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06화 (106/200)

106. 불가능한 합격

그날 저녁, 마스터 장명훈은 강미나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김건우에게 노발대발 화를 냈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김건우, 걔를 작전조에 왜 받아? 무슨 보이스카웃, 아람단 활동하자는 거야?”

“마스터, 그게 아니라요.”

“인마! 철저하게 숨겨야 해. 걔가 거인들한테 들켜봐. 우리 거주지가 남아나겠어? 생각을 좀 해라. 응?”

“일단 저는 이 건에 대해서 번복하긴 힘듭니다. 조원들이 만장일치로 받기로 했고, 실제로 가능성도 있어보였습니다. 현장은 최대한 배제하고, 사무실 내에서의 간단한 업무만 진행시키면서, 제가 책임지고 교육하겠습니다.”

김건우의 말에 장명훈이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주장을 구부렸다.

“그래. 그건 네가 알아서 잘 통제할 거라 믿을게. 실수하지 않도록 해.”

“네. 마스터.”

“그건 그렇고, 널 부른 건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

“어떤 중요한 일 말씀이십니까?”

“바키우스가 사는 건물 알지? 초고층 건물 지니어스타워.”

“네. 지니어스타워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방송에서도 자주 나오고, 아르케 지역 대회 결승도 거기에서 열리지 않습니까?”

“그래. 거기에 대한 설계도를 정보조가 구했어. 정보조 태석이랑 같이 침투로 계획 짜서 나한테 1주일 내로 보고해. 다음 주에 지형정찰 한번 갈 생각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김건우를 내보낸 후, 장명훈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정선희만 설득하면 끝인가? 아직 기간은 많이 남았어. 벌써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지. 그래. 천천히 생각하자.’

이번 작전에서는 꼬마지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박윤수가 필요했다. 그 고층빌딩에 박윤수와 김건우만 데려갈 수 있다면 자신이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승전에 나올 펫들의 수준을 이미 알고 있는 장명훈의 손에서 이번 최강자전의 결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떠올리는 상상이 방 안에 하나하나 펼쳐졌다.

장명훈이 만들어 낸 중년 여성은, 갑자기 팔이 빨랫감처럼 비틀리자 커다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다음은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는 무릎. 그녀는 망가진 무릎 때문에 바닥을 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장명훈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마지막은 역시 목이었다. 조윤아의 목이 툭 하고 떨어지더니, 바닥에 굴러가기 시작했다.

장명훈은 기묘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복수의 길은 탄탄대로. 장명훈은 자신의 계획을 다시 한 번 이미지로 구현해보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 * *

다음 날.

김건우는 작전조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임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 정보조 인원들하고 초고층 빌딩인 지니어스타워로 지형정찰 갈 거야.”

“오! 드디어 가는 겁니까?”

“그래. 그런데 다 가진 못해. 나랑 정보조 한태석, 그리고 연락책인 홍성운 이렇게 세 명은 확정이고, 여기서 한 명만 더 추가할까 해.”

한 명이라는 말에 강미나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김건우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애써 외면한 김건우는 멤버 선발계획을 말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지는 지하에 있다. 그 위에는 조그마한 빌라가 올라서 있고. 맞지?”

“네!”

“그 빌라 옥상까지 가장 빨리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을 뽑겠어. 제한시간은 5일. 5일 내로 현장에 나갈 수 있는 멤버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봐. 능력을 쓰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을게. 현장을 나가서 능력을 안 쓸 건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다들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런데 유독 미나의 표정만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왜? 강미나! 불만이야?”

“아니요. 조장님. 불만 없습니다.”

“그래. 그럼 됐고. 알아서 연습해. 지금부터는 자율훈련시간이다.”

“네.”

현장 멤버로 뽑히지 않은 조원들은 벌써 의지를 불태우며 훈련에 돌입했다.

벽돌로 된 건물.

강미나는 김건우가 왜 이걸 시키는 건지 금방 알아차렸다.

같은 작전조원들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끈끈이 능력이 있어서 빠르진 않지만 천천히 올라가는 조원도 있고, 거미줄 능력이 있어서 스파이더맨처럼 재빠르게 올라가는 조원도 있었다.

그에 비해 미나는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만 벽을 올라야 했다.

‘처음부터 노린 거야. 벽 타는 걸로 멤버를 정하면 난 현장에 절대 못 가.희망고문이라고.’

예상대로, 몇 번을 시도해도 혼자 힘으로 벽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슈트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20m나 되는 높이를 능력 없이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미줄 능력자도, 끈끈이 능력자도 한숨을 내쉬며 다시 지면으로 내려왔다.

“너무 높아. 장난 아니잖아.”

“그러게. 너무 만만히 봤나 보다.”

그럴 만했다.

20m는 지금의 인간으로 환산하면 1km나 되는 높이다. 남산 타워보다도 높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버즈칼리파보다도 높았다.

수직 높이 1km. 제 아무리 능력을 자유자재로 쓴다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첫날이 지나자, 작전조원들이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이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거 아니야?”

“조장님도 혼자 힘으로 못 가실 것 같은데?”

“조장님은 몰라도 한태석 씨는 불가능하지. 확실히 그 사람은 전투 능력하고는 거리가 머니까.”

“이거 본인들도 못하면서 우리한테 시킨 거 아니야?”

미나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겨우 50c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을 뿐이었다.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3일째가 되어도 그녀가 홀로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1m가 되지 않았다.

미나는 3일 밤낮 동안 체력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러나 제한시간이 이틀 남은 시점에서 그녀가 옥상에 올라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서러웠다. 조금이라도 도와주거나 방법을 가르쳐주거나 했으면 좋을 텐데, 김건우 조장은 아무 도움도 주질 않았다.

숙소에 돌아온 미나의 침울한 표정을 본 정선희가 다가왔다.

“왜? 작전조에 들어갔다며! 벌써 힘들어서 그런 거야?”

“아니에요. 언니,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애초에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네가 왜 한다고 그래? 어휴, 너도 한 고집 하는구나?”

“…….”

미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선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생각을 다르게 해 봐. 꼭 작전조일 필요는 없잖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는 거야. 응? 언니랑 생산조 하면서 오래 살아남는 게……”

“언니!”

“아, 알았어. 미나 너 고집 진짜 세다. 생각 좀 바꿔보는 게 뭐가 힘들다고. 언니처럼 인생 오래 살다 보면 너도 언니 마음 이해할 거야.”

미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작전조에 기왕 들어간 거,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데 좀 안 된다고 바로 생각을 바꾸라니.

그러다가 미나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생각을 바꾼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방법으로 생각을 바꾸는 거다.

분명 김건우는 말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한 게 없었다.

그래. 그거야! 그거였어.

미나가 무언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갑자기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디 가?”

“잠시 가 볼 데가 있어서요.”

“또 무슨 바람이 났기에! 왜?!”

“합격하고 말씀드릴게요!”

* * *

5일째. 드디어 평가의 시간이 돌아왔다.

김건우와 함께 출동할 남은 한 명의 대원을 뽑기 위한 시험.

건물 뒤편 옥상 앞에 작전조의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자자! 오늘 마지막 출동 대원 뽑는다고 했지? 가장 먼저 누가 평가 볼래?”

“제가 보겠습니다!”

“알았어. 준비해!”

“네.”

김건우는 한 사람 한 사람 평가를 시작했다.

처음 손을 들고 나온 사람은 끈끈이 능력을 가진 남성.

그는 온 몸에서 분비되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활용해서 벽을 타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구경나온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우와! 되겠다. 옥상까지 올라가겠는데?”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접착력.

건물을 오르는데 최적화된 능력이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3분이 지난 후였다.

“쟤, 언제 올라가?”

“그러게. 아직도 저 자리야.”

접착력이 너무 강해서 떨어지고 다시 붙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느려지는 속도.

그는 고작 2m 정도 오른 후에는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김건우가 고개를 저으며 탈락을 알렸다.

다음은 거미줄 능력자였다.

거미줄 능력자는 끈끈이 능력자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서 나오는 거미줄을 유리창에 쏘아붙인 후, 사지를 놀리며 힘차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끈끈이 능력자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거미줄이 지탱하는 힘으로 유리창까지 올라간 그는 다시 한 번 거미줄을 쏘아내며 위쪽으로 도약했다.

3층 높이.

그런데 거미줄 능력자가 갑자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이번에는 양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며 중도 포기를 알렸다.

“왜 그런 건데? 왜 저기서 포기하는 건데?”

그러자 앞서 탈락한 끈끈이 능력자가 거미줄 능력자의 마음을 대변했다.

“거미줄이 더 이상 안 나올 겁니다.”

“뭐?”

“하루에 뽑아낼 수 있는 거미줄이 최대 8m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뭐야?!”

결국 그도 실패.

이제 남은 사람은 강미나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강미나를 향했다.

기대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강미나, 기권이지?”

김건우는 모두의 눈빛을 알아차리고 강미나에게 물었다.

“아니요.”

“뭐? 너 이틀 전에 연습하는 거 봤어. 쟤네들의 반의반도 못 올라갔다며.”

“네. 그랬었죠.”

“그랬었죠?”

“지켜만 보세요.”

강미나가 갑자기 빌라 벽의 옆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쪽은 거인들이 자주 다니는 인도가 있었다.

“강미나! 강미나!”

사람들이 당황하며 미나를 불렀다. 그러나 미나는 멈추지 않았다.

“야! 거기를 왜 가! 야! 강미나!”

사람들이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강미나는 가로등이 길게 늘어서 있는 인도 사이로 모습을 감추며 일행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조장님, 어떻게 할까요? 추적할까요?”

당황하는 조원들이 김건우에게 물었다.

“아니야. 사고 칠 애는 아니야.”

“그래도 거인들한테 잡히면 어떻게 합니까?”

“거주지에서 잡힌 건 아니니까 크게 문제되진 않겠지. 그리고 최악만을 생각하진 말자고. 걔도 생각은 있는 애야.”

“조장님…….”

김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나가 내심 걱정되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철부지 아이.

미성년자인 데다, 신체적 능력도 남들보다 떨어지는 그 애가 걱정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강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인지는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던진 돌멩이가 그녀가 이미 옥상에 도착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어떻게…… 도착한 거지?”

“미나가 옥상에 있다고?”

강미나는 활짝 웃으며 양손을 흔들어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알렸다.

그런 그녀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다.

리모컨처럼 보이는 무언가.

그걸 보며 정보조의 한태석이 씩 웃었다.

“역시 리모컨이 잘 작동했나 보네.”

“뭐야? 야! 한태석! 리모컨이라니?”

김건우의 말에 한태석이 대답했다.

“미나가 어제 부탁하더라고요. 엘리베이터 움직일 수 있는 리모컨 좀 만들어달라고. 관리자 비밀번호는 3356이라면서, 만들 수 있겠냐고.”

“뭐? 그래서 리모컨을 만들어준 거야?”

“반칙은 아니니까요. 수단과 방법이 있다면 그걸 써먹는 게 작전조에서 원하는 인물 아니에요? 미나는 미나 나름대로 거인들의 정보를 획득해왔고, 나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는 리모컨을 제작해줄 수 있었던 거고.”

잠시 후, 미나가 씩 웃으며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작전조원들 앞에서 김건우에게 리모컨을 건네며 물었다.

“조장님, 김건우 조장님! 저 합격 맞죠?”

“…….”

“조장님이 말한 건 옥상에 올라가라는 것뿐이었지, 꼭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한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

김건우는 말없이 뒤돌아섰다.

“조장님! 건우 오빠! 오빠! 나 합격이잖아. 합격이잖아요! 합격 아니에요? 아니냐고요!”

강미나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 김건우.

‘아, 마스터가 싫어할 텐데…….’

절대 합격하지 못하도록 내놓은 시험주제.

하지만 그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은 강미나.

김건우는 고개를 저으며, 왼손을 높게 들어올렸다.

왼손 끝.

굳게 쥔 4개의 손가락.

그와 대조적으로 남은 엄지손가락이 위로 치켜세워져 있었다.

다른 조원들이 부러운 듯 강미나를 바라보았고, 김건우의 목에서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합격! 강미나, 너도 지니어스타워에 같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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