
“그래. 조심해서 가자고.”
“네. 마스터.”
마스터의 대답에 다시 이동하기 시작하는 일행들.
마스터는 실수를 저지른 김건우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속마음으로는 몇 번이고 그를 타박했단 것을 미나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장명훈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강미나! 빨리빨리 따라오지 못해? 힘들면 말해. 지금이라도 돌려보내 줄 테니까.”
“아닙니다. 마스터.”
일행들은 차선 가장자리에 딱 붙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인들이 자주 다니는 인도보다 시선이 잘 안 가는 차도 가장자리를 택한 것은 그들이 터득한 생존방법.
“왜? 걱정되나? 차량에 부딪히기라도 할까 봐?”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대단해서요.”
“뭐가 또 그렇게 대단한데?”
“최고 빠른 길을 택한 거잖아요. 차도를 통해서 올라간다는 거, 아무리 봐도 위험한 루트인 것 같았는데…….”
“너도 거인들의 차를 타 봐서 알겠지만, 대부분은 자율주행 기능이 있어. 그 기능이 없다 해도, 차량의 운전자는 정면을 보지. 측면을 보진 않아. 특히 인도와 딱 붙은 차도의 가장자리를 시선에 두는 거인들은 없지.”
“네.”
그런데 갑자기 지나가던 차량이 오르막 비탈길에서 멈춰 섰다. 그걸 보며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김건우에게 마스터가 재촉했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올라가. 우리 때문에 멈춘 거 아니야.”
“네. 마스터.”
그런데 강미나가 말했다.
“아니에요. 우리 때문에 멈춘 거 맞아요. 카메라 챙기고 있어요.”
“뭐?”
“조장님! 지금 바로 탈출해야 해요! 멈춘 거인이 검은 구체를 불렀어요. 30초 안에 도착한대요.”
“진짜야?”
“네.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강미나의 말에 김건우가 차도와 인도 사이 턱 부분에 물질투과 능력을 사용했다. 손에 손을 잡고 다 같이 사라지는 4명의 인간을 본 거인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 * *
5분 후.
공원 옆, 나무 뒤에 숨어 현재 상황을 지켜보던 마스터와 일행들.
그들은 물질투과 능력을 사용했던 장소 주변에 검은 구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미나는 안도의 목소리로 마스터에게 말했다.
“믿어주셔서 고마워요. 마스터.”
“어떻게 한 거야? 생각을 읽은 거야?”
“네. 거인의 생각을 읽어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거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네. 선희 언니가 레벨 2로 능력을 증폭시켜주셨거든요.”
“쓸데없는 짓을 했군.”
만능에 가까웠던 마인드리딩 레벨 4.
거인의 기억을 조작하고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었던 때와는 다르지만, 지금의 레벨 2로도 충분히 한 사람의 역할은 가능했다.
장명훈의 떨떠름한 표정에 김건우가 말했다.
“미나야. 잘했어. 마스터가 원래 무뚝뚝하고 칭찬에 인색하셔.”
“네. 알고 있어요.”
“그래.”
강미나는 자신을 평가하는 장명훈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쟤는 어떤 용도로 써먹어야 하지? 거인의 생각도 읽을 수 있을 줄이야.>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할 뿐인 장명훈의 생각이 고스란히 들려오자, 미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미나는 자신이 저주받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홍성운이 농담조로 미나에게 말했다.
“미나야! 지금 건우 형 무슨 생각하는지 읽었지? 응? 건우 형, 지금 널 엄청 기특해하고 있을 텐데!”
그러자 김건우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그리고 작전 중이잖아. 홍성운, 왜 그래!”
“아니, 농담 한 번 한 거 가지고 왜 그래요? 과민반응 하시는데요.”
“됐어! 그만! 미나는 동료들 생각은 안 읽는다고 저번에 약속했어. 솔직히 읽어도 상관없고.”
한참 떠들고 있는 두 사람을 가볍게 무시한 장명훈이 방금 전 활약한 미나에게 물었다.
“사용범위는?”
“네?”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범위.”
“대략 10m 정도 되는 것 같아요.”
“10m나 된다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시선에 들어오는 생물의 생각은 읽을 수 있어요.”
“사기네. 그것도 사기야.”
“네?”
“너, 소생의 돌 아니어도 거인들이 현상수배 걸 만해. 그 정도 능력이 기본 능력이면 솔직히 거인들이 탐낼 만하겠어. 속마음을 읽는다는 게 그렇잖아? 비즈니스, 사랑, 거래, 범죄 모든 방면에 이용할 수 있는 능력. 굳이 싸우는 데 써먹지 않더라도, 거인어도 할 수 있는 너의 가치는 천만 불을 훌쩍 넘길 테지.”
장명훈의 이어지는 말을 읽어버린 강미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너한테는 저주스러운 능력이겠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거인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
장명훈의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상만이지만, 장명훈의 사고에서 이미 강미나는 수십 번도 더 죽고 살아나고, 죽고 살아났다.
장명훈의 손날에 미나의 목이 날아가기도 했고.
장명훈의 발차기에 복부의 내장이 터지기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김건우가 휴양지에서 강미나와 수영복을 입은 채 단둘이 노는 장면을 생각하기도 했고, 느닷없이 자신의 알몸을 상상하는 아저씨의 등장에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걸 알고 있는 마스터가 미나에게 현실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런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강미나, 네가 자연스러운 사고를 할 수 있을까, 난 의심스럽네.”
“다행히 항상 타인의 생각을 읽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조절할 수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럼 다행이고. 이거 하난 명심해.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고 네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마. 우리는 뭐든지 상상할 수 있어. 다만 그것의 옳고 그름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에 우리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고 있는 거야.”
“네.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겠어요.”
장명훈의 말 때문인지, 미나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나야.”
“네?”
“나는 너 이해해.”
홍성운은 강미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동생의 생각을 읽을 수 있잖아. 성환이가 매일 무슨 생각하는지 작전 중에는 다 들리거든. 텔레파시를 항상 켜놓고 있으니까.”
“아…….”
“솔직히 나도 이런 저런 생각해. 호감 가는 이성이 있으면 『쟤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해야 쟤가 날 좋아할 수 있지? 동생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었나? 밥은 잘 먹었나?』 별 쓸데없는 생각들이 동생한테 다 전달되고, 동생의 생각 또한 나한테 다 전달되니까.”
“네.”
“그런데 그런 건 익숙해지면 별 거 아니야. 더구나 듣기 싫으면 능력을 사용 안 하면 되는 거잖아.”
“네. 알아요.”
“그래. 그럼 됐어.”
단순한 경험을 말해준 것뿐이었지만, 미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구체들이 물러나고, 차량을 멈춰 주변을 둘러보던 거인들도 수색을 멈추고 이동하기 시작하자, 장명훈이 일행에게 말했다.
“움직일까?”
“네. 마스터.”
* * *
같은 시각.
강백현은 정신이 멍한 상태로 깨어났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이 들어?』
이름 모를 거인의 목소리에 백현이 기겁한 듯 뒤로 주춤했다.
‘저건 뭐야! 뭐야!’
백현이 겁에 질린 채 뒤로 도망갔지만, 투명한 사육장 안에 갇혀버린 그에게 탈출구란 없었다.
『왜 그래? 어?』
에반은 백현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비명만 내지를 뿐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강백현!”
“네?”
“뭐야! 말할 줄 아네.”
“네? 죽이지 마세요. 제발. 제발!”
“내가 너를 왜 죽여?”
강백현은 단편적인 기억 속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페이즈의 시작.
그리고 회전문을 지난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다음이 생각나질 않는다.
“기억이 안 나요. 나 죽이려는 거예요?”
“그것보다 우리말 할 줄 몰라?”
“네?”
『말 못 하냐고!』
거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며 에반이 앨버트를 책망했다.
『도대체 기억을 어디까지 지운 거야?』
『죄송합니다. 아마 3개월치는 지워버린 것 같습니다.』
『앨버트! 확실하다며!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며! 어?』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앨버트는 자신이 섭외한 거인에게 제니를 송금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돈은 반밖에 못 드립니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일하면, 매장될 수도 있어요. 경고입니다. 네?』
『……』
기억을 지울 수 있는 펫을 가진 거인은 대답 없이 방문을 차고 나갔다.
그래서 지금 이 방에는 에반과 강백현, 그리고 앨버트뿐.
에반은 답답한 마음에 강백현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건물 밖. 수많은 거인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강백현은 자신을 붙잡은 거인에게 죽을까 봐 덜덜 떨고 있었고, 에반은 그런 백현의 상태를 보고 안심시키기 위해 한국어로 말했다.
“백현, 나 기억 안 나?”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모르겠다고 말하는 백현.
에반이 현재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에반이고, 넌 지금 지구라는 곳에서 우리 세계로 오게 됐어.”
“나 죽일 거야?”
“내가 너를 왜 죽여! 나는 네 주인인데!”
“주인?”
“아, 기억이 아예 없구나. 넌 내 펫이고, 나하고 계약한 상태야. 그래서 넌 분신 능력이 새로 생겼고.”
“분신?”
강백현이 고유 능력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확실히 자가 치유란 능력과 분신 능력이 생겨 있었다.
백현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사이, 에반은 강백현의 기억이 지워진 것을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래도 인지능력은 있어서 싸우는 데 문제는 없을 거야. 잘한 걸지도. 앞으로 5시간만 있으면 키메라로 합성시킬 수 있으니까.’
에반은 기대에 부풀었다.
이제 곧 키메라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인간의 놀라운 지능과 판단력이 결합된, 자신들과 의사소통이 되면서 피지컬까지 완벽한 합성생명체.
그때, 안쪽에서 그의 부하가 에반에게 말했다.
『에반 왕자님, 따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어? 잠깐만!』
에반은 강백현을 사무실 안에 있는 사육장에 집어넣고, 밖으로 앨버트를 불렀다.
『응. 이제 말해.』
『키메라 제조법 분석 완료했고, 의뢰결과 하루 안에 공작기계 통해서 제작 가능하다고 합니다. 펫은 어떤 것하고 합성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떤 펫?』
『네. 기왕이면 대형 펫이 낫지 않겠습니까? 악어, 하마, 코끼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는 유틸성이 높은 게 좋을 것 같아. 무겁기만 한 것보다는 빠른 것. 치타도 좋을 것 같고, 독수리도 좋을 것 같고.』
『오늘 저녁까지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좋은 놈으로 준비해보겠습니다.』
『그래. 저녁이면 얼마 안 남았네.』
『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