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97화 (97/200)

97화. 분신

강백현은 김만철의 예선 경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겼어.”

“친한 사람이었나 보네.”

“응.”

에반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시 소란이 벌어졌다.

경기 중단을 알리는 목소리.

때마침 식사를 마친 에반이 백현에게 제안했다.

“경기 미뤄질 것 같은데? 스마트폰이나 사러 가자.”

“응.”

에반은 식당에서 나와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있었다.

때마침 악당들에게 뜯은 돈이 있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전파등록을 하고, 돈을 지불하면 끝.

『얼마죠?』

『3,000제니입니다.』

에반은 스마트폰을 등록하자마자, 여러 군데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다 받지 않고, 그 중 한 명만이 그의 전화를 받았다.

- 『국경검문소장 앨버트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앨버트! 나 에반! 에반 왕자야.』

- 『너 누구야?!』

『나라니까! 에반 슈트리거. 에반 왕자라니까?』

- 『에반 왕자님은 4년 전에 돌아가셨다. 이런 장난 한 번만 더 치면 용서 없어. 어?』

에반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앨버트를 향해 호소했다.

『앨버트. 5년 전에 네가 나한테 충성의 맹세를 했었잖아.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고! 그거 우리 둘만이 아는 비밀이잖아.』

『둘만 알아? 이미 작년에 내가 자서전 냈잖아. 이봐요. 내 책 사준 건 고마운데, 이런 장난 전화는 옳지 않아. 어? 옳지 않다고! 차단합니다.』

『앨버트! 앨버트!』

에반이 황당해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거는데 상대방이 이미 차단을 했단다.

『와! 미치겠네.』

“그냥 만나서 얘기하면 되잖아. 먼저 전화할 거 있어?”

“그것도 그렇지만.”

“어차피 너 쫓겨났다며. 도망쳤다며.”

“그건 그렇지.”

에반이 스마트폰을 챙겼다.

다시 돌아온 여행사.

여행사에서 에반은 해야 할 일을 개시했다.

보험 가입, 그리고 지급물품 수령 확인서.

에반을 위해 지급하는 장비들은 손전등과 침낭, 그리고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 등, 여행 때 필요한 물품이었다.

운전사 겸 여행가이드에 신혼여행 부부 1쌍, 배낭여행 중인 청년, 그리고 에반.

여행사는 4인의 여행객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각 펫은 뒤쪽 트레일러 안에 보관해주세요.』

『트레일러요? 같이 있으면 안 되나요?』

『네. 소음도 소음이고, 각 펫들이 주인 입장에서만 귀엽지, 다른 손님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그랬다.

신혼부부의 펫은 비단뱀 한 쌍.

부부가 같은 종류의 펫을 키우고 있었다.

『저희 아이는 순한데…….』

『네. 손님한테는 순하겠죠. 얼른 핑계대지 말고 트레일러에 태워요. 다른 손님들도 트레일러에 본인 펫들 다 넣어주세요. 아! 꼭 케이지에 넣으셔야 합니다.』

『네!』

강백현은 당황했다.

에반은 미안한 얼굴이었다.

『잘 있어. 이따 밥 먹을 때 꺼내줄게.』

트레일러는 그냥 짐칸이었다.

커다란 비단뱀 2마리가 서로 꽈리를 틀고 속이 훤히 비치는 아크릴통에 들어가 있고, 청년의 펫인 앵무새는 새장 안에 갇혀 있었다.

그것뿐이랴? 여행 가이드의 펫인 몽구스 또한 줄에 묶인 채로 자고 있다.

백현도 마찬가지.

숨구멍 하나 달랑 뚫린 유리병에 갇혀 있다.

어쩔 수 없는 룰.

백현은 에반이 원망스러웠다.

‘한 번쯤은 데리고 타도 되냐고 물어봐도 되잖아.’

이럴 때 보면 답답 그 자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같이 놓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수면가스로 재울 거예요.』

여행가이드는 여행사에서 가져온 수면가스를 트레일러에 살포했다.

그러자 강백현도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시야가 좁아지는 가운데, 트레일러의 문이 닫히고 어둠이 찾아왔다.

덜컹덜컹.

기분 나쁜 충격음.

강백현은 정신을 차렸다.

‘깼잖아.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가스가 다 차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어둠 속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보였다.

빛의 틈.

그 조그마한 틈으로 가스가 전부 빠져나간 것이다.

쉬리릭. 쉬리릭.

백현은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기가 찼다.

뱀이 혓바닥을 내밀어 냄새를 맡는 소리였다.

뱀들의 움직임에 놀랐는지, 막 정신을 차린 앵무새가 날갯짓을 하며 난리를 쳤다.

퍼득퍼득!

심상치 않은 움직임.

원래 조류는 뱀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비단뱀이었다.

평상시 집 안에서 고이 길러진 앵무새는 비단뱀의 소리에 새장에서 미친 듯이 날갯짓을 했다.

백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앵무새가 가만히 좀 있었으면 소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새장이 넘어졌다.

넘어진 충격으로 새장의 문이 열리자 앵무새가 푸드덕거리며 새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빛이 새어나오는 틈을 향해 푸득거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앵무새가 나가기에는 너무 좁은 틈이었다.

앵무새는 또아리를 튼 뱀에 기겁하며 계속해서 틈새를 향해 머리를 부딪쳐갔다.

앵무새의 격렬한 움직임에 백현이 들어있던 유리병이 치였다.

뚜껑이 열린 채, 데굴데굴 반대방향으로 굴러가는 유리병.

* * *

몽구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차량에 탑승해 있는 거인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소리죠?』

『가이드님, 차량 멈춰보세요. 트레일러에서 펫끼리 싸우는 것 같아요.』

『설마요. 꽁꽁 묶어뒀는데요. 다들 빠져나올 수 없게 자물쇠도 채웠잖아요.』

『일단 멈춰보세요. 심상치가 않다니까요.』

차량을 멈춘 가이드. 그리고 화들짝 놀라 트레일러 문을 개방하는 주인들.

가장 눈에 띈 것은 바깥으로 탈출하려던 앵무새였다.

앵무새의 몰골은 처참했다.

닭털처럼 뽑혀나간 깃털이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고, 그나마 뽑히지 않은 깃털도 엉망으로 훼손되어 아름다움을 뽐내던 자태는 온데간데없었다.

에반은 바로 백현을 찾았다.

유리병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뚜껑이 열려 있었다.

당황했다.

‘설마 죽진 않았겠지?’

그런데 그 설마가 나타났다.

몽구스의 입에 물려있는 조그마한 시체.

그건 백현의 몸이 틀림없었다.

『놓아! 그거 먹는 거 아니야! 놔!』

주인의 명령에도 아작아작 씹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몽구스.

당황한 가이드가 자신의 펫인 몽구스의 입을 강제로 벌리기 시작했다.

에반은 좌절했다.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 저거 어떻게 해.』

『가이드님 펫을 그냥 묶어만 두시면 어떻게 해요! 우리 펫은 그렇다쳐도 죽은 건 어떻게 해! 응?』

『자기야. 당신 가만히 있어 봐.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당신이 왜 나서. 조용히 좀 해.』

『어떻게 조용히 하라는 거야. 가이드님, 여행자 보험 가입된 거죠? 에반 씨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보험 될 거예요.』

몽구스의 입에서 강백현이 빠져나왔다.

잘근잘근 씹혀 살점이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상태.

그것뿐만이 아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고, 몸에서 피가 끊임없이 흐른다.

여행가이드는 엉망으로 훼손된 백현의 시체를 보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에반은 당황했다.

자신의 원대한 계획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쉽게 죽는다고?

뛰어난 지능. 어디든지 상대를 찾아낼 수 있는 미니맵 능력.

자신의 몸을 보호하면서도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보호막에 자가치유 능력까지 가졌다.

그런데 몽구스한테 죽었다고?

그러고 보니 몽구스에게 물린 상처 주변이 보라색이다.

『독이 있었나요?』

『네. 제 몽구스는 독사와 같이 물린 상대를 바로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에반 씨 펫처럼 약한 피부를 가졌다면, 한번 물리면 빠져나갈 수 없죠.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에반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백현이 없으면 모든 계획은 헛수고가 된다.

허무했다.

사상 최강의 키메라를 만드는 제조기술을 몰래 빼올 수 있었다.

키메라 제조에 적합한 휴먼 종도 빼올 수 있었다.

그것도 최상급, 4성짜리였다.

그런데 그 4성짜리가 눈앞에서 죽었다.

에반은 부하들이 자신에게 넘겨주었던 포인트를 떠올렸다.

7명의 부하들이 평생 모았던 포인트를 자신에게 몰아주었고, 에반은 그 포인트를 강백현이란 4성급 펫에게 절반 넘게 쏟아부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거라고? 죽었다고? 겨우 여행자 가이드의 펫에게?

그런데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강백현의 능력은 2개가 아니었다.

보호막과 자가치유.

그리고 자신이 직접 배우게 했던 분신. 분신이 있었다.

그때, 멀리서 보호막 파편을 타고 날아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에반! 에반!”

녀석이 방긋 웃으며 여행자들의 앞에 날아왔다.

에반이 씩 웃었다.

『백현!』

“한국말로 해. 나 거인어 하는 거 들키기 싫어.”

“오케이 오케이! 살아있었냐?”

“그럼 내가 죽었겠어? 다 죽일까 했는데, 그러면 네가 곤란해질 것 같더라고. 마침 유리병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고, 그래서 틈새로 잠깐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트레일러에서 떨어져버렸잖아. 멈추지 않았으면 미아 될 뻔했다.”

에반은 숨을 헐떡이는 백현을 보호막 발판에서 들어올려 상의의 주머니에 넣었다.

『가이드 님? 그냥 제 펫은 제가 들고 다닐게요. 괜찮죠?』

『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죽은 것 아니었습니까?』

『네. 죽은 거 아닙니다. 몽구스가 먹던 게 제 펫이 만든 분신이었다네요. 다행입니다.』

『분신? 분신이요?』

* * *

다행히 사태는 잘 수습되었다.

여행 가이드는 본사로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했고, 그에 따른 보상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손님에게도 좀 전의 방침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트레일러에 보관하는 게 저희 회사의 규칙이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점은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암반 지역, 불의 계곡.

캐러밴을 암석 뒤에 주차한 여행가이드가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를 친 후 곧바로 야영이 시작되었다.

야식으로 먹을 고기를 굽고, 애완동물 먹이를 주는 시간.

신혼부부 커플들은 자신들의 비단뱀 한 쌍에게 줄 먹이용 가방을 꺼냈다.

살아있는 생쥐였다.

앵무새의 주인은 곡식을 꺼내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반의 차례.

백현은 다른 펫하고는 달랐다.

고분고분 에반의 품 안에서 신기한 듯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술을 꺼내는 여행가이드.

『염소젖으로 만든 밀주입니다. 오늘 더 이상 운전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한 잔씩 드시죠. 정말 귀한 술입니다.』

『오! 밀주! 맛있겠네요.』

고기와 술, 거기에 붉은 암반지역의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자 틀어졌던 여행객의 마음도 조금씩은 누그러들었다.

백현은 에반이 접시에 따로 덜어준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보호막의 형태변화로 포크를 만들어 고기를 찍어올리는 백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거인들.

『펫이 참 똑똑한 것 같아요.』

『네. 휴먼종은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보다 더 많은 의사표현과 감정표현을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에이, 거짓말. 이렇게 조그마한 벌레가 우리보다 똑똑하다고요?』

『후후,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보면서 직접 판단해주세요.』

에반이 사랑스러운 얼굴로 백현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늦은 밤.

각자의 텐트에 들어가는 사람들.

강백현이 에반을 향해 말했다.

『에반, 아까 전에 보던 경기 어떻게 됐나 보면 안 될까? 궁금해.』

『응. 잠깐만. 스마트폰 충전 배터리 연결 좀 하고.』

에반이 뉴스를 클릭했다.

대전 결과.

다행히 김만철과 김아람이 예선을 통과했다.

살아남은 것이다.

『다행이다. 맞지?』

『응.』

강백현은 생각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됐다고.

그런데 뉴스 하단에 사건사고 소식이 보인다.

백현은 깜짝 놀랐다.

“조세핀?”

그리고 미나의 존재.

피를 흘리는 미나를 가슴에 품고 차량에서 빠져나오는 조세핀의 모습이 보였다.

“강미나! 강미나!”

“왜 그래?”

“동생!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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