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07화 (107/200)

107화. 재회

다음날 아침.

김건우는 민망한 얼굴로 마스터의 앞에 섰다.

“지형정찰 참가 명단입니다.”

“그래. 가져와 봐.”

빼곡하게 작성되어 있는 글씨를 꼼꼼히 읽어보던 마스터. 그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김건우!”

“네. 마스터.”

“이 자식이!”

장명훈의 날렵한 발차기가 김건우의 복부를 강타했다.

이렇게 얻어맞은 것은 같이 일하면서 처음.

김건우는 차마 능력으로 대응할 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마스터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뒤로 날아가는 몸이 벽에 부딪친다. 커다란 중상이 예상되었지만, 김건우는 물질투과능력으로 몸을 투과시켜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스르륵.

벽에서 김건우가 나오며 장명훈을 향해 말했다.

“마스터. 저 이제 어린애 아닙니다.”

“뭐야?”

“아직 어린아이지만, 미나에게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걔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어요. 믿고 싶습니다.”

김건우의 말에 장명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걔는 생각을 읽잖아! 그건 인마! 끌어들이는 능력이 아니라 너를 홀리는 거야. 너 걔 좋아하냐? 걔한테 반했어?”

“…….”

“왜 대답이 없어? 어?”

“끌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스터가 생각하는 그런 감정은 아닙니다.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챙겨주고 싶지 않습니까? 미나에게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명훈의 발차기가 또 한 번 김건우를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순히 당해주지 않았다.

김건우를 통과하는 장명훈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

“마스터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저한테는 무용지물입니다. 물론 저 또한 마스터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요.”

“김건우, 너 왜 이렇게 변했니? 너 예전엔 안 그랬잖아. 내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는 놈이었잖아. 어?”

장명훈의 말에 김건우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마스터도 많이 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변합니다. 마스터도 복수심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고, 저는 마스터를 존경했기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하지만 세월은 많이 흘렀죠.”

“적당히 해 인마! 아무리 너여도 선을 넘는 건 용서 못해.”

“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강미나는 제가 컨트롤 잘할 겁니다. 실제로 그럴 만한 능력도 있고요.”

장명훈은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좋아. 네 뜻은 알겠어. 그리고 김건우.”

“네. 마스터.”

“이번 작전이 무사히 끝나면 차기 마스터의 자리는 너로 생각하고 있어.”

“네?”

“난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은퇴할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알아.”

장명훈의 말에 김건우의 얼굴에 홍조가 일어났다.

“마스터…….”

“예전부터 널 후계자로 생각해 왔어. 그냥 결정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나를 믿고 따라와 줬으면 좋겠다.”

“당연하죠. 그렇게 해야죠.”

“그래. 알았어. 근데 태석이는 어디 갔지?”

“한태석은 지금 미나랑 같이 김만철 씨랑 김아람 만나러 갔습니다.”

“뭐?! 강미나랑 같이?”

“정보조 사람들은 작전조 사람이랑 짝 지어 나가라고 저번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미나를 붙여줬습니다.”

김건우의 대답에 장명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미쳤어?”

“네?”

“너 마스터 후계자 자리 취소다. 태석이한테 물려줘야겠네.”

“안 됩니다. 마스터! 마스터! 안 됩니다.”

“됐어. 됐어! 넌 안 돼! 죽어도 안 돼!”

“마스터. 마스터! 마스터!”

* * *

같은 시각.

아르케 1-8 지역에서는 슈트를 입은 한태석과 강미나가 어둡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배관 내부를 지나고 있었다.

“태석 오빠, 꼭 이 길로 가야 하는 거죠?”

“그래. 조금만 참아.”

“네. 알았어요.”

두 사람은 바키 무어가 살고 있다는 빌라의 입구에서 배관을 이용해 환풍구로 침입했다.

때마침 작동하지 않는 환풍기.

팬의 날개 사이로 침입한 한태석이 강미나에게 말했다.

“내 등 뒤에 업혀.”

“네?”

“잠깐 업혀 봐. 뛰어내리게.”

“네.”

한태석은 강미나를 업은 채, 1.5m는 되는 높이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며 양팔과 양다리를 활짝 펼쳤다.

그때, 한태석의 슈트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박쥐처럼, 혹은 하늘다람쥐가 가진 익막처럼, 슈트의 천이 넓게 펴지며 공기의 양력을 이용하는 글라이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태석 오빠, 이건…….”

“놀랄 것 없어. 슈트를 업그레이드 시킨 거야. 전등을 켤 수 있는 슈트가 있듯이, 이렇게 나는 기능을 가진 슈트도 있어.”

“대단해요.”

“당연히 대단해야지. 무려 4,000포인트짜리인데…….”

“태석 오빠는 주인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다 방법이 있어. 그것보다 지금 뛰어내려줄래? 착륙해야 하니까.”

한태석이 등을 활처럼 구부렸다 펴면서 지상 근처에서 미나를 튕겨냈다.

그 후 양팔을 사선으로 펼쳐 슈트의 익막을 펄럭이며 지상으로 안전히 내려왔다.

지상에는 거인들 특유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강미나가 표정을 찡그렸다.

“무슨 냄새예요?”

“아, 홀아비 냄새.”

“네?”

“거인들 수컷이 번식기 때 내는 특유의 호르몬 냄새야.”

미나는 냄새만으로도 거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가 미나의 귀에도 들려왔다.

두 개의 방, 각자의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거인들.

한태석은 거인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하며 유리사육장 안에 있는 김만철에게 접근했다.

김만철은 유리 사육장 내에서 홀로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똑똑.

사육장을 두드리는 한태석의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더니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는 김만철. 그는 곧 강미나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사육장 벽 쪽으로 뛰어왔다.

“미나? 미나 맞지?”

“네. 만철이 아저씨.”

“백현이는? 백현이는 어떻게 됐어? 너 따라갔잖아.”

“오빠는…… 아마 살아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살아 있다는 거야? 아니면 행방을 모르는 거야?”

미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현과 함께 있었던 일, 오빠가 실험실에 끌려간 일이며, 장복남 아저씨가 안락사 당해서 죽은 일까지.

“그랬니? 많이 힘들었겠구나.”

“네.”

그러나 모든 것을 말하진 못했다.

이진기의 죽음을 말하면 자신이 죽을지도 몰랐으므로 곤란한 이야기는 애써 피해갔다.

미나와 김만철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한태석이 김만철에게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철이 형, 사실 찾아온 건 미나 씨의 근황을 알려드리려는 이유가 아니에요.”

“그럼?”

“내일 김아람 씨하고 결승에서 붙잖아요.”

“그래. 그랬지.”

“형이 아람이를 이기고 우승하세요. 죽여도 좋다고 마스터가 허락했어요.”

김만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태석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죽이는 걸 허락했다니?”

강미나는 순간 한태석의 생각을 읽고는 입을 다물었다.

‘마스터, 그 자식! 언니보다 아저씨가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구나.’

한태석은 씁쓸한 얼굴과 함께 자신이 입었던 슈트를 벗어놓으며 말했다.

“공중에서 체공시간을 늘려주는 슈트예요. 마스터께서 이걸 형한테 전달하라고 하셨어요.”

“의도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만철이형의 승급이요.”

“승급?”

“네. 형 아직 2성이시죠? 4성이 되면 권능이 생겨요. 저희는 아람이의 고유권능이 《폭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화를 내면 강해지지만, 이성적인 판단력이 떨어지는 그런 능력이죠.”

“그래서 마스터는 나보고 아람이를 죽이라는 거야?”

“꼭 그러라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기왕 결승에서 우승할 거 확실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죠. 형도 시한부 인생이고 아람이도 시한부 인생이니까 둘 중 하나는 살아야 하잖아요. 안 그래요?”

한태석의 말에 김만철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슈트 가져가. 그거 받으면 양심이 찔려서 안 돼.”

“형, 저는 형을 위해서 이 슈트 받아온 거예요. 아람이는 비행 능력을 가졌어요. 염력으로 자신의 몸을 띄울 수 있다고요. 형은 그거 안 되잖아요. 절대 못 이기잖아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한태석! 너랑 한 달이나 같이 지냈어. 내 성격 알 텐데? 안 되는 건 안 돼.”

“형! 만철이 형!”

“난 내 목적을 내 방식으로 이룰 거야. 그리고 난 내 목숨 연장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아.”

김만철이 윤수와 정선희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의 생각을 읽은 강미나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윤수에게는 이미 소생의 돌을 사용했어요. 그러니까 안 죽어요.”

“뭐?”

“아저씨가 살리려는 윤수는 이미 살아났다고요.”

“미나야. 너는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어?”

“아저씨, 제 마인드리딩 능력이 무엇인지 알잖아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태석이 강미나를 뜯어말렸다.

“미나야. 그만해.”

“태석 오빠도 알잖아요. 마스터의 목적이 뭔지, 마스터는 만철 아저씨를 살리려는 게 아니라 희생시키고 싶어 해요. 아람 언니도 마찬가지고요. 자신이 복수하기 위해 시선을 끌어줄 장기말로 활용하길 원할 뿐이죠.”

미나의 말에 김만철이 언성을 높였다.

“복수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알기 쉽게 이야기 좀 해 봐! 한태석! 네가 이야기해 봐! 태석아! 태석아!”

결국 한태석은 마스터의 계획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들은 김만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어? 그런 거였어? 우승하면 준다는 소생의 돌은?”

“그건 사실이에요. 형한테 마스터가 거짓말한 건 없어요. 다만 설명이 부족했을 뿐이죠.”

“그래서 내가 바키우스란 거인하고 먼저 싸워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4성으로 승급을 해야 하고?”

“네. 불안전한 김아람보다는 안정적인 전투능력을 가진 만철이 형이 마스터로선 듬직해보였겠죠. 실제로 형이 보여준 모습도 그랬고요.”

“난 그동안 이용당하고 있었던 거네.”

“그렇게 생각하시지 마시고요. 다 형을 구하기 위해서예요. 형이 시한부 인생을 끝내고 저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거라고 전 알고 있어요.”

“아무튼 난 알아서 할게. 이 슈트는 가져가.”

“형!”

“질 생각은 없어. 실제로 이길 방법도 생각해뒀고.”

“알겠어요. 형만 믿을게요.”

뒤돌아서는 한태석을 김만철이 불렀다.

“잠깐! 아람이는 안 보고 가?”

“네. 형한테만 용무 있어서 온 거예요.”

“그러지 말고 아람이한테도 같은 이야기해줘. 나중에 마스터가 한 말을 알게 되면 서운해할 거야.”

“서운해하지 않을걸요? 이미 마스터하고 틀어질 대로 틀어져서…….”

“나도 사이가 좋은 건 아니지만, 아람이가 되게 쓸쓸한 애란 거 알아. 차별 많이 받고 자란 애야.”

“알았어요. 말해볼게요.”

“그래. 고맙다.”

* * *

한태석은 발걸음을 돌려 김아람이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그의 주인 버키가 드르렁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김아람이 플라스틱으로 된 사육장 안에서 홀로 수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람아.”

“오랜만이네요. 어? 미나 맞아?”

“네. 언니.”

“어떻게 된 거야? 백현이는?”

“말하면 길어요. 언니는 괜찮아요?”

“응. 내가 선택한 길인걸. 그리고 나 강해졌어. 만족해.”

“다행이네요.”

김아람은 자신의 염력을 활용해 플라스틱 사육장의 철장을 벌리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나올 수 있었네요?”

“네. 진작에 나올 수 있었죠. 미나야! 언니랑 포옹 한번 하자.”

“네?”

“빼지 말고 언니랑 포옹 한번 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아람의 행동이 이상했다. 그래서 강미나는 김아람의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읽히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통증 때문이었다.

“언니…….”

“왜? 아프니?”

“언니, 뭐하시는 거예요? 죽겠어요.”

“후후, 너 거인어 할 줄 알지?”

“네?”

“할 줄 알잖아. 내가 거인 깨울 테니까 말해. 염력 레벨 올리라고.”

“네?”

“이대론 아저씨한테 져. 이대론 지니까! 나 죽을 수도 있으니까 빨리 말해. 포인트 써서 내 염력 레벨 올리라고! 나 진심이야. 이대로 물러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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