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08화 (108/200)

108화. 대화

김아람은 초조해보였다. 통증이 사라진 미나는 이제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김아람이 초조해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래서 그런 거야.’

김아람은 자신의 죽는 날을 세고 있었다. 이제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 누구보다 소생의 돌이 절실한 그녀는 김만철과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 했다.

결론은 99% 확률로 패배.

그 이유는 자신의 염력 레벨이 1이어서.

자신의 주인인 버키로부터 포인트 투자를 받지 못해서였다.

한태석이 무덤덤한 얼굴로 김아람에게 말했다.

“내가 얘기해줄게. 미나 괴롭히지 말고 이쪽으로 보내.”

“오빠는 마스터하고 같은 편이잖아. 내 말 그대로 전달 안 할 거잖아!”

강미나는 김아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 오빠, 내가 이야기할게요.”

“넌 노출되면 안 돼. 당부했잖아. 거인한테 들키지 않겠다고, 조심하겠다고 응? 아! 읍…… 김아람! 아람아!”

한태석이 자신의 목을 옥죄는 힘에 당황했다.

“언니,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다 사람 죽어요.”

미나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가 한태석이 곤란해하는 표정을 발견한 김아람은 깜짝 놀라 염력을 풀었다.

“미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불안해하는 거 알아요.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언니, 조금만 참아요. 내가 다 말해줄게요.”

“응.”

겨우 진정된 김아람의 옆에 미나가 다가왔다.

미나는 김아람이 안심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두 사람의 몸이 김아람의 염력에 의해 공중으로 상승했다. 그 둘이 향한 곳은 버키의 침대였다.

김아람은 버키의 코털을 염력으로 살랑살랑 흔들며 재채기를 유도했다.

『에취!』

기침과 함께 충혈된 눈이 떠지고, 버키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김아람과 강미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깜박였다.

『이건 뭐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왔어요.』

강미나가 대답하자, 버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너도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건가?』

『네. 언니는 곧 결승에 참여해요. 그것 때문에 굉장히 초조해하고 있어요. 주인님이 왜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어요.』

강미나는 버키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 말했다. 그러자 버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정하는 건 내 마음 아닌가? 그리고 꼬맹아, 너 포인트의 중요성에 대해 아니?』

『중요성이요?』

『그래. 포인트는 제니 이상으로 중요한 거야. 자신이 투자한 펫이 목숨을 잃으면 그 포인트는 날아가는 거라고! 평생 나랑 같이 있어도 투자할까 말까인데, 시한부 인생에 내가 투자를 해야 해? 말도 안 통하는 펫에?』

버키의 말에 강미나는 답변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달변가라고 해도 그의 논리를 설득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잠깐 시간을 주세요.』

『그래.』

대답과 동시에 다시 눈을 감은 버키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김아람은 둘의 대화가 궁금했다.

“뭐래? 투자해주겠대?”

“아니요.”

“미나야!”

“언니, 나 버키라는 거인의 생각을 읽었어요. 그리고 언니가 초조해하는 이유도 알았고요.”

“…….”

“이미 오늘 아침에 서로 싸워본 거죠? 버키, 바키 형제는 결승전 전에 언니와 만철 아저씨 중 누가 강한지 서로 겨뤄봤어요. 그리고 그 결과는 언니의 참패…….”

“그만!”

“언니는 호기롭게 이길 줄 알았죠. 거리만 가까워지면 만철 아저씨는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염력은 단점이 있었어요. 느려요. 반응속도가 느려서…….”

“그만! 그만!”

김아람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자, 강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언니한테 투자해줄 수 없대요. 거인들에게 포인트는 굉장히 중요하대요.”

“그만하라고 했잖아!”

김아람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쳤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김만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김아람의 모습에 코를 골던 버키가 다시 눈을 떴다.

『후우, 미치겠네.』

『……』

비록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거인은 자신의 펫의 얼굴이나 동작, 행동 등을 통해 펫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다.

버키는 이미 오전에 패배한 이후 의기소침해진 김아람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버키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꺼냈다.

『데려가.』

『네?』

『펫 해제해줄 테니까 데려가라고.』

버키의 말에 강미나가 절망적인 얼굴로 말했다.

『그건 언니가 원하지 않아요.』

『피차 마찬가지야. 어차피 본선은 한 명밖에 못 올라가니까. 동생이 올라가면 된 거야.』

『하지만 결승은 해보지도 않았잖아요.』

『해보지 않아도 알아. 오늘 동생이랑 말했어. 결승에서 내가 기권하기로. 오전에 이미 사전 예행연습을 했었거든.』

그건 이미 생각을 읽어서 알고 있었다.

미나는 그래도 절실했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잖아요! 이대로 포기하면 언니는! 언니는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어차피 내일 결승에서 죽을 운명이야. 기권하는 게 차라리 나아.』

『아니에요. 언니는 절실해요. 싸우고 싶어 해요! 이기고 싶어 해요!』

미나의 호소에 버키가 엄지손가락으로 김아람을 밀어내며 물었다.

『야! 정말 그런 거야?』

김아람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기회를 얻고 싶었다.

『좋아. 결승에서 기권은 안 해. 대신! 포인트 투자도 없어.』

그의 말에 강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협상을 시작했다.

『그럼 잠깐만 언니랑 다녀올 데가 있어요.』

『어디?』

『그건 비밀이에요.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올게요.』

『그래.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강미나는 떠오른 생각을 정리했다.

언니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게 김만철 아저씨한테는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나겠지만, 그래도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아람 언니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김아람과 강미나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버키는 멀뚱멀뚱 쳐다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한태석이 당황한 얼굴로 미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건 김아람도 궁금했다.

“자세히 설명해 봐. 왜 갑자기 내려오자고 하는 건데?”

“언니, 이기고 싶죠?”

“그거야 당연하지.”

강미나의 말에 김아람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편법이긴 한데, 언니의 레벨을 올려줄 방법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한태석이 맞장구를 쳤다.

“잠깐! 맞아. 맞아. 그게 있었네.”

“뭐?”

“아람 언니 염력레벨 1이잖아요. 그건 선희 언니의 증폭 능력이 통한다는 거죠.”

“응.”

“그럼 됐어요. 그걸로 만족하실 수 있는 거죠?”

강미나의 말에 김아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미나는 김아람이 참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일.

누군가에게 3달 후의 확정된 죽음이냐, 만약 내일 죽더라도 살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삶이냐를 택하라면 자신도 후자를 택할 게 분명했다.

“언니, 대신 하나만 부탁할게요.”

“뭔데?”

“그게 뭐냐면요.”

* * *

오랜만에 거주지에 돌아온 김아람은 정선희를 보며 펑펑 울었다. 그걸 보며 강미나는 자리를 비워주었다.

정선희는 울고 있는 김아람을 보며 말했다.

“바보. 왜 우니?”

“언니! 나 살고 싶어요. 윤수처럼 살고 싶어요.”

“너…… 알고 있었던 거야?”

“네. 언니의 선택을 나무라는 건 아니에요. 윤수도 살아야 했잖아요.”

“응.”

“언니, 대신 부탁이 있어요. 저한테 증폭 능력을 써주세요.”

김아람의 말에 정선희가 잠시 거리를 벌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들었어. 내일 만철 씨랑 싸운다며, 거기서 이긴 사람만 본선에 올라갈 수 있다고 건우 씨가 얘기하더라. 만철 씨랑 싸우는데 네 능력을 증폭시키는 거라면 반대야.”

정선희의 거절에 김아람이 고개를 숙였다.

“언니한테는 힘든 부탁인 거 알아요.”

“힘든 부탁이라니?”

“언니, 만철이 아저씨 좋아하잖아요.”

“…….”

“약속할게요. 사상자는 나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만약 제가 본선에서 우승하게 되면 대륙 대회에 나가 소생의 돌을 하나 더 구해올게요.”

“대륙 대회?”

“네. 아르케 지역만이 아닌 4개 대륙에서 진행하는 대회가 있어요. 거기에서 이기면 소생의 돌을 무려 5개나 얻을 수 있대요. 제가 5년 만에 한 번 열리는 그 대회의 우승자가 된다면 만철이 아저씨도 살아날 수 있어요.”

그랬다. 대회는 아르케 지역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만철 씨가 우승해도 되잖아.”

“언니도 알잖아요! 내가 더 강한 거. 같은 능력이면 내가 제일 강한 거 알잖아요.”

김아람의 격앙된 목소리에 정선희가 뒷걸음질 쳤다.

“언니, 나 무서워요?”

“아니…….”

“나도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언니! 언니가 나한테 능력 써줘야 나 다시 돌아가요. 그러니까 빨리 끝내요.”

“하지만!”

정선희는 김만철이 걱정되었다. 자신의 증폭 능력은 확실히 생존능력을 획기적으로 올려준다. 그건 김만철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

“안 죽여요. 저도 만철이 아저씨 좋아해요. 이성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이기는 게 맞아요. 내가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맞다고요. 언니도 만철이 아저씨랑 같이 있고 싶잖아요.”

정선희의 마음을 꿰뚫어본 김아람의 말에 정선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철 씨, 멀쩡하게 돌려보내. 그럼 증폭 능력 써줄게.”

“네. 알았어요. 언니.”

“너 언니랑 약속한 거야.”

“네. 당연하죠.”

정선희가 증폭 능력을 통해 김아람의 염력 레벨을 1에서 2로 올려주었다.

“유효시간은 하루야. 하루가 지나면 네 레벨은 다시 1로 떨어질 거야.”

“네. 알아요. 고마워요, 언니.”

“그래. 울지 말고.”

“네.”

* * *

버키, 바키 형제의 집으로 돌아가는 김아람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미나야. 너는 돌아가서 쉬어. 태석 오빠랑 둘이 갈게.”

“아니에요. 언니. 저도 같이 갈래요.”

“아니야. 네가 따라오면 부담스러워. 그러니까 언니는 태석 오빠랑 같이 갈게. 네가 아니더라도 태석 오빠가 통역해주면 되니까 괜찮아.”

“그래요. 미나는 거주지에서 좀 쉬어. 내가 한 번 더 다녀올게.”

한태석의 말에 미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가는 길. 한태석은 증폭능력을 받은 아람이에게 물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레벨 1하고 2는 확연히 달라요.”

“그래?”

“네. 경기에서 보여드릴게요.”

“그래. 응원할게.”

이윽고 미나가 보이지 않게 되자 김아람이 한태석을 다시 불렀다.

“태석 오빠.”

“어?”

“내 앞에서는 연기 안 하셔도 돼요.”

“연기라니?”

“오빠, 나 죽여도 된다고 만철이 아저씨한테 말하러 온 거였잖아요.”

“아니야. 무슨 말이야?”

김아람의 말에 한태석이 뒷걸음질 쳤다.

“나 다 알고 있었어요.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혹시 겁먹으신 거예요?”

한태석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람아, 그게 아니라…… 응? 아람아! 아람아, 그게 아니야.”

그때 김아람의 염력에 의해 한태석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나 처음부터 다 봤어요. 나 사육장 바깥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었던 거 알죠? 나 듣고 있었어. 태석 오빠가 아저씨한테 나 죽이고 4성 되라고 한 이야기 들었어. 왜? 내가 혼혈이라서?”

“아니야. 오해야. 오해! 오해라니까.”

“태석 오빠, 아플 거예요.”

“김아람! 아람아!”

김아람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쳤다. 그녀의 정교해진 염력이 공중으로 띄워진 한태석의 다리를 분질러버렸다.

한태석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걸 보며 김아람이 말했다.

“태석 오빠, 나 있지. 배신한 사람은 죽어도 싫더라. 돌아가서 마스터한테 전해요. 내 목숨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요. 알았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