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00화 (100/200)

100화. 첫날 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풀었다.

다행히 에반은 큰 무리 없이 정답을 맞췄다.

상식적인 이야기, 사회, 경제, 과학 파트까지, 에반은 다방면의 문제를 해결하며 그들의 기대에 부흥했다.

그런데 문제는 백현에게도 시험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 이걸 맞춰야 해? 말아야 해?’

첫 번째는 거울 테스트였다.

백현에게 거울을 보여주고 인지력 테스트를 하는 것.

『선배님, 이 벌레가 거울을 인지할 수 있을까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몇 안 돼. 쉽진 않지.』

『그래도 왕자님의 펫을 이겼잖아요.』

『그러니까 혹시나 하고 우리가 테스트를 하고 있는 거잖아.』

『하긴, 그렇네요.』

백현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몰골을 확인했다.

하루종일 에반의 상의 주머니 안에 있었더니 머리가 떡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거인들이 신기한 듯 말했다.

『지금 거울 보고 있는데요? 자기 얼굴 확인하는 것 맞죠?』

『정말이야?』

『네. 자기 얼굴 확인하고 머리 손질하고 있는데요.』

그 다음은 난이도가 높았다.

넘어지지 않게 고정시킨 주둥이가 좁고 길이가 긴 실험관 안에 땅콩을 넣어놓았다.

손을 넣어도 땅콩을 잡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는 옆에 조그마한 물통을 세팅해놓았다.

물통에 있는 물을 실험관에 옮겨 물 위에 뜬 땅콩을 먹으라는 의도. 백현이 모를 리가 없었다.

‘고작 땅콩 따위로 나를 실험해?’

그런데 거인들이 자신을 놓고 하는 말이 자존심이 상했다.

『난이도를 너무 높인 건 아닐까요? IQ 80 테스트인데, 이 정도면 닭보다도 머리가 좋습니다. 선배님.』

『그런가? 너무 높게 잡았나? 반응이 없네.』

『이 조그마한 벌레가 닭보다 머리가 좋을 리가 없잖아요.』

첨단도시 아르케에 비해 인간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도르시안.

그래서일까?

백현이 거인어를 할 줄 알고, 알아들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백현은 그들의 말을 듣고 실험에 응해주기로 했다.

물통에 담긴 물을 땅콩이 담긴 실험관에 넣고 땅콩을 꺼내는 백현.

물론 먹진 않았다.

땅콩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을 뿐.

그 다음 실험은 인지력 테스트였다.

숫자 1~5까지 5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그런데 3번이라고 쓰인 곳에만 땅콩이 있고, 나머지 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더니 숫자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3 / 2 / 5 / 1 / 4

이번에도 역시 3번에만 땅콩이 있었다.

반복 실험을 통해 거인들의 의도를 깨달았다.

『숫자도 알아보는데요?』

『IQ 85 테스트를 통과했어. 대단해! 대단해!』

위대한 발견.

『선배님, IQ 90 테스트도 있나요?』

『그건 없는데?』

『네? 없습니까?』

『당연하지. 야! 우리 거인들 평균 IQ가 96이야. 저런 벌레들이 90을 넘길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일단, 이 휴먼종에 대해서는 연구할 가치가 있겠어. 잘하면 IQ가 88까지 나올지도 몰라.』

『그렇게만 된다면 저희는 역사를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옆에서 듣고 있던 백현은 코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자신이 위험해질지도 모르기에 더 이상 그들과 놀아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 * *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에반은 《막시무스》가문의 정식 양자가 되었다.

페르세우스 막시무스. 그게 황제의 본래 이름.

그는 에반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작위를 내렸다.

작위를 수여하는 행사에서 에반이 무릎을 꿇고 황제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자, 페르세우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깃들었다.

『그래. 에반, 기분이 어떠니?』

『황공하여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후후, 예법을 잘 배웠구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고 했나?』

『네. 어릴 적에 작고하신 이후 줄곧 혼자였습니다. 형제들도 모두…….』

혼자였다는 말에 페르세우스가 과거를 회상했다.

아버지였던 페르시우스 황제가 죽은 후 시작된 형제의 난.

50여명의 형제가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래. 많이 쓸쓸했겠구나.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곧 혼례를 치러야지?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을 못한 것은 수치니까.』

『네. 그래야겠습니다.』

페르세우스는 비록 아들이 죽었지만 그리 슬프진 않았다.

아들이라면 수백 명도 넘게 있었다.

부인만 해도 48명이나 되었다.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자식들.

그래서일까?

비록 천민 출신이지만 황족보다 더 예의를 알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젊은 친구.

거기에 비록 우연이지만, 작은 체구의 펫으로 10년 이상 기른 황실의 펫을 이기는 기연까지.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펫이 있는 방으로 에반을 안내했다.

3m는 될법한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방.

그 안에서 커다란 숨소리가 들렸다.

에반은 긴장했다.

강백현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생명체의 존재가 미니맵에 보였기 때문이다.

황제는 커튼을 걷었고, 그 존재가 에반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에반은 펫의 압도적인 크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에반의 표정을 보며 페르세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놀랄 것 없단다. 이게 우리 도르시안 대륙이 타국으로부터 안전했던 이유니까.』

신장 약 10m.

엄청난 크기의 얼굴을 한 동물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특유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니 수사자가 분명했다.

다만 보통의 사자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등에서 펄럭이는 날개로 보아 키메라인 것이 분명했다.

『이 녀석은 나의 펫이 된 이후 40년간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단다. 신디아는 아르케 녀석들에게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우리 도르시안은 절대 무너지지 않아. 이 녀석이 있으니까.』

『네.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황제의 기분을 맞추려는 에반은 애써 불쾌한 감정을 지워냈다. 아르케에게 무너진 신디아.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황제는 에반을 보며 자신의 펫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펫을 골방에서 꺼냈다.

황제가 오랜만에 펫을 데리고 나가자 모두의 시선이 황제를 향했다.

그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는 시종들.

황제도 황제지만, 용맹하고 위엄 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펫 때문이기도 했다.

절대 혼자서는 관리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체형.

거기에 펄럭이는 날개.

황제는 에반을 피라미드 정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올라가며 황제가 물었다.

『테스트 만점으로 합격했다고 들었다.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

『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신디아에서도, 아르케에서도 거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 문제가 황당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황제는 균형 잡힌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은 결코 네가 생각하는 만큼 작지 않으니까.』

당연히 이해되지 않았다.

에반은 자신이 충분히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피라미드 정상에 오르자, 앞서 성인식을 무사히 치른 두 왕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펫에 올라탄 채, 에반과 두 왕자에게 말했다.

『다들 올라타거라. 너희들에게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마.』

에반과 두 왕자는 황제의 명에 의해 10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날개 달린 사자 위에 올라탔다.

사자 녀석은 4명의 거인이 올라탔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하품을 했고, 황제는 그런 사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항상 가던 곳으로.』

사자가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피라미드 바깥에 있던 도르시안의 백성들은 상공에서 날고 있는 거대한 사자의 존재에 넋을 놓았다.

이것이 황제의 위엄.

황제는 사자를 타고 높게, 또 높게 올라갔다.

공기가 옅어지고 하늘의 온도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황제는 멈출 줄을 몰랐다.

페르오네 왕자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 어디까지 올라가십니까? 많이 두렵습니다.』

『페르오네, 그렇게 두려우냐?』

『네. 떨어질까 무섭습니다.』

페르오네의 말에 황제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페르오르도 같은 생각이더냐?』

『네. 아버님. 저도 두렵습니다.』

『그래. 하지만 반드시 봐야 한다. 너희들 중에 나를 이을 황제가 나올 수도 있으니 이 광경은 꼭 봐야 한단다.』

『네. 아버님.』

구름을 넘어 좀 더 올라가자 하늘 무늬의 천장이 보였다.

에반과 백현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제는 천장을 두드리며 자식들에게 말했다.

『만져 보거라.』

『네. 아버님.』

천장. 딱딱하기 그지없는 천장.

황제는 천장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했다.

그러자 천장 위에 글씨가 써져 있는 공간이 보였다.

황제가 씩 웃으며 자식들에게 말했다.

『읽어보아라.』

『네. 아버님.』

거짓된 평화에 만족하고 사는 미물들이여.

그대들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도다.

긴 평화의 시간이 끝나고, 그대들은 시험에 들게 될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의 탄생을 위한 희생이 시작되기 전에 스스로 시험에 들라.

- 율리만 -

황제를 제외한 모두가 말을 잊었다.

황제는 충격을 받은 3명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너희들도 이제는 알겠지? 우리는 예전부터 갇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님…….』

『내려가서는 너희 부인들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절대 발설하지 말거라. 이건 우리 황족 성인만이 알아야 할 일이다. 혹여나 백성들이 알게 되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다.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평화와 안전은 오래가지 않아. 누군가는 결국 율리만의 뜻대로 시험에 들어야겠지.』

그때 검은 구체 수십 개가 황제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구체들이 황제와 그의 왕자들을 서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자들과 에반의 앞에 메시지를 출력했다.

[위대한 지도자의 길이 열렸습니다.]

[황제와 함께 데이터 아일랜드의 시련에 도전하십시오.]

[남은 시간 198일 13시간 36분 33초…… 32초…… 31초.]

『아버지…….』

두 명의 왕자는 자신들의 아버지를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아들들을 보며 황제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래. 198일 후에 각 대륙은 율리만 섬을 공략하러 갈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비밀을 캐기 위해, 율리만의 뜻대로 난 시험에 응할 생각이다. 너희들도 함께 하겠느냐?』

『네. 아버지.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제 목숨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버지와 운명을 같이 하겠습니다.』

* * *

다시 피라미드 정상으로 돌아온 황제는 미소지으며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하지만 뭔가 불만이 가득한 두 왕자.

『뭐야? 이 녀석도 같이 가는 거야?』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론 그런 것 같은데?』

『말도 안 돼! 10년간 고생한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

남은 기간 198일.

황제는 왕자들을 데리고 그 시련에 도전해볼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에반이 같이 가는 게 마땅치 않은 두 왕자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페르오네, 페르오르가 에반을 향해 말했다.

『에반이라고 했지?』

『네. 형님들, 에반 슈트리거, 아니 에반 막시무스이옵니다.』

『형님? 네가 나이가 더 많은데 왜 내가 형님이더냐?』

『저는 페로테우스 왕자를 대신해 양자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페로테우스보다 형님이신 페르오네, 페르오르 왕자님께서는 제 형님이 맞습니다.』

에반은 두 왕자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하지만 왕자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네가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페로테우스가 죽은 것은 자명하다. 우리들은 절대 너를 곱게 보지 않을 게다.』

『네. 이해하옵니다. 다만 저는 황권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허락만 하신다면 고향이었던 신디아 대륙으로 가서 정착할 생각이옵니다.』

그의 말에 두 왕자는 고개를 저었다.

『황족은 마음대로 다른 대륙으로 갈 수 없다.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에반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스스로 자결하는 방법이 제일 좋겠지.』

『네?』

『자결하라는 말 못 들었느냐?』

두 왕자의 말에 에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한 여성이 갑자기 나타났다.

『왕자님들, 에반 님께서 저랑 함께 떠나면 어떨까요?』

『뭐?』

『소인의 이름은 나타샤. 에반 님과 함께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황제께는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말씀드리면 뭐라고 하진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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