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09화 (109/200)

109화. 의심

한태석이 깨어난 것은 다음 날이었다.

두통이 밀려오는 가운데, 그는 허리를 일으켜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태석아, 괜찮냐?”

“네. 건우 형, 어제는 고마워요.”

“고맙긴 뭘.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뭐.”

한태석은 김아람이 자신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사라진 후 김건우가 자신을 구하러 왔던 것을 기억해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상황.

“미나한테 고마워해. 태석이 너 위험할 것 같다고, 바로 출동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서 나도 너 구할 수 있었던 거야.”

“아…… 그랬구나. 그것보다 어제 제가 말씀드린 것은 마스터께 보고됐나요?”

“그것보다 네 몸이 먼저지. 치료부터 받아야 할 거 아니야?”

“그렇죠. 윤수는 어디 있어요?”

한태석은 부목과 천으로 돌돌 감은 다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다리가 부러진 거라서, 일단 뼈부터 맞춘 다음에 윤수한테 치료해달라고 해야 한대. 잘못하면 평생 다리를 절 수 있다고, 신중해야 한다고 회복조장님이 말씀하시더라구.”

회복조장이란 말에 한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임무는 당분간 힘들다는 거죠? 파업해야겠네요.”

“파업은 무슨! 재택근무해야지. 아무튼 태석이 넌 지니어스 타워 지형정찰 임무에서 빠지기로 했어.”

“네? 제가 빠지면 어떻게 해요? 거인어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저 밖에 없잖아요.”

“무슨 소리야? 미나가 있잖아. 그리고 거인어 말고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이 보완하면 돼. 도면 같은 건 나도 볼 수 있고, 마스터도 가시니까 문제 없을 것 같고.”

김건우의 말에 한태석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마스터도 같이 가세요?”

“응. 그러시겠대. 솔직히 든든하지 않아?”

“그렇겠네요. 마스터라면 뭐, 걱정하지 않고 이렇게 쉬어도 좋겠죠.”

“그래. 우리 다녀올 동안, 김아람이랑 김만철 대결 모니터링 해 놔. 아 참! 만철이형이 96.5% 확률로 이길 거라고 분석했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며? 증폭 능력이 그렇게 대단해?”

“아무래도 레벨 1을 24시간 동안 레벨 2로 만들어주니까요.”

“그래. 선희 씨가 생각 외로 꽤 많은 변수를 만들어냈어.”

“그렇죠.”

“그나저나 널 그렇게 만든 건 아람이 맞지? 어제 네가 의식 잃기 전 하던 말에 거짓말은 전혀 없는 거지?”

“네. 당연하죠.”

“다행이다. 사실 정식으로 마스터께 보고 올렸거든. 그리고 마스터께서 말씀하시길……. 아니다. 넌 몰라도 돼.”

“말을 왜 하다 끊어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처분하신대. 아람이가 마스터 협박했단 내용 듣고, 가만히 참고 계시진 않는다고 하셨어.”

한태석은 김아람의 처분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김건우는 한태석이 멍하니 생각에 잠긴 것을 보며 되물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아파서 그래?”

“아니요. 아픈 것보다…… 아람이가 염력 레벨이 3이나 4가 되면 얼마나 세질까요? 마스터가 이길 수 있을까요?”

“뭐?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마스터가 이기지.”

“형, 생각해봐요. 겨우 염력 레벨 2 밖에 안 되는데도 제 다리를 너무나 쉽게 부러뜨렸어요. 힘도 들이지 않고 편안해보였어요. 레벨 3이나 레벨 4가 되면 아람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쓸데없는 생각 말고 쉬어. 걔는 살인미수야. 널 죽이려고 했다고.”

“살인미수까지는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면 아람이는 절 죽이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어요.”

“실제로 죽이려고 했잖아.”

“아니에요.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어요. 오히려 저보다 마스터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있었죠. 사실 아람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람이가 분노한 게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

“만철이 형님한테 아람이 죽이고 4성 되라고 말했어요. 마스터가 그 말 전달하라고 하셨거든요.”

“뭐?! 마스터가 직접 그렇게 말했어?”

“네. 저한테 전달하라고 임무를 내려 주셨죠.”

“그런데 아람이는 널 왜 공격하는데?”

“아람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한태석의 말에 김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냐? 아람이 걔도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은데…….”

김건우는 최근 들어 마스터가 방향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이진기를 죽였을 때 처음 의구심이 생겼고, 김아람을 일본 거주지에 가라며 함정에 빠트렸을 때 의구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자신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나 보다.

“너는 그 말을 왜 따랐는데? 죽이라는 거잖아.”

“마스터의 지시니까요. 절대복종해야죠.”

“…….”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마스터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 걸까요? 모르니까 두려워요.”

한태석의 말에 김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마스터께서 우릴 배신하겠냐? 우리를 거둬주신 분이잖아. 지금도 우리들이 의지하고 기대야 할 존재고.”

그의 말에 한태석이 같은 정보조 요원이었던 이진기에 대해 물었다.

“건우 형, 그것보다 진기 형은 어떻게 됐어요? 왜 연락이 없어요? 형하고 마스터하고 같이 임무 나갔다 안 돌아왔잖아요. 왜 아무 말도 없어요? 왜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해주시는 건데요?”

“태석아. 쉬어라.”

“건우 형! 형 뭐 알고 있는 거 있죠? 진기 형은 지금 어디 있어요?”

“쉬어. 쉬라니까.”

“건우 형! 건우 형!”

김건우는 한태석을 두고 방문 밖으로 나왔다.

천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김건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이상 고민하지 말자. 마스터는 절대 우리를 버리실 분 아니야. 무슨 생각이 있으셨겠지.’

김건우는 곧바로 마스터의 방으로 향했다.

슈트를 입은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마스터. 출발하십니까?”

“그래. 인원은?”

“마스터랑 저, 홍성운, 그리고 강미나 이렇게 4명입니다.”

“태석이가 없어도 되겠어?”

“네. 거인어는 미나가 읽을 수 있고, 실시간 정보는 성운이가 성환이 통해서 연락 가능합니다. 진기가 없어서 천리안 능력을 쓸 수 없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 친구 이야기는 꺼내지 마.”

“네. 죄송합니다. 마스터.”

장명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본 김건우가 고개를 숙였다.

“그것보다, 태석이는 못 움직인대?”

“네. 뼈가 심하게 부러져서 일단 뼈를 먼저 맞춘 뒤에 치료한다고 합니다. 그 전에 치료하다가 뼈가 잘못 붙으면 돌이킬 수 없다고 해서요.”

“그래. 그것보다 정선희 능력이 레벨 1에서 레벨 2까지밖에 못 올린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그래. 알았어. 준비하지.”

“네. 알겠습니다.”

장명훈의 말에 김건우가 대답 후 뒤돌아서다 멈추었다.

“마스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마스터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복수입니까? 아니면 생존입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믿자. 차기 마스터 자리에 날 밀어주신다잖아. 그냥 믿는 거야. 이제껏 해왔던 대로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뭔데? 말을 해. 괜찮아.”

“그냥 요즘 피곤해 보이셔서요. 문제가 여기저기 많이 터져서 신경 쓰셔서 그런 걸까요?”

“피곤한 거 아니야. 아무 문제 없는 상태고. 너야말로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이지 마. 너 강미나 좋아한다고 소문났더라.”

“네?”

“잠꼬대했다며!”

“아! 아닙니다. 마스터!”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생존을 위해서야. 다 우리 살자고 하는 거잖아. 안 그러냐?”

“제가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됐어. 준비나 해. 오랜만에 너랑 직접 현장에 나가게 되니 떨리는구만.”

“아닙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준비하자고!”

“네. 마스터.”

김건우는 마스터의 방에서 나와 광장으로 멤버들을 집결시켰다. 강미나와 홍성운, 그리고 그의 동생 홍성환이 나와 있었다.

둘의 능력은 텔레파시.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성환이도 나와 있었냐?”

“네. 아, 이번에는 제가 가려고 했는데, 왜 성운이 형을 지목하셨어요?”

“성운이가 시력이 더 좋잖아. 그리고 넌 말이 많아.”

“마스터 출동하신다고 하셔서 저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홍성환의 말에 김건우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오늘은 지형정찰만 가는 거야. 그리고 사무실이 낫지. 사무실에서 태석이랑 같이 정보 좀 파악해서 알려줘. CCTV 해킹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언급해주고.”

“네. 알겠어요. 성운이 형!”

쌍둥이 동생의 말에 형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조심히 다녀와. 올 때 먹을 것 좀 가져오고.”

“챙겨볼게.”

“응. 작전 중에 야한 생각하지 마라. 그거 나한테도 넘어온다.”

“아~ 그런 얘기 좀 하지 마.”

“뭘 인마! 저번에 거인들 짝짓기한다고 CCTV 화면 보면서 난리쳤잖아.”

실시간으로 대화뿐만 아니라 생각도 전달할 수 있는 텔레파시.

그 둘의 생각을 읽은 강미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김건우에게 말했다.

“조장님, 제가 준비할 사항은 없나요?”

“넌 체력적으로만 뒤처지지 않으면 돼.”

“걸림돌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 마음가짐이면 돼.”

몸에 착 달라붙는 슈트를 입은 세 명이 장명훈의 등장에 고개를 숙였다.

“나오셨습니까?”

“준비 다 됐지?”

“네. 마스터.”

거주지 밖으로 나오기 전 김건우가 지형정찰 브리핑을 시작했다.

“먼저 침투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우리가 아르케 1-1지역으로 가는 거리는 약 18km, 저희 신체 기준으로 환산하면 900km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 대책은?”

“일단 버스를 이용할 계획입니다. 매일 아침 5시 40분에 출발하는 44번 버스를 타기 위해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 합니다.”

“버스를 타고 간다?”

“네. 첫 차를 타기 위해 거인들이 5시 경부터 모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전 4시 40분까지 버스의 하단 짐칸에 잠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물질투과 능력이 필요할 거고요.”

“그렇겠지.”

“그렇게 1시간 20분을 타고 종점에 도착하면 지니어스타워 지하주차장에서 내릴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제 물질투과 능력을 이용하여 버스에서 내린 후 곧바로 하수구로 이동할 겁니다.”

“하수구?”

“네. 하수구를 통해 지하 환풍구로 잠입한 후,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겁니다. 거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표지점인 최상층으로 올라가야겠죠.”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6층부터는 개인 출입증이 있어야만 통과할 수 있고, 지하 주차장에서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6층까지입니다. 6층에서 최고층으로 올라가는 또 다른 엘리베이터로 갈아타야 우리도 목표지점인 61층, 천공의 전투장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알았어. 천공의 전투장은 공사가 끝났나?”

“네. 한 달 전 재정비가 끝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지니어스타워, 천공의 전투장.

차후 본선이 치러질 무대 현장.

오늘 목표는 그곳에 침투하여 지형을 정찰하는 것.

침투로를 되새긴 4명이 야음을 틈타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하는 동안 홍성운이 동생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동료에게 전달했다.

“전방 2번째 골목에 검은 구체와 거인 포착, 우회하라고 합니다.”

“그래? 우측으로 돌자고.”

“네.”

거주지에서 해킹한 CCTV를 통해 얻은 정보를 작전조에 전달하는 홍성환, 그리고 그걸 전달받은 홍성운이 이동경로를 동료들에게 알려준다.

“지금부터 150m 지점까지는 CCTV가 없다고 합니다. 주의해서 구체에 들키지 않도록 움직이라는 내용 전달 받았습니다.”

“그래.”

김건우를 선두로, 마스터와 홍성운, 강미나가 일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3cm 정도의 작은 몸이지만, 거인에게 포착되기에는 충분한 크기.

따라서 이동하는 것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밤이슬이 내려오는 추운 새벽시간임에도 거인들 중 일부는 운동을 하기 위해 밖에 나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거인도 있고, 열대야로 인해 집이 너무 더워 바깥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거인도 보였다.

그러나 미나 일행은 홍성환이 전달해주는 정보 덕에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 거인들이 운동하고 다니는 공원, 그 옆의 비탈길만 오르면 곧 버스정류장이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 가던 김건우가 움직이질 않는다.

“뭐야! 문제 있어?”

“네. 조금요. 다리가 안 떨어집니다.”

“왜?”

“제가 그만 껌을 밟은 것 같습니다.”

아직 뱉은 지 얼마 안 된 끈적이는 껌에 휩싸인 김건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깐 멈추겠습니다. 물질투과 능력으로 껌 좀 떼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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