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소생
소생의 돌을 사용하여 살아난 미나는 자신의 체력이 모두 회복되었음을 느꼈다.
거인들의 생각이 들렸다.
『‘연구소에 넘기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소유권이 넘어간 것은 아니겠지?’』
거인들은 곧바로 검은 구체를 불렀다.
검은 구체가 미나를 서칭하기 시작한다.
조세핀은 몸이 온전치 않았지만 구체로부터 미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내 거예요! 내 허락 맡고 검색하세요!』
그런데 이상했다.
『아닌데? 주인이 없다고 나오는데?』
『네?』
『주인 없는 펫이잖아. 잘 봐! 화면에 나와 있잖니?』
조세핀은 당황했다.
자신이 미나를 지정해제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해제되어 있었다.
강미나도 당황했다.
미나는 자신을 검색하는 거인의 기억을 삭제하려고 했었다.
헌데 소생의 돌로 살아난 후 체력이 회복되었는데도 거인에게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벨이 1이 됐어.』
마인드 리딩이 레벨 1로 다운됐다.
그건 죽고 되살아난 자의 숙명.
죽으면 능력 레벨이 떨어진다.
김만철 아저씨도, 아람 언니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겪었던 것.
제복을 입은 경관들이 미나를 손으로 잡았다.
미나는 날쌘 동작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날쌘 개미가 사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듯, 미나도 거인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
거인의 손아귀가 미나를 옥죄여왔다.
미나는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혼절하고 말았다.
조세핀은 미나를 내놓으라며 울음을 터트렸지만, 곧이어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말았다.
* * *
장명훈은 이진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강미나의 위치를 추적했다.
“소생의 돌을 더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무조건 확보해야 해. 무조건!”
그의 말에 이진기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진기는 그동안 동료들에게 비밀로 한 게 있다.
물론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은 있다.
김만철도, 박윤수도, 정선희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떠벌리지 않았다.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 없었다.
사실 초조했다.
쫓겨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남은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앞으로 4개월 남짓.
그 후에는 자신도 죽고 만다.
그래서 매사에 열심히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싸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일본인들이 머물고 있다는 거주지까지 가보았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더 짜증났다.
자신이 왜 클론이 되어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들로부터 듣긴 했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더 답답할 따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진기는 강백현에게 원망스러운 감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였다.
첫 번째. 자신의 친구를 살릴 영혼의 돌을 주겠다던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두 번째. 잡혀가는 자신을 버리고 동생을 구하러 간 점.
그래서 그 두 남매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가 갔다.
‘그래. 소생의 돌을 가지고 있다면 구해줄 만하지. 결국 너도 그런 놈이었어.’
시간이 흘러갈수록 삐뚤어진다.
사람 목숨이 얼마 남지 않으면 다 그렇게 된다.
이진기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남들한테 자신의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철저하게 행동했다.
“연구소로 이송되고 있어요.”
“그래? 1-8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연구소가 어디지?”
“가자 연구소입니다.”
“그쪽으로 가지.”
“네.”
이진기는 김건우와 장명훈의 뒤를 쫒았다.
소수정예. 3명의 팀.
하지만 이것으로도 잠입하는 것은 충분하다.
2명의 길잡이가 있으니까.
이진기는 자타공인 최고의 추적술을 가지고 있었다.
천리안으로 자신이 원하는 지역은 어디든 볼 수 있었다.
어둠으로 가려진 곳만 아니라면 뭐든 구별할 수 있었다.
능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아공간을 활용할 줄 알았다.
최고의 회피술, 최고의 공간침투술.
김건우의 물질투과 능력과도 궤를 달리하는 엄청난 능력이었다.
세 사람이 연구소 잠입에 성공했다.
그곳에는 문제의 여성. 강미나가 있었다.
슈트를 입은 채로 철창을 잡고 울부짖는 그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분무기를 통해 뿌려진 가스.
수면가스를 흡입한 강미나는 곧바로 기절해버린다.
“기다려야 해.”
“네.”
수면가스가 옅어지길 기다리는 세 사람.
장명훈이 말했다.
“내가 혼자 데리고 오마.”
“알겠습니다.”
장명훈은 체조선수답게 동작이 화려했다.
아크로바틱한 움직임.
순식간에 도약해서 뜀틀을 넘듯 장애물을 넘고, 좁은 곳에서도 2단 공중제비를 통해 최소한의 디딤동작으로 뛰어넘었다.
책상 위를 올라가는 장면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한 번에 도약해서 올라갈 수 없는 높이.
그가 온몸을 책상다리에 꽉 붙인 채, 손의 악력만을 이용하여 기어 올라간다.
마스터의 동작을 본 이진기가 당황했다.
“인간 수준의 레벨이 아니네요.”
“그렇죠. 마스터는 원래 강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만철이 형님이 마스터에 가장 근접했다고 보면 되겠네요.”
김건우의 말에 이진기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온 게 누구 덕분인데? 신체 능력이 다가 아니야. 나처럼 정보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온 거라고! 마스터에 어울리는 건 나지! 나야! 나라고!’
마음이 급해진 이진기는 다른 사람의 말이 전부 부정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마스터가 책상에서 내려와 일행들에게 되돌아온다.
“마스터……. 왜 돌아오세요?”
“전기가 흘러.”
“네?”
“전기가 흘러서 내가 꺼내올 수가 없어.”
“아, 그럼 저도 같이 가야겠군요.”
“응.”
김건우가 물질투과 능력을 쓰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진기가 나섰다.
“마스터, 저랑 다녀오시죠.”
“응?”
“제 아공간 능력이면 위험부담 없이 다녀오실 수 있습니다.”
이진기의 말에 장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지. 건우는 여기 잠시 남아 있어.”
“아닙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그게 나을까?”
“네.”
아공간 안.
새하얀 벽지 같은 공간 위에는 모래시계가 보인다.
모래시계는 아공간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말 편리했다.
소음도 없고, 위험도 없다.
아공간 능력은 특별했다.
“대단해. 대단해!”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능력은 처음 봅니다.”
장명훈이 이진기를 칭찬하자, 이진기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이진기는 마지막으로 마스터에게 물었다.
“마스터, 소생의 돌을 얻게 되면 클론들에게 써주실 건가요?”
“아니, 그럴 일은 없어.”
“네?”
“클론들은 소모품일 뿐이야. 죽어도 상관없는 부속품. 그런 자들에게 소생의 돌을 쓸 생각은 없어.”
장명훈의 말을 들은 이진기는 실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이진기가 천리안으로 현재 일행들의 위치가 미나의 옆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공간이 깨지고.
3명이 어느 한 공간에서 나타난다.
그곳에서 강미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다행이네요. 살아있네요.”
“일단 거주지로 데려가자고.”
이진기가 강미나를 업었다.
‘얘가 소생의 돌을 가지고 있다고? 나를 살릴 수 있는 거지? 분명 살릴 수 있어. 얘가 내 시한부 인생을 구원해줄 수 있어.’
그때, 김건우가 말했다.
“진기랑 같이 오길 잘했네요. 제 능력으로 여기는 못 들어와요.”
“그래?”
“네. 전기가 흐르는 곳은 제가 투과시킬 수가 없는 모양이에요. 더구나 전기가 흐르지 않는 나머지 8방면은 전부 텅스텐으로 되어 있어서 물질투과가 되질 않네요.”
“텅스텐은 투과 못하는 건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진기한테 다시 열어달라고 해야겠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그런데 이진기가 없었다.
강미나도 없었다.
아공간이 닫히고 있었다.
“야! 진기야! 왜 너 혼자 가?”
“이진기! 이진기!”
이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이진기의 머릿속에는 짧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여기서 나갈 수가 없다고? 내 도움 없이 나갈 수가 없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여기에 두 사람을 가두는 게 가능하다.
그럼 거주지는 마스터를 잃는다.
마스터를 잃으면 새로운 마스터를 뽑아야 한다.
김만철도 없고, 김건우도 없고, 김아람도 없는 무주공산의 거주지.
그렇다면 자신이 마스터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경쟁자라면 한태석뿐인가? 아니다. 한태석도 권력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자신이 마스터로서는 적임이다.
자신 있었다. 가능해보였다.
그리고 마스터가 없어야 소생의 돌을 자신이 가질 수 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숙명.
마스터를 배신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강미나가 가지고 있는 소생의 돌이 필요했다.
이진기가 강미나의 뺨을 때렸다.
그녀를 깨우기 위해서였다.
“으으윽.”
“돌 어딨어?”
“네? 진기 오빠세요?”
“돌 어딨냐고! 소생의 돌 어디 있어?”
강미나는 자신이 새하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공간 내부.
이진기가 흥분한 채, 강미나의 목덜미를 흔들고 있었다.
“없어요. 저한테 쓴 것 같아요.”
“뭐?!”
“없어요. 진짜 없어요.”
이진기가 흥분했다.
주먹으로 강미나를 얼굴을 마구 때렸다.
하지만 전투능력은 강미나나 이진기나 거기서 거기였다.
자신의 주먹을 막아내는 강미나를 보자 이진기가 더욱 더 발광했다.
“야! 빨리 안 내놔! 돌 내놔! 내놔! 내놓으라고! 나 클론이야. 이제 곧 죽는다고! 백현이가 나한테 준다고 했단 말이야!”
진흙탕 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강미나가 자신에게 돌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가 가슴속에서 돌을 하나 꺼냈다.
천사의 게임 제1라운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승자를 맞추면 영혼의 돌을 얻을 수 있었던 도박.
다른 사람은 자신의 목숨 때문에 도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나는 달랐다.
오빠가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얻은 영혼의 돌.
그걸 보며 이진기가 흥분했다.
“진짜 있었잖아.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그런데 갑자기 아공간이 흔들린다.
절대 들어올 리 없는 두 사람이 아공간 안으로 들어온다.
“마스터?”
“이진기. 너 뭐하는 거야?”
“아니. 이건…….”
이진기는 당황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문을 닫았는데?”
김건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
“네가 닫은 문을 내 능력으로 투과해서 들어왔다. 공간도 투과가 되더라고. 네가 닫은 문, 투과할 수 있더라고. 근데 너 뭐냐? 손에 그 돌은 뭐냐고!”
“건우 형. 이건요. 아!”
마스터 장명훈은 고개를 저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그. 미나와 김건우에게 말했다.
“눈 감아.”
“네?”
“눈 감으라고.”
장명훈이 순식간에 이진기한테 접근한다.
장명훈의 손은 마치 칼날 같았다.
그가 장기를 하나하나 빼내는 동작은 조선시대 백정을 방불케 했다.
사람이 해체되고 있었다.
이진기가 외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가 정보 하나 더 드릴게요!”
“정보?”
“네. 강백현이라고 그 친구도 소생의 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돌은 제가 좀 쓸게요. 마스터. 제발! 제발! 저 클론이에요. 클론이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제발 살려줘요.”
하지만 장명훈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 콩팥, 폐, 거기에 소장과 대장까지.
그의 몸 안에서 모든 장기를 꺼내 바닥에 흩뿌린다.
바닥에 널브러진 이진기의 시체.
미나가 이진기의 죽음에 입을 막았다.
그걸 본 김건우가 미나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을 해치진 않을 겁니다. 우린 당신을 구하려고 온 거니까요.”