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대립구도
장명훈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확인한 후, 스스로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 확신했다.
5년이란 세월이 조직 내의 불신을 희석시킨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왜 안 들어와?”
“나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김건우는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군지 확인한 후 마스터에게 알렸다.
“강미나입니다. 들어오라고 할까요?”
“그래. 정보조, 작전조,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이만 해산하자고!”
장명훈의 말에 정보조와 작전조 사람들이 대답했다.
「네! 마스터!」
강미나는 모두가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자신의 목적이 있었기에 그런 부분은 감내해야만 했다.
장명훈은 미나에게 퉁명한 목소리를 냈다.
“왜 찾아왔지?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닌가?”
“……”
“어차피 내 생각도 읽었을 거 아니야. 반대의견 내러 온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 말한다고 해치진 않으니까.”
그의 말에 강미나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를 핑계로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봐요. 강미나 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거 알아요. 두려워하는 거 알고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거인을 해치려는 계획은 너무 무모하잖아요.”
“뭘 무모하다는 거야? 난 이걸 5년 동안 계획했어. 당신 때문에 한순간에 내린 결정 아니야. 나를 따르는 사람들도 단순히 당신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려는 거 아니고. 뭔가 단단히 착각한 모양인데…….”
마스터의 말에 강미나가 언성을 높였다.
“단순히 복수심 때문이잖아요! 부인이었던 조윤아 씨가 배신한 게 견딜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거잖아요!”
미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목에 장명훈의 날카로운 손날이 멈춰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입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그 말 다시는 꺼내지 마. 내 역린을 건드리는 거니까. 알겠어?”
“으으…….”
저항할 수 없는 기분.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강미나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인드리딩 Lv1. 이 능력으로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단순히 타인의 생각을 읽는 것밖에 못한다.
그래서 마스터를 설득할 수 없고, 누군가를 말릴 수가 없었다.
죽지만 않았더라면, 허무하게 죽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건데…….
후회의 감정만 차오르는 가운데, 강미나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도 더 이상은 말 안 하겠어요. 대신 저도 부탁이 있어요.”
“대신?”
“이곳을 떠나고 싶어요. 들어보니 일본 거주지도 있고, 중국도 비슷한 거주지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쪽으로 보내주시면……”
강미나의 말에 장명훈이 낄낄 대며 웃었다.
그의 잔인한 표정 아래의 속마음이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미나는 기겁한 얼굴로 마스터를 보았다.
“내 마음을 읽은 거지?”
“진짜…….”
“넌 아무데도 못 가. 여기 그대로 있어야 해. 너라는 존재가 살아있어야 거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들을 찾을 거고, 그 행동을 통해 난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미나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마스터.
그는 성욕도, 물욕도, 식욕도 없었다.
오로지 복수심, 복수심 하나만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 같았다.
강미나는 너무 무서웠다.
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사악한 마음으로 가득한 장명훈의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그런데 마스터가 쐐기를 박았다.
“이진기처럼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닥치고 살아. 그게 네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야. 알겠니?”
“…….”
강미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마스터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완전 손발이 다 묶인 상태다.
그런데 정선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미나에게 말했다.
“마스터 방에 갔었다며.”
“네. 언니.”
“좋은 말만 해줬지?”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을 위기였던 정선희. 그런데 구사일생, 마스터가 소생의 돌을 사용하여 윤수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그 후 정선희는 마스터 장명훈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신념을 가진 사람이 이래서 무섭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질 않을 테니까.
강미나는 체념한 채,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잘 적응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 내가 뭐랬니? 마스터는 좋은 사람이라니까. 그나저나 미나는 어디 조에 있을 거야?”
“네?”
“작전조, 정보조, 생산조, 회복조 이렇게 4군데가 있잖아.”
“생산조는 그렇다 쳐도 회복조는 뭐하는 곳이에요?”
“회복조는 간병. 생산조는 음식준비, 이불빨래, 청소 이런 것들. 언니가 생각하기에 언니랑 같이 생산조에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우리 윤수랑 같이 회복조에 있어도 되고.”
“전 정보조로 가겠어요.”
“뭐?”
“여기서 당분간 머무르며 오빠를 찾고 싶어요.”
“너 미성년자잖아. 그런 건 어른들한테 맡기고 지금은 일단 쉬면서…….”
정선희의 마음은 이해했다. 정선희는 누구보다도 미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같이 지낸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정말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했고, 오빠를 죽이려 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분명 언니가 걱정하는 건 아는데, 차마 웃음을 보일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선희 언니는 직접 남편을 죽이기까지 했다.
비정한 모성애.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율리만.
“언니, 나 역시 정보조나 작전조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왜! 쉬라니까. 너 연구소에도 잡혀갔었잖아. 왜 사서 고생을 해? 아무도 너한테 일하라고 하지 않아.”
“언니 마음 알아요.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오빠가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 만철이 아저씨도 찾아야 하고, 아람이 언니도…….”
“그 두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연결해서 거인하고 계약한 거니까.”
정선희의 말에 미나는 확신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겠다고.
여기 거주지는 따로 벌려놓은 일이 많았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걸 알려면 핵심부서에 들어가야만 하겠지만, 정선희가 권유한 생산조나 회복조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니, 그건 제가 좀만 더 생각하고 결정할게요.”
“그래. 강요하진 않을게. 하지만 미나 너도 이제 좀 쉬었으면 좋겠다. 어린 나이에 너무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는 하지 마. 알겠니?”
“네. 알겠어요. 언니.”
* * *
다음 날, 강미나가 작전조장인 김건우를 찾았다.
“미나 씨, 아니 어리니까 말 편하게 할게. 강미나, 이제 좀 괜찮니?”
“네. 저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건우 오빠.”
“그래. 마스터 나쁜 사람 아니야. 이진기가 죽은 것은 나도 좀 쇼크였지만, 그래도 그는 너를 죽이려 했어. 우리를 배신했고.”
“알아요. 나도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알아요.”
나이에 비해 조숙한 정신연령.
강미나는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빠, 부탁이 있어요.”
“그래. 말해.”
“날 받아줘요.”
“뭐?!”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조원으로 받아달라고요. 이상한 생각하신 거 아니죠?”
“아, 어. 당연하지! 야. 내가 30대 중반인데 10대인 너한테 이상한 상상을 하겠냐?”
“모르죠. 지금은 법치국가가 아니잖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데, 그게 꼭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야야야! 이상한 소리하지 마. 그나저나 넌 조원으로 안 돼.”
“왜요?”
“여자는 안 받아. 아니 그 전에 우리 팀원들의 균형을 깨고 싶지 않다. 한 번 나가면 이틀이고 삼 일이고 밖에 나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걸 네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김건우의 말에 강미나가 반론했다.
“여자라서 안 될 이유는 없잖아요. 아람 언니도 작전조였다고 선희 언니한테 들었어요. 아람 언니는 되고, 왜 저는 안 돼요?”
“하하, 야! 김아람 걔는 성깔이 장난 아니잖아. 더구나 걔는 특별했어. 염력으로 하늘도 날고, 아무튼 강했잖아. 넌 생산조나 회복조에서 지내면서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그래. 험한 일은 오빠하고 동료들이 다 할 테니까. 알겠니?”
검건우의 말에 강미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자라서 못한다고? 여기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강미나는 충분히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인드 리딩, 거기에 부족한 신체능력은 슈트로 커버가 가능했다.
그녀는 여성 남성을 나누기 전에 그 사람의 자질을 보는 게 먼저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건우 오빠, 나도 한 사람 몫 할 수 있어요. 여자라고 무시하지 마요. 내가 한다는데 왜 오빠는 기회도 안 줘요? 아람 언니나 만철이 아저씨는 가능했던 일을 왜 나한테는 기회도 안 주는 건데요! 네?”
미나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김건우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작전조원들이 모인 사무실이었다.
황토로 벽을 바른 나름 고급스러운 사무실 안.
강미나의 말에 조원들이 김건우에게 핀잔을 늘어놓았다.
“거참, 여자애가 깐깐하네. 그냥 실력 한번 보여주죠?”
“그래요. 백번 말하는 것보다 행동 한 번이 낫죠. 한번 보여주고, 깔끔하게 포기시켜요. 그게 낫겠다.”
김건우는 황당한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고집스러운 강미나에게 물었다.
“한번 붙어볼래?”
“네?”
“붙어서 이기면 작전조에 들어와도 좋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할 거야?”
강미나는 김건우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기 조원 중에 골라. 누구랑 붙어 볼래? 어느 누굴 골라도 너보다는 강할 거야.”
미나는 현재 사무실에 있는 세 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건우 오빠하고 붙을래요.”
“뭐? 나?”
“네. 작전조에서 팀장이 오빠라면서요. 오빠를 이기면 당연히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뭐, 내가 왜 조장인 줄 알고 하는 소리야? 가장 세고, 경험 많고, 연륜 있으니까 조장인 거야. 다시 생각해 봐. 지금 나를 고른 건 최악의 선택인 거야. 1%의 가능성이 0%가 된 거라고. 어?”
“아니요. 오빠랑 붙겠어요. 슈트 주세요. 입고 올 테니까. 오빠도 슈트로 갈아입으세요.”
김건우는 당황했다.
“와, 미치겠네. 나 만만하게 본 거 맞지?”
“형이 조금 어리바리하긴 하죠?”
“건우 형이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
* * *
잠시 후, 슈트로 갈아입은 두 사람이 광장에 있었다.
김아람과 김만철의 대결 이후 오랜만에 열린 정식 대결.
그 상대는 김건우와 강미나.
김건우는 이런 자리가 굉장히 쪽팔렸다.
‘아, 진짜 여자애하고 꼭 이렇게 해야 해?’
생각해보니 김만철이 얼마나 황당하고 짜증났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때는 김아람이 가끔 폭주하고, 워낙 이미지가 세서 대결구도를 만들었는데 그게 얼마나 만철 형님한테 민폐였는지 내심 깨닫게 되었다.
“먼저 덤벼 봐.”
“무시하지 마요.”
“그래. 너 정도는 능력 안 쓰고도 이길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강미나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빨랐다.
일반 성인 남성을 상회하는 이동속도, 거기에 날렵한 펀치까지.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펀치의 방향을 보고 왼쪽으로 피했는데, 시야 사각에서 들어오는 돌려차기가 김건우의 턱을 정확히 타격했다.
턱이 흔들리자 갑자기 시야가 사리지고, 몸에 힘이 빠진다. 푹 하고 쓰러졌던 김건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람들의 비웃음과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뭐야? 김건우 조장님 왜 이렇게 약해?”
“대박, 지금 미나라는 애가 조장님 한 방에 K.O 시킨 것 맞지?”
“대박이다. 정말. 명경기. 명경기!”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미나가 김건우를 향해 말했다.
“건우 오빠, 기권이에요? 아니면 계속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